메뉴 건너뛰기

[진보교육] 62호 (2016.10.21. 발간)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25. 느린 아이 덕분에 알게 된 세상

 

김윤주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25-1) 노오력의 서막


 10818072_974398545973350_1572868815_n.jpg


  생애 처음으로 노오력이란 걸 하고 있다.

  아이는 작년 영유아검진에 이어 올해 영유아 검진에서도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고, 나는 올 11월 복직이다. 배짱좋던 마음은 오간데 없고, 다급한 마음에 발달센터의 이런 저런 수업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허허....100만원 정도의 교육비를 지출 중 되시겠다. 이 무슨 돈지랄이란 말인가. 복직까지 주어진 시간 단 3개월. 아이 키우는 동안 그토록 시간이 더디더니 갑자기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으어어어 시간이 너무 없어!!!!

 

  내 평생 이런 과소비와 과몰입은 처음이다. 센터수업은 대개 40분 수업에 5만원. 원래의 나라면 절대로 이런 소비는 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현재 영유아 발달에 관해 거의 반 전문가가 되었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지식이 수집된 상태이며, 아이 다루는 것에는 워낙에 직업적으로 트레이닝 되어 있어, 딱 각잡고 수업 모드로 돌입한다치면 내 아이 하나쯤은 충분히 그들만큼 교육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남편도 내가 맘먹고 아이와 놀아주는 걸 볼 때면 늘 감탄해마지 않곤 했다. “, 넌 진짜 타고난 것 같다. 솔직히 전문 치료사도 너보다 더 잘할 것 같진 않다. 넌 이 방면으로 나갔으면 진짜 대성했을 거다라는 말을 곧잘 했는데, .....돈 아끼려고 한 말 같진 않다....) , 어쨌거나. 나도 할 수 있는데, 전문가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 하나로 이렇게 고비용을 지출하는 건 지금껏 없는 일이었다.

  한편, 내 평생에 이토록 라는 존재를 소멸시킨 적이 있었나?.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이 갓난쟁이일 때조차도 나는 아이와 나를 분리하여 생각하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 늘 혼자만의 시간과 어른의 언어에 목말라했으며, 독립된 개체로서의 소소한 기쁨을 챙기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그런 갈증들이 싸악 사라져버렸다. 아이 키우느라 내 심신이 고단하고, 퍼지고, 매력 없어지는 것에는 일말의 상실감조차 없으며, 일견 그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막연하게 감지되는 헌신의 터널. 드디어 나는 기차를 몰고 그곳으로 진입한다. 원 웨이 티켓~원 웨이 티켓~ 원웨이 티켓 우우우우~~~귓전에 울려오는 올드팝이여.

  그래, 그간 인생 참 편하게 살았구나. 노오력은커녕 노력조차 해 본 기억이 없다. 타고나길 의지박약에, 욕심도 없고, 자극적이고 편하고 낄낄대는 것만 좋아라해서....성취고 사랑이고 간에 그저 흘러가는대로 리듬만 탔을 뿐 뭐 하나 노력으로 쟁취해 본 것이 없다. 인생이 딱 일베충 각인데, 다행히도 신께서 평균보다 약간 웃돌게 부여하신 것이 있었나니, 자존심과 곤조, 흥과 끼, 다함께 행복하고자하는 열망, 도움되고픈 진심....이런 것들 덕분에 여지껏 인간구실하고 살았다. 돌이켜보건대 타고난 약점과 강점이 굉장히 상호보완적이어서 합이 꽤나 잘 맞았던 것 같다. 한 편엔 의협심과 열정을, 다른 한편엔 쾌락성과 게으름을 태운 생의 시소가 리듬감있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위험하지도 따분하지도 않을 높이와 속도로 상하운동을 했으므로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살아졌달까. 생애사적 순간마다 땅기는 것 혹은 똥줄이 타는 것들에 적절량의 신명과 책임감이 발동되었고, 딱 발동된 엔진만큼 저절로 어느 지점에 도달해있곤 했다.

노력하지 않지만 도태되지 않는 삶. 나는 이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고, 이 패턴을 굴리는 내 타고난 엔진에 대해 막연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매사에. 당연히 육아도 그러하려니 하였으므로 그저 세월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도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25-2) 느린 아이의 부모들

 

  아이는 6월 경부터 말이 부쩍 늘었다. 그 때가 34개월 무렵이었으니, 말 안 터지는 것 때문에 제법 속을 끓였다. (두 돌 전에 문장발화 및 의문사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정상발달로 친다.) 여하간 언어발달의 경우 세 돌을 발달장애 여부의 기준으로 치는 게 일반적이니, 말하자면 턱걸이 통과한 셈. 말만 트이면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배변 훈련은 또 왤케 어려운거니? 반응이 석연찮다. 그때서야 겁을 집어먹고 공부를 시작.

 

  어떤 책이나 전문가의 조언보다 크게 배운 곳은 느린 아이의 부모들이 모인 커뮤니티였다.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양태로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지, 또 그 부모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이들을 둘러싼 시장은 또 얼마나 다양하게 형성되어있는지를 생생하게 배웠다. 우리아이가 느린 게 감사하다고 느낄 만큼 교사로서 너무나 소중한 정보와 마음가짐을 습득하게 된 것이다.


ImageDisplay.jpg


  아이가 아직까지는 단순 지연 외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은데다, ‘문장발화라는 큰 산을 넘은 상태에서 입문한 입장이다보니 나는 그 곳에선 꽤나 해피한 축에 드는 부모였는데,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그 덕분에 얼마나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 원래 나는 더 못한 사람들보고 힘내라는 말, 참 싫어했다. 남의 불행을 위안 삼는 인간들의 심보란. , 힘든 사람을 보면 같이 힘들지, 절대 위안이 되진 않는다고! 그러나 그것은 내 처지가 무탈할 때 드는 마음이고, 내 어떤 처지가 명백히 남보다 어려운 상황일 때는 참으로 집요하게 같은 처지,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입장의 사람들을 찾게 되더라. 모르겠다. 설명할 길이 없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그렇게 되더라. 서로가 그런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고민 글이 올라오면 다들 태연하게 우리 애같이 더한 애도 있으니, 우리보고 힘내요ㅋㅋ라며, 기꺼이 비교열위를 자처하는 이심전심과, 다른 아이의 기쁜 소식들이 희망의 증거가 되어 내 일처럼 기뻐해줄 수 있는 마음가짐에 도달한 부모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우리 애 센터수업이 끝나자마자 배운 정보와 팁들을 일일이 후기를 남겨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예전엔 중고장터에 신나게 돈 받고 팔던 것들을 기꺼이 무료나눔하고 있다. 내게 센터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이, 아이가 별탈없이 나날이 발전하고, 엄마를 사랑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직 내놓을 것이 많은 부모인지를 자각하게 되었고, 그럴 수 없는 처지의 부모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

  이제나저제나 부모 피가 마르는 무발화 자폐아이, 통제불가능하여 가는 어린이집마다 퇴소당하는 통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봐야하는 adhd아이,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들썩이고 의지와 무관하게 욕설을 뱉는 틱장애 아이, 수십 번을 반복해서 가르쳐도 학습이 쉬 되지 않는 경계선 지능과 지적장애 아이....발달 장애의 카테고리마다 다양한 양상의 아이들이 잔뜩이다. 그 부모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상처와 불안을 마주하다보니, 학교에서 교사들간에 쉽게 오가는 말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얼마전 고속도로를 지나다 어느 학교에서 써 붙인 커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보았는데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가 그것. 예전 같으면 아이에 대한 무한신뢰와 어른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말이려니 무심했을 모토지만, 나는 그걸 보고 무지 화가 났다. 왜냐하면 저 시선 자체가 비장애 정상아동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다, 아이의 현재 모습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가정이라는 그릇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피땀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집단생활에서 문제아가 될 수 밖에 없도록 타고난 아이들이 이토록 많고, 이 아이들의 장애는 뚜렷이 눈에 보이는 핸디캡이 아니라서 모두 일반학교에 진학하는데, 품행이나 학습에서 문제적 양태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쉽사리 문제아로 낙인찍혀버린다. 저런 말들은 문제의 원인을 정상아의 심리문제로 국한함으로써 이들을 은연중에 배제하거나 잘못된 책임추궁을 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아스퍼거, adhd, , 지적장애 등 부지기수의 증상들은 타고난 뇌신경 문제로 인한 필연적인 발현이지, 양육환경이나 심리적 문제는 그 원인이 아니다. (증상의 방아쇠가 되거나 악화 및 완화의 배경이 될 수는 있다.)

  그곳에서 본 부모들은 대체로 보통 부모보다 곱절은 피땀을 쏟고 있으나, 아이발달에 문제가 생긴 그 순간부터 본인의 어떤 점이 잘못이었을까 제 잘못을 추적하고 또 추적하며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에 확인도장을 찍는 것이 바로 아무렇잖게 횡행하는 저런 말과 시선들이며, 지극정성이면 정성인대로, 자유로우면 자유로운대로, 엄격하면 엄격한대로 아이 발달장애의 용의자로 낙인찍혀 옴짝달싹할 수 없어한다. 어린이집부터 학교생활 내내 아이 문제로 교사와 학부모들이 입을 대니 타인의 시선에 대해 노이로제가 걸려 있으며, 죄인이 된 부모는 연민과 원망이 뭉뚱그려진 마음으로 아이를 질책하다가 점점 상태가 악화되는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증상의 아이들은 주눅들고 추궁당할수록 상태가 악화된다) 악화되는 아이를 보며 어느 순간 정신이 바짝 들어 그때부터 더듬이를 한껏 치켜세운 채 내 새끼는 내가 지킨다!”의 전사 모드로 변신.


 c_0_002220150519115505260664.jpg


  복직하면 잘해야겠다. 이들에게 교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벅찬 회한의 눈물을 쏟게하는지, 무심결의 대찬 말 한마디가 얼마나 비수가 되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냉철한 조언이 필요한 순간일지라도 부모의 심정을 충분히 어루만지며 조언할 때만이 효과적인 연계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이미 아이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남들이 혹여 아이에게 편견을 갖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느라 이미 너무나 지쳐있으니까.

 

#25-3) 무당과 마법사들.


  발달수업은 8월부터 시작했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아이는 근래 두어 달 새에 언어능력과 인지능력이 훅 올라와서 또래범주로 진입하였으며 (33개월 무렵만 해도 1년 정도 지연된 상태였다), 밝고 유순하였으므로 다루기가 특별히 힘들다고 여겨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제법 말도 잘하고 또롱또롱 아는 것도 많아져서 드디어 아이랑 노는 재미가 붙던 찰나였으므로, 나는 복직 헬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내게 주어진 3개월간 질릴 정도로 오직 게으르게 놀기만 해야징! 푸른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 푸른 꿈은 커뮤니티에 누적된 글들을 읽으며 점점 먹구름이 끼었고, 이내 경고등을 울리며 각성 상태로 탈바꿈했다. 놀기는 개뿔!

  왜냐하면, 27개월에 우리 아이는 종합 발달검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발달지연외 별다른 진단을 받지 못해 나는 지금껏 방심하고 놀고만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당시의 우리 아이랑 별다를 바 없거나 일견 더 나아 보이는 아이들도 비슷한 월령에 병원이나 센터 등에서 경계성지능”, “지적장애”, “자폐스펙트럼”, “언어장애”,“사회적 소통 장애등의 무시무시한 진단을 받고, 발달수업에 매진 중인 사례가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나 발달치료사 중에는 한정된 시공간에서 표준화된 검사도구를 갖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영유아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아이의 발달과 평가는 가변적이다.”라는 대전제를 깔고 아이검사와 부모상담에 임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정말 많고, 오히려 자기 진단과 처방에 확신을 갖고 명쾌하게 탁탁탁! 말해주는 후자 쪽이 훨씬 유명하고 장사도 잘 된다. 왜냐하면 대체로 모든 늦은 아이들의 부모는 앞으로 괜찮을 수도, 안 괜찮을 수도 있다.”는 자기 의구심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말을 듣고자 가는 게 아니고, 그렇게 얄짤없이 말한다는 전문가로부터 이 아이는 멀쩡하다. 안심해라!”라는 확인을 받고 싶어서 (장애가 명확한 경우는 명확한 치료비전을 제시받고자) 전문가를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이면 열, 안 괜찮다! 부모 정신차려!” 는 말을 듣는다. 당연한 것이 이건 마치 견딜만한 디스크통증이라도 정형외과를 찾아간 이상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고, “몇 번 뼈가 눌려 있어서 그렇습니다.”는 진단과 더불어 물리치료나 수술을 권고받는 수순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판단하는 임상적 기준이 명확하며, 그것은 매년 실시하는 영유아검진의 확장판이므로, 영유아검진에서 지연소견을 받은 아이는 여기서도 당연히 안 괜찮다. 그들은 망설임없이 이 아이의 양상은 **장애이며, 주당 인지치료 몇 회, 언어치료 몇 회, 감각통합 치료 몇 회, 놀이치료 몇 회를 받을 것이라는 똑 떨어지는 처방을 주고는이 아이가 정상아가 될 확률은 몇 프로다까지 탁! 예언해준다.

  그날 밤부터 부모는 눈물바람과 불면으로 초기 몇 달을 지새우게 된다.

  나는 부모들이 겪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굉장히 분노했는데, 이제 두 돌, 세돌 된 아기들에게 저토록 딱딱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아이들 저마다의 심리와 발달 경로, 속도는 싸그리 무시하고 정상/비정상을 확언할 수 있는 저 날선 확신의 근거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영유아의 발달지연/발달장애에 대한 원인은 아직 의학적으로 아무것도 규명된 것이 없다. 부분적 가설에 대해조차도 부분적으로만 입증된 조각조각들이 전부이다. 다만 장애의 카테고리마다 발견되는 문제적 양태를 일반화할 수 있을 따름인데, 이조차 일반 영유아들이 조금씩 갖고 있는 성향적 특징인데다, 문제행동들은 모든 카테고리에 겹쳐져 있는 것이기도 하고, 성장하면서 꾸준히 발현되기도 소거되기도 하는 것이어서, 문제적 특성이 한시적일지 영구적일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같은 아이를 두고 이름 있다는 전문의들이 서로 다른 진단과 처방 내리거나, 아이가 자라면서 진단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지만, 이러나 저러나 그들에게 오진의 책임을 묻는 일은 없다.

  “절대 정상아가 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아기가 세월 지나고 멀쩡하게 잘 자란 경우도 태반인데, 의사의 오진이었는지 아니면 진단 후 본인들이 열심히 아이를 케어했던 노력으로 인해서 치료된 것인지 알 길이 없을뿐더러, 잘 자라준 아이의 현재에 감사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너무 크니까 그저 한 시기의 에피소드로 남을 뿐이다. 한편, 영유아 때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는데 크면서 보니 adhd 였다, 지적 장애나 경계성 지능이라고 진단 받았는데 크면서 보니 아스퍼거라네? 같은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경우는 완전히 엉뚱한 치료에 장기간 쌩돈을 쏟아부은 꼴이 된다. 그러나 다른 과 의사라면 멱살잡이를 당할 중대한 오진에도 이 바닥에선 그럴 일이 없다. 왜냐?

  아이의 발달이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와 문자를 줄줄 꿰고 외우며, 타인과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는 고기능 자폐스펙트럼진단을 받은 아기가 언젠가는 영재로 보였다가, 언젠가부터는 자폐아로 보였다가, 다른 기능들이 다 본 궤도에 오르고 난 언제가부터는 그저 다소 내성적인 일반아로 자라있는 경우는 굉장히 흔하다. 또 영유아기에 경계성 지능이나 지적장애진단을 받았으나 사회성이 발달하거나 학습행위에 익숙해지면서 표준지능에 올라서는 경우도.

  영유아 발달의 주요항목인 인지/ 언어/ 사회성 및 심리/ 대소근육 및 감각발달이 저마다의 문을 갖고 있다치면, 모든 문이 동시에 적당한 속도로 열린 아이들은 이른바 정상아”, 이 경로와 속도가 남다른 아이들은 발달장애아혹은 발달지연아로 자리매김한다. 문고리를 돌려 잡아당기기 까지 더 많은 관찰과 시간을 소비해야만 어느 시점에 확! 열게 되는 아이도 있을 수 있고, 각 문들이 긴 공간에 쪼르르 칸칸이 연결되어 첫 문부터 순차적으로 모든 문을 연 후에야만 모든 기능의 출입이 원활해지면서 정상발달 궤도에 들어서는 아이도 있을텐데, 아이가 다 자라는 어느 시점까지는 현재 이 아이가 어느 경로에 선 상태인지 알 수가 없으니 순간순간 아이가 보이는 행동양태에 따라 진단은 바뀐다.

  이 바닥에서 그 어떤 전문가라도 부모에게 확언할 수 있는 맥시멈은 이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적 양태가 어느 카테고리의 어느 강도에 위치하며, 이 정도 아이의 일반적인 예후가 어떠한 알려주고 치료법을 상세히 소개하는 것 정도 까지다. 그 이상을 용한 점쟁이처럼 탁탁탁 말하는 이들은, 이 망망대해같은 영유아 발달이라는 우주에서, 듬성듬성 떠다니는 과학의 별을 찾아 헤매는 부모들에게 가짜 태양행세를 하는 이들이다. 어차피 이 바닥은 오진의 책임, 치료의 성패로부터 전문가는 자유롭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순간이 아니므로 진단하는 입장에선 긴장감이 없는데 보호자는 아이의 한평생이 걸린 심정으로 심장을 졸이는 곳. 그러니 손쉽게 태양이 되고자하는     마법사들이 왜 안 많겠는가.

  과학적 성취가 미미한 분야에서 전문가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덕목은 불확실한 것에 대해 확정하지 않는 과학자로서의 품위와, 자신이 획득한 전문성을 나눔으로써 반드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로서의 자신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전문가들이 독설을 통해 자신의 전능감을 과시하거나, 반대로 전문성 자체를 회의하는 듯한 무기력과 무관심으로 부모를 대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보인다. 수십만원을 들여 전문가 상담을 받고 온 부모들은 어릴 때 발달 늦은 아이, 커서도 부족할 확률 높아.”따위의 연구결과, 마치 어려서 잘생긴 아이, 커서도 잘생길 확률 높아와 다를 바 없는 이 영감제로의 결과를 받아들고 지나치게 절망하거나, 쓸데없는 돈 낭비를 했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나날이 늘어가는 치료수요를 감안할 때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25-4) 마을이 사라진 곳에서의 아이들

 

  나는 왜 우리 아이가 남보다 발달이 늦은걸까를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모아애착도 좋았고, 내가 좀 게으른 애미이긴 했지만 딱히 부족한 애미는 아니었고, 물려준 유전자도 나쁘지 않은데! 부모가 늙어 그런가? 나의 흡연이력 때문인가?

 

  그런데 사실 우리 애 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집 7명 반 애들만 해도 울 애보다 늦은 애가 두명이고, 어딜 다녀보면 10명 중 한 둘은 꼭 울 애보다 더 늦다. 간혹 영유아검진의 기준이 너무 높다싶기도 한데, 발달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이 발달기준표를 만든 집단에 대한 수요(발달재학과의, 소아 정신과의, 그 외 모든 발달검사 및 치료 종사자들)가 폭발하고 있는 데 대한 모종의 음모론적 의심을 해보기도 했지만, 모든 영유아의 전수조사에 이용되는 국가적 기준이 그렇게 근거 없이 정해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아이가 늦다는 것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htm_2015072316377d400d401.jpg


  최근 10년간 영유아의 발달장애 발생율이 10배 넘게 폭증했는데, 일각에서는 임신 기간의 초음파나 영아기의 예방접종이 발달장애를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고, 영유아검진이 의무화되면서 조기진단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도, 이전과 달리 자폐스펙트럼, 사회적소통장애, 경계성 지능 등 장애의 범주를 훨씬 더 넓힘으로써 예전엔 잡지 않던 수치를 포함시킨 데 따른 착시현상이라고 해석하기도, 삭막한 양육환경에서 비롯된 반응성 애착장애나 비디오 증후군이 늘어난 데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여튼 예전에는 때 되면 다 하고, 늦게 포텐터진 애가 대기만성한다.”며 느긋하게 지켜보았던 단순히 늦된 아기도 요즘엔 이런 저런 장애의혹을 달고 부모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며, 모든 전문가들도 입모아 조기개입할 것을 권한다. 나 또한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뒤늦게 그 전전긍긍 조기개입의 배에 승차했는데, 왜냐하면, 예전처럼 때 되면 다 하는게 가능한 조건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늦은 아이가 부모의 도움없이 할 수 있는 거라곤 TV를 보거나 1차원적인 장난감놀이를 혼자하는 것 밖에 없는데, 그 두 가지 소일은 고착될수록 외려 발달 장애를 유발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전처럼 날이면 날마다 동네 친구들이랑 실컷 놀면서, 부모가 내비둔시간에 부모는 모르는 마법의 시간을 애가 보내고 오던 시절은 사라졌다.

  마을이 없다. 놀이와 자연, 이웃이 사라진 곳에 가베, 미디어 컨텐츠와 학습지, 키즈카페와 어린이집, 몇 배로 정성들인 부모의 상호작용이 이것을 제대로 대체해 주지 못하면 특별히 타고난 문제가 없어도 발달지연이 일어난다. 나는 저 모든 것 중에 그저 딱 남들 수준의 케어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다였더니 발달지연이 되더구만! 여튼 어쩌면 시간지나고 보면 다 비슷비슷해질 것 같은 단순지연도 요즘은 발달치료를 통해 한시바삐 또래수준으로 올리는 추세인데, 발달치료란 게.... 한 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알약 삼키듯 뚜렷한 효과를 본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들 하는 이유야말로 마을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다.

  지연이 심각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값비싼 발달치료를 시작하는 부모의 심적동기는 대체로 비슷하다. 아이가 또래보다 느리다보니 어린이집부터 열등한 위치에 놓이다가 자존감이 저하되고, 소외나 배척의 대상이 되기라도 하면 이것이 심리적, 학습적 기능 저하 까지 초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예 그냥 확 아이의 발달속도에 기름칠을 하자는 것이다.

  부족한 아이도 함께 놀기 위해 아이들이 고안해낸 깍두기놀이문화를 예찬했던 글이 문들 떠오른다. 글쎄, 그 때 아이들은 특별히 더 배려심이 많았고, 지금 애들은 특별히 더 못되서 그런 걸까.


20140920_172-940x626.jpg


  그 때 아이들은 마을의 관계망 속에 자랐다. 그 깍두기는 같이 놀이중인 친구의 형제이자, 우리 엄마와도 알고 지내는 아줌마의 아이... 누가 좀 부족하다고 해서 함부로 멸시할 수 없는 지인들의 그물망 속에 아이들이 자랐고, ‘관계맺은 사이라는 자각은 보복의 두려움 이전에 이해하고 봐주는 마음을 싹트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 관계망 속에 잘난 놈 못난 놈 다 같이 어울려 이 놀이 저 놀이 푸지게 해대다보면 어지간히 불균형한 발달 경로를 가진 아이들도 결국은 이래저래 발달과제를 완수하게 됐던 것 아닌가싶다. 마을아이들과의 놀이에는 모든 감각과 근육의 협응과 사회성, 유아시기 습득되어야 할 인지기능이 총 집합되어있으니까. 그렇게 어린 시절 늦된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경험치가 마을에 쌓였다.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레 극복되던 발달지연이 이제는 공동체 속에서 한 기능만 늦되어도 연쇄적으로 다른 기능까지 오작동 시키는 경험치로 쌓이고 있다.

 

  석 달간의 발달수업이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느다. 다만 그 석달 간 부모가 아닌 어떤 타인과 밀도 높게 관계맺는 경험을 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마을이 사라진 자리, 40분간 마을 이웃들 역할을 집약적으로 해 줄 발달치료사가 아이에게 최적화된 마을세팅을 갖추고 값비싼 친구놀이를 한다. 열심히 해주시고, 아이는 수업을 재밌어한다. 그걸로 됐다. 아아, 이게 뭐람. .



07-담론과 문화(75~9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