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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1호 (2016.07.05. 발간)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제창이 아니라 합창, 하모니의 에너지!


송재혁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518 합창단과 528 합창단

 

     살다 보면 되풀이해 반추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에게 있어 첫 번째 순간은 2010517일이다. 5.18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 2부활 교향곡(Auferstehungs-Sinfonie)’이 광주의 공연장 무대에 오를 때 일반 시민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518 합창단에 베이스로 참여했던 순간이다. 김상봉 교수의 탁월한 우리말 번역은 5.18 정신을 연주회장에서 부활시키고 있었다. 음악가도 아니면서 음악가 행세를 할 수 있었던, 클래식 무대에 연주자로 섰던 유일한 기회였으며, 청중들의 엄청난 박수를 나누어 받았던 신기한 경험이었다. 음악가들은 박수를 먹고 산다더니 체험해 보니 알 것 같았다. 지금도 심적으로 위축 될 때에는 이 공연의 성사 과정을 다룬 광주 MBC 제작 다큐멘터리 광주 부활하다를 시청하면서 힘을 얻곤 한다.


그림 1-5.18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말러의 부활교향곡 공연 무대에 선 필자, 2010년 5월 17일.jpg

(그림 1 - 5.18 민주항쟁 30주년 기념, 말러의 부활 교향곡 공연 무대에 선 필자, 2010517)


      또 한 번의 사건은 최근에 일어났다. 2016528일 전교조 결성 27주년 전국교사대회에서 조합원들로 구성된 ‘528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고, 또 다시 베이스로 참여했다. ‘528 합창단구상의 뿌리는 ‘518 합창단에 있지 않았나 싶다. 김용섭 전교조 부위원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교사대회 합창단 프로젝트가 처음 제안되었을 때에는 당황스러웠다. 시간도 빠듯하지만, 과연 법외노조 탄압에 대응하느라 바쁜 전국의 조합원들을 어떻게 모을 수 있다는 말인가? 528명은 고사하고 50명이라도 모을 수 있을까? 모인다고 연습이 가능하기나 할까? 합창 양식에 대한 거부감이 일지 않을까? 돈은 있는가? 돈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을까? 특정인들의 개인적 취향에 맞춰 사업을 끌고 가려 한다는 지적이 있지 않을까? 새로운 시도에는 저항을 돌파하고 장애와 위험을 극복하는 담대함이 요구된다. 광주에서의 ‘518 시민 합창단공연은 한국 클래식 공연 사상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시도로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지만, 그 준비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를 아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섰다.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 합창단을 구성해 이 공연에 참여하자는 제안이 있었을 때에도 나는 처음에 부정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되더라는 것!

 

      내부 논란을 극복하면서 528 합창단은 추진되어 갔다. 김밥 값, 차량운행비, 공연 셔츠 구입 등 모든 게 돈이었지만, 공연 준비 과정의 경험과 공연 후 남는 감동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문화역량이니 조직의 무형적 자산이니 하는 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그 날의 공연을 준비한 사람들, 무대에 선 사람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남았다. 경제적으로 봐도 소요된 비용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였다. 전국을 뛰어 다니며 이 모든 것을 불도저처럼 추진한 전교조 깁용섭 부위원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었으며, 5.18 말러 공연을 위해 구성되었던 전교조 서울지부 합창단 출신인 김민선, 박세영, 황진우, 최은아, 이영국 선생님을 비롯해 전국 각 지역의 실무진들이 그늘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림 2-528 합창단 연습 장면. 향린교회에서.JPG

(그림 2 - 528 합창단 연습 장면. 향린교회에서)


      조합원도 아니면서 이 공연 준비에 발 벗고 나선 지휘자와 편곡자의 노고도 특별히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지휘를 맡은 이소선 합창단의 임정현 지휘자는 변변치 않은 사례금에 아랑곳 않고 공연이 성사될 때까지 전국을 함께 누비며 소리를 일궜다. 자신이 테너 성악가인 지휘자는 보통 사람들로 음악을 만드는 특유의 기법을 연습 과정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보통의 학생들을 가르쳐 그들의 잠재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려는 우리 교사들에게 그의 탁월한 교수법은 큰 가르침을 남겼다.

 

      ‘528 합창단의 명칭은 합창단원 수가 아니라 공연 일자를 가리킴이 점점 명확해졌지만 200여 명이라는 적지 않은 조합원이 합창단에 속속 결합했다. 이 공연이 영상 기록으로 남아서 다행스럽다. 이제 해고자의 설움이 북받쳐오를 때 꺼내 볼 영상이 하나 더 생겼다. 다시 보는 공연 영상의 첫 노래, 주현신이 작곡한 참교육의 함성으로는 트럼펫의 과감한 삑사리로 시작된다. 그렇다! 역사의 진전은 늘 초기의 삑사리에서 잉태되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빗나간 소리가 다시 들어도 살갑게 여겨진다.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공연을 예고하는 팡파르라고 해 두자.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첫 두 마디는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가 작곡한 통일 전선의 노래(Einheitsfrontlied)’와 일치한다. 독일의 통일을 노래한 것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1934년 브레히트의 가사에 붙인 이 작품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노래다. 파시즘의 발흥 시기였던 당시, 히틀러의 거짓 선동에 속지 말 것과 자기 인식에 바탕 해 통일된 좌파 운동에 나설 것을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이슬러는 폐허에서 일어나(Auferstanden aus Ruinen)’라는 제목을 가진 또 하나의 명곡, 독일민주공화국(동독) 국가를 1949년에 작곡했던 인물로, 신음악의 기수 아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의 제자이면서 스승을 넘어서 노동음악의 새 경지를 개척했던 변증법적 청출어람의 작곡가였다. 지금도 베를린의 국립 음악대학은 한스 아이슬러라는 위대한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Hochschule für Musik Hanns Eisler Berlin)


그림 3-전교조 528 합창단 공연 무대에 선 필자(스크린을 보시오). 2016년 5월 28일.jpg

(그림 3 - 전교조 528 합창단 공연 무대에 선 필자(스크린을 보시오). 2016528)


     둘째 공연 곡은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마지막 곡은 그날이 오면이었다. 교사대회를 취재 온 어느 기자에게 합창단이 노래한 세 곡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 곡 참교육의 함성으로 = 굴종의 삶을 떨쳐 일어나다 = 전교조의 과거’, 둘째 곡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 법외노조 탄압 아랑곳 않고 갈 길을 가다 = 전교조의 현재’, 그리고 세 번째 곡 그날이 오면 = 노동기본권을 온전히 쟁취하다 = 전교조의 미래’! 참으로 순발력 있는 설명이어서 내 자신에 대해 뿌듯한 마음이었지만, 이 멘트는 기사에 나오지도 않았고, 지휘자나 주최 측조차 이런 의미로 된 곡 배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으면 해몽대로 이루어지려나…….

 

     화성학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본능적인, 혹은 누적된 듣기 경험으로 체득한 화성에 대한 감각으로 판단하자면, 우리 공연을 위해 새롭게 편곡된 참교육의 함성으로그날이 오면에 사용된 화성은 정말 기가 막히다. 수백 번 부르고 들었던 참교육의 함성중에서 이렇게 잘 된 편곡은 처음 접한다. 내가 부른 베이스 파트의 상승조는 엄청난 파워를 머금고 있다. 아마도 한스 아이슬러가 들어도 참 잘 된 변용이라며 칭찬할 것 같다. 편곡자인 이현관은 미국에서 작곡을 전공한 분인데, 공연 며칠 후 뒤풀이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1990년대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악극 금강의 작곡자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연출은 문호근이었다. 민중적인 내용을 담은 창작음악이 세종문화화관 같은 기성의 공연장에 연주된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한 감동을 주었을 뿐더러, 우리 음악의 발전 방향과 가능성을 예고했던 좋은 공연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현관은 클래식음악가와 민중음악가가 함께 공동 작업을 했던 90년대를 그리워하면서 이후 양자의 완전한 분리로 인한 음악계의 손실을 아쉬워했다. 우리가 시도한 전교조 합창단은 양자가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때로 만나 교류하는 장을 형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몽할 수도 있겠다.

      지난 4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문화제에서는 문승현 작곡 그날이 오면이 구자범 지휘자의 편곡 버전으로 연주되었다. 말러의 교향곡 3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과 결합시킨 독창적인 편곡이었다. ‘528 합창단을 위해 이현관이 새롭게 편곡한 버전은 구자범 버전과 또 다른 면이 있었다. 힘 보다는 아련함이 부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화성의 조화가 무척 아름답다. ‘참교육의 함성으로그날이 오면두 곡이 머금은 뛰어난 화성을 위해서는 이번 공연에 사용된 밴드 반주보다는 피아노 단독 반주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 편곡의 의한 그날이 오면은 꿈결 속에서 시작된다. 여성 성부가 나직이 속삭이는 첫 부분은 마디마다 화성이 오묘하게 변화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부분에서 전율을 느끼는 순간 떠오른 곡은 브람스(Brahms)가 작곡한 독일어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의 첫 부분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이 곡 역시 마디가 바뀔 때마다 화성이 오묘하게 변화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악곡이다. 레퀴엠이 좋다고 하면 정신 건강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나 합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장 즐겨 듣는 장르로서 종종 레퀴엠을 꼽는다. 죽음을 노래하는 레퀴엠(진혼곡)은 변증법적이다. 죽음을 슬퍼하면서 동시에 삶의 에너지를 길어 올린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모양새이지만 음악을 듣고 있는 산 자의 넋을 위로하는 기능 음악인 것이다. 포레의 레퀴엠, 베르디의 레퀴엠, 모차르트의 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과 더불어 변함없는 애청곡인 브람스의 독일어 레퀴엠은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라틴어 가사가 아니라, 당대에 보다 민중적인, 혹은 민족적인 의미를 가졌던 독일어로 된 가사를 사용했다. 따라서 흔히 제목으로 사용되는 독일 레퀴엠보다는 독일어 레퀴엠이라는 표현이 더 타당하다. 이 곡의 전체적인 정조는 종교적인 동시에 인간적이다. 때로는 위압적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인간성에 짙게 호소하는 작품이다. 올 여름 진보교육 독자들께서 이 곡에 접신하시기를 바라면서 음반을 추천하고자 한다.

 


브람스 독일어 레퀴엠’ : 헤르베르트 케겔 지휘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동독), 1985년 녹음


그림 4-브람스 독일어 레퀴엠-헤르베르트 케겔 지휘,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동독), 1985.jpg


     이 명연주는 여러 음반사를 갈아타며 음반으로 나왔다. 독일 통일, 즉 동독 몰락 후 권총으로 자살한 헤르베르트 케겔이 지휘한 연주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와 합창 지휘에 동시에 능숙한 지휘자만이 이룰 수 있는 업적이 여기 오롯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육성과 악기의 소리가 조화된 숭고미의 절정이다.

 


브람스 독일어 레퀴엠’ : 헬무트 코흐 지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동독), 1973년 녹음


그림 5-브람스 독일어 레퀴엠-헬무트 코흐 지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동독), 1973.jpg


     한스 아이슬러가 작곡한 동독 국가를 탁월한 연주 기록으로 남겼던 지휘자 헬무트 코흐의 연주이다. 깊은 정신성이 깃든 케겔의 연주에 비해 비교적 담담하게 들리지만, 역시 합창을 잘 다듬는 코흐의 역량에 의해 원숙한 연주가 이루어졌다.

 


브람스 독일어 레퀴엠’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1978.3, 잘츠부르크 실황 영상


그림 6-브람스 독일어 레퀴엠-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1978.3, 잘츠부르크 실황 영상.jpg


     이번에는 서독의 연주이다. 카라얀이 지휘한 연주를 담은 이 영상물(DVD)에서 합창단은 전원 암보로 부르는데, 마치 나치 병정처럼 칼 같이 줄 맞춰 서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이 곡을 여러 번 녹음한 카라얀은 극적인 요소를 각별히 강조한다. 두 번째 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에서는 팀파니의 연타가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종교음악을 좋아하는 고상한 분들중에는 이 곡을 즐겨 듣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두 번째 곡이 특히 문제 되는 것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어지는 3번째 곡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가 합창의 장대한 긍정으로 치달으면서 기존의 공포 분위기는 증발해버린다. 이 영상물은 한글 자막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함께 유통되고 있으므로 구입 시 주의가 필요하다.

 


평범 속의 위대함, 합창

 

     ‘합창제창과 다르다. 속칭 떼창이라고 말하는 제창은 하나의 선율을 함께 힘껏 부르는 데 만족한다. 이에 비해 일반적으로 화성을 기반으로 하는 합창제창과 비슷해 보여도 다른 양식이며, 섬세한 표현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전통 음악에서 음색을 빼고 얘기할 수 없듯이 서구 음악에서 화성을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오묘한 화성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밟아가는 과정에서 체험하는 생성변화의 힘(독일어에서 흔히 ‘werden’으로 표현됨)’은 삶의 에너지로 전화할 수 있다. ‘합창오케스트라와도 다르다. 특별한 음악 재능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노래를 사랑하는 우리 사회에는 보통 사람들로 이루어진 수준급 합창단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제 합창 운동은 진보 운동에서도 문화적 힘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추어가는 과정을 통해 빚어내는 하나의 경이로운 소리는 토론 속에 단결해가는 이상적인 조직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교조를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비유하면서 민첩한 쾌속선을 따로 만들어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있단다. 부디 소수만 타고 가다 속히 침몰하는 작은 쾌속선이 되기를 바란다면 지나치게 잔인한 것일까? 여럿의 힘은 다소 더디더라도 강한 것이다!



  


진보교육 61호-담론과 문화-제창이 아니라 합창, 하모니의 에너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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