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진보교육] 61호 (2016.07.05. 발간)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24. 아픈 아이를 돌보며.


김윤주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지난 주 아이가 심한 열병을 앓았다. 아픈 아이를 곁에 두고 분주했던 손과 발, 흔들리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면서, 약과 몸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가 피력된 경험담이다.

 

#24-1. 약 같기도, 독 같기도.


     약에 대해 경계심을 가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자라면서 갖은 잔병치레에도 불구하고 거의 약 없이 자랐고, 약에 대해선 의심도, 의지도 않고 그저 무관심했다. 증세가 심하여 약을 조제받기라도 하면 그냥 다 꿀꺽. 효과가 없다싶거나 나았다싶으면 맘대로 끊었다. 한마디로 나는 의료인을 믿고, 내 느낌은 더 믿는 무심한 환자였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는데, 바람 불면 쓰러질까 조그만 아기를 지켜보는 쫄보심장의 어미가 되자, 사소한 증세에도 약을 먹여야할까 말까 고민하는 날이 많았으며, 가벼운 약도 혹여 독이 될까 신중을 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후 6개월쯤에 처음으로 감기 증세를 보였을 때 소아과에서 처방받은 약은 콧물 말리는 약, 진해거담제, 항알러지제, 해열제, 항생제였다. 미열과 맑은 콧물증세가 전부인 영아에게 저 많은 약을 먹이라고? .....찜찜해도 할 수 없다. 난 전문가가 아니며 겁먹은 보호자일 뿐이다.

     이런 저런 정보를 수합하여보니, 우리나라는 단순감기에도 너무 많은 약이 과잉처방 되고 있으며, 항생제 오남용도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콧물이나 재채기, 잔기침과 같은 증상은 병균으로부터 몸을 방어하기 위한 신체의 자연스런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굳이 약을 써서 억제시키는 건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의학전문가들의 의견이 차고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과에선 갈 때 마다 각 증상 마다 다 약을 처방해주었고 때론 염증이 없음에도 선제적 차원에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기의 몸은 언제 어디서 악화될지 모른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부모가 체크한 모든 증상들을 잡아주고 싶은 의사의 심리적 의욕이 아마 두 번 째 이유일 것이다. 이 많은 약을 두고 먹일까말까 찜찜한 내 마음은 아이의 극심한 약 거부로 인해 큰 고민 없이 기준이 정해졌다. 거의 고문 같은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약 한 방울을 먹일 수 있는 아기였기 때문에. 꼭 필요한 위급한 약만 먹이기로.

     내가 젤 무서운 건 열인데, 예전엔 아이가 표준 체온의 한계선인 37.5도가 넘어가면 초긴장모드로 돌입하여, 해열제 투약의 가이드라인인 38도가 되는 순간 칼같이 약을 먹이고 헐레벌떡 병원을 찾곤 했다. 그러나 아플 때 마다 이리저리 찾아보고 공부해본 바, 열이란 병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신체조건을 만드는 몸의 자연스런 반응이라는 것, 우리 몸은 열을 올려 병균과 열심히 싸워 이겨냄으로써 면역력을 키운다는 것. 해열제 투약은 이런 몸의 자연치유 시스템을 교란시켜 장기적으로는 면역기능을 약화시킨다는 것, 그러니 열이 날 때에는 억지로 열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열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과, 배변과 발한으로 열이 배출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아이의 싸움을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 한방 쪽 소견이었다. 이쪽 견해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라 양의학 쪽 견해도 찾아보았는데, 바이러스로 인한 열이 치명적인 후유증을 야기하는 일은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기에 해열제를 권하는 이유는 발열로 인한 탈수와 탈진, 체력저하를 방치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합병증을 예방하고, 세균성 감염으로 인한 발열일 경우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견해에 내가 관찰하고 경험한 것들을 종합하여 세운 원칙은, 아이가 잘 놀고 잘 싸면 열이 나도 해열제를 먹이지 않으며, 다만 고열에서 잠들지 못하는 아이의 체력고갈을 막기 위해 잠자기 전에만 해열제를 준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열이 날 때 마다 일단 이 원칙에 준해 행동했는데, 결과가 꽤 좋았다. 항생제나 별도의 증상 억제제 없이도 최소한의 해열제만 먹이고도 특별한 염증으로 발전하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면 낫곤 했으니까.

     그 외 콧물이나 재채기, 단발성 설사, 미열 같은 건 그냥 신경 써서 돌봐주는 정도에서 약없이 내버려두었다. 이런 사소한 증상들을 치료함으로써 제거해야 할 병증이라고 보는 관점보다는 병균을 방어하고 배출하는, 유지해야할 몸의 자가치유 기능이라고 보는 자연치유의 관점에 나는 훨씬 더 심정적으로 끌렸고 장기적으로 더 안전해보였다.

     과학을 전공하고 그 쪽 계열 일을 하는, 이공계 뇌회로를 가진 남편. 이런 내가 늘 염려되고 미심쩍다. “전문가집단을 믿어라. 그들은 너보다 많이 알고, 이런 저런 모든 확률을 다 감안하여 내린 결론으로 처방하는 것이다.” 그로서는 내가 임상실험을 거친 약보다 이런저런 썰을 더 믿는 아낙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 말인 게 살면서 얼마나 많은가.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내 몸은 내가 젤 잘 안다.”는 둘 다 맞는 말이며, 환자는 저 두 참인 문장들 사이에서 지혜롭게 줄타기를 해야 한다.

     작년 겨울에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는데, 감기 증세 때문에 병원까지 간 건 10년만이며, 인생에 단 두 번째였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천식증상이 생기길래 약명을 검색해본 결과 천식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항생제였다. 분명히 의사에게 내가 천식 전력이 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내 증상과 무관한 소화제와 위장약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면역저하 상태에서 소화불량을 겪는 경우가 많고, 그게 또 감기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처방한 듯하다. 위장약은 이 많은 약을 다 먹는 환자의 위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그러나 일평생 손에 꼽는 체기만 경험한 나로서는 소화제도 필요 없고, 저걸 다 먹지도 않을 거기 때문에 위장약도 필요 없다. 다 빼고 먹었고 나았다. 모든 약명을 하나하나 다 검색해보는 습관이 생긴 시점이다.

 

 #24-2. 심한 열병, 흔들리는 마음.


     새벽녘에 짚어본 뜨끈한 이마에 어우야 뜨끔한 애미의 심장. 어제도 손발에 미열의 전조가 있었건만! 으이구 내가 또 방심했구나! 방심했다하면 여지없이 반응하는 어린 몸의 정확성도 징하지만, 매번 당하면서도 두어 달만 지나면 새까맣게 잊고 기어이 또 방심하는 내 정신상태도 참으로 징하도다.

     소아과에 갔더니 감기 외 특별히 다른 소견이 없길래, 그래, 한 이틀 고생하자 노련한 마음가짐으로 평상심을 찾는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가.... 40. 후덜덜~~~~.무섭다!ㅠㅠ 첫 자리가 4로 시작되는 체온계를 확인하는 순간 미친 듯이 달려가 해열제를 아이 입에 털어넣는다. 약 먹인지 두 시간만에 다시 39. 해열제는 7~8시간의 복용간격을 권고하며, 최소 4시간은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선 다른 계열의 해열제를 교차 복용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나 어지간하면 기다렸다 한 계열만 먹이는 게 좋다던 의사의 지나가는 말이 귓가에 맴맴. 게다가 그간 알아본 해열제 자체의 부작용도 무시 못 할 정보다. 사흘 내내 이 간격으로 열이 오르는데, 그렇다면 아이는 며칠 간 하루에 열 번도 넘게 해열제를 먹게 된다. 기다리자! 쉬지 않고 미온수를 적신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내다 4시간이 땡!함과 동시에 다시 해열제를 먹이지만 약효가 나기까지 삼사십 분. 현재 체온 40.4.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검색하는 인터넷에는 검증되지 않은 썰들이 난무하여 내 공포는 극대화되었는데, 고열에 오래 방치할 경우 세포변성이 일어나고 뇌가 잘못된다던가 하는 말들 때문에 가슴을 치며 자책했다. 어떡해 어떡해.....우리아기 잘못되면 어떡해.....

     자꾸만 눈이 아프다는 아기. , 찾아보니 결막염을 동반하는 고열증상은 그 무시무시한 가와사키증상. ! 왜 난 그냥 빨간 눈이 더러운 손으로 눈을 비벼서라고만 생각했을까. 이 망할 애미야! 제기랄, 아이가 아플 때는 언제나 주말이고 월요일은 현충일이다! 그러기를 사흘, 결국 종합병원에 아이를 데려갔다.

     검사 3종 세트를 진행한 결과 다행히 아이는 독한 열감기 외 딴 병은 아니었고 이튿날부터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어이쿠! 이제 눈을 깜빡인다. 며칠 전 눈을 자꾸 비벼대는 것을 혼쭐낸 뒤로 눈을 깜빡대기 시작하더니, 다 나은 지금도 하루 종일 눈을 깜빡거렸다. 맙소사, 이거....틱 되는 거 아냐?! “왜 그래? 눈 아파? 왜 깜빡거려!!” 놀란 마음에 다그치자 강박적으로 깜빡깜빡 2배속. ! ...다시 후회의 파도가 친다. 그냥 좀 비비게 놔둘걸. 눈충혈 그까짓 게 뭐라고! 난 몰라, 틱 되면 어떡해?!

  

#24-3.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 병이 되었다.


     사실 눈 깜빡임이나 음음거리기 같은 경증의 틱 행동은 유소년기에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나 또한 그랬으며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유년기의 어느 날, 내 눈이 내 명령 없이도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거린다는 것을 자각했는데, 그 때부터 의식적으로 자주 깜박거려 보곤 했다. 엄마가 주의를 주었지만 왠지 멈출 수가 없었고 그렇게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내 눈은 지속적으로 깜빡여지다가, 며칠 뒤였나 몇 주 뒤였나, 다른 흥밋거리에 정신이 팔리면서 자연히 멈추었더랬다. 또 초딩 때 어느 날엔가는 정적뿐인 교실이 갑갑하다고 느껴져 조용히 하는 소릴 내 보았는데 그 뒤로 나는 한동안 정적에 대한 긴장감을 의식적으로 자각한 후 음~ 소리를 내곤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왜 이 쓸데없는 짓을 자꾸 하는 걸까? 버릇되면 어쩌지? 그만하고 싶은데, 잊고 싶은데, 계속 이렇게 생각나면 어떡하지?’ 두려움이 훅 하고 스쳤다. 두려움을 자각하는 순간 강박적으로 더 생각났으며, 한동안 계속 남몰래 그 짓을 하다가 역시나 놀아대는 와중에 어느 순간 까맣게 잊었다.


     내 경험으로 짐작컨대, 보통의 스쳐지나가는 경미한 틱 증상은 이렇게 처음엔 신체와 감각을 주변으로부터 통제해보겠다는 호기심 차원의 놀이거나 자신만의 긴장해소 팁으로써 예민한 성정의 아이들에게 시작되었다가, 어느 순간 이 행동이 자신에게 강박의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기로인 것 같다. 내 자랄 땐 이라는 병명자체를 일반인들이 몰랐기 때문에, 엄마는 그저 나쁜 습관이라 여겼고, 그래서 공포에 휩싸이지 않고 가볍게 나무랐을 뿐이었다. 만약 그 때의 엄마가 공포에 압도되어 내 행동을 틱으로 규정하고, 교정경과를 주시했다면 나는 그렇게 빠르고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멈출 수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도 틱이라 진단받은 아이들 중 대다수는 그저 성장하느라 폭주하는 신경을 분출할 곳이 없어 나쁜 습관에 잠시 사로잡혀 있는 걸지도 모른다. 뚜렛증후군처럼 심각한 신경질환으로 발전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특별한 소질적, 환경적 요인이 없는 한 접어두어도 되리라.


     그렇게 공포감을 누른 채 아예 신경을 껐더니 아이는 한 이틀 만에 깜빡질을 멈췄다. . 다행.. 열날 때 보다 더 간땜했지 뭐람.


     틱 뿐만이 아니다. 애 키우며 보자니 이런 게 너무 많다.

40년 간 나는 목 아프다, 열난다, 기침한다, 콧물난다, 몸살 난다 같은 증상은 그냥 한마디로 감기 걸렸다로 싸잡아 퉁쳐왔다. 약 안 먹으면 일주일, 약 먹으면 7~ 버티면 나아!

     근데 애기는 조바심이 나서 그럴 수가 있어야지. 찾아보고 물어보면 하... 감기 각자의 본명들이 이렇게나 무게감 있었다니! 목 아프다 편도염, 인후염 / 기침한다, 숨차다모세기관지염, 폐렴, 천식/ 콧물난다비염, 후비루, 부비동염.... 지금은 꼭 염자 돌림 아닌 단순감기라 해도 치료안하면 이상과 같은 염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이름이 주는 존재감이란!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견디면 될 것 같던 목 아프다편도염이라고 말하는 순간 의느님 지휘아래 제대로 약 써서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고, 닦아주면 땡이던 콧물, “비염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순간, 이러다 만성화? 축농증?......아이고 의사샘 고쳐주세요! 가 된다. 일반적으로 비염은 보름, 축농증은 두 달 가까이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를 아이에게 장복시킨다고 하는데, 태어난 지 이삼년 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저렇게 많은 약물을 먹이는 게 정말 괜찮을까?

     “설사했네?” 그냥 하루 이틀 지켜보고 지나갔던 증상들도 지나 와 검색해보면 노로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역시나 간지나는 이름을 부여받은 장염이더란. 이번에 앓은 열감기의 이름은 아데노바이러스’.

 

     병명을 알고 약을 복용했던 순간만이 병력으로서 기억되어진다. 그러나 몸 저편엔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스리슬쩍 왔다간 잔병의 역사들도 있다. 몸이 저 혼자 이겨낸, 그래서 기억되지 못하는 승리의 역사들이.

 

#24-4)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힘이다.


     지켜봐주면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잔병들을 굳이 약을 써서 치료하는 것이 아이에게 과연 좋을까? “아이이기 때문에방치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마들의 주된 정서지만, 어쩌면 아이이기 때문에 그저 지켜봐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모든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자주 아픈데, 자잘한 병균들과 최선을 다해 싸워보는 경험을 몸에 축적시켜 점점 더 여물어가라는 자연이 선사한 기회들을 부모의 안쓰럽고 불안한 마음 때문에 자꾸 약이라는 용병을 서둘러 지원함으로써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불안하다. 사실 부모는 너무 무섭다. 그리하여 언제나 동네소아과는 북새통.


     찾아보니 한의사가 운영하는, 이 방면에서 제법 바글바글 이름난 육아카페가 있었다.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를 지향하는 자연주의 육아카페. 오호, 닥치고 눈팅 3~. 깜짝 놀랐다. 약물의 부작용을 앓는 소아들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병원을 전전하다 결과적으로 어린 몸에 부작용만 잔뜩 짊어진 아이들의 부모가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장으로 이 카페에 흘러들어와 맹렬하게 자연치유를 실천하고 있었다. 쭈욱 훑어보니 이 경로를 거치는 아이들은 대체로 아토피 혹은 이비인후과 계통인데, 납득이 간다. 알러지나 자가면역의 이상기능, 이비인후과 계통의 고질적 말썽은 내 경험으로도 양방치료가 별 효과가 없었다. 대증요법이 먹히지 않고, 이래저래 몸을 옮겨 다니며 골치를 썩인다. 약을 써서 비염을 잡으니 중이염이 오고 중이염을 잡으니 편도염이 오고 편도염을 잡으니 다시 축농증이 오는 식의 경험치들이 잔뜩 쌓인 게시판. 아토피도 사정이 비슷. 낫지를 않으니 몇 달, 몇 년을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제를 달고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아무 약도 듣지 않고 코 기능 피부기능, 면역기능이 싸그리 고장나있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대부분의 양방 의사들은 한계를 솔직히 말한다는 미덕과 공포를 조성하는 악덕을 갖고 있다. (이런 태도는 과학자로서 대단히 합당한 태도이므로 전혀 불만은 없다.) 그들은 아토피나 천식, 비염, 그 외 모든 체질성, 면역성 질환에 대해 절대로 완치됩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며 그냥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며 평생 관리하며 사는 것이라고 솔직히 일러준다. 그러나 치료하지 않으면 더 끔찍한 고통이 뒤따를 수 있음을 경고하기 때문에 부모는 뚜렷한 비젼 없이 약에 끌려다니다가 더 이상 약이 듣지 않고, 축적된 약성이 독성으로 분출되는 시점에서야 길을 잃고 멘붕이 되곤 하는 것이다.

 

     나는 유소년기에 경미한 아토피와 비염, 그리고 아주 고통스런 기관지 천식을 겪었다. 뚜렷한 답도 없는 병인데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집중 케어할 형편이 못되던 집 사정 때문에 어쩌다보니 자연치유의 과정을 겪었는데, 이 때의 경험치가 내 심리경향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하는 내 경험담.

 

비염.

분필가루와 먼지로 가득한 교실생활을 하는 내 또래의 도시학생들은 청소년쯤 되면 비염이나 축농증을 안 갖고 있는 친구가 오히려 드물었다. 우리 삼남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병원에 다니며 주사기로 농을 빼내는 친구, 수술한 친구, 1년 내내 약 먹는 친구들도 보았지만 완치는커녕 완화되는 친구들조차 거의 보질 못했다. 우리 집은 기껏해야 약국에서 콧물약을 사 먹어보긴 했는데, 차도라곤 1도 없는 걸 늘 확인해서, 걍 코 풀고 헐고 그러구러 견디고만 있던 차였다. 때마침 시골의 친척 할머니가 축농증 손녀딸을 데리고 병원을 다니고 계셨는데, 한눈에도 빈곤의 흔적이 좔좔 흐르는 할머니를 안타까이 여긴 의사가 할머니, 어차피 축농증은 쉽게 안 낫는데 어린 애가 치료과정에서 고생만 많습니다. 일단 매일 죽염물을 코로 마시고 입으로 뱉게 해보세요. 한 달 해보고 다시 함 오세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식염수 비강세척을 권하는 의사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이런 류의 민간요법을 권하는 의사가 전혀 없었을 뿐더러,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은 소금이 코 점막을 상하게 한다는 등의 경고만이 가득했더랬다. 그러던가말던가 그 집 손녀딸과 우리 가족은 그 의사 말을 금과옥조로 삼고 실행한 결과 이내 완치되었다.


아토피.

처음엔 팔과 다리가 접히는 부분이 간지럽더니 점점 건조해지면서 그 곳에 진물이 좔좔 흘렀다. 로션이나 약국서 받은 연고를 발랐더니 좋아지는 듯싶다가도 결국 악화되면서 다른 곳까지 번지길래 몇 번 바르다 말았다. 지금 와 찾아보니 그게 아토피 농가진인 것 같은데, ‘아토피라는 말을 모르던 그 시대에는 약사나 가족이나 그냥 습진이라고만 불렀다. 간지럼을 참는 건 정말로 힘들었기 때문에 속시원히 긁었다가 후회하기를 칠팔년 반복하다가, 외모가 간지럼보다 소중하다고 여기게 되었을 무렵, 이 악물고 안 긁고 참다보니 어느새 나았다.


천식.

일곱 살 때 발발하여 면역상태가 저하될 때마다 찾아왔던 공포의 천식. 숨이 쉬어지지 않아 쌕쌕거리며 앉은 채로 꼬박 밤을 지새우는 건 견디는 나나 지켜보는 가족에게나 너무 가혹한 고통이었기 때문에, 발병 초기에는 날이 밝자마자 재까닥 병원엘 가곤했다. 혹시나 가보아도 역시나 차도는 0. 병원의 소독약 냄새를 맡고 온 날이면 잦아들던 천식도 악화되길래, 그냥 천식이 올 때마다 엄마가 다려주는 도라지물과 꿀 제형의 생약이나 퍼먹으며 그야말로 죽음처럼 버텼는데, 클수록 드문드문해지더니, 청소년기쯤 되면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사실 천식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전을 받아본 적도 없기 때문에 그게 진짜 비염이었는지, 아토피였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상 컨디션일 때도 상시적으로 재채기, 콧물, 코막힘 증세와 간지럼증을 동반하는 습진을 달고 사는 천식환자였으니 내가 알러지성 면역질환에 취약한 아이였던 것은 분명하다. ! 그때의 어린 나는 어른들의 조바심과 달리 얼마나 강인했던가. 그 일상적인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꾸준히 뛰놀고 싸우고 장난치고 공부했다니! 나는 어린 내 몸의 강인함을 믿고 내버려둔 엄마의 담대함과 유년기의 빠듯한 가정형편에 감사할 뿐이다. 나는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로 범벅된 몸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농후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자연 그 상태의 청정한 몸을 보전한 덕분에 지금도 소염제나 진통제, 항생제가 즉빵 직효다.

     내가 앓은 비염, 아토피, 천식은 대체로 성인이 되면 거의 사라지는 것들이라기에 나의 쾌유 또한 그러려니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진행형인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기관지확장제와 항 알러지제,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을 오랜 세월 사용하며 정성껏 병을 관리해온 이들이었는데, 병증이 지속되는 이유가 약물의 축적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 없지만, 의사들조차 답 없음이라 말하는 이런 류의 병들은 개인의 경험이나 그것을 토대로 세운 가설밖에 기대볼 만한 게 없잖은가. 그것이 썰에 불과하다해도 어차피 완치도 못 시킬 약을 믿는 것 보다는 썰을 믿는 게 일단 몸에는 덜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안 그래도 외부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이 몸의 주 증상인데 여기에 독한 약물을 퍼붓는다는 게 과연 부작용이 없을 수가 있을까. 관련 책 몇 권을 주문해뒀다. 조금 더 제대로 공부해보리라. 몰라서 자꾸 불안해!

  

#24-5) 흔들리며 피는 꽃.


     아이가 아플 때마다 엄마들은 얼마나 심하게 자책하는가. 카페의 성격상 그곳에는 약물로 몸이 망가진 아이 엄마들의 자책과 고통이 대다수지만, 반대의 상황으로 인해 막다른 길에 놓인 부모들의 눈물과 자책도 알고 보면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놀란 것은 이 세상에 진짜 강골들이 많구나는 것이다. 이미 그 길 외 돌아갈 길이 없는 부모들이야 그렇다손 쳐도, 건강한 아이들의 엄마들까지도 얼마나 대담하게 아이의 병에 대처하는가를 보고 깜놀했다. 폐렴, 기관지염, 중이염, 심지어 가와사키까지 약 없이 자연치유를 시도하는 강골부모들. 나는 앞서의 직접경험이나 요 며칠 무수한 사례를 수집했음에도, 만약 아이에게 위와 같이 고열이나 통증을 동반하는 염증이 발생한다면 재까닥 병원으로 데려갈 참인데.....세상에 강골들은 많고 나는 쫄보다! 도대체 왜 학교 관리자들은 나를 강성으로 분류하는거니!

 

     아플 때뿐이랴? 나는 아이의 모든 상황마다 고심하고 흔들리겠지. 고학력쟁취에 일로매진하는 부모들과 미련 없이 대안학교나 탈학교를 선택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거센 에너지로 아이의 일평생을 책임지는 헬리콥터 맘들과 두둑한 배짱으로 풀어 키우는 방목자들 사이에서.... 나는 자신의 신념에 올인하는 강골들 사이를 기웃거리며 양쪽의 가치와, 양쪽의 손익과, 정보의 경중을 헤아리며 시시때때로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노.


     피곤해도 스스로를 믿어보련다. 나는 생의 모든 국면에서 언제나 흔들리며 살아왔지 않은가. 무지와 빠삭, 대범과 소심, 방심과 과민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흔들리며 살아온 나. 흔들림 속에서도 느리게 뿌리를 내려가던 나의 나무에 어느덧 아이도 들어와 있다. 행복하자~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양화대교~~~양화대교~~~~.




05-담론과 문화(34-71).PDF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 [권두언] 부당해고를 뚫고 전진하는 전교조, 교육의 미래이다. file 진보교육 2016.07.04 254
16 [특집] 1. 전교조운동과 교육노동운동의 전망과 투쟁방향 file 진보교육 2016.07.04 313
15 [특집] 2. 교원의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 방향 file 진보교육 2016.07.04 311
14 [논단] 비고츠키 현장노트 "경계선 아이" (1) file 진보교육 2016.07.04 544
13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 제창이 아니라 합창, 하모니의 에너지! file 진보교육 2016.07.04 387
12 [담론과 문화] 정은교의 몽상록 - 정세교육과 낱말공부 file 진보교육 2016.07.04 569
11 [담론과 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 '마을' 전성시대 file 진보교육 2016.07.04 398
»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 #24. 아픈 아이를 돌보며. file 진보교육 2016.07.04 564
9 [현장에서] 기간제교사로 살아가기 - 기간제 교사임을 밝히지 마라? file 진보교육 2016.07.04 757
8 [현장에서] 학교비정규직으로 살아가기 - 비정규직 차별 없는 평등한 학교, 교육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가자 file 진보교육 2016.07.04 533
7 [현장에서] 전임자 해직투쟁기 - 평범한 조합원에서 해직교사로 file 진보교육 2016.07.04 240
6 [만평] 情이 그립다 file 진보교육 2016.07.04 175
5 [사회변혁이론 고찰] 그람시, 라클라우와 무페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위하여' file 진보교육 2016.07.04 380
4 [교육혁명 이야기] 교육혁명의 공세적 국면의 도래와 <2016 교육혁명 대장정> file 진보교육 2016.07.04 265
3 [열공] "초짜세미나" 교육운동의 아포리아를 맞보는 시간 file 진보교육 2016.07.04 327
2 [열린 마당] 맑시즘 2016에 초대합니다 file 진보교육 2016.07.04 208
1 [책 광고] 비고츠키와 발달 교육 file 진보교육 2016.07.04 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