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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60(2016.05.09. 발간)

 

[현장에서] 기간제 교사로 살아가기

기간제 교사도 교사다.

 

박혜성 / 기간제 교사

 

 

1. 계약 기간이 있지만.....

 

19962월에 교사자격증을 받고 교사로 학교에 첫 출근을 했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임신을 한 교사의 대체교사로 3개월간의 교사생활이 시작되었다. 이후 출산을 하면 1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교사의 삶이 시작되자 가슴은 뛰고, 머리와 몸은 바빠졌다. 교과서를 읽고 또 읽으며 아! 요건 나도 중학교 때 정말 이해가 안 돼서 힘들었던 내용인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점심 시간에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운동장으로 나가 아이들과 인사하며 노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내가 중학교 때 놀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줄넘기, 고무줄 놀이, 비석치기, 공기놀이, 공놀이 등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바다에서 요동치는 싱싱한 물고기였다. 등나무 아래서는 아이들 몇 명이 모여 깔깔거리며 있었다. ‘내가 저 아이들의 선생이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주일이 지나고 고무줄 놀이 등에 나도 함께 하며 놀았다. 아이들이 알고 싶었고,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내고 싶었다. 놀고 있으면 여자 아이들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쫓아와 남학생들이 괴롭힌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교사라는 이유로 아무 의심 없이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아이들이 신기했다. 그래서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나의 계약은 종료되었다. 휴직을 했던 교사는 안타깝게도 유산이 되었고, 휴직 사유가 소멸되었기에 복직을 해야 했다. 그 교사를 대신했던 나의 자리도 사라졌다. 학교에서는 한 달을 채우는 것으로 배려를 했다.

처음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나름대로 3개월의 계획을 세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지만 나의 계획을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학교를 나와야 했다. 이것이 교사로서의 첫 경험이었다.

아이를 잃은 그 교사의 슬픔이 전해져 어떤 불만도 가질 수 없었다. 3개월의 계약 기간을 보장해 줄 것을 주장할 수도 없었고 주장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정식 교사도 아니었다. 주인이 돌아왔으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자리였다. 화사하던 벚꽃이 분분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2. 기간제 교사라고?

   

2013년 교육부 정책연구 논문에 따르면 결원보충의 대체 교사인 기간제 교사의 비율은 총 기간제교사 비율의 82%라고 한다. 자리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한 기간제 교사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사를 꿈꾸는 많은 예비교사들이 정식교사가 되기 위해 노량진을 오가며 또는 노량진에 터를 잡고 3,4년 심하면 5,6년을 임용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정규직 교사가 될 수는 없다. 임용고사는 31의 낮은 경쟁률부터 17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부족하지만 정부는 필요한 만큼의 교사를 뽑지 않는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은 임용고사의 경쟁률을 높이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20, 30대는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이가 많을 것이고, 40대 이상부터는 임용고사를 접고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기간제 교사 중에는 임용고사에는 합격 했지만 발령을 받지 못해 대기하는 이들도 있다. 40대의 기간제 교사들도 한 때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이들이다. 정규직 교사로의 꿈을 접고 기간제 교사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기간제 교사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하여, 교사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서 기간제 교사의 삶을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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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들은 임용고사를 보지 않았다고 교사로서의 자질과 교양, 열의 등을 의심 받곤 한다. 그래서 가끔 열심히 일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듣는 인사말이 있다. ‘자기, 기간제였어? 기간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일을 어쩜 이렇게 잘해? 잘해서 기간제인 줄 몰랐네이다.

2007년에 어느 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이다. 교육청에서 하는 창의적 교수법에 관한 연수가 있었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며칠 동안 받아야 하는 꽤 긴 연수였다. 반드시 한 학교에 한 명은 가야하는 연수였고, 연수에 자원자가 없어 기간제 교사인 내가 가게 되었다. 새로운 교수법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터라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했고, 다음 수업에 활용할 만한 방법들을 배워서 기뻤다. 그런데 그 연수에서 수업 공개를 할 교사 몇 명만 지원을 받아 소개하는 강의가 하나 더 있었다. 그 강의의 내용이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손을 번쩍 들어 자원했다. 강의의 내용은 창의적 교수법의 구체적 사례를 더 심화한 것이었고, 같은 지구에 있는 교사들이 팀을 이루어 한 교사의 수업 연구를 지원해서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때 겁도 없이 수업 공개를 하겠다고 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좀더 발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수업 공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가니 교감이 불렀다.

수업 공개하기로 했다며? 장학사님이 기간제 교사인데 수업 공개를 하면 잘할까 걱정하시기에 잘할 거라고 했어. 잘 할 수 있지?”

.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때부터 수업 공개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몰려왔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많은 학교의 교사들이 와서 보고 평가한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웠다. 그러나 그 두려움과 걱정을 물러서게 한 것이 팀플레이였다.

수업 공개를 하기까지 그 연수에 참여했던 정규직 선생님들과 모임을 가졌다. 내가 준비한 수업 계획과 아이디어에 대해 토론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은 학습 목표를 구체화시키고, 학생들의 활동을 이끌어 내는 방법과 발표의 순서 등 매우 꼼꼼하게 도움을 받았다. 그 덕분에 공개 수업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개 수업 한 번으로 훌륭한 교사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마치 훌륭한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그때 같은 팀으로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들과는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수업을 함께 연구하며 토론하는 과정에서 기간제 교사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짜 교사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경험 많은 정규직 교사와의 토론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학교에서 같은 교과 교사들과 함께 수업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연구한 경험이 그전까지는 없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계간으로 나오는 국어교육에서 함께 수업을 연구하는 교과 모임이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근무하는 학교에 교과모임을 제안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기간제 교사다.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 월권처럼 느껴졌다. 잠시 머물다 가는 기간제 교사가 무슨 교과모임을 제안할 수 있겠는가? 기간제 교사이기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제한하는 때가 많다.

 

 

3. 기간제 교사도 교사다.

  

일정한 기간 동안 기간제 교사이지만 늘 나도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2월에 1년 근무할 학교가 정해지면 1년의 수업 계획 등을 세운다. 계획을 세울 때는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좋았던 교사의 모습과 나빴던 교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좋은 교사의 모습으로 살고자 몇 가지 다짐을 한다.

첫째, 아이들이 하는 교과와 관련한 어떤 질문도 수용하자.

둘째, 각 반의 수업 진도와 수업에 대한 특기 사항을 기록하자.

셋째. 아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함부로 규정하지 말자.

넷째, 올해 수업은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 정한다.

 

이런 다짐을 한 이유는 중학교 때 경험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우리나라 1920년대 소설에는 욕이 참 많이 나왔다. 왜 책에 욕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께 왜 소설에 욕이 많이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선생님 왈 그런 건 시험에 안 나온다.”하고는 요즘 선생님이 삼국지를 다시 읽고 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네 번째 읽고 있다. 너희는 아직 안 읽었지? 꼭 읽도록 해.”하는 것이 아닌가. 열 네 살 어린애들 앞에서 우쭐해하는 그 선생님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욕은 남을 저주하는 말이니 하지 마라.’는 가르침을 철석같이 지키고 있던 순진하고 모범적이나 문학적 장치를 이해하지 못한 14살의 소녀는 그 후로 입을 다물게 되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는데...그리고 그 질문은 참 좋은 질문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교사가 되면 아이들이 하는 질문이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받아들이고 답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아이들의 질문이 엉뚱하고 수업을 지연시키기 위한 꿍꿍이(?)가 있는 경우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답을 하고 있다. 가끔 아이들의 질문이 빛날 때도 있다. 교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예를 들며 질문을 할 때는 속으로 깜짝 놀라지만 좋은 질문이라며 칭찬해주고 적어 놓기도 한다.

둘째는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내가 한 말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형성평가, 수행 평가, 과제 등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수업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생기면서 기록을 하지 않으면 놓치게 되었다. 또 아이들은 가끔 선생님, 그런 말씀 안 하셨어요?”라며 오리발을 내밀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과제를 주었거나 준비물을 안내한 경우에는 꼭 기록을 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교사들은 지도하는 반의 수업 진도가 다 똑같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각 반마다 아이들의 능력도 다르고 그날 교실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기에 기록을 한다. 이 기록은 매우 유용하다. 특히 반의 특성을 적거나 눈에 띄는 아이, 조심해야 하는 점을 적어두면 다음 수업에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업에서 학생들이 질문한 내용 중 기억할 만한 점들을 모아 다음 수업에 참고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은 매 순간 변한다. 어느 날을 열성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어느 날은 반항하고 어느 날은 침울해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한결같은 아이들도 있다. 늘 즐거운 아이도 있고, 늘 무덤덤한 아이도 있고, 늘 침울한 아이도 있다. 아이들을 어느 순간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운 좋게도 2002년부터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기간제 교사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해마다 새학기 시작 전에 수업의 주안점을 정할 수 있었다. ‘자기주도학습법을 안내하고 실천하게 한다.’ ‘어휘력 향상을 위한 단어장 만들기와 스피드퀴즈 진행’ ‘시 읽고 감상 쓰기, 시 창작하기’ ‘독후감 쓰기’ ‘토론 능력 향상등등의 계획을 세워 실천했다.

아마도 다른 기간제 교사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면서 작은 성과를 보고 싶다. 단지 누구를 대신해 잠시 땜빵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 지를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적어도 6개월 이상의 고용이 보장되어야 할 수 있는 계획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간제 교사들의 근무는 정규직 교사의 휴직 등의 기간과 일치하므로 무조건 1년 계약을 주장할 수는 없다. 한 달이든 3개월이든 주어진 시간 안에서 나름대로의 계획을, 또는 이미 주어진 계획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다만 정규직 교사가 1년 휴직을 했음에도 6개월로 쪼개서 계약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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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간제 교사, 날개를 펴다.

  

15년 동안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기간제 교사에 대한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안내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근무 전에 계약서를 본 적도 없다. 채용이 되면 행정실에서 작성한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다. 그리고 며칠 후에 내 손에 계약서가 들려진다. 기간제 교사를 했던 첫 3,4년은 계약서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 학교를 믿었고, 법에 따라 해주겠거니, 별다른 사항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노동자였다.

기간제 교사도 교사이고 노동자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계약서를 확인하게 되었다. 계약서에는 지켜야 할 내용과 불리한 규정이 제시되어 있다. 급여는 계약할 때 획정하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고정된다. 정규직 교사가 복직하면 바로 계약이 해지 된다. 는 등의 내용이다. 계약서 외에 기간제 교사의 운영지침2014년에 처음 받았다. 운영지침은 계약서 보다는 더 상세하게 기간제 교사의 개념과 의무 규정 등이 나와 있다. 여전히 고용 불안과 차별적 내용이 담겨 있다.

기간제 교사들은 교사로 살면서 행복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 사소한 듯 보이는 차별 때문에 서럽고 위축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들은 많은 속앓이를 하면서 그들 나름의 소통은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기간제 교사 온라인 카페가 몇 개 있다. 회원수 10만이 넘는 전국기간제교사모임이 있고, 2012년 기간제 교사 성과급 집단 소송을 주도했던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이하 전기협)가 있었다. 이 두 개의 카페가 가장 특징적이다. 전교조 선생님들께 소개하고 싶은 카페는 후자이다.

올해 3월에 전국기간제교사협의회가 이름을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이하 전기련)로 바꾸고 오프라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기협의 운영진들이 다시 모여 기간제 교사들의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다.

2012년에 기간제 교사의 성과급 집단 소송을 할 때도 고민이 있었다. 전교조에서는 성과급 폐지 운동을 계속 하고 있었고, 기간제 교사들도 성과급 폐지가 맞다고 생각했다. 폐지되어야 할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폐지되어야 할 성과급이지만 정규직에게는 지급하고 기간제 교사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 확실했다. 그러나 전교조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간제 교사들은 해도 될까? 괜히 그거 했다가 교장 눈 밖에 나서 좋을 것 없잖아.’하며 고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권리 주장도 망설이고 고심할 수밖에 없는 기간제 교사들은 관리자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가 집단소송을 기획하고 소송비용도 지원해 주었다. 또 학교에 있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소송을 알려 주고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었다. 그래서 망설이고 고민하던 많은 기간제 교사들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기간제 교사들 스스로도 성과급 집단 소송을 위해 전기협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교사들을 독려하고 모았다. 전기협은 기간제 교사들 조직과 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몇 차례 오프라인 활동을 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프라인 활동은 지속되지 못했으나 온라인 카페는 계속 유지가 되었다.

몇 년의 공백을 거쳐 기간제 교사들의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위한 실제적인 활동을 하고자 오프라인 조직으로 다시 태어났다. 차별에 대해 하소연하며 위로받기 보다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단체로, 조직으로 그것을 요구하고 싸울 때 차별을 없앨 수 있음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와 관련한 이런저런 사건들도 더 이상 눈물만 훔치며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전기련의 요구는 첫째 고용 안정이다. 1년 계약을 할 때 쪼개기 계약이나 계약 도중에 해고 당하지 않도록 고용 기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성과급, 복지포인트 지급, 정근 수당, 호봉 승급, 1정 연수 등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 때 죽음을 무릅쓰고 교사로서의 의무를 다한 김초원, 이지혜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현재 전기련은 서명지와 리플릿을 만들었다. 기간제 교사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서명을 교사들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받고 있다. 또한 유료회원인 정회원 가입도 온라인에서 받고 있는 상태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제한이 많다. 이것들이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회원의 가입도 매우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다. 주변에 기간제 교사들에게 소개를 하면 선뜻 가입하겠다고 하기 보다는 망설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유는 하나다. 차별 받는 것에는 분노를 느끼고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차별 해소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낀다. 부담을 느끼는 것도 백번 만번 이해가 간다. 괜히 목소리를 냈다가 행동을 했다가 어느 단체에 가입했다는 것이 학교에 밝혀지면 기간제 교사의 생활도 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한 명, 두 명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에 가입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늘고 있다.

기간제 교사들의 전기련 회원 가입은 전교조 선생님들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법외노조라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흔들림 없이 싸우고 있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차별은 부당하며 이것을 없애기 위한 행동은 정당하다는 것을 지지해주고 함께 싸우자고 손을 잡아준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기간제 교사들도 전교조의 투쟁에 지지를 보낸다.

기간제 교사든 정규직 교사든 정부의 탄압과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땅에 참교육과 교사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만 한다.

  

선생님들께 다음과 같은 것을 부탁드립니다.”

* 동료 기간제 교사들에게 전기련을 소개하고 회원 가입을 권유해 주세요.

*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위한 서명 운동에 참가해 주세요.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과 차별 해소를 위한 서명 http://goo.gl/yYxgDG)

*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를 후원해 주세요.

*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소개와 가입서 리플릿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3-28 4층 전화 02- 334-0312 팩스 02-334-5078

이메일 giganjeright@gmail.com

카페 htttp://cafe.daum.net/giganjeright

(인터넷에서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를 검색하면 카페로 바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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