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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9(2015.12.15. 발간)

 

[맞짱칼럼]

조희연 교육감은 어쩌다

진보교육의 계륵이 되었나?

- 진보를 배반한 진보교육감 -

 

송원재 / 전교조 서울지부 대외협력실장

 

 

 

중국 후한(後漢) 말기, 유비는 위()의 한중을 점령하고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 되었다. 노발대발한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섰지만, 유비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한중을 지키는 한편 유격군을 보내 위군의 보급을 차단해버렸다. 군량이 떨어진 위군은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

조조는 골치가 아팠다. 한중성 하나 잃는다고 대세가 기우는 것도 아닌데, 평소 깔보던 유비에게 한중을 뺏겼다는 자실에 자존심이 상해 대군을 휘몰아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이제 와서 철군을 하자니 꼴이 사납고, 그렇다고 결판을 낼 때까지 마냥 눌러앉자니 당장 군사들을 먹일 군량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의 밥상에 닭갈비 국이 올라왔다. 먹자니 뜯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계륵. 鷄肋). 어찌 이리 자신의 처지와 같단 말인가. 조조가 탄식하고 있을 때 하후돈이 들어와 그날 밤 암호를 무엇으로 할지 물었다. 그러나 조조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혼잣말로 계륵 계륵하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하후돈은 군졸들에게 오늘 밤 암호는 계륵이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행군주부(行軍主簿) 양수는 부하들에게 당장 짐을 꾸리라고 명령했다. 장수들이 그 까닭을 묻자 양수가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요. 주군께서 계륵을 암호로 정하신 것은 그런 심중을 내비친 것이니 곧 회군명령을 내리실 것이요. 그래서 미리 짐을 꾸려 두는 것이오.”

장수들은 감탄하며 각자 자기 부대로 돌아가 군졸들에게 짐을 꾸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조조는 양수가 자기의 심중을 귀신처럼 꿰뚫자 불같이 노해 군령을 어지럽힌 죄를 물어 양수를 참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조조는 태연히 철군명령을 내려 미련 없이 한중을 버리고 떠났다.

 

지금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처지가 꼭 그 꼴이다. 조 교육감은 취임 뒤 1년이 넘었지만 여태 진보교육감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게 중평이다. 대규모 입시비리가 불거진 영훈국제중의 승인을 취소하지 않고 살려준 것이 그렇고, 자율형사립학교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한 학교의 자사고 지정취소를 2년 동안 유예해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도 그렇다. 학력 우수학생을 싹쓸이하던 특권학교들이 죄다 살아났으니, 조 교육감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일반고 전성시대가 제대로 이행될 리 만무하다.

교원업무 경감은 감감무소식이고 학교민주화 역시 부지하세월이다. 당선 직후 납작 엎드려 눈치를 살피던 관료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안하무인의 관료행정을 일삼는다. 동구마케팅고와 하나고의 사학비리를 외부에 알린 공익제보 교사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왕따 취급을 당하며 징계 위협에 시달린다. 도무지 교육감의 영이 서지 않고 관료들은 교육감 알기를 발가락의 때만큼이나 우습게 여긴다.

학교에서는 진보교육감이 들어섰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아우성이고, 변화를 갈망하던 교사들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졌다. 얼마나 조 교육감의 존재감이 없으면 선거가 끝나자마자 조 교육감은 사라졌다”, “조 교육감의 최대 치적은 과거 문용린 교육감처럼 교사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이 나올까?

 

그런 조 교육감이 마침내 전교조 서울지부와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 동안 전교조가 법외노조 처지에 놓였던 때는 일단 차치하자. 조 교육감 자신이 허위사실 공표와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태에서 보수적인 법원을 의식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 1116일 서울고법은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전교조를 다시 법내노조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요지는 본안 판결 이전에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인정할 경우, 전교조는 단체교섭 등 노동조합으로서 일상적 활동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본안 판결 이전에는 전교조의 단체교섭 등 노동조합의 활동에 제약을 가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고법 판결 직후 전교조 서울지부는 그 동안 단체협약 체결을 미뤄 온 조 교육감에게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전교조의 법적 지위에 하자가 없고, 서울고법의 판결 요지를 존중하면 단체협약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과 전교조 서울지부는 그 동안의 단체교섭을 통해 쟁점사항에 대한 타결을 모두 마무리하고 문구 조정과 조인만 남겨둔 상태다. 그런데 조 교육감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단체협약 체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단체교섭을 가리켜 흔히 노동조합의 꽃이라고 부른다. 노동조합의 활동은 최종적으로 단체교섭을 통해 관철되고, 그 결실은 단체협약을 통해 법적 보호를 획득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거꾸로 단체협약을 맺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이름만 노조로서, 수백 년 노동운동이 피땀으로 일궈낸 노동자의 합법적 권리를 사실상 박탈당하게 됨을 뜻한다. 정부가 그토록 집요하게 전교조를 법 밖으로 쫒아내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 교육감이 분명한 이유도 제시하지 않고 전교조와의 단체교섭을 회피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단체협약 체결을 한사코 회피하려는 이유가 뭘까? 서울시교육청 주변에서는 조 교육감의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전교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할 경우, 보수성향의 대법원이 괘씸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조 교육감이 패소하면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재판에서 승소할 때까지는 단체협약 같은 이기적인 요구는 자제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조 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재판과 전교조의 법외노조 재판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킨 장본인이 같은 사법부인 서울고법이라는 사실 앞에서 그런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담당 재판부가 이 말을 들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도리어 화를 낼 일이다. 조 교육감의 재판을 맡은 법원이 조 교육감이 전교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고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피해망상증에 가깝다. 누군가 자기에게 피해를 입힐 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다른 누군가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조 교육감은 다른 송사에 휘말릴 때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몸을 움츠리고 눈치만 살필 셈인지 묻고 싶다.

그런데도 조 교육감이 단체교섭을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재판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이는 결국 나 살자고 동료를 버리는배신행위이자, 보수세력의 눈에 들기 위해 동료의 머리를 베어 바치는투항행위나 마찬가지다. 조 교육감은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전교조에게서 합법적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 잔혹드라마에 출연해서 열연을 하고 있다.

 

핵심 측근으로부터는 더 노골적인 이야기도 들려온다.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단체협약 체결을 미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가 패소해서 법외노조가 되면 단체협약은 어차피 휴지조각이 될 텐데 왜 단체협약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법외노조 본안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해선 안 된다.”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과연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법외노조라 하더라도 단체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 자체를 금지하는 법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외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은 단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할 뿐, 협약의 당사자가 서로 성실과 신의로 대한다면 협약으로서의 규정력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다고 하더라도 조 교육감이 전교조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성실과 신의로 대한다면 단체협약이 휴지조각이 되는 일은 없다.

만약 전교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법외노조 판결을 내린 판사가 아니라 전교조를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조 교육감 한 사람밖에 없다. 따라서 법외노조 판결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은 곧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단체협약 따위 맺지 않겠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귀결된다.

 

이러고도 조 교육감이 계속 진보교육감의 이름표를 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진보교육감이면 영원한 진보교육감이라고 생각했다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지적 관계란 어느 일방의 요구를 위해 다른 일방의 무조건적 희생을 강요하는 약탈적 관계가 아니다. 진보교육감과 전교조는 상대방의 정당한 권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아나가는 상생관계여야 한다.

더욱이 지금 전교조는 법외노조로 밀려날 지도 모르는 백척간두의 낭떠러지에서 풀 한 뿌리라도 움켜쥐고 버텨야 하는 절박한 형국이다. 그런 전교조에게 단체협약 체결은 합법공간에서 마지막까지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마다하는 조 교육감은 지금 전교조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 조 교육감은 언제부턴지 진보교육의 계륵이 되고 말았다. 먹지도 못할 닭갈비를 언제까지나 소중히 간직할 사람은 없다. 살아도 죽느니만 못한 삶이 있듯이, 죽을 각오로 덤벼야 살 길도 열리는 법이다. 30년 지조를 지켜 온 진보지식인 조희연을 계륵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조 교육감 자신이다. 전교조와 조 교육감이 진보교육 2로 함께 나아갈지, 아니면 옷깃을 칼로 잘라 결별의 수순을 밟을지, 선택은 오로지 조 교육감에게 달렸다.

지금 서울시교육청 앞마당에서는 전교조 서울지부가 단체협약 체결을 촉구하며 무기한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 동안 보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조 교육감을 지키기 위해 법원에 대규모 탄원서를 제출하고, 수업이 끝나면 거리로 달려 나와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배포하던 전교조 교사들이 망연자실해 있다. “단협 체결 거부하는 조희연 교육감을 지켜냅시다!” 라고 외쳐야 할 판이니,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고서야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이들의 실망이 분노로 바뀌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