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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책소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2016.01.11 15:17

미로 조회 수:845

[진보교육] 58호 (2015.10.8 발간)


[책소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귀카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이딴 거 왜 해요?”

 

딱히 못하는 것도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한 아이가 있었다. 하루살이같은 한국의 10대 청소년이었던 그 아이에겐 거창하게 꿈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었다. 소설책 읽기를 즐겼지만 글쓰기라면 영 질색이었으며 수학, 과학 문제를 곧잘 풀었지만 개념을 깊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2가 되어 어쩔 수 없어졌을 때, 더 싫어하고 좀 더 못하는 것을 피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월급쟁이 회사원은 되고 싶지 않았고 교사나 의사가 좋을 것 같았다. 교사가 된다면 수학선생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감수성은 다소 부족한 전형적 이과생 타입처럼 비춰졌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성적이 좋았을 뿐 과학에 대한 관심도 소양도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파악 끝에 이과생이 된 것일 뿐. 그 아이는 대학을 가기 위해 교과서를 외우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었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친구의 손에 이끌려 문예동아리에 가입했다. 선배들이 이끄는 대로 세미나를 하고 농활을 가고 정기공연을 함께 준비했다. 도서관은 멀리 했으며 동아리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전공공부가 하기 싫어 죽겠는 그에게 동아리는 탈출구였다. 공부를 우습게 여기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계거리이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전공수업에 매진하는 것이 그리 자랑이 아닌 시대이기도 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없지 않았다. 뒤늦게 중2병 앓는 것 마냥 입시와 제도교육에 시달린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수업을 무시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멀리하려고 했다. 마침 전공과목들은 어려웠고 삶의 지혜라든지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이딴 걸 왜 배우지?’라는 생각이 가득한 채 졸업에 지장 없을 정도로 근근이 학점관리를 할 뿐 이었다. 재미없고 어려운 공부를 회피할 구실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세미나와 데모 쫓아다닌 것으로 세상 보는 눈을 가지게 된 줄 착각한 아이는 졸업을 앞두고 임용고시에 올인 한 끝에 수학선생이 되었다. 임용고시용으로 머릿속에 우겨넣었던 지식의 파편들이 무식을 씻어주지 못했음은 당연지사다.

그에게는 과학 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둔하고 자기 분야밖에 모는 샌님 같아 보였다. 사회참여나 혁명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수학을 가르쳐 밥을 먹고 살면서도 수학에 대해서 더 알려고 들지 않았으며 더 나은 수업을 하기 위한 별다른 욕심도 내지 않았다.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올바른 인간으로 산다는 보장도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태만을 정당화했다. 수학이나 순수과학은 머리가 특별히 좋고 약간은 괴짜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삶과 저 멀리 떨어진 어렵고 딱딱한 지식들이 인간의 성장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왜 모든 아이들에게 수학을 억지로 배우게 하는지 오랫동안 확신이 없었다.

 

이딴 거 왜 해요?”

 

표정만으로도 불편한데 때로는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아이들 앞에서 억지로 수업을 해야만 한다. 아이들을 탓한다고 해결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먹고 살아야 하니 너희들은 억지로라도 들어야 해라고 답할 수도 없는 노릇인 선생들은 괴롭다.

 

학교를 다닐수록 자라나는 반과학주의, 반지성주의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것들은 신기했다. 일상에서 접하지 못했던 새로 배운 고급진 낱말들도 좋았다. 그림자의 길이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찬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커다란 하얀 종이를 펴놓고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기도 했고 물속에 유리막대를 넣으면 꺾여 보이는 것이 신기해서 집에 가서 몇 번이고 해봤던 것도 생각이 났다. 번개가 친 뒤 천둥이 치는 것도 빛의 속도와 소리의 속도랑 연결시켜 보았다. 직렬, 병렬로 건전지를 연결하는 것에 따라 전구의 밝기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해서 몇 번이고 이렇게 저렇게 해 가면서 빛의 밝기를 혼자서 관찰하는 등 과학시간에 배운 것들은 좋은 놀잇감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때 까지 만이었다.

한국 교육은 신통방통한 데가 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논술이 입시항목으로 추가되니 아이들은 글쓰기를 이전보다 더 싫어하고 부담스러워 하며 예전보다 글의 질도 떨어진다. 독서를 강조하니 공교롭게도 학생들의 독서의 질과 양도 그닥인 것 같다. 초등영어교과가 도입되고 나서 중학교 영어 교사들은 가르치기 힘겹다고 더 많이 하소연을 한다. 우연으로 넘길 일일까? 과학이 국가경쟁력을 위해 중요하다며 과학고를 만드니 과학은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과목으로 전락을 해버렸다. 그놈의 변별력 때문에 시험문제는 비비 꼬이고 학원의 문턱이 닳아버릴 지경이다. 어릴 적 충만한 호기심으로 자기가 속한 세계를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개념을 통해 새롭게 인식하고 신기하게 여겼던 어린이들의 자리에 포자(~포기자)가 왕성하게 번식한다.

상황이 점점 더 공부를 극혐취급하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공부에 올인하는 이 시대에 이제 제법 꼰대 마인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력이 쌓인 그는 자꾸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책 읽어라’ ‘글을 써라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 쓸모도 없는 이걸 왜 해야 하냐고 묻는 아이들이 있을라치면 이걸 해야 너희들이 똑똑해지니까라고 예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으로 당당히 이야기한다. 이런 변화가 있기까지에는 모종의 행운이 깃든 과정이 있었다. 비고츠키 교육학을 우연히 접하게 되어 연구소의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 가장 결정적이었으며 학습의 중요성을 일깨워 평생 학습하는 자세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초중등교육의 핀란드 교육의 중요한 교육목표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한 몫을 했으며 요리조리 피했던 자연과학을 더 이상 회피해선 안 되는 중요한 이유를 한층 구체적으로 알게 된 덕도 있었다.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구?


과학이, 그리고 공부가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이 만연한 사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되고 멀리하게 된다. 주지주의가 반지성주의를 창궐하게 만들 듯, 엇나간 과학교육정책과 과학의 상업화는 과학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긴다. 사적 경험에 기대는 개똥철학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이런 사회 상황을 교육의 영역에서 먼저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인간에게 있어서 왜 필요한지, 공부를 중단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아야 한다. , 생각의 출현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일정 정도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자 박문호는 인간의 를 중심으로 생명과 우주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치다가(사실 이해하지 못하고 넘긴 부분이 너무 많기는 하다) 책의 말미에 가서는 나이가 들어서도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학습주도형 인간이 되자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지긋지긋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학교 다닐 때의 고통을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하라니! 이런 청천벽력이 어디 있나! 하지만 새겨들을 대목들이 있어 보여서 소개해 본다.

인간의 기억을 구성하는 내용적 성분은 연령과 경험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20대 대학생들의 경우는 절차 기억이 10%, 신념 기억이 20%, 학습 기억이 70% 정도를 이루다가, 대학 시절 이후에는 학습 기억이 30%로 줄어들면서 신념 기억이 60%정도로 올라간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학습 부재형의 완고한 인간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학습 최소형이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학습만 하는 사람들이다. 책을 읽어도 현실적인 책만 읽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현실적이고 근시안적인 독서는 현실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학습만 할 경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박문호의 지적은 십년도 훨씬 넘게 이어지는 자기계발서 열풍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말이기도 하다. 교사들의 경우 시간을 채운다는 현실적 목적하게 이루어지는 여러 연수들은 실은 그다지 유용하지도 못할 수 있다. 마지막 유형은 100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특이한 형태로서 바로 학습 주도형이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박문호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일맥상통하는 것은 책을 많이 읽어라는 것이다. 무작정이 아닌 목적의식적으로 읽으라고 한다. 박문호의 말을 추려 본다. 첫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시간과 에너지를 자연과학의 고급 지식을 쌓는 데 투자해야 한다. 둘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한다. 질문은 학습의 추진력이 되며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답에 도달하게 된다. 셋째, 학문에 미쳐야 한다. 어떤 분야를 5, 10년씩 완결하여 50년 공부하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 넷째, 학습의 균형을 잡아라.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3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다. 숫자 뿐 아니고 더 큰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을 위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다섯 번째, 목표 량이 중요하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양은 질로 바뀐다. 50대가 될 때까지 3천 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 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되면서 정보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양이 질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박문호는 시종일관 유연한 사고를 갖기 위해 방향성 있게 독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기에 덧붙여 토론글쓰기가 독서에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내용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대목은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유연하고 창조적인 사고에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되며 독서의 경우 그 비율이 반반을 넘어 70%정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문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어릴 때는 독서라 함은 소설책을 읽는 것과 동의어였고 스무 살이 넘어서는 자연과학 분야의 책은 몇 권 읽지도 않았고 사회과학을 늘 우선 순위에 두었었는데 박문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잘못된 독서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라도 자연과학의 독서 비중을 상당 수준으로 늘리고 현대 과학의 깊은 지식들까지 섭렵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책도 많이 읽지 않고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책이나 근근히 읽는 마당에 그 어렵다는 현대 과학을 다룬 책을 어떻게 읽는단 말인가.

 

인간이 지닌 가능성에 대한 어떤 과학자의 신뢰


어느 토요일 오후, 시내 대형서점에 간 그의 눈에 한 권이 책이 들어왔다.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두께(700) 치고는 가격도 저렴했다. 남아있던 한 권을 얼른 빼어들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책을 산 지 한참이 지났지만 나는 이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바쁘기도 했지만 조금씩 아껴서 읽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내가 이 우주의 일원이며 영겁의 세월이 라는 유한한 존재 속에 켜켜이 응축되어 있다는 평소 결코 할 수 없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지라 가끔씩 꺼내들어 한 개 장씩 읽기 안성맞춤이다.

책 뒤표지에 실린 출판사의 광고 문구에 따르면 전 세계 60개국, 6억 시청자, 600만 독자를 사로잡은 최고의 과학 책이며 깊은 지혜와 아름다운 문장이 어우러진 걸작이다. 뒤표지에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주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출판사의 광고 문구는 허언이 아니었다.

코스모스1980년도에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힌 책으로서 현대 과학 분야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이다.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쓴 책인 만큼 서술 역시 청소년들이 읽기 충분할 정도로 쉬우며 자연과학자 답지 않게(?)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서술된 매력적인 책이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과학자이다. 그는 평생을 우주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일구며 살았다고 알려져 있으나 안타깝게도 1996년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인간생명의 근원인 코스모스로 원자가 되어 돌아갔다.

코스모스cosmos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는 우주의 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며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카오스Chaos에 대응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저자는 변증법이라는 낱말을 가지고 설명하지는 않지만 저자가 보여 주고자 하는 자연의 질서 코스모스는 변증법 그 자체이다.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유물론자들은 자연을 바라보며 변증법적 원리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요즘 아들러 심리학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 아들러든 비고츠키든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관계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러한 관계를 화두로 인간의 내적 이야기를 풀어가는 심리학이 현대 사회에서 크게 각광받고 있는데,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자연세계는 만물은 상호연관 속에서 서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창출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거대한 학습장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학습장의 일원인 인류야말로 이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고 나아가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라고 세이건은 생각했다.

 

우리 인류야말로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며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현대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믿음을 세이건은 가지고 있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세이건의 말마따나 인류는 과학을 크게 발전시켜 왔다. 여기에서 진보해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만물과 인간사회를 발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이미 만들어진 세계, 고정된 세계에 영문도 모른 채 내던져진 존재로밖에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열정을 가지고 활동했다. 세이건은 대담하게도 현대의 모든 인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세계의 여러 의문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동료가 되어가기를 희망했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인류보다 훨씬 더 지성적이고 많은 기술적 도구들을 향유하고 있지만 자연을 직접 마주 대하기는 쉽지가 않다. 세이건은 현대 인류로 하여금 과학하는 마음이 들게끔 함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불가피한 주제는 이 세상의 본질과 기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코스모스시리즈를 제작하면서 대중에게 과학하기의 근본 아이디어와 방법 그리고 기쁨을 전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중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지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질문은 그것이 깊은 수준에서 던져진 진지한 물음이라면 반드시 엄청난 수의 지구인들에게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것이며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할 것이다.”

 

세이건은 당시의 가장 강력한 현대적 대중 매체인 텔레비전을 통해 인류의 기원에 대한 문제로 대중을 관심을 끌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텔레비전 시리즈 물인 코스모스였다. 13부로 이루어진 이 텔레비전용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3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14000만 명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한다.

 

생명의 기원,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외계 생명과 문명의 탐색,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 등을 밝혀내는 일이 인간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 인간 정체성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 사고의 저변에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관심이 두껍게 깔려 있게 마련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저자 서문 중)

 

과학은 현상의 배후를 알아내고자 하는 활동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과학자의 눈으로 우주만물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왜 인류는 과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이 일정한 법칙성을 가지고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세이건은 말한다.

 

만일 누군가가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그가 할 일을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과학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또 하나의 극단인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변화가 지극히 무작위적이거나 지나치게 복잡해서 생각해 봤자 별수 없는 처지라면, 그런 세상 역시 과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엔가 있다. 사물의 변화가 있되 그 변화는 어떤 패턴이나 규칙을 따른다. 흔히들 만물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허공에 집어 던진 막대기는 반드시 땅으로 다시 떨어지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진 해는 반드시 이튿날 동쪽 하늘에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가능하고, 과학이 밝혀낸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가뭄, 역병, 사상 간의 무서운 대립 속에서 허덕이던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만병통치약은 미신이었다. 우주의 한가운데에 지구가 있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주축으로 하여 창조된 만물이 그 주위를 돈다는 생각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그로부터 1,000년 동안 천문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코스모스를 보는 두 가지 관점, 즉 지구 중심설과 태양 중심설의 대결이 절정에 이른 것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에 살았던 한 과학자를 통해서였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처럼 점성술사이자 천문학자였으며, 인간 정신이 족쇄에 묶여 있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영혼이었다. 새로운 지식들이 많이 발견됐어도, 교회가 발표한 1,000~2,000년 전의 과학 결과를 더 신뢰해야 했던 그러한 시대였다. 그러나 한 사람의 용감하고 고독한 분투 덕분에 현대 과학에 혁명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나는 밤낮을 수학적 노동으로 지새웠다.”고 회고한다. 이 고단한 노동의 결과가 그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들이다. 케플러가 이 법칙을 세우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 것은 당연했지만 케플러는 정직한 과학자였기에 당대의 상식을 깨는 법칙의 정립이 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이론과 관측결과가 맞지 않자 이를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았다. 관측결과가 이론의 예상과 맞지 않을 때 관측값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리는 이론가들을 우리는 과학의 역사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더군다나 가설의 우아함과 거창함에 빠졌던 케플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뻔했다. 비록 자신의 이론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측정값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케플러의 이 깊은 사유 속에는 세상의 근본을 건드리는 숨 막힐 정도로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의 생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케플러는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이 천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여기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은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인류사에서 최초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었다. 케플러는 역사의 한 꼭짓점에 서서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런 주장을 할 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인류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과학적 점성술사가 우리가 만난 최초의 천체 물리학자였던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행성의 진짜운동을 밝혀내는 일이었다. 지구 바깥에서또는 저 높은 하늘에서 행성들을 내려다보았을 때 행성들이 과연 어떤 운동을 하기에, 지구 안에서또는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행성들이 이러저러한 겉보기 운동을 하느냐는 것이다. 지구에서 본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가장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는 행성 운동 모형이 그들의 탐구대상이었던 것이다.”

 

세이건은 인간이 수행해온 그리고 앞으로 수행해 나가야 할 과학적 활동의 본질을 한 마디로 현상의 배후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를 밝히려는 시도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지렛대 구실을 하여 드디어 인류는 미신의 시대를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스마트폰 등 현란한 도구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고도화된 과학기술문명의 시대에 우리들은 살고 있지만 아직 과학은 우리 대중들의 것이 아니다. 심지어 과학하려는 마음을 가질 틈도 없다.

 

코스모스는 협력그 자체


코스모스는 협력 없이 오늘날의 이 세계가 어찌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인간들이 공동체 속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야해 라는 것을 현재적인 도덕적 언명으로서가 아니라 우주는 여러 물질들과 생명체들의 협력의 하모니임을 알려준다.

가만히 자연세계를 들여다보자. ‘협력이 아닌 한 단 한 순간도 생존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생명의 출현과정과 그 고통스럽도록 더디게 진행된 진화과정 자체가 협력을 통해서 였다. (2장 우주 생명의 푸가에 이러한 과정이 잘 서술되어 있다.)

10억 년 전쯤부터 식물들이 협동작업을 통해 지구환경을 엄청나게 변화시키기 시작했고 그 시절 바다를 메운 단순한 녹색 식물들이 산소 분자를 생산하자마자 지구 대기의 성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생명 현상에 필요한 물질이 그때까지는 비생물학적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으나, 산소 대기의 출현으로 지구 생명사의 신기원이 세워진 것이다. 지구 대기의 99퍼센트는 생물 활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파란 하늘은 생물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물과 환경은 서로를 만들고 변화시키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나무는 햇빛을 생존의 동력으로 삼는 아름답고 위대한 기계이다. 궁극적으로 식물에 기생해서 사는 우리 같은 동물은 식물이 합성해 놓은 탄수화물을 훔쳐서 자기가 일을 수행하는 데 이용한다. 우리는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수화물을 섭취한 다음 호흡으로 혈액 속에 불러들인 산소와 결합시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가 호흡 과정에서 뱉은 이산화탄소는 다시 식물에게 흡수돼 탄수화물 합성에 재활용된다. 동물과 식물이 각각 상대가 토해 내는 것을 다시 들이마신다니, 이것이야 말로 환상적인 협력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지구 차워네서 실현되는 일종의 구강 대 기공의 인공 호흡인 것이다. 그리고 이 위대한 순환 작용의 원동력이 무려 1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태양에서 오는 빛이라니! 자연이 이루는 협력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세포 또한 마찬가지다. 40억년에 걸친 진화의 정수인 살아있는 세포는 은하와 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이룬다. 이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는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제 각각 지내던 각각의 분자들이 만나 세포를 이루고 세포들이 모여 다세포 생물을 이루고... 한 때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부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은 100조 개가량의 세포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결합들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들이 출현했고 그 생명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놀라운 사실 즉 협력없이 오늘날의 세계가 만들어질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과학 교육을 통해 배워본 바가 없다. 물론 누군가 이야기했을 지 모르지만 그간의 교육에서는 과학을 그러한 시각으로 보도록 가르치지 않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가까운 동료와의 협력을 넘어 사회적 협력으로 나아가야 하고 나아가 모든 인류가 우주적 협력의 산물임을 깨닫도록 하는 것은 자연과학을 그저 지식 쌓기과 자본의 이윤창출 도구를 넘어서 생명과 우주의 근원, 인간의 정체성을 파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전환적으로 인식을 해야 할 때가 지났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출현했으며 그 원동력은 전 우주적 협력이었음을 즉 코스모스는 협력 그 자체라는 이야기를 세상을 떠난 인류인 세이건이 나에게 들려주었듯이 이제 어린 동료인류들에게 체계적으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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