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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7(발간 : 201576)

 

[기획]

서구와 제3세계 맑스주의 교육학에 대하여

그람시, 프레네, 알튀세, 프레이리를 중심으로-

 

김태정 (교육사상연구팀)

 

 

1. 들어가며

이 글에서는 그람시, 프레네, 알튀세, 프레이리의 이론을 중심으로 서구와 제 3세계 맑스주의 교육학을 개괄하고자 한다. 물론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한계를 비판하거나 대안을 모색한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러나 매우 명시적으로 자신의 이론이 맑스주의 방법론에 근거하였음을 밝히고 교육학 발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인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교육학은 교육의 본질, 목적, 내용, 방법, 제도, 행정 등에 관한 이론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교육에 대한 역사적 심리학적 과학적 연구 등을 포함한다. 이런 점에서 비록 프레네와는 달리 그람시, 알튀세 등이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활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음에도, 이들의 이론 자체가 교육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그람시의 교육이론

 

그람시는 몇가지 측면에서 맑스주의 교육학에 기여를 하였다. 그는 첫째 국가에 대한 재해석을 통하여 학교와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규명하였다. 그는 국가는 강제만이 아니라 동의를 통해 지배를 완성하며, 학교는 교회, 언론 등과 함께 동의를 형성하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장치중의 하나라고 규정하였다. 둘째, 강제와 동의를 모두 동원하는 헤게모니는 지배계급만의 전략이 될 수 없으며, 피지배계급 또한 유기적 지식인, 진지전 등과 같은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셋째, 이런 전략에 입각하여 당시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적인 교육제도의 상을 구상하고 제시하였다. 그람시의 논의는 학교(교육)이 단지 지배계급의 수단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보편적 다수이자 사회적 생산을 담지 하는 계급을 위한 교육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에 대한 재해석과 헤게모니 장치인 학교

 

그람시는 토대의 변화 예를 들어 경제적인 공황이 곧 사회혁명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상부구조인 국가 또한 토대를 단순히 반영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토대를 규정할 수 있다는 점을 당시 발흥한 파시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다. 그람시는 경제적 토대와 입법 및 강제기구를 갖춘 국가 사이에는 시민사회라는 영역이 존재하며, 나아가 자본주의의 국가가 교육자로 기능하면서 시민사회를 통해 대중들을 통합해 나갈 수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람시는 학교를 교회, 언론, 의회 등과 함께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 이해하였다. , ‘지도하고 지배하는 집단의 능동적인 헤게모니는 하위집단의 시대에 뒤떨어진 자율성을 대체하고 그들을 부르주아의 지배구조 속에 통합시킨다. 특히 의회체제는 이러한 성취의 절정을 대표하여, 이로써 전통적인 강제는 소위 공공여론의 조직-신문과 각종 결사체-을 통해 표현되는 대다수의 동의에 기초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방법과 결합하여 지배를 완성한다. 그는 정상적인헤게모니의 행사는 강제와 동의의 결합으로 특징 지워지며, 실제로 강제가 다수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언론과 같은 여러 장치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결국 진정한 지배는 피치자의 동의를 얻는 통치를 통해 완성되며, 국가는 또한 이 동의를 정치적, 조합적 결사체들을 수단으로 한다고 하였다.

 

동의는 지배계급만의 전략인가?

 

자본주의사회 부르주아계급의 진정한 지배의 힘은 동의를 통해 자본주의사회 내에서의 착취와 권력의 관계를 신비화시키는데 있다. 이는 핵심적으로 학교, 종교, 언론 등의 헤게모니 장치 등을 통해 지배계급의 법·규범·이념적 가치체계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지배의 헤게모니가 단지 강제만이 아니라 동의의 획득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 갖는 변혁적 함의이다. 만일 지배계급이 동의를 창출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곧 헤게모니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며, 이로부터 변혁의 가능성이 촉발된다. 그람시는 이 위기를 거대한 대중이 자신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멀어져서 이전에 믿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여, 위기는 바로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은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람시는 동의의 문제를 단지 지배계급의 전략으로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 부르주아 계급이 동의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지배를 완성하듯, 노동자계급 또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벗어나 스스로 지배계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수 인민대중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 『사회민주주의자의 두가지 전술등에서 제기한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 개념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람시는 동의는 수동적이고 간접적일 수도 있지만, 능동적이고 직접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자 즉, 부르주아의 지배수단이 되는 동의는 토대로부터의 어떠한 개입도 배제한다. 국가는 동의를 도구화하고 대중을 동원을 위한 대중으로 취급한다. 반면 후자, 노동자계급이 구사하는 동의 즉,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동의는 통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어떠한 관료적·억압적 관계, 피치자들의 조합주의적인 통합, 그리고 법적 측면만으로 민주주의가 환원되는 것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중의 적극적인 동의를 기반으로 피지배계급이 더 이상 통치의 대상이라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확장된다. 그람시는 기본적으로 인민대중들 스스로의 통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입법자라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다.

이렇게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단지 자본주의사회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계급의 통치전략으로만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 헤게모니는 노동자계급이 시민사회에서 출발하여 공장, 학교, 가정 등의 각종 헤게모니의 장치에 이르는 대중의 자치조직을 통하여 대중의 능동적인 동의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경제적 질서를 재조직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는 이것을 진지전이라 명명하였다.

그람시는 정치투쟁에 군사학의 개념을 가지고 들어와 맑스주의 정치학을 재구성하고자 하였으며,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다양한 형태를 군사적으로 비유하였다. 그는 기동전진지전을 대립시키고 시민사회가 발달한 현대국가에 있어서는 기동전보다는 진지전이 심지어 기동전은 전술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였. 그람시는 기동전진지전의 대립을 각각 동구와 서구의 차이로 대비시켰다. 그는 트로츠키(옥중수고에서는 브론슈타인으로 명명)의 영구혁명이론을 일종의 기동전으로 이해하여 비판하였으며, 레닌(일리치)는 기동전의 한계를 인식하였으나 그것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그람시가 동구의 기동전과 서구의 진지전을 대립시키는 핵심적인 근거는 시민사회의 존재, 시민사회의 발달의 유무 여부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진지전은 국가만이 아니라 이 시민사회를 둘러싼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기나긴 전쟁이자 노동계급의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과 그람시의 대안

 

그람시는 레닌(특히 말년의 레닌)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민사회와 정치·문화적 지도력을 필수적이고 우선적으로 획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람시는 사회집단의 우월성은 지배지적·도덕적 지도력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며, 사회집단은 정권을 획득하기 전에 이미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행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문제의식은 곧 새로운 사회변혁전략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앞서 언급한 진지전이다. 그람시는 바로 이런 관점 하에서 당시 이탈리아 학교교육의 개혁방안을 제출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람시는 학교를 일반학교(고전학교)와 직업학교로 나누는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력의 발전에 부합하는 노동력 특히 행정과가 기술자를 길러내기 위한 요구가 학교를 분화시켰는데, 당시 이탈리아 무솔리니 치하에서의 교육개혁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왜냐하면 이렇게 학교를 나누는 것은 계급을 분화 재생산하는 것에 복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업학교는 도구적 계급(하위계급:Subaltern Classes)을 위한 학교이고, 종래의 학교는 지배계급과 지식인을 위한 학교이며, 이렇게 학생들의 운명과 장래 활동이 미리 결정된다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였다.

무솔리니가 1923년 법령화한 이태리 교육제도의 개혁의 표면상 그 목적은 사실과 기술의 덩어리를 단지 나누어주는 단순한 교수법(Instruction)’, ‘능동적으로사고하는 법을 학생에게 가르쳐 주는 교육으로 대치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람시는 어린아이의 머리는 실패와 같으니, 선생은 단순히 그것을 푸는데 도움이 되면 그만이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무솔리니 정권이 제시한 그러한 제도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던 학생이란, 루소의 소설에서 나오는 에밀이란 소년처럼, 환경이 그 자체로 거의 변증법적인 대응물이 될 수 있을 만큼 매우 부유한 환경에 처해 있는 학생들뿐이었다. ‘고전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나 가능했던 심적·정신적 지평의 확장을 모든 학생에게 불어 넣기는커녕, 그 새로운 개혁안은 계급분리를 영구화하고 말았다. 실로 직업학교에 대한 목소리만 높아갔으며, 그리하여 무솔리니 정권의 교육개혁안의 혜택은 장래의 출세의 보장에 대해 염려하지 않아도 될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엘리트에 한정되었다. 때문에 그는 이러한 분리교육(차별교육)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였으며, 그 대안으로 보통기초교육과 이를 위한 보통학교의 설립을 주장한다. 이는 당시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직업학교와 극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한 학교로 나누어졌던 학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는 상이한 유형의 직업학교를 증가시키고 등급화 하는 대신 단일 유형의 인격형성적인 학교를 만들어야 하고, 직업을 선택하기 전까지 이들 학교에서 사고하고, 연구하며, 통치하고, 나아가 통치하는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합학교(보통학교)의 교육목표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할 까? 우선 그는 보통학교는 국가가 그 비용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새로운 세대를 교육하는 일은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공적인 일임을 강조한다. 또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교원의 수를 늘려야 하고 교육시설 또한 전면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다. 그런데 그람시의 고민은 단지 교육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교육내용과 방법, 교육과정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민속적인 관념을 극복할 수 있는 세계관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 등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람시는 집단생활에 기초한 기숙학교의 형태를 제안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학교와 생활을 종합하려는 시도였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아이들에게 가능했던 풍부한 교육환경을 노동자계급의 자녀들에게도 제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람시의 문제의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인본주의의 중요성, 지적인 훈련과 더불어 도덕적인 독립성을 통해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개성적인 인간형성을 교육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루소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의 자원을 활용하는 교육방법을 제안하였다. 한편 그람시는 교육에서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의 권리는 정당하다는 식의 수준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변형시키고 창조하는 노동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사회질서와 자연 질서 사이의 관계가 노동과 더불어 인간의 이론적·실천적 활동에 의해 매개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주술과 미신을 물리친, 세계에 대한 직관이라는 중요한 요소들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람시의 교육과 관련한 글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주장은 이른바 형식교과의 의미이다. 이는 비고츠키의 주장과도 매우 유사하다. 예를 들어 라틴어교육이 그것이다. 비고츠키는 독일과 러시아의 전통적 김나지움에서 그리스와 라틴어에 관심을 쏟은 것은 그 교과들이 필수적 중요성(혹은 현실성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이것들이 어린이의 일반 지성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며, 이는 중등학교에서의 수학교육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고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외국어에 대한 학습이 모국어를 발달시킬 뿐만 아니라, 모국어에 기반한 외국어학습은 과학적 개념형성, 추상적인 사고능력의 진전, 고등심리의 발달에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비고츠키가 생각과 말에서 손다이크식 형식교과를 부정하는 논리를 비판한 것처럼 그람시 또한 라틴어교육을 옹호하면서 형식교과가 가진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그는 비고츠키와 거의 유사하게 라틴어교육과 같은 외국어 교육이 아동의 사고능력이 진전될 수 있음을, 특히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능력의 향상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사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다. 이는 교육에 있어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설정이며, 이는 곧 지식인과 대중관의 관계설정에 다름 아니다. 일찍이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세번째에서 환경 및 교육의 변혁에 관한 유물론적 학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환경도 인간에 의해 변혁되어야 함, 교육자 자체도 교육되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이 테제는 혁명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주되어 왔으며, 이는 비고츠키의 교육심리학으로까지 이어져 왔다. 그람시도 이 테제를 재해석하여 교육문제에 적용하였다. 비고츠키가 그런 것처럼 그람시 또한 아동(인간)의 의식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그는 지도와 교육이라는 양분법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 그람시에게 교사의 역할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것일 수도, 학생들 위에서 군림하여 훈육하는 억압자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을 중심에 놓는다는 핑계로 교사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일 수 없다. 그는 교육에 있어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때 아동을 자율성을 확장시키고, 학습에 있어 능동성을 고무하고 격려하여, 발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교사의 임무라고 주장하였다.

그람시는 학교가 시민사회의 다른 영역이 그러하듯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기관으로 작동될 수 있음을 간파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학교와 교육정책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지식인의 형성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그람시는 조합적·경제적 국가로부터 지적·윤리적 국가로의 전환이라는 구상 속에서 새로운 계급 즉 노동계급의 지식인 창출과정이 겪어야 할 지난한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예견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직업(기술)교육만으로는 노동자계급이 전문가로 존재할 뿐 결코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람시는 청년시절 발간하던 잡지 신질서에 실린 글들의 문투가 너무 어렵다고 하는 비난들에 대해 프롤레타리아는 무지를 용납해서는 안 되며, 사회주의 문명은 모든 자기시민들에게 그들의 대표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에게 있어서 교육의 문제란 곧 해방의 문제라고 단언하였다. 결국 그람시의 주장은 교육이 계급재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대중의 보편적인 권리로 작동될 수 있는 방향과 실행방안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교육은 해방의 문제라고 까지 언급한 것처럼 민중의 문화적 능력을 함양하는데 있어 교육이 중대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기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그람시는 교육을 그가 말한 진지전, , 최종적이며 완전한 승리에 도달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지점으로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3. 프레네 교육학

 

프레네를 서구 맑스주의 교육학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첫째, 그가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하는 등 맑스주의자로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맑스의 노동개념을 교육이론에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당시 아동 중심성을 강조하며 아동의 본성을 놀이로 파악했던 견해와 단절하여 노동이 인간의 본성이자 아동의 본성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일과 놀이, 놀이와 일의 변증법적인 관계를 통해 교수-학습론의 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프레네 교육학의 주요개념과 방법들은 현재 북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통용되고 있다.

 

맑시스트 프레네의 삶

 

잘 알려진것처럼 프레네는 아나코 생디칼리스트 교사 연합에 가입했으며, 프랑스 공산당의 한 정파에서 활동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참여와 사회혁명의 과정에서 교육의 역할에 대한 공적인 논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프레네는 신교육에도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마르크스-레닌의 좌파정치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는 루소와 몬테소리, 페스탈로치, 듀이, 드크롤리 등의 이론을 연구하면서, 1922년에는 함부르크의 생활협동체학교를 방문한다. 그는 여기서 교과를 구분하지 않고 수업을 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923년에는 몽트뢰 국제 학술모임에 나가 페리에르, 보베, 클라파레드와 꾸지네 등을 만난다. 1925년에는 소비에트연방을 여행하면서 교육에서 생산노동의 문제와 학교에서 실질적인 노동의 의미문제, 그리고 학교 벽신문 등과 같은 원칙과 기술을 찾나내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다.

1932년에서 1934년까지 프레네는 그의 혁신적인 교수방법과 공산주의적 성향에 반대하는 선전원, 정치가, 그리고 공무원이 제기하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그 결과 프레네는 1934년에 결국 생 폴의 공교육체제에서 쫓겨났으며, 인근의 벙스로 가서 193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프레네 학교를 열었다. 그는 이웃의 아이들, 스페인 내전을 피해 온 고아들을 받아들였다. 프레네는 이곳에서 주간 학습활동 계획, 공동생활의 조정과 갈등을 관리하는 협력적인 집회(또는 학급위원회), 벽신문, 자가 수정카드, 그리고 읽기의 합자연적인 방법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창안하고 실천했다. 1931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새로운 학습총서 역시 이곳에서 풍성해졌다.

파시즘 체제의 등장과 함께 유럽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프랑스 몇 년 뒤 그 전쟁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좌파 활동가들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페탱의 비시정권은 자신들이 보기에 불온한 정치적 선동가인 프레네를 19403월에 쉬브롱 노동수용소에 수감했다. 프레네는 194110월에 건강이 나빠진 상태로 풀려났지만 다시 가택 연금 상태에 처했으며, 1944년에는 레지스탕스 운동과 결합했다. 프레네 학교는 전쟁동안 침략당하고 약탈당했으며, 1946년 말에 다시 문을 열었다.

프레네는 학급규모의 문제와 적절한 교육자료의 부족, 교사의 동의 없이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교체하거나, 근거 없이 계약을 종료하는 일, 교사들에게 시대에 뒤 떨어진 지침을 지키게 강제하는 일, 그리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같은 당대의 교육과 사회문제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발언하고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1952년과 1954년 사이에 프랑스 공산당의 꼬뉘오와 스니데르스 등이 프레네의 교육학이 시대에 뒤떨어진 농촌의 이상을 토대로 한 학교개념을 조장하고, 교사의 역할을 중시하지 않고, 내용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하며, 아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과장한 결과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의 원리를 강화하게 한다며 그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 사건은 프레네와 프랑스 공산당 사이에 커다란 틈새를 벌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 프레네의 삶은 196610벙스에서 숨을 거두며 마무리되었다.

 

아동은 본성은 놀이인가 일인가?

 

프레네 교육론의 특징은 일을 아동의 본성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작 일을 통한 교육을 통해 아동이 놀이보다 일을 좋아한다는 일 애호(愛好)’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일 즉 노동은 인간 활동을 생성하는 근본적인 심리적 특성이자, 원리로 이해하였다.

프레네는 당시의 신교육운동(진보교육운동)의 지배적 경향 중 하나놀이가 아이들에게 자연스런 것이자, 아이들을 끌어당기고, 흥미를 갖게 하여 그들을 열중하게 한다는 견해에 대해 비판하였다.

신교육운동의 교육 실천가들에게 교육은 아동의 성장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며, 아동의 성장이란 경험의 지속적인 재구성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런데 아동 중심성을 강조한 신교육운동 안에는 놀이를 아동의 근본적인 욕구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드크롤리는 아동을 행하게 만드는 동인을 놀이에서 찾았다. 아동이 자신의 삶의 충분히 관련을 맺게 하는 것이 바로 놀이며, 놀이는 정신활동을 자극하는데 가치고 있고, 아동이 자신의 학교생활에서 삶의 현실로 나아가게 하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본 것이다. 스위스 루소 연구소의 구성원이었던 클라파레드 또한 놀이를 아동 본성의 본질적 성향으로 보면서 활동학교를 놀이의 원리에 두었다. 이는 아동이 그러한 놀이에 몰두하고 놀이를 격려 받을 때, 대체로 자리에 조용히 머물러 있고, 특히 그 놀이가 의미 있는 학습 성과로 이어져 그것이 결국 도덕적 정신적 의미를 이어진다는 심리학적 경향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프레네는 일 보다 놀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은 일의 창조적이고 형성적인 능력을 제대로 이해지 못하고, 일이 일깨우고 자양분을 주고 자극하는 우리 힘의 탁월한 생식력을 망각하는 것이며, 일을 인정하지 않고 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된다고 문제제기 하였다. 또한 놀이를 모든 교육의 토대로 삼는 것은 놀이보다 일이 더 무능하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그 결과 아이들을 더 이상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고, 놀이가 아이들을 목적으로 인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자극제이자 가장 해롭지 않은 자극제라는 왜곡된 결론으로 치닫게 된다.

프레네가 일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일을 풍요와 물질적· 정신적 능력의 창조자이자, 개인과 사회적 균형의 창조자로, 그리고 행복을 주는 지배적인 요인으로 보지 않게 왜곡시켰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노동의 소외와 같은 인간의 힘을 가장 소모하게 하는 저주와 같은 상황은 결코 일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주의와 노동착취, 그로 인한 고통이 일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소외된 노동을 거부하며,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생산 노동을 지향한다. 프레네가 개념화하려는 일은 오랫동안 민중이 해오던 일이며, 그것은 자신의 힘과 자신의 사회적 유용성과 관련하여 최소한의 존엄과 확신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일은 개인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부응하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만족감을 주는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활동이다.

 

아동은 놀이보다 일을 좋아한다!

 

프레네는 가장 이른 나이에서부터 삶에 생기를 주고, 가정과 공동체의 일상적인 영역 속에서 건강하고 역동적인 만족감을 주는 최고의 효소는 놀이가 아니라 일이다라는 테제로 일에 대한 욕구가 놀이에 우선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두 가지 차원의 논거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일 애호가 인간의 근본적 심리적 특성이라는 심리학적 확증의 제시다. 프레네는 일 애호는 인간의 중대한 생명적 성향으로서, 프로이드의 성적 리비도와 같이 모든 인간 활동의 동력이자, 생명원리를 구성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는 본질 충동으로 이해된다.

두 번째 논거는 프레네 자신이 한 경험과 관찰 그리고 양식에 근거한다. 아이들이 겨울에 눈 쌓인 길을 치우는 일이나 아버지와 함께 겨울에 담을 고쳐 세우러 가던 일, 낫으로 베어 넘긴 사료용 풀을 펼쳐 너는 일. 그러한 일들이 비록 아이들에게 춥고,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이었지만 그들에게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이러한 열중하게 하는 일에 사로잡히게 되면, 이 때 아이들은 결국 하루 종일 전혀 놀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몬테소리와 마찬가지로 프레네가 관찰의 예로 설명하는 일은 아동의 많은 부분을 피로하게 하고, 근심 짓게 하고, 때로는 고통을 주는 것임에도 삶에 필연적인 인간의 참된 일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면, 아동은 조금도 놀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 아동은 이미 충족했고 피곤함을 느낀다. 때문에 놀이는 더 이상 휴식으로 뒤따라오지 않는데, 이는 아동의 근육이 피곤함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아동의 정신이 평온한 충만에 잠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당시 여러 심리학자가 놀이를 자연스러운 휴식으로 생각하고, 일한 이후에 놀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아동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동기부여하고, 소진하게 하는 활동인 것이다.

 

일과 놀이, 놀이와 일

 

그런데 프레네는 놀이에 대한 일의 우선성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는 일과 놀이가 어떤 원리상의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아동이 하는 기능적인 놀이를 끌어내, 그것이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는 일의 요소가 포함된 활동이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즉 어린 동물이 그러하듯 어린 인간에게 기능적인 놀이가 있는데 이 놀이의 본질은 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를 따라 생쥐를 움켜잡는 동작을 모방하는 것처럼 아동도 어른의 활동을 모방하는데 이때 이 놀이의 주요 동력은 일의 주요 동력이 그러하듯 너무 자주 엄숙하고, 심각하며, 언제나 폭소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세찬 감정의 동요, 충격, 긴장을 수반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놀이 특히 어린 시절의 놀이는 일과 원리상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요소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프레네는 놀이와 일의 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놀이놀이-이라는 자신의 조합어를 만들어 내면서, 이 두 종류의 활동을 우리가 학교에서 제공해야하는 근본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프레네는 아이들이 -놀이를 할 수 없을 때, ‘-놀이와 유사한 활동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놀이-이라 했는데 이는 아이들의 고유한 욕구에 가장 잘 부합하는 형태라는 관점에서, ‘-놀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자신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역능을 집행할 수 있게 하는 본능적인 활동으로 고려할 수 있다. 프레네는 이러한 종류의 놀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1) 삶을 정복하고자 하는 욕구 충족 활동에서 파생진화된 놀이 (숨바꼭질, 술래잡기, 추격하고, 가두고 묶고, 풀어주는 놀이)

2) 삶을 보전하고 삶을 가능한 한 강력하게 만들려는 욕구 충족 활동에서 파생진화된 놀이 (근대적인 스포츠의 범주에 속하는 놀이, 피난처 만들기, 전쟁놀이, 경찰과 도둑놀이)

3) 종의 영속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삶을 전수하려는 강력한 욕구 충족 활동에서 파생진화된 놀이 (엄마-아빠 놀이, 소꿉놀이, 실재 동물 기르기나 장난감 동물 가지고 놀기)

 

놀이-은 본능적 활동이자 아동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활동이다. 일의 속성을 갖는 이 놀이들은 아이들이 사회적 존재로서 기능하는데 필요한 태도와 기술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하는 경험의 양식을 제공하는데서 교육적 성격을 갖는다.

 

일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과정과 교육의 변혁적 역할

 

프레네가 일의 욕구가 놀이에 우선하고 그 일을 교육의 중요한 토대로 설정했다면, 그의 일 개념에 담긴 여러 양태를 당시 교육개혁운동의 한 조류였던 노작학교운동과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제로 그는 내일의 학교는 일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수() 작업 활동을 학교의 정신활동을 풀어내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요, 조기에 생산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요, 또 직업 준비교육으로서 정신이나 예술적 활동을 대신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교육학의 원리이자 동력이자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프레네가 기초한 현대학교헌장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4. 내일의 학교는 작업학교가 될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하여 집단으로 나누어 담당하는 창조적인 작업은 큰 원칙이자 민중교육의 토대이다. 작업을 통해 모든 지식의 습득이 가능하고, 아동의 모든 잠재력이 보장될 것이다. 그렇게 작업과 책임감을 통해 새로워진 학교는 오늘날 분리되어있던 사회, 문화 환경속에 완벽하게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일에 대한 프레네의 강조는 교육방법에서 노작교육으로 나타났다. 프레네는 노작을 단지 수작업으로 이해지 않았으며, 교육과정 전반에 이를 포함시켰다. 그 결과 우선, 정신적인 노력을 수반하는 모든 창조적 활동을 노작으로 포함시켰다. 이것은 자유로운 글쓰기를 인쇄출판으로 연계시키는 활동, 학급신문, 문집, 전시회 등 일하기를 학습의 과정으로 포함시켰다. 다음, 단편적인 노동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생성(生成)을 도울 종합기술교육에 동의하였다. 그는 벙스에 자시의 학교를 세우면서, “우리의 교육은 종합기술교육 일 것이며, 아이들을 각종의 사회적 활동, 즉 들판 일, 목공일, 베짜기, 도기제조, 예술가와 노동자와의 정기적인 접촉과 일하기로 이끌 것이라고 명시한바 있다. 한편, 프레네는 교육과 사회변혁을 연계시키고, 교육을 사회혁명의 요소로 규정하였다. 그가 기초한 현대학교헌장 3번째에서 다음과 같이 씌어있다.

3. 우리는 교육을 조건 짓는 사회적, 정치적 거대한 흐름 밖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하나의 교육이 있다는 환상을 거부한다.

교육은 하나의 요소이다. 그러나 필수불가결한 사회적 혁명의 한 요소일 뿐이다. 사회정치적인 배경과 학생, 부모의 삶과 노동조건은 젊은 세대의 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는 세속교육(종교에 종속되지 않은 교육)이 훌륭한 교육적 기능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동자의 편에서 사회적 정치적으로 싸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교육자, 부모, 그리고 우리의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 정신 안에서 우리들 각자는 교육의 요구들이 행복, 문화,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거대한 노력에 통합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상적 정치적 철학적인 각자의 선호에 부합하도록 행동할 것이다.

 

프레네의 교육사상은 해방의 교육학, 프롤레타리아 교육학, 노동의 교육학으로 불린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반파시즘적 태도, 프랑스 공산당의 가입, 노동조합에서의 열성적인 활동, 민중교육을 위한 운동, 평화교육에 대한 열성, 이 모든 것은 프레네에게 교육과 사회-정치적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니었고, 또한 교육을 통하여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가 바랐던 사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없는 사회였으며, 그가 염두한 교육 또한 이러한 이상을 지향하여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교육이었다.

 

4. 알튀세와 교육

 

알튀세르가 맑스주의 교육학에 기여한 것은 그람시에 이어 상부구조와 토대와의 관계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재생산에 있어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보다 분명히 하였다는 것에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알튀세의 주된 작업은 맑스에 대한 재해석이었으며 이데올로기 개념을 이론화하는 것과 함께 맑스주의에 대한 인간주의적 해석 전통을 해체함으로써, , 맑스주의라는 과학 체계를 관념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반대하였다. 특히 그는 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정치,법률,이념,종교,예술 등)를 결정한다는 이른바 경제주의 또는 경제 결정론이야말로 헤겔의 문제 틀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 조야한 형태의 관념론이라고 규정한다.

당시 맑스주의에 대한 인간주의적 해석이 대두하였는데, 알튀세는 그러한 경향과의 단절을 주장한다. 알튀세는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과학의 단절을 주장한다. 알튀세에 따르면 과학의 문제틀은 그것이 계속해서 발전하며 계속적인 내적 변형의 과정 속에서 자신이 산출한 지식을 심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이러한 변형은 간혹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창시된 이론 물리학 혁명과 같이 문제틀의 완전한 변혁도 포함한다. , 이데올로기는 닫힌 체계인 반면, 과학은 내부로부터 변화에 대해 본질적으로 열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재해석한다.

 

토대와 상부구조에 대한 재해석

 

알튀세는 비록 경제 즉 토대가 최종층위에서는 결정적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요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도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간의 단순한 변증법이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 독특한 수준의 복합체가 나타난다. 사회적 총체를 구성하는 모든 모순되는 수준 간에는 필연적인 유대가 있으나 여전히 각 수준은 상대적 자율성을 가진다. , 사회적 총체는 상대적으로 불균등한 발달단계에 있는 층위들의 복합적인 통합체이다. 따라서 구조적 총체성 속에는 자본과 노동의 한 가지 모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복합적인 방식으로 관련되는 다양한 모순이 있다고 보았다.

알튀세는 사회는 여러 개의 상이한 사회적 실천들로 구성되는 복합적 총체라고 보았으며, 사회적 실천에는 경제적, 정치적, 이념적, 그리고 이론적 실천이라는 4가지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이들 영역들은 각자 구조화되어 있으며, 그 영역들이 모여 복합적인 총체를 이룬다. 이것이 사회적 총체이고 구조이다. 이런 관점에 근거하여 그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전통적 해석을 재구성한다. 알튀세는 맑스의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틀을 하나의 메타포로 이해하였다. 때문에 알튀세에게 상부구조와 토대와의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결정적일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상부구조의 자율성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상부구조가 고유한 효과를 갖는다고 해서 경제의 우위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알튀세는 분명히 최종심급의 결정요인은 경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 경제가 비경제적 요소들이 경제에 대해서 그리고 비경제적 요소들 상호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의존성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지어 준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본주의 재생산에 대해 논의한다.

 

재생산의 중요성과 학교

 

알튀세는 생산과 동시에 생산조건을 재생산하지 않는 사회구성체는 단 일년도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모든 사회구성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또 생산이 가능케 되기 위해서는 생산과 동시에 생산조건을 재생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모든 사회구성체는 첫째, 생산력 둘째, 현 생산관계를 재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는데, 바로 여기서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력이 노동력으로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노동력 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와는 달리 노동력의 기술 재생산이 생산 현장에서준비되는 경향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교육제도와 다른 여러 가지 기관 및 시설 등에 의해 생산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력 재생산에 있어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는 학교는 자본주의적 착취관계를 재생산하는데 한 몫을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기구는 교회였지만 현재에는 학교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즉 학교는 아동들에게 그들이 계급사회 속에서 성취해야 할 역할에 알맞은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기구이다. , 개인들은 자본주의의 필요에 알맞은 주체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방법적 지식을 가르치지만, 그것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의 종속을 확고히 하는 방식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알튀세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기술과 지식 이외에도 규칙들을 배우는데, 이 규칙이란 이는 계급사회에서 운명 지워진직업에 따라 지켜야 할 태도이며, 궁극적으로 계급지배가 확립해놓은 질서의 규칙들이다. 예를 들어 장래의 자본가들과 그 하수인이 되기 위한 방법들(‘노동자들을 철저하게 혹사하는 법즉 올바른 방법으로 노동자에게 말거는 법’)을 배우거나, 그와 동시에 기존 질서의 규칙들에 대한 노동력의 복종심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력의 기술 재생산에 대한 준비는 이데올로기적 복종이라는 형태로 그리고 그 형태하에서 이루어짐이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이처럼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그람시가 말한 것처럼 물리적 폭력만으로는 지배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물리력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 통제를 통하여 기존 질서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바로 계급 사이의 진정한 관계를 감춤으로써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회관계는 조화로운 것으로 표상되며, 계급지배구조 나아서 사회 전체의 구조를 정당화해 준다. 그것의 효과로 개인들은 계급적 적대감을 갖지 않고 자신의 현재 처지에 안주하며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재생산에 동참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

 

알튀세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국가기구(장치)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명명하였다. 그는 그람시를 언급하면서 국가를 단지 억압기구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억압기구외에도 이데올로기 국가기구(장치)가 존재함을 밝혔다. 그는 정부, 행정기관, 군대, 경찰, 법정, 감옥 등을 억압적 국가기구로 규정하고, 이와 다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열거하였다.

종교 ISA (여러가지 교회 체계)

교육 ISA (여러가지 공사립 학교체계)

가족 ISA

ISA

정치 ISA(여러가지 정당을 포함한 정치체계)

노동조합 ISA

커뮤니케이션 ISA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문화 ISA (문학, 예술, 스포츠 등)

 

흥미로운 것은 그가 법 ISA에 대해서는 억압적 국가기구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은 한편으로는 (억압적) 국가기구,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인 국가기구 내에서 국가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보장되며, 억압적 국가기구가 제공한 엄폐물뒤에서 정확히 생산관계의 재생산을 일반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은 ISA이다. 국가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인 지배 이데올로기의 역할이 집중돼 있는 곳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알튀세가 맑스주의 역사에서 기여한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결정론적 관점을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역사는 인간본성에 각인된 어떤 계획으로부터 작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것은 상이하고 대립하는 계급들 간의 투쟁의 결과이다. 이러한 투쟁들은 역사적으로 결정되고 조건지위지지만 역사는 그 결과를 열과를 열어둔 채 남겨둔다. 어떤 계급이 승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카우츠키 류의 자연적 필연성은 없다. 자본주의 전복과 공산주의 건설은 프롤레타리아 자신의 일일 것이다. 만약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 대가는 가장 야만적인 형태로 자본에게 돌아갈 것이다. 알튀세의 주요한 업적은 역사가 예정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변증법의 이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 필연성의 신본자인 카우츠키와 플레하노프가 1914년 국제 노동계급운동에 등을 돌린 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이 찾아왔던 것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결코 작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러나 알튀세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페리 앤더슨의 경우 알튀세의 논의대로 일단 모든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상부구조들이-가족, 개량주의적 노조, 정당, 사적 미디어를 포함하는-이 정의상 국가장치가 되면, 엄밀하게 말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오류로 1920년대와 30년대 초에 유럽 노동자계급의 막대한 대가를 치렀던 것을 고려할 때, 이렇게 경계를 희석시키는 것은 사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내에서 국가 외부의 상부구조가 지닌 특정한 역할과 효능을 오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랄프 밀리반트 또한 비판에 대열에 나섰는데, 그는 해당기관이 실제로 국가 체계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에게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그러한 주장은 이러한 정치 체제와 이데올로기적 기관들이 진정으로 국가가 독점하는 권력 체계의 일부가 되는 그러한(정치)체제 사이의 구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전자에서 이데올로기적 제도들은 고도의 자율성을 지니게 되고, 따라서 그들이 자본주의 권력 체계에 속하는 정도를 더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바 있다.

여기에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며, 혹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배계급의 그것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보일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될 수 밖에 없었다. 또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가 하는 것을 비롯하여 저항, 일탈, 배제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한 답을 못했다고 지적받았다. 특히 스튜어트 홀을 비롯한 적지 않은 이들이 이데올로기는 실천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물질적이다라는 언급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으며,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가 시민사회의 많은 자율적인 부분들과 국가를 아무런 문제없이 동일한 것으로 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더욱 어렵고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한 사회가 날마다 국가의 지휘나 강제 없이 이데올로기적 장에서 시민사회 기구의 상대적 자유가 작동하도록 허용해 주는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민사회가 매우 복잡한 재생산 과정을 거쳐 자유롭게 작동한 결과 지속적으로 이데올로기를 지배 내 구조로 재구성해 내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튀세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은 이런 쟁점을 사전에 봉쇄한다고 비판되었다.

 

비판에 대한 알튀세의 답변

 

알튀세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당대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되었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예로 그는 지배이데올로기 재생산 시스템에 대한 그의 분석이 자칫 계급투쟁에 대한 방관 내지 기각으로 비춰질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하였다.

그러나 지배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란 단순한 반복도 단순재생산도 아니며, 또한 그 기능에 의해 단번에 정의되는 주어진 제도들의 자동적이고 기계적인 확대재생산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존의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예전의 형태들과 새로운 경향들에 대항하는 계급투쟁을 통해, 또 그런 계급투쟁 속에서 성취되는 통일성의 테두리안에서, 통일하고 쇄신하기 위한 투쟁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위한 투쟁은 언제나 계급투쟁에 종속한 채 끊임없이 재개될 수 밖에 없는 항상 미완성의 투쟁이다.”

알튀세가 자본주의 재생산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부르주아 계급의 계급지배의 영속성을 정당화하고자 함에 있지 않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와 계급투쟁을 연계시키며, 국가장치 안팎에서 계급투쟁이 전개될 수 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알튀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필연적으로, 사회구성체를 지배하는 일반적 계급투쟁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장치들 속에서 계속해나가는 계급투쟁의 장소이자 그 쟁점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알튀세는 자신이 여러가지 정당을 포함한 정치체계라 정치 ISA에 대한 논란에 답하면서, 부르주아 정당과 공산당은 근본적으로 목표와 작동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는 피지배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가 외부에서 주입된다는 카우츠키 류의 주장에 대해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계급철폐와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속에서 자신을 재인식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실제로 맑스주의 이론은 놀라운 지식을 갖춘 지식인들에 의해 기초되었지만, 이러한 일은 노동자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그 내부로부터 일어났다으며, 맑스 또한 인민의 조직들 속에서 투쟁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유기적 지식인(그람시)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이론적 입장에 입각하여 비로소 자본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반박하였다.

나아가 알튀세는 부르주아 정당과는 달리 공산당은 집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할 수 없으며, 국가기구의 파괴 혹은 소멸을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국가 사멸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공산당의 본연의 과업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전복하여 파괴하는 것이며, 설사 공산당이 계급투쟁을 강화하고 부르주아 국가의 타도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정부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본연의 과업은 국가의 사멸과 종말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실 알튀세의 이론은 교육학의 영역에서 다루기 곤란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는 앞의 그람시나 프레네처럼 직접적인 정책제안이나 교수-학습의 방법론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적 작업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대해서 기존의 토대-상부구조라는 경직된 사고를 벗어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그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필연적으로, 사회구성체를 지배하는 일반적 계급투쟁을 지배 이데올로기의 장치들 속에서 계속해나가는 계급투쟁의 장소이자 그 쟁점이라고 한 것에서처럼, 학교는 중립적인 공간이나 탈 계급적인 공간이 아니라 자본주의 양대 계급의 이해가 상충하는 공간으로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는 영역임을 알 수 있다.

 

 

5. 프레이리와 민중교육

 

파울로 프레이리를 맑스주의 교육학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삶 전체를 통하여 민중지향성과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문해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의 활동은 이른바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 및 사회혁명운동과 분리시킬 수 없다. 다음 프레이리는 억압받는자의 교육학을 포함한 다양한 저작들을 통해서 맑스주의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진보적 이론들을 재구성하여 민중교육이론을 정립하였다. 그는 기존의 지식 주입식 교육을 은행저축식 교육이라 비판하였으며, 대안으로 대화를 통한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전 세계를 돌면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의식화 교육이자 민중교육 방법론으로 적용하였다. 즉 그는 사회혁명과 교육을 연결시켰던 것이다.

 

해방의 교육자 프레이리

 

프레이리는 초기에 해방신학적, 실존주의적 경향에 경도되었다면, 망명이후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다니면서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는 1964년 브라질에서 추방된 이후 볼리비아에 잠시 머물렀다가, 칠레로 가서 그것의 좌익혁명운동을 직접 목도하였으며, 그곳에서 성인교육에 함께하였다. 1970년 프레이리는 제네바에 본부를 구고 있던 세계교회협회의 교육국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이곳에서 문화실천연구소를 설립해 제 3세계의 투쟁과 민중교육활동에 보다 깊숙이 관계를 맺었다. 특히 아프리카의 모잠비크, 페루, 탄자니아, 상투메프린시페, 기니비사우와 중남미의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페루, 에콰도르, 리콰라과, 쿠바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1980년 고국 브라질로 돌아올 때까지 교육프로그램 개발과 저술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중남미와는 달리 직접적인 식민지배에 대한 독립투쟁, 계급투쟁,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 있었다. 프레이리는 여기에 개입해 문해교육에 도움을 주거나, 사회주의 혁명이후 국가재건 과정에 대해 조언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프레이리는 해방의 교육자이자 혁명의 교육자로 인식되어야 한다. 실제로 서구 사회에서 그의 저작 페다고지:억압받는자의 교육학은 혁명적 교육의 길라잡이로 일컬어진다. 그가 제안하는 혁명은 정치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둘 다를 말하는데, 이는 제3세계 사회의 급진적 변혁을 염두에 둔 것이다. 프레이리는 정치혁명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이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해방교육을 제안한다. 프레이리 자신은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인정한바 있으며, 실제로 그의 주장과 논리는 상당부분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의 입장은 청년 마르크스 시절의 입장과 많은 연결점을 갖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레이리 사상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 중 변증법과 프락시스, 그리고 의식화는 프레이리 사상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프레이리의 저작에는 마르크스 레닌은 물론이고 마오쩌둥, 마르쿠제, 파농, 게바라, 카스트로 등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인용된다. 그래서 프레이리의 이론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 없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육론은 독보적인 가치를 갖는데 그것은 사회혁명과 교육을 연결시키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역할을 실천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레이리 교육론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은행예금식 교육과 대중의식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억압받는자를 위한 교육학에서 기존의 교육을 예탁하는 활동으로서, 학생들은 수탁자이고 교사는 예금자로 설정된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은행 예금식교육은 지배와 억압을 위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학생들이 억압의 세계에 그들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주입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권력에 도전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그리고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교사 중심의 일방적 교육방식은 학생들을 교사가 채우는 빈그릇으로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프레이리는 은행예금식 교육은 학생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기존의 질서 특히 억압적 관계와 상태를 지속하게 만든다고 통렬히 비판하였다. 일찍이 그람시는 언어와 문화적 헤게모니와의 관계를 고찰하면서, 글자를 깨우치는 것과 더불어 교육 자체가 정치 문화적인 투쟁임을 간파하였다. 즉 문해교육을 비롯한 교육은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억압과 지배관계의 영속화의 도구로 기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레이리 또한 은행예금식 교육은 바로 지배관계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억눌린자들이 현실에 보다 잘 적응할수록 그만큼 그들에 대한 지배는 쉬워지며, 은행예금식 접근은 학생들에게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은행저축식 교육은 대중의 의식 발전을 가로 막는다. 프레이리는 교육과 정치의식에서 대중의 의식발전 단계를 총 3단계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 1단계와 2단계는 억압받는자의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프레이리가 가장 낮은 의식의 수준으로 일컫는 것으로 () 변화 불가능 단계의 의식이다. 그에 따르면 이 단계의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대상이나 사물을 알고 있는 주체라고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에 변화 불가능이라고 호칭할 수 있다. 이 수준은 과거의 폐쇄사회에서 그리고 심지어 오늘날의 정치적 후진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프레이리에 따르면 이런 의식을 가진 민중들은 그들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의 충족에 사로잡혀 있고 현실에 매몰되어 있다. 실제 역사의식이 거의 없는 특징을 가진 민중들은 생물학적 국면을 벗어난 문제와 도전에 실천적으로 아랑곳하지 않고, 일차원적 억압의 현실에 매몰되어 있다. 그들이 연루되어 있는 관계가 사회문화적 상황을 형성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운명론은 이런 의식이 만연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그것은 주술과 종교적 의례에 참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준 변화 불가능 단계의 의식은 지배를 당하고 있는 의존적이고 억압된 민중들의 의식이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폐쇄 사회에 살고 있는 민중들의 의식이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맥락에서 통제 권력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미국에서 온 것이다. 프레이리는 이런 문화를 침묵의 문화라고 일컬었다.

이런 의식 수준을 가진 민중은 자신들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삶의 모든 것을 운명이나 행운, 즉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힘으로 바라보는 운명론적 정신 구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자기 멸시는 이런 형태의 가장 공통적인 의식의 속성이다. 왜냐하면 이런 의식 수준에서 지배문화가 그들의 탓으로 돌린 부정적 가치를 민중들이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소박한 준 변화 가능단계의 의식이다. 이 의식은 개인이 타인과 대화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시작하기에 이행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를 알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다. 그것은 철저한 탐구를 추구하지 않고, 단지 대화를 시작하는 민중들의 대중적 의식, 정서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발달 상태에 있는 민중들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그들의 자신들의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조종을 일삼는 리더십에 휘둘릴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수준을 대중적 의식이라고 일컫는다. 이 상태의 의식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며, 과거의 향수에 젖고, 평범한 인간을 과소평가하고, 공상적인 설명에 대한 취향이 강하여 조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논증에 약하고, 감정적이며, 대화보다는 반박을 즐긴다. 이들은 비이성적인 광신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의식화와 문제제기식 교육

 

그렇다면 대중의 의식은 이러한 단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프레이리는 이를 의식화로 명명한다. ‘의식화는 프레이리의 교육 이론에 중심을 차지하는 개념 중 하나이다. 프레이리에 따르면 의식화라는 말은 1964브라질고등학습연구소의 연속된 교수 원탁모임에서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프레이리는 자유로운 활동으로서의 교육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 접근을 하는 앎의 행위이다. ‘의식화이 말은 그 이후 내가 가르치는 관점을 표현하는 용어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그것을 내가 만들어낸 어떤 것처럼 손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의식화는 자유를 위한 문화적 행동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때 의식화란 사람들이, 죽은 지식의 단순한 수용자로서가 아니라 지식습득 및 지식형성의 주체로서,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사회문화적 현실과 그 현실을 변화시키는 그들의 능력을 심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자유를 향한 문화적 행동으로서의 교육에서 프레이리는 의식화를 현실을 객체로서 인식하고, 이 객체적 현실에 대한 인간행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참여와 객관화, 언어를 통한 객체적 현실에 대한 창조적 의사교환, 단일한 도전에 대한 복수적 응전이라고 규정한다. 즉 이는 현실에 대한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 비판적 성찰을 의미한다.

프레이리는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이 실천(Praxis)을 통해 자신이 받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조율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실천비판적 성찰을 통한 정치적 실천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편, 프레이리에 따르면 비판적 성찰을 통해 학생들은 기계적으로 암기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지식을 흡수한다. ‘비판적태도와 성찰은 학습에 대한 설명에서도 강조된다. 교육과 정치의식:The Politics of Education에서 프레이리는 학습은 체계적인 비판적 태도를 비롯해 오로지 실천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지적 숙련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학습이란 일종의 재발명, 재창조, 재저술이며 또한 객체적 작업이 아니라 주체적 작업으로, 저자가 취급하는 주제 내에서 그의 성찰을 발견하는 독자와 저자간의 변증법적인 관계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은행예금식 교육의 대안은 무엇일까?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문제제기 교육을 제시한다. 문제제기식 교육은 프레이리가 조국인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여러 국가에서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한 교육방식으로, 이 교육은 교사를 비롯한 억압자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학생 자신에게는 무의미한 내용을 받아 지니는 형태의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계에서 학습주제를 찾아 그것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수업방식이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하기만한 청취자가 아닌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이제는 비판력을 가진 공동탐구자가 되며, 끊임없이 현실을 벗겨내어, 의식의 출현과 현실에의 비판적 개입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 문제제기식 교육은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된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생존만을 추구하지 않고, 인식을 통해 세계를 직시하고, 조사하고, 평가하고, 가치평가하며, 바꾸어 낸다. 결국 프레이리에게 앎과 지식의 대상으로 세계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세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형성되는 과정이며, 파생되거나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어지는 것이다. 페다고지에서 그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통해 인간들은 세계와 함께, 세계 안에서, 그들 스스로를 발견하고,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힘을 기르게 되며, 동시에 세계를 정지상태에 있는 현실로서가 아니고 진행 중에 있는, 변형되어 가고 있는 현실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프레이리의 교육학은 아로노위츠가 정당하게 지적하였듯이 단지 비판적 자아의식을 키워 인지 학습 능력과 자존감을 향상하거나,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학생 개인의 열망을 돕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프레이리는 민중의 생활세계를 지배하면서 이들에게 불평등한 계급관계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직접적 세계 즉, 사유와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사회문화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페다고지에서 프레이리는 문제제기식 교육은 혁명적 미래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 교육을 통해 인간들이 자신이 과거에 누구였고, 어떤 인간이었는가를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여 미래를 더욱 지혜롭게 건설할 목적에서만 되돌아오는 존재로 재인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이것은 인간들을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의식하는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운동-그 출발점, 주제들, 목적을 지니고 있는 운동-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이다.

 

대화를 통한 민중교육

 

그렇다면 이제 프레이리가 말한 문제제기식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화를 통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 ‘문제제기식 교육은 교사와 학습자가 서로 배우며 가르치는 동반자적, 대화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교사는 더 이상 그저 가르치는 자가 아니고,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도 배우는 자가 된다. 학생들도 배우는 가운데 가르치는 자가 된다. 이로서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언어가 가진 중요성을 재정한다. 그는 말에는 사고와 행동의 영역이 있으며, 이 둘은 근본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나로, 진정한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프레이리는 언어와 사고 사이에 긴밀한 상호작용이 이뤄진다고 보았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의식이 반영된다. 인간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드러내기 때문에, 언어를 읽는 것은 곧 세계를 읽는 행위다. 학습을 통해 획득한 언어 생성 메커니즘은 다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관점은 비고츠키의 발달이론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발달이론이 인간의 사고발달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세계와 대면한 개인에 집중한다고 지적하면서, 언어는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에 내재된 집단적 삶의 형식을 반영함을 밝혀냈다. , 인간은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사고를 발달시키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대화는 하나의 창조행위로 비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대화만이 비판적인 사고를 산출할 수가 있다고 하였다.

, 프레이리의 문제제기식 교육에서의 핵심은 대화이다. 또한 대화는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죽은 교육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라는 위계적인 구분은 사라진다. 대화를 통해 인간은 상호작용을 하며, 이 과정을 통해 준 변화불능, 소박한 변화가능의 단계를 딛고 비로소 3번째 단계 즉 비판적 의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많은 프레이리 연구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런 의식은 존 듀이의 비판적 성찰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비판적 의식의 특징은 문제 해석의 깊이, 토론에 대한 자신감, 나와 다른 생각을 수용하는 것,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담론의 속성은 분명 대화적이다. 사람들은 이 수준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사건들 사이의 적절한 인과적 환경적 상관관계를 파악한다.

프레이리 연구자 존 엘리아스의 주장처럼 1단계에서 2단계로의 의식의 이동이 도시화와 산업화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반면, 비판적으로 변화하는 의식 수준의 달성은 사회적 정치적 책임감을 작고 대중화의 위험을 피할 준비를 하는 적극적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의식화는 억압적인 구조를 지지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을 요구한다. , 비판적 의식은 지성적 노력만이 아니라 실천 즉 행동과 성찰의 결합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교육과 정치의식에서 프레이리는 의식화는 허위의식의 극복, 다시 말해서 준변화 불능적 또는 순진한 변화가능적 의식의 극복을 내포하는 한편, 더 나아가 의식화된 인간의 비신화화된 현실 속으로의 비판적 개입을 내포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 인간의 의식이 낮은 단계를 넘어서 비판적인 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문제제기식 교육’, 즉 행동과 성찰이 결합된 프락시스(실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교육방법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프레이리의 교육과 의식화에서 이를 총 5단계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교육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습그룹에서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다.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은 학급이 아닌 문화 서클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리더는 교사가 아니라 코디네이터(혹은 협동역)라고 불렸다. 참가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서클의 코디네이터들이 신중하게 선정된다. 그들은 약 25-30명과 작업했다. 브라질에서의 문해수업은 6~8주 동안 매주 밤에 이루어졌다.

문화 서클에서 전통적 강좌나 정보 전달은 대화로 대체 되었다. 학습자는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집단 참여자였다. 문화 서클의 목적은 상황을 명료하게 하거나 그 명료함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의 추구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학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의 목적은 기술적으로 언어를 숙달하는 것을 넘어 의식의 변화와 실천 지향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프레이리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그람시의 것과 닮아 있다. 프레이리는 그람시와 바흐친 등의 비판적 문해의 전통을 계승한 이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평가된다. 그람시에게 문해교육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유기적 지식인의 사회를 창출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기획으로 반헤게모니교육을 의미했다. 그람시는 이러한 유기적 지식인이 민중 해방과 민중 지배에 필요한 조건창출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프레이리는 20년간 해방적 정치적 프로젝트로 문해교육에 주력하였다. 인간과 세계 사이의, 그리고 언어와 변혁적 주체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는 그의 문해교육의 핵심이다. 그에게 문해능력이란 단순한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자아형성과 사회구성의 핵심동력인 자율를 위한 문화행동의 토대다. 그람시처럼 프레이리에게 문해교육은 인간이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와의 관계를 재구축할 권리와 책임을 요구하는 정치적 기획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프레이리의 교육학은 해방을 위한 사회적 실천의 일환으로,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의 문제의식과 활동은 이후 교육학자는 물론 교사들과 시민교육에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그런 측면에서 프레이리의 해방의 교육학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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