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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7호 (발간 : 2015년 7월 6일)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아무 것도 묻지 말기를....  쇼스타코비치 


송재혁(전교조 대변인)


  연초부터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바삐 치여 살다 보니 어느덧 반년이 흘러갔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매를 매일 맞으면 무통증이 된다더니, 쉬지도 않고 전교조를 두들겨 패는 권력의 몽둥이질에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엎치락뒤치락 요동치는 상황 탓에 이제 전교조가 법 안에 있는지 법 밖에 있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긴장이 연속되면 오히려 신경이 둔해지는 법, 장기전에 대비하려면 일상적인 곁눈질이 권장되어야 할 것 같다. 삶과 투쟁의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도록 짬짬이 듣고 보기에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을 소개하는 서평은 상품 판촉이 아니라 지적인 글로 간주되지만, 음반평은 그리 대접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쓰기에 심적 부담이 좀 있다. 우선 음반 회사들과 사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부터 밝히고 시작한다. 


놀라운 쇼스타코비치 전집 출현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음악 세계를 깊고 넓게 조망한 놀라운 자료가 올해 혜성같이 등장했다. 교향곡 15곡과 협주곡 6곡을 망라한 영상물이다.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유서 깊은 마린스키 극장 관현악단‧합창단이 2013년과 14년 파리의 ‘살 플레옐(Salle Pleyel)’에서 펼친 탁월한 연주를 담았다.

  이 자료의 가장 큰 장점은 유럽에서 제작된 것임에도 한글자막이 있다는 것이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실시간으로 가사를 이해해야 온전한 감동이 보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중에는 성악이 등장하는 곡들이 있으며 그 텍스트는 혁명이나 유태인 학살, 그리고 삶의 부조리를 담아낸 것인데, 지금껏 러시아어 가사의 우리말 완역을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한글자막은 그 자체로 크나큰 가치를 지닌다. 노동자 혁명을 단호하게 외치는 가사를 여과 없이 자막으로 접하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이 클래식을 누리는 주요 국가로 등장하자 몇 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영상물에 한글자막을 적극 넣기 시작했다. 매 작품 연주 전 배치된 지휘자의 육성 해설이나 별도 포함된 다큐멘터리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A Man of Many Faces)’ 또한 한글자막 처리되어 있다. 클래식 영상물로서 이렇게 훌륭한 자료는 일찍이 없었다. 다만, 해설 책자의 번역이 없는 것은 옥의 티이다.

  국가보안법의 나라, 파시즘의 유령이 배회하는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 비중이 적지 않은 그의 음악을 큰 볼륨으로 들을 때에는 묘한 긴장감이 동반되곤 한다. 음악에 대해 유독 관대한 풍토는 음악예술이 가진 고도의 추상성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이 작곡가에 관심 있는 분께는 꼭 구입하여 두고두고 감상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내용의 가치에 비하면 고가라고 할 수도 없다. DVD와 블루레이 두 가지 포맷으로 나와 있다. 블루레이 디스크 중에는 재생 시 문제가 있는 것들이 간혹 발견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구입한 것도 한 장에 이상이 있었다. 수입사에 연락하니 새 것으로 즉각 교체해 주었다.


   올해는 쇼스타코비치 서거 40주년이다. 그의 작품이 종종 연주될 법도 하지만 탄생 100주년이었던 2006년에 비해 빈도가 현격히 줄었다. 10여년 전에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만한 작품들도 공연되곤 했었다. 독일과의 참혹한 전쟁에서 승리를 전망하는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러시아 1차 혁명을 음으로 쓴 서사시 교향곡 11번, 2차 혁명을 다룬 교향곡 12번 등이 당당하게 한국 초연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연주될 것 같지 않다. 개콘의 ‘민상토론’조차 경고 먹어야 하는 퇴행적인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사람을 웃기면 희극이지만, 무대 아래에서 사람을 웃기면 비극이다!

  최근 쇼스타코비치를 다룬 낡은 영화 한 편이 한글자막을 입고 DVD로 다시 나왔다. 쇼스타코비치가 사망한지 1년 후인 1976년 소련으로부터 미국으로 망명한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는 1979년 쇼스타코비치에 관한 책 '증언'을 썼는데, 이를 바탕으로 1988년에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소련의 이념에 충실한 작곡가로 알려졌던 쇼스타코비치는 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담아낸 볼코프의 책으로 인해, 소련 당국으로부터 억압당한 불쌍한 음악가로 새롭게 부각되었다. 지휘자인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까지 독일로 망명, 미국에 거주하게 되자 작곡가에 대한 반공주의적 평가가 더욱 힘을 얻었을 것이다. 막심은 전두환 때 한국에서도 지휘를 했다. 안전한 ‘귀순용사’로 보였기 때문에 연주회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볼코프의 책을 읽어보면 묘사가 지나치게 세부적이고 정보도 편협하게 선택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전기라기보다는 소설이란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출판 이후 내용의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이 책에 근거한 영화 역시 사실 왜곡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소련 몰락 후 저작물들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 스탈린 시대나 이후의 소련 사회가 억압 체제였고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예술가들이 겪었을 고통을 미루어 짐작컨대 ‘증언’의 내용에 과장이나 허구가 포함되었을지언정 본질적인 면에서 왜곡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차피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인 이상, 사실성에 대한 소소한 의심을 제쳐두고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히 감상할 가치가 있다. 예술가와 사회, 예술가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자극하는 깊이 있는 내용일 뿐 아니라, 영상미도 탁월하고 무엇보다 전편에 흐르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매우 효과적이다.   

  쇼스타코비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들이 억압에 의해 억지로 써낸 가짜라는 주장도 있지만,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가식과 과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진정성’이 넘치는 음악이라서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또 어떤 작품들은 지극히 내면적이다. 깊은 우울이 기괴한 방식으로 배어 나오거나 뒤틀린 조소와 신랄한 해학이 번뜩이곤 하니, 그의 작품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게 된다.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그는 스탈린 시대에 당국으로부터 호된 비판과 수모를 당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음악은 변화하거나 혹은 변화하지 않았다! 작곡된 작품들은 실제로 연주되거나 혹은 서랍 속에서 잠을 자야 했다.   
 
  2010년 구자범 지휘자의 부탁으로 광주시향의 교향곡 5번 ‘혁명’ 연주회 프로그램북에 ‘윤리적인 아름다움, 쇼스타코비치’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누구인가? 반공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회주의자인가?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그의 음악은 그저 휴머니스트로 불러달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이 우선하는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모두 휴머니스트로서,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는 전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다시 써보라고 해도 이렇게 맺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배우 벤 킹슬리가 연기하는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말기를. 부디 음악만…” 인권을 억압하고 사람을 도구화하는 사회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가짜 사회를 견딜 수 없는 자기 자신을 음악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의 교향곡 10번, 현악사중주곡 8번, 첼로협주곡 1번 등에 등장하는 주제 ‘레-미플랫-도-시’는 자기 이름의 독일식 표기의 이니셜 ‘D-S-C-H’에서 따 온 것이다. ‘S’는 ‘Es(=E♭=미♭)’음에 해당하며, ‘H’는 ‘B(=시)’음의 독일어 계명이다. 책에서 읽고도 이 암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주로 내성적인 작품들에 숨겨 놓은 이 음악 암호는 거대한 전체에 짓눌린 한 개인의 독특한 자기 배려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4개의 음이 금관에 의해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교향곡 10번은 스탈린이 사망하고 나서 바로 발표되었다. 1945년 9번 교향곡으로 또 한 번 당국의 호된 비판을 받게 되자 그는 이후 8년 동안 교향곡을 일체 발표하지 않았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비로소 내어 놓은 이 작품은 “나 쇼스타코비치는 건재하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침울하기 그지없는 1악장과 달리 4악장은 새가 날아가듯 가볍고 쾌활한 분위기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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