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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7(발간 : 201576)

 

[현장에서]

 

불통 교육과정에 분통 터지는 이야기

-6.24 불통교육과정 중단촉구 결의대회 참가기-

 

이나리(서울지부 초등강서지회, 서울신은초)

 

 

624, 처음 가 본 정부세종청사는 유령도시 같았다. 기괴한 수십 동의 회색건물들은 연결다리로 저들끼리 연결되어 있어서 땅을 밟지 않고도 다닐 수 있으며 건물 외에는 풀밭이다. 다니는 사람도 없어 오늘 집회를 위한 경찰과 우리 뿐. ‘지들끼리 네트워크,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마시오.’ 온 도시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더니 이내 비가 퍼부을 듯 찌푸린 하늘, 널뛴다. 교육과정처럼.

 

솔직히, 이번에 바뀐다는 교육과정 이름을 모르겠다. 사실 교육과정이 바뀐다는 얘기도 전교조가 아니면 들을 곳이 없다. 지금도 많은 교사들은 2017년부터 적용한다는 2015개정교육과정, 소위 박근혜정권의 불통교육과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구현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에라이 모르겠다. 교사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저들, 그래 나도 너희를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아. 매년 바뀌는 교과서는 아직도 어지럽고, 교육과정은 왜 수시로 바뀌는지 모르겠다. 총론? 철학 없이 정권입맛에 따라 바뀌는데 읽어볼 일 없다. 어차피 재구성 할 꺼, 바뀌든 말든.

그래도 할 말은 해야만 했다. 가만히 앉아서 저들 입맛대로 교육과정을 요리해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각종 연구모임, 혁신학교 등에서 가열차게 만들어내는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과 방향보다 공권력을 앞세운 급조한 교육과정의 파급력이 훨씬 강하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평일인데도 전국에서 수업 마치고 자그마치 500명이 넘는 교사들이 교육부 앞에 앉았다. 여기저기 지역 깃발이 모여드니 우리 참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업을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일으켜 모여드는 미련함이 참 대견하다. 오늘 집회가 과연 불통교육과정 중단을 위해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몰라도 자고로 모여야 투쟁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기초기본교육이다. 가르쳐야 할 내용이나 교과가 시대의 변화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초등학교 현장은 해마다 바뀌는 교과서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8년에는 영어교육과정이 시수증가와 함께 개정되었고, 2009년에는 교육과정 총론이, 2011년에는 교과 교육과정, 2012년과 2013년에도 총론이 부분 개정되었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에서는 해마다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바뀌고 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교과서가 도대체 어느 총론에 근거한 교과서이고 교육과정인지 대부분 교사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교사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시간과 여유가 없다. 학생들 처지는 더욱 심각하다. 2006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초등 6년 내내 역사 영역을 배우지 못했다. 어느 해에는 초등 1학년 때 했던 병원놀이를 2학년 때도 똑같이 한다. 역사영역이 6학년에 있다가 5학년으로 내려갔다가 안 되겠는지 다시 6학년으로 올라왔다. 분수는 2학년과 3학년 사이를 왔다갔다, 방정식이 중1때 나오다가 6학년으로 내려왔을 때, 그 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방정식 내용이 6학년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6학년 때도 중1때도 배우지 못했다. 일명 이명박 교육과정이라 부르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핵심인 집중이수제는 수업 집중도를 높인다며, 중등의 사회·도덕·과학·기술·가정·음악·미술 등 일부 과목의 수업을 특정학기나 학년에 몰아서 수업하는 제도다. 교과서조차 이에 맞게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제도를 도입하다보니 중학교 6학기에 걸쳐 학습할 것을 2학기에 몰아서 하느라 정신없이 진도빼기에만 급급했고, 행여 전학이라도 하게 되면 그 학교에서 정한 집중이수 학기에 따라 특정 과목을 아예 못 배우거나 똑같이 2번 배우는 경우도 태반이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고매하게 만들었을 줄 알았던 교육과정이란 것이 생각보다 많이 허술하고 많이 우습다.

 

 

2015개정교육과정은 문이과통합이라는 대의로 시작해서 전혀 알 수 없는 정치적 술수로 채워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약속한 학급당 학생수 감축, 교원 확보, 초등 돌봄교실 무상지원 등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학교에 쓸 예산을 빼내어 누리과정 예산에 쓰느라 교육재정이 파탄에 이르는 지경이다.

여기에 박근혜식 불통교육과정은 세계 유례가 없는 가혹한 학습 부담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평가조차 해본 적 없는 영유아 보육·교육과정인 누리과정과의 연계를 주장하며 초등 1~2학년 아이들의 수업시수를 오히려 증가시키려 하고 있다.

한글도 잘 모르는 아이들의 교과서에 인문사회적 소양 강화라는 명분으로 한자를 병기한다는 얘기는 농담인 줄 알았다. 한자를 아는 것이 소양인인가? 오염된 한글을 바르게 쓰기 위한 우리말 교육에는 이미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고 설마 이미 불붙은 한자 사교육시장 활황은 우연이겠지..?

또한, 지난 416 참사를 안전교육 부재때문이라는 가당치않은 말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인가? 안전교과 신설 문제는,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될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교육자라면 차마 해서는 안 될 책임전가, 진실은폐 짓거리다. 정작 안전교과를 개발할 팀도 없고, 이미 각 교과에 있던 안전관련 내용을 빼내서 급조하느라 다른 교과내용체계마저 흔들고 있는 안전교과의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들어온 배경 역시 가관이다. 2014723일 박근혜대통령은 소프트웨어 중심사회의 주역이 될 미래세대가 컴퓨터적 사고를 기본 소양으로 갖출 수 있도록 초중등 학교에서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막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며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는 열 살 안팎의 우리 아이들이 인간적 사고가 아닌 컴퓨터적 사고를 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에 현행 ICT활용교육을 제치고 소프트웨어 교육을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1년 전 4월에 저리 빨리 움직여주었다면, 메르스 공포 때 저리 빨리 움직여주었다면 한탄하는 것이 나 혼자는 아닐 것이다.

 

 

세종시 집회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2년 전 초등 2학년이었던 우리반 아이와 그 어머니를 만났다. 세종시에 가는 길이란다. 교육과정 집회하러 가는 중이라며 옆에 우리학교 어머니 세분이 더 모여들었다. 이렇게 놀랍고 반가울수가! 그 어머님들도 집회에서 우리학교 선생님들 만나지 않을까?’ 얘기하며 왔다고 반가워하신다. 학교에 교사,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여 교내외 다양한 부분을 논의하는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 2015 개정교육과정의 상황을 들었고, 오늘 집회가 있음을 알고 함께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학부모 4명과 아이는 준비해 온 피켓을 들고 집회 끝까지 함께 했다. 교육과정은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이 문제를 알고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다양한 교육문제에 대해 학부모의 관심을 좀 더 끌어내고, 함께 움직여야 함을 다시한번 생각했다.

 

집회는 즐거웠다. 2015개정교육과정이 중단되어야만 하는 이유들이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끊이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사회자에게 문자메세지로 불통교육과정에 대한 의견을 내며 집회를 함께 채워나갔다. 교육과정 개정중단을 위한 민원서 릴레이 제출하기, 빨간 리본에 교육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서 길게 걸어놓은 것도 장관이었다. 결의문 종이를 접어 다음 투쟁 의지를 담아 교육부 앞마당에 던지는 것으로 624 집회를 마무리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이미 국가주의적 관념을 주입시키려는 의도를 위해 만들어졌다.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한 고매한 철학은커녕 알량한 정권의 욕심으로 누더기가 된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에게 돌아오고 있다. 학급교육과정, 교사의 자율성 따위는 의미 없어진 지 오래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이 노동이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것이 투쟁이라고 한다. 우리의 노동인 교육활동은 교육과정 투쟁과 함께 가야 한다. 개정교육과정의 문제점을 교사, 학부모와 함께 공유하며 여론화하여 9월 고시를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정권의 입맛에 맞춘 국가수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우리의 참교육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2015 불통교육과정을 무력화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소통하지 못하는 대통령, 안전한 국가를 외면하는 대통령에게 우리는 먼저 한글공부, 안전교과 학습을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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