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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화연구자가 쓴 한국의 신자유주의 상

강내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문화과학, 2014)

 

김 형 숙 (진보교육연구소 교육문화분과)

 

구조조정, 통치술, 세계화, 시장의 독재, 꼼수 경제학부터 자기계발, 인간성 파괴!! 이것들은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낱말과 늘 붙어 다니는 용어다. 이를 제목(혹은 부제)으로 달고 출판된 국내 책들만도 번역서를 포함하여 120여 권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에 신자유주의를 다룬 또 하나의 책이 나왔다. 그것도 599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다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라는 아주 딱딱한 이름을 달고서 말이다.

지난 2월 말경 문화과학 북클럽에서 이 책에 대한 저자와 서동진 간의 토론이 있었고, 그 날 이후 나의 독서는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신자유주의를 개괄하고 있는 2장까지는 순서대로 읽다가 (건너 뛰어서) 시간과 공간의 금융화, 주체의 금융화를 다룬 뒷부분(6~8)을 먼저 읽고 금융파생상품과 기획금융을 다룬 중반부는 나중에 읽는 순서로. 다행히 각 장 나름의 완결성과 반복되는 설명으로 이러한 독법도 나름 괜찮았다.

저자는 문화정치경제를 관계의 집합이자 체계로 설정하고 이를 분석틀로 활용하여 신자유주의 사회의 다면적이고 총체화된 상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바탕이 된 그의 문제의식은 비판적인 문화연구이다. 더 정확하게는 소비주체의 탄생이나 미디어 분석 등에 머물고 있는 말랑말랑한 문화연구에 대한 반성이다. 요컨대, “지식생산의 분과주의를 타파하는 대안적인 지적 기획으로서 문화연구경제를 외면하고 피상적으로 신자유주의 문화 분석을 하는 데 머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부상을 설명한 후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핵심적 축적 전략으로서 금융화를 분석한다. 이어서 금융화의 주요 계기가 되는 것으로 금융파생상품과 기획금융의 작동을 다룬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초래하는 시간과 공간의 변동과 주체 형성 문제를 분석하며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그가 줄곧 부르짖은 문화사회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1장은 저자가 제시하는 문화정치경제의 방법론이다. 그는 문화정치경제문화와 정치와 경제가 복합적인 방식으로 빚어내는 관계망이라 규정하고, 문화적 정치경제, 경제적 문화정치, 정치적 문화경제 사이의 복잡한 상호 교차적 분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의 바탕에는 마르크스주의적 토대-상부구조론이 깔려 있다.

예를 들자면, 신자유주의 문화정치 분석은 문화의 정치화(표현과 자아실현 확대)와 정치의 문화화(심미화)간의 모순과 갈등,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경제적 효과(문화경제)에 주안점을 두는 식이다. 앞서 언급했던 토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부분도 문화, 정치, 경제라는 사회적 실천의 3심급에서의 관계 설정이었는데, 분석틀로서는 다소 추상적이고 복잡함이 아쉽지만 신자유주의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총체적인 논의의 물꼬를 트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장은 신자유주의와 문화정치경제 문제를 다룬다. 신자유주의가 지배계급의 소득과 권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기획으로 추진돼 온 역사를 서술했다. 신자유주의는 레이건과 대처에서처럼 국가의 개입에 의해 부상했으며 보수주의와의 연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국가/자본/노동의 관계에서 자본이 우위를 점한 결과로, 국가가 노동을 배제하고 자본의 협력자로서만 작동해서 자본 권력의 강화, 자유화, 개인화, 스타일의 정치, 소비문화 등 경제 우선의 정치와 문화가 구축된다.

3장은 금융화이다.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의 핵심적 축적 전략으로, 이자를 낳는 자본의 운동인 M-M순환이 강화되어 M-C-M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본주의적 순환체계를 새롭게 작동시키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새로운 수익 원천으로서 금융화는 실물경제를 지휘함으로써 노동 유연화, 민영화, 시장화, 구조 조정, 복지해체, 탈규제 등을 초래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신용확대와 부채의 자산화로 인한 부채경제의 형성, 소유적 개인주의의 확대, 위험의 일상화, 자산 중심의 기업 운영으로 주주가치의 강조,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 경향과 함께 금융화된 일상이 출현한다.

4장과 5장은 신자유주의 금융화를 작동시키는 기제로 금융파생상품기획금융이 기술됐다. 기초자산을 전제로 거래되는 파생상품은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체제 붕괴 후 증가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등장해서 신자유주의시대 자본 유통의 수단으로 작용해왔으며 자본 간 경쟁을 유발하고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는 금리, 주가 지수와 같이 추상화된 속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거래되는 금융파생상품이 상품과 자산 등 모든 자본 형태를 그 속성들로 분해하여 그것들의 통약 가능성을 찾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시장들을 연결하는 통약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파생상품의 확산은 위험 감수자의 영웅화, 실적 평가의 제도화, 상이한 부서와 개인의 실적을 비교 평가하는 관리회계의 확산과 연동된다.

기획금융(project finance)은 자산이나 신용 대신 사업수익성과 수익금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는 것으로서 도시 경관을 만드는 건조 환경(도로, 철도, 공공주택, 상업시설 등)의 건설에 주로 이용된다. 이러한 기획금융의 부상은 국가의 공적 기능이 크게 약화된 결과이기도 한데, 건조 환경 건설의 주도권이 국가로부터 공공 민간 협력으로 이동함에 따라 공적 영역 사업에 사적 자본이 참여하는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기획금융은 위험 관리를 위해 금융파생상품을 활용하며, ‘통치에서 전문가 위주의 협치로의 전환, 공공공간의 쇠퇴, 문화의 경제화를 초래한다.

6장부터 8장은 저자의 문화연구자적 시각과 촉[감성]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벤야민, 하비, 푸코, 들뢰즈, 르페브르 등 다양한 이론가들의 논의를 신자유주의 금융화로 인한 시공간의 변화와 주체 형성 서술의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하며 짜임새있게 엮어낸다.

6장은 금융화가 사회적 신진대사와 시간적 양상을 바꾸는 것, 곧 시간의 금융화를 다룬다. 자본의 자기 증식(이윤 확대)을 위한 회전시간 단축은 자본의 순환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단기 실적주의를 조장하는 주주가치 경영과 미래 할인 관행을 통해 시간을 가속화한다. 자연적 시간이나 초기 자본주의의 기계적 시간이 아닌 가상성假象性의 시간 경험이 지배적이 되는 것이다. 삶의 속도 증가와 과도한 미래 관심은 현재 시간의 농밀함을 떨어뜨리는 시간 기근으로 이어지고, 즉시성의 미학, 쓰고 버리는 사회, 개혁과 쇄신의 유행, 부산한 일상을 낳는다.

7장의 공간의 금융화는 한국의 건조환경 등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들이 풍부하여 읽는 재미를 준다. ‘기업가형 도시경쟁적 도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작은 정부정책(경비절감의 정치경제)을 추진한 결과로 출현한 것으로 역사적 공간을 해체하고 등장한 추상공간이다. 상품화와 자산 가치 상승을 위해 심미화되는 도시 경관의 스펙터클은 속이 훤히 보이는 노출 건축과 외벽 유리의 투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외부인의 내부 진입을 막고 있는 이중도시를 이룬다.

표면의 화려함과 형상적 드러냄, 과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스펙타클한 도시 경관 속에서 사람들은 판타스마고리아 앞에 선 거울 앞 존재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배우로 참여할 거대한 화면 무대가 계속 펼쳐질 수 있도록 빚을 내서라도 새로운 건조환경 조성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된다.

8장에서는 신자유주의 금융화 사회가 생산하는 주체를 다룬다. 신자유주의 규율사회의 자기계발적인 주체는 곧 계산 가능한(calculative) 주체로 자신의 행위와 능력을 계량화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런 주체는 푸코가 말한 자아의 테크놀로지 가동을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의미의 인재人材이자 자기를 경영하는 기업가이며 (국가나 자본이 바라는) 자율적인 인적 자본이다.

대출을 조장하는 부채경제와 금융의 일상화로 이들은 차입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 차입 투자자가 된다. 자기계발적인 주체는 자신을, 더 나은 개선된 자아가 되는 데 써먹을 자산으로 계속 활용하며, 자신에 대한 부채감으로 결여를 채우고자 자신에게 끊임없이 투자한다는 점에서 자기 투기적이다. 그리고 문화자본을 축적함으로써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이러한 인간이 더 매력적이고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9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문화사회이다. 문화사회는 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인간의 자유로운 자기실현 활동(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인간 역능 발전을 위한 활동)이 실현되는 코뮌사회이다. 과학적 혹은 유효한 유토피아로서 문화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의 최소화와 자유시간의 최대화를 위해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 계획되고 민주적으로 배분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간은 민주적 공통공간과 자유로운 개인공간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필요공간으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소유적 개인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감각을 계발하는 비자본주의적인 주체 형성이 필요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에 관한 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30쪽에 이르는 국내외 인용문헌과 16쪽에 이르는 찾아보기는 더 깊이있는 공부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자다. 게다가 각 장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현상에 대한 풍부한 한국 사례들을 담고 있으므로 실제적인 논의거리들이 가득하다. 인문학자인 저자가 (총체적인 사회와 삶의 현실을 파편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견고한 분과 학문체제에 대한 도전으로서 경제적인 것에 발을 내민 형국이므로 치열한 논의로 함께 엮어야 할 느슨한 그물눈들이 제법 있다.

갈수록 늘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청, 구청의 갖가지 공모 사업들은 모든 학교에 고루 나눠주면 될 돈으로 선심 쓰듯 각자 능력껏 가져가라고 좌판을 벌이고 있다. “그럴듯한 계획서를 쓴 당신, 이 돈을 가져가서 사업을 벌이고 보고서와 정산서를 내라!” 이 책은 뭔지 모르게 부산스런 일상에서 끊임없이 자기계발 하느라 바쁜 우리를 문득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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