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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6(발간 : 2015327)

 

[담론과 문화] 코난의 별별이야기

교과교실제 유감

 

 

코난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작년에 개설 2년차 학교로 옮겼습니다. 서울 변두리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에 맞춰 새로 들어선 중학교입니다.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여서 공기도 맑고 건물도 깨끗하고 아이들도 1~2학년밖에 없어 공간 활용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쾌적한 기분은 별로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교과교실제라는 혼란과 별로 민주적이지 않은 학교 운영 때문입니다.

 

이 학교는 처음부터 교과교실제에 맞게 지어진 학교입니다. 건물 중앙에 5층까지 뻥 뚫린 빈 공간이 있고 천장은 반투명으로 되어 있어서 채광이 잘 됩니다. 이 빈 공간 옆에는 계단과 안이 들여다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백화점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요? 이 빈 공간을 중심으로 교실들이 세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학생들의 잦은 이동을 위해 각 방향마다 계단이 더 설치돼 있습니다. 층마다 세 방향으로 교과교실존(Zone)이라는 이름으로 교과별 교실들이 모여 있고, 존마다 작은 화장실이 있습니다. 교과교실제를 운영하는 데는 안성맞춤이겠지만, 일반 학교처럼 운영하는 데에는 오히려 아귀가 맞지 않는 구조입니다.

 

전입 첫 해에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교과교실제를 처음 접한 탓에 여러 가지 익숙하지 않은 면들로 인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수업하는 교실이 고정돼 있고 학생들이 이동해 오므로 수업하는 교사로서는 편리한 점이 많았습니다. 책상 배치를 원하는 대로 고정시킬 수 있고, 칠판에 판서한 내용을 지우지 않아도 됐습니다. 게다가 제가 근무하는 교무실과 수업 교실이 같은 층에 가까이 있어서 오가는 데에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자기 교실 생활에 익숙했던 1학년 학생들은 적응하는 데에 저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교실을 찾느라 헤맸고, 교과서와 준비물을 챙기거나 체육복을 갈아 입으려고 걸핏하면 사물함을 찾았습니다. 사물함 이용이 번거로운 학생은 아예 가방을 메고 옮겨 다녔습니다. 담임은 아이들의 적응을 도와야 했습니다. 적응 기간이 일반 학교보다 길었지요. 3월 한 달은 마치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와 학생들은 그렇게 학교에 적응해 갔습니다.

 

지난해 개학 첫 날, 교과교실제를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이 나왔습니다. ‘2014년 전국 중고교로 확대 실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올해가 2015년인데 전국 확대 실시 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은근히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교과수업 전문성을 높이고 창의적 교실수업 환경을 마련하고 학생중심 수준별, 맞춤형 수업 활성화로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해서랍니다. 한마디로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것 같은데, 1년을 지내본 결과 솔직히 저는 수업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달라진다고 해도 교과교실제 덕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저는 그보다 가정통신문 맨 뒤에 실려 있던 교과교실제의 운영에 따른 예상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더 눈길이 쏠렸습니다. 첫째는 수업마다 이동 시간이 많아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 부족하고 피로가 늘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을 15분으로 늘릴 엄두는 내지도 못합니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해결 방안으로는 블록타임 확대와 학생 휴게 공간 및 편의 시설 증대라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으나, 1년이 지난 지금 공간 부족 문제로 블록 타임 확대나 휴게 공간 증대는 미미한 실정입니다. 둘째는 분실 및 도난 사고가 많다는 점입니다. 교과교실제 특성상 학생들이 이동하면서 각 교실에 개인 물건을 흘려서 잃어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고, 사물함이 교실 바깥에 놓여 있어서 도난 사고도 많았습니다. 학교의 한 부서에서 분실물 센터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셋째는 학생들의 출결 관리 및 생활 지도, 정보 전달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아침 조회 시간에 학급 교실에 모였다가 시간표대로 수업을 받으러 돌아다니기 때문에, 중간에 학생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1년을 지내면서 도대체 왜 학생들이 이렇게 힘들게 돌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점점 뚜렷해졌습니다. 문제점에 비해 장점이 별로 돋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과교실제는 대학 체제를 연상케 합니다. 대학 교육과정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같은 학년의 같은 과 학생이라도 듣는 과목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학교처럼 같은 반 학생이 모두 똑같은 수업을 듣는 경우 떼 지어 돌아다니는 것은 에너지 낭비입니다.

또한 대학생들은 성인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통제할 줄 압니다. 과사무실 게시판이나 홈페이지를 이용해 정보를 얼마든지 전달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학교에서는 담임이 학급 교실을 중심으로 학급 학생들을 장악하고 관리합니다. 담임 무한책임제라고나 할까요?

학생과 담임에게는 우리 반이라는 공간이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교과교실제에서 학급 교실은 우리 반 교실이 아니라 조종례를 하는 공간일 뿐입니다. 저희 학교의 경우 국어, 영어, 수학, 사회, 도덕, 한문 교실은 일반 학교 교실과 다른 점이 거의 없습니다. 음악, 미술, 기술, 가정, 과학 교실은 일반 학교의 특별실(음악실, 미술실, 기술실, 가사실, 실험실) 같은 교실과 일반 교실을 혼용합니다. 체육은 운동장과 강당이 교실이기 때문에, 담임인 경우나 비가 올 때는 다른 빈 교과 교실을 빌려 써야 합니다.

게다가 공간이 부족해서 모든 교사가 자기 교실을 갖고 있지도 못합니다. 이 현실을 덮어 가리려고 선진형 교과교실제라는 허튼 구실을 갖다 붙이지요. 교실 활용률을 높인다나 어쩐다나. ‘11교과실이 아닌 것이 오히려 선진형이랍니다.^^ 작년에는 3학년이 없었던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공간부족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습니다만, 올해는 사정이 더 팍팍해졌습니다.

아무튼 일부 교사들마저도 학생들처럼 여러 교실을 돌아다녀야 하고, 일부 학생들은 똑같은 교과 수업을 다른 교실에서 받아야 하는 경우까지 생깁니다(교과교실제의 장점이 반 이상 사라집니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교과교실제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는 것이 보통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 수업계 선생님은 작년 여름 시뮬레이션을 거쳐 올해 2월 중반 이후 줄곧 새 학년도 시간표 짜기에 매달렸다고 합니다(세 시간 고민 끝에 하나 교체하고 등등). 시간뿐 아니라 장소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출장이든 결근이든 시간표 교체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한 번 짜인 시간표를 손 대기가 너무나 어려워서!

 

그러니까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교과교실제는 선택해서 들을 수업이 많고 자기 관리가 웬만큼 되는 학생들에게 적당합니다. 우리나라 중학교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수업의 질을 높일 길은 여지껏과 같은 일반학교 체제에서 특별실을 늘려 다양한 수업활동의 여지를 만들어주는 길이겠습니다.

학생과 교사들의 의견은 어땠을까요? 얼마 전 길에서 만난 1학년 신입생에게 학교 생활이 어떻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우리 학교가 깨끗해서 좋고 학교 생활도 재미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2,3학년 학생들은 달랐습니다. 교과교실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나없이 힘들다고 말했고, 교과교실제 폐지를 건의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매일 매시간 돌아다니는 일이 편할 리가 없겠지요. 선생님들의 생각은 좀 복잡해 보입니다. 대부분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게 교과교실제 때문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개설 학교라는 특수성과 별로 민주적이지 않은 학교 운영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휴직이나 명퇴를 하려는 선생님들이 꽤 많습니다(혹시 다른 학교도 다 그런가요?).

 

그 분들은 구원되시더라도 남아 있는 자도 살아야겠기에 이러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뜸 떠올릴 의견이 교과교실제 폐지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것을 현안으로 고려한다 해도 간단치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학교 자체가 교과교실제 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에 일반 학교로 운영하기에 난점이 많습니다. 무작정 돌아가면 다른 문제점들이 고개를 쳐들고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괴롭히겠지요.

교과교실제의 어려움을 더 키우는 요인은 공간 부족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에는 학년당 8학급씩 총 24학급이 있습니다. 원래 24학급이 적정 규모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근무해 본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제대로 된 과학 실험실은 1개 밖에 없고 과학 교실도 부족해서 작년까지 체육과에서 댄스용 교실로 쓰던 교실[=한 쪽 벽에 거울이 있는 1.5 칸의 교실]에 책상을 배치하고 과학수업 교실로 함께 쓰고 있습니다. 과학 수업을 할 때는 거울을 자바라로 가리고 수업하고, 댄스 수업을 할 때는 거울 자바라를 열고 책상을 한 쪽으로 몰고 수업을 하는 실정입니다.

또 교과교실제 학교는 원래 3개 과목 이상이 수준별 이동수업을 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었습니다. 이이 따라 작년까지는 영어, 수학 말고도 (원하지 않는다 해도) 한 과목이 억지로 수준별 이동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지침이 무색[뻘쭘]해졌습니다. 교실이 부족한 까닭에 영어마저 3학년은 수준별 이동수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교무실도 답답하리만치 작은 곳이 많고 학생회실조차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학생 숫자가 줄곧 감소하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고 학교 규모를 줄일 것이 아니라,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고 학교의 공간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내년에는 학급 수가 줄어들어 학교에 숨통이 트이기를 혹시나기대해 봅니다.

그 다음으로 교원업무 정상화의 하나로 학년부 체제를 들여오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학교의 업무분장은 행정(교무, 연구, 생활, 상담, 창체부)과 교과(인문사회, 자연과학, 수학정보, 예체능, 언어, 3학년)를 두 축으로 삼은 체제입니다. 교과교실제 학교라는 특성상 교과를 배려한 듯 싶지만 사실상 행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입니다. 교과교실제라고 교과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 해서 교과 수업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과교실제 특성상 동선動線이 고정돼서 교사들끼리의 소통과 만남이 구조적으로 가로막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과교실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러 교과의 담임들이 한 교무실에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학년부 체제가 더 요긴합니다. 여기서 행정 업무를 많이 떼어내서 교사들에게 여유가 생겨야 합니다. 그래야 담임반 학생들도 더 신경 쓰고, 수업을 준비할 여력도 더 생겨납니다.

학년부 체제를 사실 작년에 제안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올해 선생님들을 더 설득한다면 내년에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다들 좀더 자유로이 숨쉴 학교를 오늘도 내일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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