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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6(발간 : 2015327)

 

[담론과 문화] 송재혁의 음악비평

 

음악밖에 모르는 천상의 지휘자,

음악도 아는 세상의 지휘자

 

송재혁(전교조 대변인)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정명훈 지휘자가 땅콩 회항 못지않게 구설수에 올랐다.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가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은 일은 지금껏 없었을 것이다. 한국을 빛낸 위대한 예술가가 서울시향에서 불명예 퇴진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서울시향 사태가 세간의 떠들썩한 관심사가 되자, 유일한 취미가 음악감상이라는 나에게 주변에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박현정 대표의 막말 논란이나 정명훈 감독의 고액 연봉, 비리 논란은 일단 재껴 두고, 음악만 놓고 봤을 때 정명훈이 정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이고 훌륭한 음악가인가요?”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는 툭하면 연주 또는 연주자에 서열을 매기는 몹시 비음악적인 일이 빈번히 일어나곤 한다. 그리하여 자기와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기꺼이 도발을 걸어 분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모든 예술가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고 그만의 예술세계가 있으니 우열은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 평소 음악을 대해 왔기에, 정명훈이 일류인가, 이류인가 하는 판단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저 나의 취향에 비추어 그에 대해 말할 수밖에……

 

천하의 카라얀도 뭇사람들에 의해 가볍게 폄하되는데 음악을 오래 들은 내가 정명훈에 대해 평가하지 못할 이유 없다. 더군다나 이 지면은 편안하게 속내를 말해도 괜찮을 어떤 공간이기게, 음악애호가라는 분들한테 돌 맞을 각오 하고 용기 있게 말하자면, 지금껏 그의 음악에서 가슴 쓸어내리는 감동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뭔가가 빠져있다. 음악을 그럭저럭 예쁘게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지만 뻐근한 감동을 주는 뭔가가 없다. 먼저 칭찬부터 하자면, 15년도 넘은 어느 해에 시차를 두고 KBS 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와 연주한 베르디의 레퀴엠은 굉장히 집중력 높고 인상적인 연주였다. 이후 어느 연주회에서 앵콜로 연주한 포레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첫 곡도 기억에 생생하다. 서주의 반복부를 대비적으로 끌어냈는데 정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주 오래전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한 공연도 무척 인상적이었으며, 그가 1989년 프랑스의 바스티유 오페라의 예술감독이 된 후 녹음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다이내믹의 구축면에서 탁월했다. 하지만 그가 2005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절대적인 지지 아래 서울시향의 지휘봉을 쥔 이후 인상적인 연주를 찾기가 힘들었다. 상투적이거나 부자연스러운 흐름, 두터운 음향에서 오는 갑갑함, 구조적인 아름다움의 부족 등을 느꼈다.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특히 베토벤, 브람스, 말러 등 독일계 음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가 서울시향과 외국 관현악단을 지휘한 공연을 보거나 그가 남긴 레코딩을 듣고 내린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정명훈 지휘자를 이렇게 평가하면 그의 팬들이나 음악애호가라는 분들에 의해 음악을 헛들어왔다, 음악 듣는 귀가 없다, 맹목적인 안티의 근거 없는 판단이라고 몰아세워질지 모르겠다. 그러한 도발에 대해서는, 소위 거장의 연주라면 닥치고 칭찬해야 하는 것이냐고 항변하게 될 것이다. 클래식음악 감상이 가진 좋은 점은 다양한 연주와 해석에 대해 누구나 주관적 호불호를 표현할 수 있다는 데에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용의 여지는 창작자의 작품이 매개자인 연주자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만 아니라, 수용자 또한 저마다 형성된 미적 자의식이라는 주체성의 영역을 기반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게 되는 클래식 음악의 유별난 특이함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악을 같은 연주로 들어도 제각각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장려될 필요가 있다. 눈치 보며 남들이 박수 치는 만큼 박수 쳐주는 풍토에서는 수용자로서의 자기가 실종된다. 음악은 남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년 정명훈과 서울시향에 대해 평가절상되었다는 비판을 가해온데에는 정치적 동기가 개입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이명박 시장과 함께 정명훈은 서울시향을 전면 오디션이라는 형태로 무자비하게 구조조정 했고, 이후 지금까지 매년 단원의 5%를 해고하는 잔인한 운영을 자행했다. 한편 수석 연주자 자리 등 중요 파트에 그가 상임으로 있는 프랑스라디오필하모니의 연주자 등을 앉혀서 악단의 15% 가량을 외인구단에 할애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이체 그라모폰레이블로 음반들을 내어 음악계의 주목도 받았지만, 시향 측이 돈을 지불하며 만든 음반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설사 악단의 소리가 좋아지고 유명세를 얻었다 한들 서울시향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울시향에 대한 회의론은 수년전부터 여러가지 근거와 함께 제기되어 왔었다. 사람을 피눈물 나게 하고 편법까지 동원하여 만들어낸 결과가 주옥같은 선율이라면, 그것은 외적으로 아름다울수록 내적으로 추해진다. 음악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음악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전도 현상이나, 수단이야 어떠하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성과지상주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론적 병폐를 반영한다.

 

뿐만 아니라 박현정 대표의 막말 파문에 따라 수년 전부터 제기되곤 했던 정명훈 지휘자 개인의 비리 의혹들까지 재론되면서 서울시의 감사가 진행되었고 새로운 의혹까지 추가되었다. 가히 부패한 권력자들의 면모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정명훈 지휘자는 여전히 많은 음악애호가들에 의해 옹호된다. 그 정도는 관행으로서 용인될 수 있고, 정명훈은 한국을 빛낸 예술인이며, 서울시향에 기여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란다. 800원 싸구려 커피값을 횡령했다고 버스기사 노동자는 해고당했는데, 수천만원을 횡령한 지휘자는 용서되어야 한단다. 특유의 애국주의적인 경향까지 결부되면서 정명훈 지휘자에게 면죄부가 부여되려던 즈음에, PD수첩의 심층 보도가 나가게 되고, 급기야 그는 시민단체로부터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당하고 만다. 그런데 그 시민단체라는 데가 하필이면 박원순시정농단진상조사시민연대라는 긴 이름의 연대단체로, 한국자유연합, 공교육살리기시민연합, 대한민국구국채널, 탈북동포회 등 15개 단체로 구성되었다고 하니, 고발의 순수성이 의심받을 만하다.

 

정명훈과 서울시향 사건에 관한 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오판을 했다고 본다. 이명박 시대의 유산을 과감히 청산하고 기형적인 서울시향 시스템을 정리하여 새로운 반석 위에 구축할 기회이기도 했지만, 시장은 오히려 정명훈을 감싸며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했다. 대안이 없으면 부정부패도 눈 감고 가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니, 시장이 살아온 이력에 비추어볼 때 생뚱맞은 처신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짜깁기로 연주하고 지휘봉을 바친 정명훈을 기억하는 권력층이라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정명훈을 적극 옹호하여야 할 텐데, 수구 보수세력들이 정명훈에 대한 공격에 오히려 더 적극적이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 이면에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간접 공격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명훈-서울시향 사태에 관한 한 정치적 지형은 왜곡되어버렸다. 전임 시장인 이명박의 과오와 그 부산물인 정명훈-서울시향의 오물을 박원순 시장이 덮어 쓰고 있다. 박 시장은 뒤 늦게 대안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주문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다. 바로 대안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온 순간 정답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음악만을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해 온 정명훈 지휘자는 이번에도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이예요, 사실은."이라고 말했단다. 믿기 어려운 말이다.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치고는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밝은 처신을 보였다. 그에게 음악은 참 쉬운 도피처인가보다. 이번 정명훈-서울시향 사건을 계기로 클래식음악은 금기의 성역에서 상식의 시민사회로 내려오는 도정에 있다. 음악가, 예술가 또한 시민이므로 시민의 윤리와 덕목을 동등하게 요구받게 된다는 평범한 상식이 회복되는 중이다.

 

정명훈 지휘자 연봉의 과도함에 대한 논쟁은 이번만이 아니라 2011년 말부터 한차례 진행된 바 있다. 연출가 김상수, 문필가 김갑수, 작가 목수정, 피디 이채훈, 시사평론가 진중권, 작곡가 진은숙 등이 공방을 벌여왔다. 세계적인 지휘자들의 연봉 수준과 비교했을 때 정명훈 지휘자의 연봉이 적절한 수준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고액의 연봉 문제가 지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최근까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일갈해 온 진중권의 발언들이다. “정명훈 가만 놔둬라. 그만큼 잘났으면, 그 정도 받아도 된다. 예술가에게 굳이 정치적 입장을 물을 필요도, 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시장도 바뀌었겠다, 분위기도 진보로 넘어왔겠다, ‘정명훈=이명박이라고 슬쩍 한 자락 깔아놓으면, 문화예술에 무지한 진보진영과 진보언론들이 떡밥을 덥썩 물 거라 생각한 거.” “그냥 정명훈 자체가 우리한테는 사치.” “물러난다고 하니, 저렴한 지휘자 갖다 씁시다. 그 자리 노리는 자칭 지휘자들 쌔고 쌨거든요. 어차피 세종문화회관 옆을 지나는 돈 없는 서민들에게 클래식이 다 뭡니까? 사치죠” “서민의 덕목은 무식이어야 합니다그는 결국 작년 12월 말 연극 연출가 김상수 비방 혐의로 위자료 500만원 지급 판결을 받게 된다. 진중권의 정치적 행보에 비추어 볼 때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참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언표들이다. 클래식 좀 알면 유식, 모르면 무식으로 치부하는 천박한 예술 인식이 그의 멘탈에도 배어 있었던 것일까? 진보진영이 즐겨 부르는 노래들이 클래식 어법과 달라서 평소 경멸해왔던 내심이 들켜버린 것일까? 예술과 정치의 분리라는 해 묵은 주장이 돌출한 맥락이 의아하다.

 

이번 정명훈-서울시향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 문화가 가진 전근대적 면모가 낱낱이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클래식 음악계의 최고 권력에 성역 없는 비판이 가해지고 났으니 이제 새로운 인식을 발판으로 클래식 음악계가 재편될 가능성을 점쳐 볼 수도 있겠다. 지휘자라는 직분, 직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인기 있는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쓴 거장신화의 서문에 장황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는 이번 서울시향 문제를 다룬 PD수첩에서 자기 인터뷰 내용이 왜곡되었다며 항의했다지만, 그의 저서는 지휘자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위와 대우를 냉소적으로 비꼬고 있다. 지휘자의 음악적 존재 이유는 상징적 기능에 비해 전적으로 부차적이라고 말한다. 서문의 마지막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렐레이의 생애에서 안드레아와 갈릴레이의 대화로 맺는다. “영웅이 없는 곳은 불행합니다.” “아닙니다. 영웅이 필요한 곳이야말로 불행한 곳이지요.” 같은 연주회에서 함께 시간외 근무를 하고 나서 단원들은 6만원, 지휘자는 4천만원의 수당을 받는 현실은 오케스트라라는 하나의 사회 안에 비상식적인 부조리가 존재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지휘자라는 존재가 서구 관현악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일지라도 권한의 범위와 처우 등은 민주적 원리에 맞게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오케스트라 내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세계적인 추세라면, 세계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음악 밖에 모르는 음악가라는 독백은 우리 시대에 부끄러움이 되어야 한다. 음악도 아는 음악가가 감동을 줄 수 있다. 인문사회적 성찰을 바탕으로 재현되는 음악은 한없는 감동으로 삶에 에너지를 부여할 수 있다. 이미 죽은 음악을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재현시킬 힘을 가진 개념 찬 지휘자가 서울시향을 맡게 된다면 시향의 도약을 넘어 클래식 음악의 부활을 점쳐도 좋을 것 같다. 박원순 시장이 주문한 대안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정명훈의 대안이 아니라 클래식음악의 대안적 모습을 찾아 나선다면, 음악밖에 모르는 천상의 지휘자가 아닌 음악도 아는 세상의 지휘자가 분명 눈에 띌 것이다.

 

 지휘자정명훈.jpg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사진-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00pixel, 세로 40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14년 12월 16일 오후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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