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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아가, 나의 연인 나의 인연이여

 

김윤주(진보교육연구소 회원)

 

 

#12. 연인을 아기라 부르는 이유

 

애기야 가자

30대 김정은을 박신양이 이렇게 불렀을 때, 여자들은 열광했다. 이 여심 심쿵 대사에 힘입어 <파리의 연인>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제아무리 센캐인 척 한다 해도 내 연애의 발생 또한 늘 한결같았나니, 그가 내 속의 아기를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스무 살 넘어서 계속 혀 짧은 소리를 데데거리는 여자들을 보면 한대 쥐어박고 싶은 것과 별개로 - 나는 어리광과 애교를 분간 못하는 미디어풍토가 심히 못마땅하다. 단지 다 큰 성인이 귀여운 척하는 게 느끼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미성숙을 용인 내지 부추기는 시선들이 모이고 모여, 다들 성숙을 스스로 거부하고 사랑받고픈 어린아이로만 머무르려고만 하는 통에 사회를 퇴행시키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연인 앞에 서면 자기도 모르게 동자신 빙의 무당이 되어 아기 목소리를 내고, 유치뽕짝한 소리를 방언처럼 나불거리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풍경이다. 아기인격이 등장하고 킬미힐미의 시간이 마법처럼 열리는 그 순간이여~~~..(드라마줌마입니다;)

 

아기를 낳아 키우기 전에는 연인간의 이런 현상이 단지 서로를 아기처럼 귀엽게 여기고 있고, 또 상대에게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이고픈 마음 때문인 것으로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아기라는 호명은 그보다 훨씬 거룩한 것이었나니.....

 

어느 순간부터 아기의 표정을 보노라면 진짜 꼭 무슨 이모티콘 같았는데, '자랑스러움', '서운함'. '반가움',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너무 만화처럼 전형적으로 드러나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 했다. 사실 어른의 세계에서 가장 감정의 리얼리티가 생생한 표정이란 무표정이지 않은가. 자아의 필터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저 순정한 감정, 순결한 표정이여~하악하악 핥핥핥!

 

우왕~~”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면 일부러 한 30초는 지켜보다가 달래주곤 한다. 울 때면 뽀얗던 아기 얼굴이 빨간 사과처럼 변하는데, 이 모습이 꼭 처음 태어났을 때 몬생긴 빨간얼굴과 비슷해서, 지난 18개월간 이 아이가 건너온 놀라운 진화의 발자취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너가 얼마나 작았던가. 얼마나 연약했으며, 널 바라보던 내 마음이 얼마나 연민에 찼던가. 또한 이 아이 평생에 저렇게 자존심과 수치심 따위 없이 부왕~거리고 우는 저 모습은 나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이... 뭉클..ㅠㅠ.

 

제 아무리 누군가에게 설레었다 해도, 그가 내 설렘을 인질 잡아 지속적으로 갑질을 하거나 이기적으로 굴면 나는 가차 없이 마음이 식었다. 미련 따위.... 그런데, 신기하지. 아기로 인해 힘든 시간이 쌓일수록 아기를 사랑하게 된다. 나에 대한 너의 무한한 사랑이 단지 무한히 의지함임을 뻔히 아는데도 그 기대고 징징댐이 애틋하다. 김영하가 그랬던가? 인간이 창조주의 전능감을 느끼고자 한다면, 아기를 낳아 키우든가 소설을 쓰면 된다고. 나의 불면증과 족저근막염과 허리통증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너. 빨갛던 얼굴은 뽀얘지고, 흐물거리던 몸에 근육이 붙어 내 몸 위에서 방방 뛰는 너. 아흐~ 나는 위대하다!

연인 앞에서 아기가 되고, 아기로 보인다는 것은 견고하던 자아가 소멸되고 순정한 존재가 되었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유치한 질투와, 흥분과, 나른함을 여과 없이 둘만이 보고 느꼈기에 나만이 경험한 너의 존재.... ! 헌신하고 잘해주고 싶어...내게 무한히 의지하고 징징댄다해도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더욱 사랑할 것이다! 와 같은 거룩한 사랑의 주체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호명인 것이다, 아기는.

애기야, 가자!

 

#13. 모성신화에 대한 내 속의 자뻑 경계령.

얼마 전 즐겨보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이라는 노래가 현장 사람들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면서 엄청난 동영상 뷰 횟수를 기록했는데, 나는 왜 이런 제목의 노래나 영화들이 오글거릴까. 엄마가 되었고, 헌신적인 홀어머니 밑에서 누구보다 엄마를 아끼고 사랑해왔는데도 말이다.

 

부모의 헌신을 칭송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이 부모가 된 이들이다. 부모가 되어 자식 건사하느라 개고생을 하고보니, 제 부모가 준 사랑이 절절히 떠올라 부성/모성 찬양이 절로 나오는 것일텐데, 실은 스스로도 부모인 자기 자신을 찬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가 바다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고, 자식이 이런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모습이지만, 자식사랑과 부모찬양이 너무 떠들어지는 것은 이상하게 싫다. 이 세상엔 부모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도 많고, 자식 없이 사는 이들도 많다. 그들도 저마다 무언가에 헌신하며 사랑하고들 살며, 끔찍한 효자지만 남에겐 악인인 사람도 많고, 대단한 모성과 부성을 실천함과 동시에 남에겐 끔찍한 악행을 일삼는 부모들도 부지기수다. 내 부모가 얼마나 헌신적이었는지, 내 새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상부모들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메스컴에서 떠드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내가 내 애인을 얼마나 사랑하며 내 애인이 얼마나 위대하며 이 연애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공개적으로 설파하는 것처럼 오글거리는 구석이 있다. 부모의 헌신이 우리의 존재를 지탱하는 거대한 우주임이 분명한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이데올로기화되는 것은 반대한다. 우리는 부모 없는 아이도 훌륭하고 행복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해야하고, 모성과 효도를 강조하는 것은 한 생명의 성장을 오직 개인적 도리에 가두는 것 같아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특히 한국적 삶의 표본인 "자식을 위해 살고",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삶이야말로 이 세계의 보수성을 지탱하는 가장 무시무시한 덕목임을 늘상 목격한다. 부모와 자식이 제 삶의 알리바이가 되어버리면 우리의 삶은 '안정'이라는 가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자식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 불의에 가담하며, 부모를 즐겁게 하기위해 공부하고 결혼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가. 너무나 익숙하고 우리 모두가 공범이어서,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라는 변명은 누구에게나 이해받으며 심지어 칭송받는다.

최근 부인을 폭행한 연예인 출신 돌목사 서 모씨가 "딸이 자신을 위해 mit로 진로를 변경했다"며 본인이 존경받는 아비임을 항변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나는 그 기사를 보고 그가 더욱 소름끼쳤다. 오직 아비를 기쁘게 하고자 진로를 결정하고 그것을 자랑삼는 아비. 아흐. 섬뜩한 이야기.

몇 해 전, 서울에 들른 부산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대한문의 쌍용해고자들을 보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에게 얼마나 불효이며, 처자식에게 얼마나 못할 짓이에요?"

실업고를 졸업한 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한 착한 후배의 말이었다. 이것이 우리사회의 보편적 정서일텐데, 이 보편적이고도 선량한 정서가 우리사회를 얼마나 끔찍하게 만들어왔는가? '가족들에게 사람 구실하는 삶'이라는 대덕목에 다들 너무 필이 꽂혀 있다보니, 일체의 모든 상황에 대해 젤 먼저 들이대는 그 잣대. 그것이 일체의 모든 사실을 삼키고, 개인의 지적/인격적 성숙을 얼마나 방해하고 있는가.

 

한편, 친정 엄마가 오시는 화요일마다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서 망중한을 즐기는데, 그 때 가장 신경을 득득 긁는 옆 손님이 자식교육 얘기를 열정적으로 하는 아줌마 그룹이다. 강남 살다보니 더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도 같은데, 그들의 말에는 "우리 애는"이라는 주어가 다 생략되어 있어, 아이와 완전히 혼연일체가 된 모습이 너무 그로테스크하다.

"수학샘은 블라블라~ 1교시는 블라블라~중간고사는 블라블라~~필독도서는 블라블라~~~~영 어 땜에 스트레스가 블라블라~~“

문장 상으로는 완전히 본인 얘긴데, 내용을 들으면 아이의 얘기다. 본능적으로 너무 무섭고 싫다. 저 열광적인 몰입과 에너지가. 아무리 우리가 교육적 관점으로다가 어쩌고저쩌고 해도 저렇게 전 존재를 쏟아 부으면 그 아이들은 대체로 공부를 잘하게 되어있다. 콩 심은 데 콩 나니까. 그들의 아이들이 사회의 리더가 되고, 그들이 “(역시 아이가 라는 주어생략) 성공한 부모가 되어 그 성공전략을 계속해서 재생산해대는 것도 너무 끔찍하지만, 사실 저 주어생략이 당연시 된 존재,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저 존재의 모습 자체가 끔찍하다. 차라리 숨겨둔 애인 얘기를 하는 아줌마들이 옆자리에 앉는 편이 낫다.

부모와 자식은 돌봄과 감사를 주고받는 사랑의 인연. 그러니 엄마들아, 우리 부모 됐답시고 너무 나대지 말자. 아 물론 우리는 위대하지만.

 

#14. 뽀로로 감상문.

뽀통령의 당선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당선보다 정당하다는 게 남편과 나의 공통된 견해다.

등장인물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마치 <무한도전>을 보는 듯이 다 살아있고, 장면 마다마다에 세심하게 익살이 배어 있으며, 하얀 설국에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색의 향연....미장센도 굿! 전 편을 유심히 보다보면 작가진의 개그감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짙게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마치 김병욱 pd가 만든 시트콤류 같은, 교육프로그램에서는 성취하기 힘든 작품성이 느껴진다.

초등교사인 내 눈에는 특히 더 모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해프닝들이 현실성 있으면서도 사랑스럽게 다가오는데, 저런 애들 꼭 있다, 저런 일 꼭 있다! 맞아맞아~~이런 공감대를 준다.

 

뽀로로 - 반듯하게 잘 자란 똘똘한 장난꾸러기,

크롱 - 능력이 다소 뒤처지지만 열등감이 없고 인정이 많은, 말하자면 깍두기캐릭터.

포비-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어른스럽고 부지런한 덩치 큰 아이.

에디 - 지적 호기심과 실행력으로 똘똘 뭉쳐있으면서 노래나 춤에는 영 소질이 없는 과학영재.

그 외 1회성 포식자들(공룡, 고릴라, 상어 등) - 무섭게 생기고 포악스럽지만 정에 굶주려있고 어리버리한 무늬만 날라리.

 

모두가 아주 건강한 자아관을 갖고 있으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엄마미소가 절로 나온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자인 루피와 패티인데, 얘네들은 전형적인 여자 친구 캐릭터로서, 특별히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주거나, 남자친구들의 시합을 응원하거나, 혹은 남자친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상상을 하는 정도의, 사랑스런 여자의 스테레오타입이다. - <꼬마버스 타요>에서 만능정비사를 젊은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발전적이다 - .

 

또 하나 중대하게 아쉬운 점은 여기에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크롱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긴 하지만, 크롱은 이제 갓 알에서 깨어난 아기공룡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신체적/정신적 핸디캡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진 않았다. 유아기부터 장애를 터부 없는 시선으로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tv프로그램이 너무나 절실하다.

현재 학교들은 공존하는 법을 가르치고 평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고자 모두 통합학급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애아의 부모들도 특수학교보다는 일반학교 진학을 많이 선호하는 편이다. 다소간의 왕따 위험과 맞춤형 교육을 포기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가 미리부터 분리되기보다 일반아들과 어울리며, 스스로도 나는 다만 핸디캡을 가진 일반인이라는 자아관을 심어주고픈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은 아무래도 꽉 찬 커리큘럼을 집단적으로 소화하는 것을 주요일과로 삼는 곳이다 보니 능력의 비교우위가 여실히 드러나는 장이어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장애인을 경험하는 곳이 학교라는 것은 영 비극적이다. 학교에 와서야 처음으로 장애인을 접한 아이들은 오히려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비하하곤 하는데 길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비장애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아무렇잖게 "이 장애인아!"라는 말을 툭툭 내뱉는 것을 모두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신경이 쇠꼬챙이로 긁히는 것 같아서 무섭게 정색하곤 했다. 상대방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 옆에 존재하는 제 3자를 욕보이는, 이 얼마나 질 나쁜 언사인가. 담임이 어지간히 유능하고 개념차도 우리가 괴롭히지 않고 잘 도와줘야 하는 친구정도의 관계만 설정되어도 성공한 통합학급이 되는 게 실상이다. 뽀로로와 친구들은 크롱이 말을 못해 발생하는 의사소통의 불편을 크롱과의 관계성의 특성으로서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언제쯤 우리 아이들은 일반-비일반의 대운하를 넘어 이게 가능해질까. 학령이전 그저 함께 어울려 노는 시절부터 TV 속에서라도 바람직한 모범이 제시되었으면 한다. 감상문이니 제도적 문제는 논외로.

 

그 외 각별히 눈여겨 본 것은 뽀로로에는 부모가 일체 등장하지 않으며,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가족을 아이들 스스로 형성해간다는 점이다. 자상하고 유능한 부모와 모델하우스 같은 집에사는 중산층 어린이만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가라. 뽀로로는 공룡알을 주워 부화시켜 크롱과 가족이 되며, 에디는 로봇을 발명하여 로디와 가족이 되고, 포비는 까불이 새 해리를 만나 가족으로 맞이한다. 어린이판 <가족의 탄생>! 이 얼마나 변혁적인가. 뽀통령을 청와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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