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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그 후 – 대자보에 못다한 이야기

이 자리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안녕’ 묻기
세안세다 / 중앙대


안녕하냐는 물음에 부끄러움을 내놓습니다.
작년 겨울, 안녕들 하냐는 물음이 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 중에 나도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현우씨의 첫 대자보가 내 마음을 울린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해오던 나에겐 당연한 이야기였고 늘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는데 그 다음 날부터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대자보가 하나 둘 붙기 시작했다. 며칠 새 법학관 지하1층 벽면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으로 가득 찼다. 학교 정문 쪽 게시판에도, 엘리베이터 앞에도, 과방 안에도, 학과 게시판에도 대자보가 붙었다. 취업 공고 게시물과 토익 영어 학원 홍보 게시물만 나붙던 학교 공간들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붙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그 동안 나는 주변의 안녕 못한 이야기들을 듣지 않았고, 나 또한 내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러면서 불쑥 들었던 부끄러움과 더불어 많은 고민을 거쳐 대자보를 적었다.  
첫 대자보가 붙은 지 5일 뒤,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되었고, 그 3일 뒤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 파업결의대회에서 대자보를 쓴 사람들이 처음 모였다. 이렇게 조금씩 늘어난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내게 가장 뜨거웠던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뜨거웠던 겨울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는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민주노총이 침탈되었을 때 정동으로 모였고 1,2차 총파업에도 참여했다. 밀양희망버스에 함께 탔고, 함께 모여 합동 대자보를 쓰기도 했으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서포터즈를 하기도 했다. ‘대학, 안녕들 하십니까’와 함께 대교협(대학교육협의회)과 위헌학칙을 비판하는 행사들도 함께 해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열심히 뛰었던 건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 파업 지지를 위한 활동이었다.
작년 9월 27일 중앙대학교는 비정규직 노동조합(민주노총 서경지부 중앙대 분회)이 출범했고 학교에 열 몇 차례 교섭을 요구했지만 모두 결렬되었다. 되려 학교는 갑자기 한국노총 중앙대 분회와 교섭을 하면서 노조를 와해시키려고도 했다. 이에 12월 18일, 청소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을 했다. 처음에 부정적이던 학내 반응들도 청소노동자 분들의 손자보가 붙으면서 지지와 연대, 응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지지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조합에게 구호나 노래, 피켓이나 대자보 등을 붙이면 하나당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의혈, 안녕들 하십니까’에서 <이것은 백만 원짜리 다자보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청소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이 또한 ‘백 만원 짜리’라는 의도였다.
이 대자보가 붙자 그 옆에 다른 이들도 연달아 붙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대자보들과 구호, 피켓, 노래들의 숫자를 카운팅해서 <의혈안녕기금>으로 책정했다. 요즘 학교는 온 곳을 헤집으며 경영경제관 건물을 올리는데 혈안이다. 이 때 쓰이는 <학교발전기금>에 대해 <의혈안녕기금>은 진짜 학교가 발전하는 것은 구성원들이 안녕해져 가는 것이라며 학교가 책정한 100만원을 가상으로 모으는 기금운동이었다. 그렇게 돈이 쉽게 모이는 줄 몰랐다. 청소노동자 지지 인증샷도 모으다 보니 거의 3억 6천 정도의 기금이 모였다. (이는 총장님에게 친히 전달해드렸다. 이를 받은 총장님의 반응을 물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백만 원짜리 대자보들이 붙기 시작하자 학교는 “클린 캠퍼스”를 내세우며 입시 기간 동안 외부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다며 모든 대자보를 철거했다.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10일 넘게 진행했고, <대자보 백일장>을 열었다.  사람들이 모여 다같이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썼고 이 대자보들은 또 <의혈안녕기금>으로 책정했다. <대자보 백일장>에는 흑석동 주민부터 타 대학생,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이 백일장 1주일 전부터 만 원짜리 가짜 지폐 100장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상징하는 장미를 접었다. 지폐를 장미로 만들어 버리면서 100만원으로도 ‘노동자의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굉장한 장원 후보였는데 미쳐 다 접질 못해 출품을 뒤늦게 해서 장원은 하지 못했다. 이렇게 대자보로 자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토로하던 사람들이 대자보로 안녕하지 못한 이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활자 밖으로 나와 함께 움직였다.


나를 마주하고, 너를 이해하고, 우리를 고민하자.
종종 질문 받는다. 이 열풍이 사회적으로 무엇을 남겼느냐고, 그리고 너에게는 뭐가 남았느냐고.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번 겨울은 “나를 마주하고, 너를 이해하고, 우리를 고민’한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에서까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해오면서 '대학생'이라는 꼬리표는 부채감이었다. 내 주변에 대입 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대학생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며 대학생 운동에 거리를 두어 왔다. 그러다 안녕들 대자보 열풍 때 학교를 가득 메운 대자보들을 보고 나서야 '대학생이라고 안녕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안녕하지 못했다. 나 역시 머릿속으로는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끊임없이 학점이나 스펙에 불안해야 했고 경제적인 문제에 허덕였다.
  대자보를 읽고 쓰면서 나는 청소년 인권운동 안에서 대학생이고 비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상처들과 부채감, 대학교 안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외로워했던 내 모습, 다른 대학생들과 난 다르다고 구분 짓던 기만의 날들을 제대로 마주했다. 나름대로 아프고 고단한 시간이었는데 요상하게도 대자보를 쓰면서 마주하고나니 스스로 많이 치유되었다.
너를 이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겨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때가 <자보가 말을 건다>라는 성토대회 행사였다. 모인 학생들이 한 명씩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털어놓는 성토대회를 마무리하고는 본관에서 파업 중이었던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다. 그 때 좁은 행정실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들어가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데, 청소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서로 미안하다, 고맙다, 힘내라며 모두 함께 펑펑 울었다. 그 순간 ‘내가 이 학교의 구성원이구나, 내가 함께할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우리가 서로 위로가 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곁에 있는 ‘너’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발견이었다. 동시에 원래 가까이 있던 주변 이들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우선 우리 가족. 취업을 준비하는 언니의 삶이 우리네 20대의 고민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고, 함께 행동할 기회를 만들어 가고 요즘 어떤지 묻고 들었다 고등학교 친구가 밀양 희망버스를 타지 않았냐고 먼저 물은 적도 있었다. 한 번도 나와 함께 사회문제를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친구였는데, 자신만의 '안녕'을 위해 선택했던 삶이 부끄럽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를 토로했다. 이 ‘발견’들은 ‘이해’로 이어졌다. 이들은 왜 안녕하지 못한지, 왜 그렇다고 말하지 못해왔는지 말이다. 이전보다 이런 이야기들을 훨씬 많이 듣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안녕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운동을 계속 해오면서 내뱉는 언어들이 점점 너무 쉽게 당위를 말하고 단정적으로 변해갔다. 때론 그런 내 목소리가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대자보 열풍을 통해 나는 추상적인 언어를 구체적인 삶으로 채우고, 우리가 함께 안녕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했다. 예를 들어 입시경쟁이든, 취업경쟁이든, 결국 이 사회의 경쟁체제가 문제라는 말은 쉽게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대안을 이야기할 때는 연결해서 말하기가 늘 어려웠다. 청소년은 청소년대로 경쟁을 말하고 대학생은 대학생대로 경쟁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지닌 문제를 이야기 하고 대학이란 공간의 허울을 벗기는 동시에,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에 있는 문제들을 연결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또 무엇보다 대자보에 응답한 사람들의 성토를 보면서 자신들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 혹은 이를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생각을 얘기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공간도 많고, 그 말을 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얼어붙은 공론장을 깨나가야 한다

봄, 또 다시 안녕을 묻다.
뜨거웠던 겨울이 지나 봄이 왔다. 이제 지난 겨울만큼의 열기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안녕하지 못하다는 응답이 터져 나오고 있고, 이조차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럴 공간이 없어져버린 사람들이 많다. 다행인 것은 동시에 지난 겨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대학생, 청소년, 성소수자, 여성, 노동자, 모든 이들 입에서 터져 나온 “아니요, 저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응답과 그 응답에 각각 모인 이들이 함께 한 행동들, 그 정치적 경험들을 우리는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때의 가장 큰 힘은 이 자리에서 나의 안녕과 너의 안녕 그리고 우리의 안녕을 묻고 함께 안녕해질 방법을 모색했던 것이다. 대단한 몇 사람의 힘이 아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 힘. 이 자리에서 시작하는 ‘자기-운동’의 힘이었다. 나는 그 힘을 믿는다. 그리고 이 힘을 막는 것부터 바꾸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힘을 믿게 할 것이다. 그 힘이 진짜 봄을 가져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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