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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해외동향] 칠레 학생운동 일지

2014.04.16 14:57

진보교육 조회 수:489

[해외동향]

칠레 학생운동 일지                                
- 대신에 넋두리 늘어놓기

해외동향분석팀

  최근 몇 년 간 칠레에서 고등학생, 대학생이 폼나게 데모했잖아? 그래서 ‘기운 나는[또는 부러운]’ 소식을 전해 주자는 생각에서 칠레 학생운동 일지를 정리해볼까 했지. 아니면 잘 분석해놓은 글이 있다면 여기 옮겨 싣거나. 하지만 인터넷 여기저기 파도타기를 하고나니까 ‘일지 정리’는 별것 아니겠다는 생각이 대뜸 들었지. 한 사회의 운동 전체흐름을 살필 때는 ‘일지’로 일람하는 게 의미가 있지만, 이것은 단일 사안이라 무슨 역동적 확산, 반전, 고양[高揚] 이런 것을 보여주기가 어렵거든.
  좋은 분석글이 있다면 좋겠는데 글쎄... 사회정치 일반론을 말하는 글 중에야 깊이 있는 것도 많지만 특정 국가를 살피는 글은 그런 게 별로 없어. 중국 연구자는 대여섯 있겠고, 언론보도도 많지만, 칠레 같은 남미대륙의 경우는 대학 스페인어과 교수들 몇 사람 글밖에 참조할 게 없지. 그런데 그게 ‘일반론’ 수준보다 좀 미달이야.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참조할 전문연구자도 없는 것 같으이. 사실 그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겠지. 일본처럼 제국주의를 해본 나라에서나 세계 각국에 대한 연구자를 양성할 실력이 되니까 말이야. (작년초 아프리카 말리에 이슬람반군이 일떠나자 프랑스가 곧장 침략한 일이 있었지? 좀 뒤져봤더랬는데 한국어 자료는 물론 없고, 사건 소식을 다룬 아프리카인들의 사이트가 몇 개 있고, 심층분석은 중동 지방의 몇 개 나라의 대학교수들이 해놨더군. 알제리와 이집트... 그 동네에서 상대적으로 좀 살만한 나라들의 지식인이지)
  칠레 학생운동 관련해서도 중남미 연구자의 글 두 개만 눈에 띄더군. 제법 긴 글이 하나 있었는데[서울대 중남미연구소 우석균] 이것저것 짚기는 했지만 명쾌하지가 않아.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넋두리나 늘어놓을까 해.

  2006년과 2011년에 크게 터졌더군. 2012년과 2013년에도 학생 데모는 계속 있었던 것으로 봐서, 올해에도 데모가 이어지겠지. 하지만 무슨 계기가 부가되지 않는 한, 2011년처럼 크게 폭발할 것 같지는 않아. 새로운 전환점이 생긴다면 모를까. 최근 누가 “칠레 애들은 데모도 하는데 한국 중딩이 고딩이들은 뭐하고 자빠졌냐?”고 핀잔을 주는 글이 있어서, 좀 기대감을 갖고 뉴스를 들여다 봤는데 2006년의 경우를 빼고는 고딩이 중딩이들이 선도한 것은 아니더군. 좀 위안이 됐지. 어느 나라든 고딩이 중딩이는 대학생 언니들을 따라나서는 거지, 선도할 나이는 아니거든. 그래도 2006년에 고딩이들이 치고나간 게 어디냐. 2011년에도 따라나섰고. 우리더러 ‘분발하라’고 꼬집는 것은 분명하지.
  2006년 5월에 칠레 고딩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백만 명[!]이나 데모를 벌였대[이른바 펭귄혁명]. 처음에는 수도인 산티아고 몇몇 고등학교 애들이 점거농성을 벌였다는군. 요구는 소박했어. 버스와 전철 탈 때 학생할인을 해줄 것과 대학 진학 위해 치러야 하는 졸업시험 수험료 40달러[4만원]를 면제해 달라는 거였대. 하지만 학부모와 교사, 노동단체의 지지를 받자 기운이 나서 요구가 확대됐지. 학교간 빈부격차 해소하고 교육시설을 늘려 달라!
  그래, 처음부터 겁 없이 큰 얘기 꺼낼 수는 없었겠지만, 이 애들을 평소에 들끓게 만들었던 게 뭔지 알겠어. “왜, 저 부자애들 다니는 학교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데, 우리는 고장난 선풍기 밖에 안 돌아가냐!” 이것, 사람이면 누구나 품을 실존적 감정이지. 칠레는 피노체트 정권 이후로 학교운영을 아예 시도[市道]에서 맡고, 중앙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체제로 돌아가 버렸던 거야. 수도권과 지방 학교가 서울쥐, 시골쥐로 갈린 거지. 또 부잣집 도련님들의 사립학교, 중산층 자식이 다니는 보조금 학교[한국으로 치면 半자립형 사립고], 서민의 새끼[?]가 다니는 공립[똥통]학교로 완전 차별이 돼 있고. 한국에선 박정희와 그 이후를 파쇼독재와 민주화 시대로 구분하지만 거기서는 피노체트와 그 이후를 파쇼독재에서 자본독재로 넘어간 것으로 구분한다는군. 피노체트 이후에 상대적으로 덜 우익적인 정권[한국의 민주당 비슷한 것]이 들어서기도 했지만, 피노체트가 말년에 ‘중앙정부가 학교에서 손 떼기’를 저질러 버린 터라, 그것을 쉽게 되돌리지를 못한다는군. 그 칠레판 민주당정권이 교육환경개선에 1.3억 달러 쓰겠다고 고딩이들을 무마하면서도 ‘무료통학 요구’는 3.6억 달러나 든다며 거부했대. 칠레의 돈줄인 구리값이 치솟아, 나랏 곳간이 넉넉했는데도 말이야.
  그해 1월, 나는 프랑스 파리에 견학가는 팀을 따라갔다가 마침 ‘청년고용법’ 반대시위가 터져나오던 때라서 시위장소에 구경갔더랬는데 행진대열 중에 고딩이들이 있더라고. 걔네는 행진 중에 노래는 안 부르는데[노래를 즐기는 문화가 아닌 듯 싶음], 구호 외치는 게 아주 리드미칼하고 특히 애들은 피크닠 나온 것처럼 즐거운 표정들이더라구. 행진하는데 춤추면서 걷는 거야. 그건 참 좋았는데 애들이 경찰하고 맞붙는 치열한 경험을 해본 것 같지는 않았어. 그런데 칠레에서는 경찰한테 수백 명이 붙들려 가고, 프랑스보다 더 치열한 것 같애.
  2006년 칠레 고딩이들의 시위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짚지는 못했어[소박한 요구운동]. 하지만 여타 사회운동이 분발하게 만든 계기가 됐고, 그 사회운동의 고양이 다시 대딩이들을 분발케 만들어서 2011년 대딩이들의 시위로 귀결됐지. 예전에 대딩이들이 학생운동을 근사하게 벌여봤던 것은 오래 전 1968년 ‘대학개혁’ 요구운동이었지. 그때는 정당들의 영향을 받아서 정당별 색채를 드러냈어. 그뒤 반독재 정치투쟁을 벌인 것은 칠레나 한국이나 똑같았지.
  그런데 2011년의 교육개혁 요구운동은 기왕의 정치투쟁과는 접근법이 달랐대. 우선 정당들의 지도를 받지 않았대. ‘공산당’이라고 있지만 무슨 신선하고 뚜렷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가 아니었고, 기성 정당들은 죄다 불신의 대상이고. 젊은이들의 85%가 지지정당이 없고 최근 대선 참여율이 극도로 낮았고.... 진보정당이 사그라들고 부르주아야당은 지리멸렬한 한국도 동병상린이지?
  정치투쟁 냄새부터 피우는 것을 조심해서 ‘스릴러[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레이디 가가 퍼포먼스’ ‘키스 퍼포먼스[산티아고 광장에서 4천쌍 젊은이가 30분동안 키스 나누기]’ 같은 것으로 밑자락을 깔았지. 시위운동을 벌이는 한편으로 시위를 잔치[카니발]로 만들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다는 거야.
  지배세력은 학생운동을 무슨 강경이념투쟁인 양 몰아붙이려고 했지. 대학생의 대변인으로 떠오른 ‘바예호’가 좋은 표적감이었네. 칠레대학에서 여성으로서 두 번째로 학생회장이 된 바예호는 [공산당에 대한 대중의 불신, 실망을 잘 알고 있는] 공산당원이고 부모도 공산당 활동가였다는데, 이것을 트집 삼아서 빨갱이딱지를 붙이려 한 거지. 미국의 자본가 대변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바예호를 ‘빨간 기저귀를 찬 아기’라고 비아냥거렸다지? 그런데 칠레 민중의 민심이 워낙 지배세력한테 등을 돌려서 이런 딱지붙이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군. 학생들의 교육개혁 요구에 공감한다는 국민이 80%나 됐으니 말이야. 바예호는 한때 칠레에서 네 번째로 영향력 있는 인물로까지 떠올랐다네. 그러니까 이것은 부르주아들이 멋대로 주무르는 경제와 정치에 의해 ‘소외돼 버린 사회’가 학생들을 대변자로 하여 대반격에 나선 것이지. 1960년의 4.19혁명때 일반 민심이 온통 대학생들을 지지했듯이. 아, 칠레 사회여! 학생운동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까.  
  여기서 잠깐 ‘교훈’을 하나 챙기고 가야지. 우리가 ‘참교육’하려고 애쓴다지만, 제자들은 다음 문제이고 제 자식부터 제대로 의식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다들 ‘바예호’같이 다부진 자식놈을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거대한 운동이 일어난 덕분에 걔가 단련됐던 것이지만 말이다. 예전에 중남미에서 변혁운동 국제캠프가 있었는데 거기 참가한 일본 젊은이들은 전부 다 옛 활동가의 자식들이더라구. 대중운동이 무너지면 제 자식들을 통해서라도 명맥을 이어야하는 거지. 어때, 쓸쓸한 이야기인가? 대중운동이 제법 일어난다 해도, 똑똑한 후세는 ‘1 대 1’ 교육으로 키워야 하는 것 아닐까?  
      
  칠레 대딩이들은 작년에도 10만 명 넘게 시위에 참여했대. 한번 불붙은 사회운동이 금세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말해 주지. 하지만 2011~2013년의 저항이 뚜렷한 승리를 가져오지는 못했어. 이 운동을 받아안을 정치세력이 부재해서 그러겠지. 바예호는 공산당도 [환골탈태해서?] 이 시대에 맞는 뚜렷한 프로그램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는데, 세계 어디나 대안세력이 지리멸렬한 사정은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네.
  칠레는 피노체트가 물러난 뒤[1990년]로 20년간 ‘좌파’ 정권이 집권했다가 2010년 우파[파녜라]에게 정권을 넘겨줬대. 그 반발로 민중저항이 일어났고, 그 덕분에 작년말 다시 전[前]대통령 바첼레트가 당선됐대. 하지만 ‘중앙정부가 학교에서 손 떼기’는 1990년부터 시작됐으니 바첼레트를 ‘좌파’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의 인플레’가 아니겠어? 걔네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의 ‘좌파’ 정권만큼도 ‘좌파’스러운 구석이 없다고 봐야겠지? ‘좌파’라는 용어는 현실을 덮어가리는 연막탄으로 너무 남발되고 있어. 내가 앞에서 소개해줄 만한 정치평론이 참 드물다고 말했던 것은 우선 ‘용어 인플레’를 벗어난 글이 드물기 때문이야. 바첼레트와 파녜라의 차이는 민중이 반발할 때 그 눈치를 쬐끔은 보는 사람과 거의 무시하는 사람의 차이일 뿐이지, 둘다 우익 부르주아정권이라고 불러야 옳아. 칠레의 이른바 ‘좌파’ 정권은 사민주의와 발가락도 닮지 않았어.  
  정치지형이 이래 놓으니까 당장 뚜렷한 투쟁의 열매를 얻지는 못해도, 보이지 않게 주체를 키워내는 것이 소중하겠지. 칠레 사람들 중에는 그런 점에서 정권과 학생의 싸움이 ‘무승부’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는데, 칠레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모르겠다’가 옳은 답이겠지? 바예호는 “우리는 ‘점령하라, 월스트리트’ 시위처럼 즉흥적인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 칠레의 불평등에 대한 심층적 분석에 의거하고 있다”고 대견스런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이들을 믿어볼 구석이 더 있긴 하지만 말이야.

  자, ‘칠레사회 들여다 보기’는 이쯤하고, 칠레 대딩이 고딩이와 우리 애들을 어찌 견줘야 할까? 걔네는 원래 팔팔한 놈들이고 우리는 원래 수줍은 놈들? 우리도 명박이때 고딩이 대딩이들의 자발적 진출이 있지 않았냐? 그런데 우리는 사그라들었고, 다시 또 일어날지 어떨지 알 수 없는데 비해, 걔네는 [당장 뚜렷한 승리를 얻어내지는 못하더라도] 동력이 붙어서 한참 갈 것 같아.
  왜 이렇게 다른지를 누구라도 명쾌하게 밝혀낼 수는 없을 터이지만[복합적 다층적 원인], 생각해볼 지점은 있어. 걔네는 나쁜 짓[교육 민영화]을 피노체트가 저질렀어. 물론 ‘좌파’ 정권도 별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교육개혁운동이 ‘[피노체트 시대에 대한] 과거 청산’이라는 더 큰 명분을 얻고 있지. 작년에는 ‘판사 협회’가 “우리, 옛날에 잘못했어요!”하고 반성문을 썼다는군. 우리는 신자유주의 도입의 나쁜 짓을 민주당 정권이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 ‘악역’을 맡는 조건으로 미국이 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수락했던 것 아니었나? 수구보수세력은 싫지만 신자유주의는 꼭 나쁜 것 아니라고 한때 뒤죽박죽의 생각을 품었던 사람들이 전교조에도 꽤 있지 않았던가.  
  우리 애들은 왜 주눅들어 있을까? 우선 잘 나가는 자본주의 국가로서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또는 유지]’의 환상이 대중에게 훨씬 강하게 각인돼 있다는 사정이 있다. “한류[韓流]가 사랑받고 있는 세상인데, 우리는 얼마나 잘 나가는 나라냐. 지구촌의 경제 사정이 어렵다지만, 우리는 아마 잘 될 거야!” 나는 ‘참교육’ 교사들이 이 환상을 깨는 과업을 더 무겁게 받아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환상을 좀더 떨쳐내지 않고서 아이들이 발랄한 주체로 커나가기는 어렵다. “한국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니? 우리는 ‘기회의 덫’에 걸려 있어!”

  또 아이들이 또렷이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를 규정하는 사회정치적 조건이 남미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돼. 거기는 미국과 상당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 대륙이야. 이웃나라들과 힘을 합쳐서 미국의 헤게모니에 맞서겠다는 용기들이 있지. 아[亞]제국주의를 꿈꾸는 브라질 지배세력도 노무현처럼 ‘반미 발언’을 가끔 해야 이웃나라에 칭찬을 받는 정도이니, 민중을 옥죄는 사회정치적 그늘이 엷은 편이지.
  우리는 어떤가. 미국과 세계자본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보자는 상상력이 아직 터무니없이 약하지 않은가? 문재인과 김한길과 안철수는 노무현만큼도 ‘소신’ 있는 발언을 할 것 같지 않다. “아베, 저 짜아식!”하고 분노할 줄 알면 “오바마, 저 짜아식!”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이먹은 어른들의 정치적 상상력이 다 막혀 있으니 애들이 팔팔해지기를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유럽의 어떤 학자는 ‘한국과 동유럽에서 [반미를] 기대한다’고 했다. 서유럽과 일본은 미국과 붙어 다녀야 경제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이해[利害]관계가 너무 막강하다. 그 단물이 너무 달콤하기에 “미국패권? 저리 꺼져라!”하고 감히 퇴짜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쳐야, 민족의 이익과 부합한다는 평범한 상식을 노무현 정권도 알고 있었다. 감히 미국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반미 없이 지금의 우리 정치지형을 털끝이라도 바꿔낼 수 있는가? 한미동맹에서의 해방 없이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의 참혹한 역사에 응답할 수 있는가?
  우리 애들은 칠레 애들보다 훨씬 팔팔하고 대담해질 구석이 사실 많다. 이 나라는 청년 김구와 한용운을 배출했고[두 분 다 동학혁명에 참여], 유관순과 이재유와 이현상과 장기려와 전태일과 김창수가 살아간 나라다. 참 독한[?] 분들 아닌가. 나이 처먹은 사람들이 그 역사를 온전히 물려줄 소임을 게을리 하지만 않는다면 애들은 언제건 주체로 큰다. 문제는 애들이 아니라 헛 산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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