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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담론과 문화] 3. 농경민의 사랑과 전쟁

2014.10.06 14:22

진보교육 조회 수:579

[담론과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농경민의 사랑과 전쟁

김윤주/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아기가 없는 부부생활을 7년가량 했다.(지금의 남편과 한 건 아니다) 그 때 내가 배우자에게 느낀 모든 감정과 판단들은 아이를 키우는 여느 아내들의 그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매일 보는 남편을 뭐 그리 빨리 퇴근하라고 닦달들인지, 그 누구랑 해도 상관없을 자질구레한 일상 얘기를 왜 굳이 업무에 지친 남편에게 미주알고주알 하지 못해 대화 갈증을 호소하는지, 혼인 서약이 무슨 소유권 등기부 등본이라도 되는 양 별거 아닌 일거수일투족에 배타적 독점권을 숨막히게 주장하는지......듣노라면 솔직히 그녀들의 갈증보다 그녀들의 남편이 처했을 피곤함에 내 공감능력은 발동되었고, 여태들 저러는 걸 보면 다른 집 남편들은 어지간히 사랑스럽고 듬직하나보구만 싶었다.
  그녀들과 비슷한 일과를 보내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유목민이었고, 그녀들은 하루하루 그날치의 자기 밭을 일구는 농경민이었다. 유목민이 아무리 온화해봤자 농경민의 눈에는 거칠고 무분별해 보이며, 농경민이 아무리 화통해봤자 유목민의 눈에는 배타적이고 억압적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가까이 교류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싱글이거나 남자였고 그게 마음 편했다. 의식을 규정하는 건 기혼이라는 신분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이며,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여서, 자유롭고 널럴했던 삶을 살아가던 우리의 대화꺼리는 문학, 시국, 삶과 사랑 같은 것이었고, 결혼 기간동안 생에 대한 유목자적 태도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의 남편은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대화를 몹시 즐겼으며, 나를 구원자마냥 중히 여겼으므로 농경민이 공감할 만한 풍파는 없었다. 선량하고 이지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밀도 높은 감성적 의존에 그토록 피로감을 느낀 것은 그의 우울하고 예민한 기질이 내 본성과 맞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지만, 여튼 그 때 내가 원한 것은 우리의 느슨한 생활에 걸맞는 독립성과, 그 독립적 쾌활함이 바탕된 유희적 관계였다. 어른 두 명 살림이래 봐야 혼자 다 처리해도 시간과 기운이 남았기 때문에 별 잔소리 없이 혼자 다 했다. -잉여의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전 방위적 관계형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소통욕구나 스트레스는 다 해소 가능하니까. 그래서 애가 생기면 안 싸우던 부부도 죽어라 싸운다. 상대방에게서가 아니면 해소할 출구가 없으니까. 잉여율 제로인 육아생활 중 깨달은 바임 -. 내가 남편에게 바란 것은 오직 매력 있는 한 명의 이성이었다. 근데 이게 참 애매한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친화성 –적극적 가사 분담이나 공구나 기계를 다루는 능력같은-, 신체적 활기, 생에 대한 낙관적 시선 같은 것들이 내가 그에게 아쉬웠던 바였지만, 그건 도움이 절박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호감을 유지하려는 관계의 식량으로써 필요한 것이었다. 몇 번 얘기해 보았지만 별로 개선되지 않고 타고난 성향 같아서 조용히 체념했다. 상대에 대한 내 호감을 유지하자고 대판 싸운다는 게, 뭐랄까 관계를 위해 관계를 망치는 것 같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바꾸라는 모순같잖아? 시간과 기운은 충분했으니까.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사항전을 불사하지 않은 건데, 평화로운 가운데 내 마음은 조용히 식었고 그렇게 촛불의 심지는 꺼졌다. 절박하지 않다 해도 그 때 그 때 치열하게 싸웠어야했다. 상대방을 봐주느라 7년간 내가 뱉은 한숨은 소소하기 그지없었는데 그게 모이고 모이니 인생의 크나큰 고통을 고스란히 상대에게 안겼다. 단 둘만 존재하는 공간이란 언제나 밀도 높은 감정 이입의 장이었기에 이심전심 당연 그도 내 맘 같으리라 여겼으나 그와 헤어지는 과정에서야 그런 내 방식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건지 알았다. 큰 싸움 한 번 안 해본 채로 다정한 줄로만 알았던 넘버원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을지. 그 죄과로 나도 참 괴로웠다. 맹세컨대 다시는 이런 방식의 이별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심 때문인가? 지금 남편과는 싸워도 너무 싸워~~~. 했다하면 결사항전! 엉엉엉 고래고래 대첩에 대첩을 거듭해도.....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첩의 배가 남았사옵니다. 거북선의 무한생성, 불멸의 이순신~ 상대방이 측은해져서 혼자 체념하고 말았던 딩크 때의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시작은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도 일단 싸움상황에 접어들면 남편이 오랑캐로 보인다. 무찔러야 내가 살아!
  왜냐, 갓난아기를 키우는 부부가 싸운다는 것은 뭐 고상하게 관계의 정치적 올바름이나 매력상실 같은 것 때문이 아니고, 고단하고 신경질 나 죽겠기 때문이니까.

  싸움의 패턴 : 남편이 곰살맞게 잔소리함 – 그러나 수용 여력 없는 나는 명백한 도발로 간주, 격렬한 저항감에 휩싸여 강력 규탄하며 수용 불가를 선언 – 전쟁 - 정국 경색 – 서로의 피로를 위로하고 이완해주던 관계성 소멸 – 갈 곳 잃은 스트레스의 폭주 – 자아붕괴 – 화해
  
  최근엔 평소 집에서 아기 사진을 핸드폰 말고 디지탈카메라로 좀 더 찍고, 나들이 때는 카메라도 아기용품 가방에 꼭 좀 챙기는 게 좋겠다는 잔소리를 신랑이 반복하는 통에 터졌다.  남편은 이런 류의 시시콜콜 아기자기한 의욕에서 기인하는 잔소리가 많은 타입인데, 그때마다 나는 폭발해버린다. 본인으로선 관심과 제안이지만, 들어주자면 신경을 써야하는 요구들인데다, 사진을 중시하는 거야 본인이지 내가 아닌데, 본인은 뭐하고 안 그래도 아기가방 챙기느라 정신없는 내 손발을 빌어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잔소리도 상대 상황 봐가며 하는 거지 심신 번아웃 상태인 나한테 어쩜 저러고 싶을까. 나의 이런 분노는 그가 가족에게 지적이나 요구를 하는 것을 참으로 스스럼없이 행하는 데서 기인한다. 생활영역에서의 간섭과 통제는 나로선 상당히 금기시하고 자기검열을 엄격히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잔소리나 요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은 그가 완벽해서라거나 그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는 걸 당연시하고,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지 않고서는 일절 가족에게 입을 대지 않는 게 몸에 밴 나로서는 그가 저럴 때마다 짜증나고 부담스러워 미치겠다. 의욕이란 것은 ‘자기가 뭔가를 해내고자 하는 욕구’인데, 왜 ‘와이프가 이렇게 하도록 만들고자 하는 욕구’를 의욕이라고 착각하는지도 한심하다. 그건 의욕이 아니라 불만표현 잔소리라고 하는 거다. 지켜보고 도움 주는 게 관심이지, 할 때까지 하나 안하나 지켜보고 계속 제안하는 건 간섭과 지배라고! 불만과 간섭은 최대한 신중하게 표현해야 하는 거고, 특히나 서로가 피똥 싸며 최선을 다하는 비상상황 땐 걍 삼키는 게 예의고! 엉?
  음.. 이게 폭발할 때의 내 속마음이지만, 이렇게 차분하고 냉정하게 말해보질 못했다. 그분이 오시니까...분노조절 장애님께서....

  "아놔 진짜 성격 이상하네! 걍 너가 하고 싶은 일은 너가 해! 왜 매번 남을 조종해서 하려고 드냐고! 나는 뭐 너가 완벽해서 암말 안하는 줄 아냐? 나는 힘이 남아돌아서 맨날 너한테 생글거리는 줄 아냐? 제발 생각 좀 하고 말을 하라고! 민주적이고 지각 있는 척은 혼자 다하면서 가부장주의가 아주 몸에 뱄어, 가만 보면!“

  무방비 상태로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맹공격을 당한 신랑도 화가 나기 시작한다. 평소 우리는 워낙 웃음도 많고 서로 살가운 편인데, 오빠오빠 하던 호칭도 펑, 걍 너! 이런 폭발이 그에겐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보일 터.
  “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상냥하던 네가 이렇게 반응할까, 미안해, 내가 정말 몰랐어..그리고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내색 않고 내 맘 편하게 해줘서 고마워".

음...이게 내가 바라는 말이지만..........이렇게 안하니까 오랑캐인 것을!

“네 반응이 너무 민감해서 이제 너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겠다. 그래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관심 끌게. 나도 딴 남자들처럼 걍 바깥 일만하고 입 닥칠게. 알았다, 나도 사진 하나도 안찍는다. 그만 얘기하자!”
  
그만 얘기 좋아하네, 전쟁이다!

  그러나.....아기를 키우는 부부가 총력전을 펼쳤을 때, 열 두 척의 배가 남아있는 쪽은 언제나 남자 쪽이다. 남자는 자기 방문이나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릴 수 있지만, 남은 여자는 아기를 두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남편이 그 카드를 쓰는 순간 나의 거북선은 전소된다. 울분을 머금은 채로 혼자 남아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웃어주다 보면 분노는 어느덧 설움으로 바뀌어 엉엉엉~유아기 때나 하던 소리내 울기가 절로 나온다. 기세 등등하던 살기는 간데없고 전의마저 상실하여 급기야 자아를 내려놓고 우는 적장의 모습에 오랑캐는 당황하고 연민을 느낀다. 눈물을 닦아주며 주저앉은 어깨를 일으켜 세워 나의 거북선을 함께 고쳐주는 모습에 그만 마음이 녹은 이순신은 갑옷을 벗고 백의종군한다.  전쟁 끝~~~~~~~~. 이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몇 달 후 다시 오랑캐의 도발, 나의 풀 밟기~패턴반복~~~~~~~~

  평소에 아기로 인해 행복해하고 쾌활한 분위기의 나를 보는 그로서는 내가 육아고충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구실삼아 자기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진실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아기를 돌보며 처리하는 모든 일들은 대부분 영혼나간 신의 손놀림으로 해치운다. 손은 청소와 설거지, 요리를 하는데 내 눈과 입은 내 다리 붙잡고 울고 있는 아기의 것이다. 남편이 가사노동을 분담해주면 좋겠지만 그의 일은 사실 굉장히 격무라서 시키기 안쓰럽다. 잔소리할 것도 천지지만 꿀꺽 삼킨다. 남편은 그렇게 자기가 잔소리할 때서야 터뜨리지 말고 그 때 그 때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하지만, 한두 개여야 말을 하지. 그걸 다 고치게 만드느라 서로 신경 곤두세우는 것 보다 내가 해버리는 게 편하며, 집에서 몸에 밴 습성을 고친다는 게 바깥 일 하는 사람으로선 매우 괴롭다고 여긴다. 하루 세 시간이나 자나? 피곤해 죽겠지만 좀비생활 1년, 만성적으로 피곤할 뿐 졸립다는 감각 자체를 잃었다. 지치고 힘들지만 우울감을 가진 채로는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는 감정노동과 돌봄노동 24시이기 때문에 쾌활성 자기강제, 도파민 강제 생성으로 괴력 유지~. 유일한 릴렉스는 신랑과의 정다운 관계로부터 느끼는 포근함과 웃음이므로, 그 해소의 순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어서 재밌고 널럴한 말들로만 함께인 시간을 채우고, 지적이나 부담스런 요구 같은 건 가능하면 않는다. 이건 그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기도 하다. 지적하고 요구하려면 그때마저 신경을 곤두세워야지 않는가. 그래도 거지꼴인 나를 한결같이 예뻐해주고, 바쁜 와중에 아기 목욕 잘 시키고 밥도 잘 먹이고 기저귀도 자주 갈아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이게 왜 고마워해얄 일인지 모르겠지만 워낙 안 그런 남자들이 많다니까 안 그런 남자가 아닌 게 정말 고맙다~)  새벽녘에나 겨우 잠든 아내 땜에 아침도 혼자 차려먹고, 다림질도 직접 하며 살뜰하게 챙김받지 못하는 남편이 안쓰럽고 미안하니까 (이게 왜 미안해야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워낙 안 그런 여자가 많으니, 안 그런 여자가 아닌 게 정말 미안하다.~) 난 그걸로 됐다. 근데...대체 뭐냐 넌!? 내게 육아시절은 해내느냐, 못하느냐의 pass or fail의 문제로서 나의 목표는 해내는 것이다. 의연하게. 행복감을 잃지 않고. 그런데 대체 너는 얼마나 살만하길래 ‘더 잘....’을 꿈꿀까 괘씸해지는 것이다. 그것도 더 향상된 내 노동력을 빌어 더 잘해보기를 도모하려 하다니, 이렇게 괘씸할 수가! 대부분 해내는 것이라 해서 그게 별 거 아닌 게 아니다. 대부분 해낸다 해서 군대 생활이 별 거 아닌 게 아니듯이. 군 기간 잘 보내고 싶으면 위문편지나 많이 써줄 것이지, 군대있을 때 자격증을 따라, 복근을 만들어봐라, 어째라며 여친이 군대 있는 너를 살살 볶아대면 뚜껑 안 열리겠냐고요~~~
  
  또 육아 고충은 표현하기 애매한 점이 있는데, 아기로 인해 그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가슴 벅찬 기쁨과 폭풍피로, 분신탄생의 감동과 자아소멸의 상실감 속에서 자가진단은 갈팡질팡한다. 쉼없이 아기를 돌보느라 지치고 우울한데, 아가야 이게 너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죄스럽기 때문에, 우울감은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억압하게 된다. 아기를 보는 동안 나는 없지만, 나라는 존재로 가득찼던 그 때도 별 볼일 없는 일로 소일했던 별 볼일 없는 존재였으므로 아까울 것 없지. 아! 근데 제발 좀 별 볼일 없는 존재고 싶다!! 뭐 이런 식으로 갈팡질팡~~~~남편이 이쁘게 굴 땐 행복 100쪽에 나를 포지셔닝하고, 남편이 밉게 굴 땐 지침 100의 나로 마음이 훅 가는 게 육아 기분변덕증이다.  
  어쩔 때는 주말에 놀러가자는 말에도 울화가 치밀기도 했는데, 왜냐면 그 시간만이라도 혼자 아기를 좀 봐준다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청소 빨래라도 함께 해놓고 나가야 나는 일이 밀리지 않는데, 그러지도 않으면서 바리바리 아기용품 챙겨서 나갔다오면 그 나들이 시간만큼 나는 그것들을 해치워야 하고, 남편은 주말에 못한 일들을 하기 위해 주중 야근이 늘어나고, 나는 또 그만큼 혼자 목욕시키고 혼자 재우고, 이렇다할 지구어 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아기와 외계어만 주고받다가 잠을 청해야하기 때문에 그럴 거면 걍 서로 일 밀리지 않게 각자의 일을 처리하자는 생각이 굴뚝같다. 내 이런 마인드가 남편으로서는 많이 섭섭할 것이다. 왜냐면 본인은 격무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애틋한 맘인데 나는 사무적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것. 하지만 늘 '둘이 함께'인 나는, '셋이 함께' 보다 '나 혼자'의 시간이 절박하다. 그 시간이 채워져야 비로소 셋이 함께의 욕구가 생기며, 이것은 아기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원초적 생존욕구라는 것을 누누히 얘기해야했다. 분리 수거나 장을 보는 것은 남편이 기꺼이 해주는 일이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그것을 하겠다고 요구하는 나를 보았다. 왜냐면 그걸 하는 잠시라도 혼자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다니고, 다정한 남편은 출근길엔 분리수거를, 퇴근길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뭘 장을 봐주면 좋겠느냐고 묻는 일상은, 제법 괜찮은 남자들이 그리는 예쁜 그림이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색연필을 들 기운이 나야한다. 그러니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을 다오! 너의 예쁜 그림에 나를 동원하지 말라. 이런 심정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대첩을 치룬 결과 깨달은 것은 남편은 오랑캐가 아니라 지극한 농경민이라는 것이다. 유목자적 사고방식으로 셋팅된 내 뇌는 그의 잔소리가 나의 말고삐를 함부로 낚아채려는 노략질로 여겨지기에 분개하지만, 그로선 "오늘 바람이 분다네? 그러니 고추밭에 지지대를 단단히 붙들어 놓는 게 좋겠어" 라고 일러주는 말이다. “그래? 근데 난 지금 논일하느라 정신이 없네? 이따가 자기가 고추밭에 좀 가봐”라고 말했다면 그는 흔쾌히 갔을 사람이다. 금쪽같은 내 외출시간에 자꾸 전화를 걸어 어디니, 뭐하니, 아기 목소리 들려줄게 같은 말들이 내겐 빨리 와, 너에겐 너를 기다리는 아기와 내가 있다구 라는 독촉의 메시지로 들렸으나 그의 의도는 “나는 늘 너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라는 격려를 주고싶은 것이며, 나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스스로 해보이는 것이었다.
  좀전에 오늘도 야근이란 전화를 받았다(주말에 우린 나들이를 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응, 일 잘하고 와."라고 짧고 명랑하게 대답했고, 그는 언제나처럼 "치~윤주는 서운해하지도 않아"라고 섭섭해 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밖에 있을 때 그의 전화를 받으면 외출해있는 마음이 무겁고 쫓기기 때문에, 그도 혹여 그럴까 아무렇잖게 말할 뿐, 남편을 기다린다. 이심전심은 역시 어려워~. 오늘도 혼자 아기를 씻기고 재운 후, 아기가 불빛에 깰까 이불을 뒤집어쓴 채 지구어에 대한 허기를 스마트폰으로 달래다 잠들 것이다. 나의 배려를 무관심으로 해석하여 늘 서운한 남편, 그의 관심을 요구로 해석하여 늘 부담스런 아내. 그러나 나의 농경생활이 해를 거듭할수록 이 또한 변화하리니, 누구에게 해도 상관없을 것 같던 일상얘기를 굳이 남편에게 하려고 남편 기다리는 사람 여기 한명 추가요~. 오늘 내가 유일하게 겪은 대상이자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우리 아기이야기를 가장 재밌게 들어줄 사람,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이 산천초목에 새겨진 이 나라에서 즐거이 새끼 이야기를 해도 내 맘 죄스럽지 않을 사람, 남편. 나도 조금씩 그 때 그녀들의 심정에 가닿고 있다.    

  여전히... ‘내 남편 건들지마 내 꺼야, 내 꺼야’를, ‘내 새끼 무시하지 마, 내 꺼야 내 꺼야’를 외치는 여자들은 꼴사납지만 이제 어떤 심정인지 짐작할 순 있다.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쟁을 치르나, 내 몸이 아프나 하루치의 밭갈이를 해치우면서 굳건히 지켜낸 경작물 아니던가. 혹여 서리라도 당할까, 바람 불어 떨어질까 단속하는 그 마음. 우리 모두 릴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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