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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8(2015.10.8. 발간)


[담론과 문화] 윤주의 육아일기

여혐 vs 여혐혐


김윤주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18. 여혐시대에 맘충으로 살기


여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피부로 느끼고 살진 않았다. 된장녀, 김치녀, 김여사, 걸레, 성괴, 낙태충, 맘충까지.. 여자를 무개념 완전체로 다양하게 두루치기하는 여혐어들이 분기별로 유행했지만, .. 난 아니니깐. 내가 그간 여혐에 민감하지 않았던 것은 그 혐오사항으로부터 나는 해당될 것이 없다는 자신감 때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발 디딘 곳이 전부 여초지대였던 데다, 접촉하는 몇 안되는 남자들도 최소한의 인문학적 소양은 팬티처럼  늘상 입고다니는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란 걸 요즘에서야 알았다. 그러나 유일한 사회적 통로가 인터넷뿐인 전업맘이 되고 보니, 굳이 일베까지 갈 것도 없이 뉴스댓글창만 열어봐도 이건 뭐 혐망진창... 차마 옮기기도 민망할 만큼 원색적이고 폭력적이며 봉건적인 소리들이 여자관련 뉴스마다 댓글창을 도배하고 있었다. 한편 페이스북 김치녀라는 페이지는15만명이 넘는 팔로워들이 별 시덥잖은 김치저격글에 열렬하게 좋아요를 눌러대고 있더란.... 혐오의 에너지가 너무 살기등등하고 열광적인 것도 그렇지만, 이토록 대중적 정서로 여혐이 자리잡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눈쌀 찌푸려지는 행태에 풍자적인 네이밍을 통용시킴으로써 세태를 비판하고,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은 일견 대중적 자정작용을 한다. 나는 그런 거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한데? 나만 이상한가? 걸레라는 단어는 예전부터 경멸했지만 그 외는 대체로 무심히 들어넘기거나, 내심  동조감을 가져본 신조어들이었다. 아이들의 민폐를 방치하는 엄마, 명품수집과 남자 잘 만나는 게 인생 최대 과제인 여자들은 성매수하는 남자 수 만큼이나 제법 흔해서, 오가며 그런 캐릭터와 조우하다보면 짜증난 적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네이밍들이 실세계에서 엄청난 혐오의 에너지를 충전하여 일반개인을 신상 테러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이것이 정의로운 응징인 양 여기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목도한 후 정신이확들었다 볼썽사나운 꼴불견을 혐오하는 것은 여혐이 아니라 그냥 혐오다. 그러나 어떤 잣대를 여성을 향해서만 엄격히 적용하여 맹렬히 혐오할 때, 그것은 여혐이다. 그리고, 언어표면에 직접적인 혐오메시지가 드러나있지 않다 해도, 차별적 관점이 전제된 언사는 사실상 여혐의 범주에 묶인다. 그러니 실은 지금 뿐만이 아니고 나는 늘상 여혐의 시대를 지나왔음이리. 그러나 그 때 그것은 수맥처럼 내 방밑에 소리없이 흘렀으므로특별히 여성주의 엘로드를 작동시키지 않고선 잘 느끼지 못한 채로 정신건강에 해를 입었다하지만 요즘은? 그 수맥이 바닥을 뜷고나와, 세상창을 열 때마다 곰팡내가 가득해서, 나는 소리높여 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진 것이다낙태충 말고 즐기고선 나몰라라하는 싸튀충들이여,  김여사 말고 운전하다 수틀리면 창문 내리고 눈 희번덕거리며 쌍욕하는 드레프트  김씨발들이여,  5천원짜리 스벅커피 된장녀 말고  50만원짜리 양주 먹는 룸술남들이여,  섹스어필하나로 남자에게 기대 살려는 김치녀 말고 섹스어필도 안되면서 여자로부터 정신적케어와 물질적 책임분담과 각종 가사써포트와 제 부모 봉양까지 받길 꿈꾸는 라면남들이여,  자유롭게 성을 즐기는 걸레말고 성매수하고 몰카찍고 강간하는  밀대들이여, 당신들의 혐오는 정당합니까. ?


 18-1. 명예남성으로서의 회고.


자가 진단컨대, 나든 명예남성이 될 기질이 농후한 여자유형이다. 그걸 알아서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 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페미니즘이 아직 우리사회에 유효하고 그 투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획득했을 뿐, 친 남성적 성향은 쉬 변하지 않더라. 책이고 세미나고 그닥 약빨이 안받았는데, 김치녀 사냥꾼들이 직빵즉효의 명약일 줄이야! 그들 덕분에 나는 폭발적으로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획득했으며, 이제 남혐이 생길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로 명예남성이 되는 여자 유형은, 남녀유별 사상이 또렷한 부모 밑에서 규수교육을 받고 자라 그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여자들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부장적 억압이 전혀 없는 환경에서, 여자라서 불편한 점을 거의 모르고 자란 여자들이다. 전자는 천생여자로서 남자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에게 사랑받음으로써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며, 남자들과 맞먹으려는 드센 여자들을 경멸한다. 후자는 여자로서의 핸디캡을 자각할 만한 조건에 직접 노출된 적 없이 자라, 사회에 만연한 남성적 가치관을 나이브하게 수용하고 쉽게 적응하며, 감정선이 민감하고 유머센스가 부족한 여자들을 피곤하고 따분해한다. 두 유형은 완전히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여성주의적 주장에 대해 남성편의적 가치관을 옹호하며, 남성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명예남성의 사회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나는 후자 쪽 정서가 강했다. 온화하고 유쾌하며 다소 무신경한 홀어머니 손에서, 연년생 오빠와 열이면 열 마디가 다 농담이고 장난질인 대화만 해대며 함께 자란 나는 가부장적 위계를 경험해보질 못했다. 엄마가 안쓰러워 착한 딸 노릇을 했지만, 가정의 질서가 견고하다거나 나를 억압한다고 느껴본 적은 없으며, 오빠와는 몸싸움, 농지꺼리, 음담패설 도 공유하며 낄낄거리며 자랐다. 학창시절엔 남학생들보다 여자친구들한테 인기가 훨씬 좋은 편이었고 나도 동성친구들을 더 좋아했는데, 어른이 되어 서울 온 후부턴 여자들간의 관계에서 속을 좀 부글부글 끓인 적이 많았다고나 할까. 대개는 무방비상태서 기습쨉을 받고선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부글부글거리다 마는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이었는데, 당하는 당사자만이 눈치챌 수 있는 돌려까기 평가절하나 교묘한 배제 혹은 견제를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당하다보면, 그걸 콕 집어서 얼굴 붉히자니 민망하고, 평소 사이가 좋았는데 왜 저러나 혼란스럽고, 싸울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들이었다. 또 한가지 나를 자주 당황스럽게 한 것은 웃자고 한 농담에 정색하는 친구들이었는데, 악의 없이 한 말에 면박을 주니 당황스럽고 억울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처음엔 서울사람과 잘 맞지 않는다며 부산친구들에게 징징거렸고, 딱히 서울사람에 국한되지 않구나를 알게 된 후엔 역시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며 어릴 적 친구들에게 한탄했으며, 그런 관계적 스트레스가 모두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결론 후에는 여자들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남친에게 털어놓곤 했다.

내 주변에 폭력적이거나 내 동의없이 나를 성적으로 능욕할 남자는 없었으며, 내 성깔과 처세도 만만찮아서 그런 인간들은 능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남자에게 공포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교대는 수능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여자들이 남학우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있는 학교였으며, 교직은 여성적 문화가 강한 여초집단이었으므로, 별다른 제도적 차별을 겪어보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성차별적 언사는 사회에 공기처럼 횡행했지만 그런 말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내뱉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므로 남자를 특정하여 적대시할 이유는 없었다나는 섬세함, 배려, 돌봄 같은 여성적 미덕보다는 의리, 용기, 공과 사의 분별 같은 남성적 미덕에 천성적으로 마음이 더 끌렸으며, 단순함, 폭력성 같은 남성적 악덕보다 허영심, 의존성 같은 여성적 악덕에 거부감을 많이 느꼈다. 그랬다. 나는 대체로 남자들 대할 때 마음이 더 편했다.


 18-2. 여혐혐(여혐을 혐오함)의 시각에서 기억을 재추적하다.


나에게 기습쨉을 날리던 여자친구들과는 대부분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내가 아프거나 곤란에 처했을 때,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안부와 위로를 건네고, 사사롭지만 품이 드는 일들을 마다 않으며 성심껏 내 위기를 돌봐주었으므로, 나는 당시에 부글거렸던 상황이 내 오해였구나 여기며 그 때의 뒤틀린 내 심사를 미안해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 돌아보면 그것이 반드시 오해는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그들이 교활하게 나를 기만해가며 친한 척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친구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정을 보다 덜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때그때 배출한 것이며,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친구관계에선 더 자연스럽고 정직한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했기에 그들은 꾸준히 서로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꾸준히 궁금해하며, 지켜봐줄 수 있는 우정의 에너지를 유지하는 것이며, 우리관계가 지속 가능했던 것도 8할이 그녀들의 부지런한 우정 에너지 덕분이었다. 친구라는 이유로 때론 부정적인 심사가 들더라도 내 마음을 억누르다가, 내 속이 너무 부대껴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버렸던 내 방식이야말로 타인의 방식이었다. 악의없는 갈굼에 대한 정색도 성찰해보건대, 나 역시 남들이 무심결에 뱉은 말에 열받은 적이 꽤 있더라는 것. 상대가 나를 깔보는 마음이 깔려있었다고 여겨지거나 나를 약오르게 하려는 악의가 있었다고 여겨질 때가 그 경우인데, 그것은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확인할 수 없으니나는 다만 내가 그렇게 느껴진다면  분노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겼다그들이 내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 그런 우를 범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임신했을 때 자리를 내어준 사람들은 대부분 임신의 불편을 경험해본 아주머니들이었으며,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관심과 격력를 주었던 것도  세상 모든 사랑에 울고웃는 여자들이었으며 , 인파가 붐비는 거리를 커다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갈 때 민폐맘충이란  눈초리 대신 아기의 안전을 걱정해주거나 아기에게 눈맞춰 웃어주는 사람도 십중팔구 여자들이었다.  그렇다여자가 여자를 돕는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고! 동성간의 사사로운 경쟁심은 남녀불문 일반적인 심리이며, 특별히 더 여자의 질투심이 도드라지게 보였던 것은 권력이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던 유구한 세월동안, 여자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하고도 일반적인 생존수단이란 것이 다름아닌 남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었고,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 약자들간의 경쟁은 강자들간의 은밀하고 묵직한 밀땅보다는 훨씬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띠기 마련이라 공공연하게 저 말은 관철되었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어떤가, 여자들이 남자와 경쟁한 후 더 이상 강자가 아닌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퍼붓는 저 혐오와 증오는. 볼썽사나움의 극치가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 충격적인 깨달음은 내가 남자의 폭력성이나 호색행각에 대해 일평생 겁에 질려 있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폭력적인 남자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를 억누를 기질이 보이는 남자들을 철저하게 내가 피해다닌거다. 이것을 깨닫고서 소름이 돋았는데, 이 두려움 때문에 내가 얼마나 일평생 방어적이고 불편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나는 지적이고 온화하며 나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깊이 사귀지 않았는데사실 나는 호쾌하고 단순하며 정욕이 왕성한 남성미에 더 끌리는 취향의 소유자다. 꼭 순애보로 나를 감동시키지 않는다해도 내 눈에 멋지면 곧잘 반한다.  취향과 상반된 연애역사에 대해 항상 어떻게 말해왔냐면, '연애 혼자하나,  그런 성향의 남자들만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던데?' 라고 말했고,  실제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마음을 열었고, 그래서 그들의 사랑은 깊어지고 열렬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 마음 속 뿌리깊은 남성성에 대한 공포는 말하자면 이런 것이었는데, '남자는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면 폭력성을 쉽게 드러낸다.  지금 열렬히 사랑한다해도 남성성이 강한 남자는 언제 또 다른 호색행각으로 나를 찬밥취급할 지도 모른다.' 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남성성이 강한 남자들에겐 내 맘과 다르게 늘 도도하고 정 떨지게 행동하였고, 그들은 접근했다가 이내 멀어져갔다.  하다못해 서른 즈음에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던 남자가 그날 데이트에 내가 겨털을 제모하고 왔음을 발견하고는 자기의 바램이 이루어졌다며 어이없을 정도로 진지하고 조용히 기뻐했는데, 그 순간 나는 숨구멍에 모래바람이 들어찬 듯 우리관계에서 사막을 보았다. 내 제모 따위에 저렇게 진지하게 기뻐하다니. 제모하지 않고 뚱뚱한 몸이 되면 얼마나 또 진지하게 실망할까. 스텝포드와이프가 되는 공포는 가시지 않았고, 그래서 헤어졌다. 정말 여러모로 나무랄 데 없는 남자였음에도. 또한 밤에 혼자 귀가할 때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바래다 달라고 하거나, 하다못해 택시 번호라도 찍어두게 했으며, 정체 모를 남자들과는 일절 말을  섞지 않았다나는 언제라도 불의의 사고처럼 남자들에게 강간과 폭력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그처럼 방어적이고 불편하게 지냈는데도 그것이 불편인 줄 자각하지 못했다. 왜 나는 이렇게 나를 방어하는 것에 긴장하며 살았어야 했는가?


18-3. 알리바이와 40인의 도둑들


피디수첩을 비롯하여 다양한 매체에서 한국청년들의 여혐세태를 다루었다취재의 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대체로  ‘여혐에 알리바이는 있지만그래도 쫌 찌질한 듯.’ 뭐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었다. 근데, 여자들이 제공했다는 무수한 개인사적 알리바이에 대한 동조의 시선이 대단히 찝찝한 것은,  그것이 여자들한테 된통 당한 이후 여자 전체를 증오하게 된 한 가엾은 중생에 대한 측은지심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사회의 가장 강력한 분야에 그 알리바이가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서 내놓은 성 평등교육 자료만 보더라도, “데이트비용을 남자가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데이트폭력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개소리가 등장한다. ..이건 뭐 남자가 데이트비용을 부담해야한다.”는 문장만큼 쌩뚱맞은 게, 데이트비용이야 개인들이 알아서 할 문제지, 이딴 걸 떡하니 싣는 수준부터가, 성평등교육 자료집을 밥상머리 잔소리 모음집 쯤으로 생각하고 있단 게 드러나는데다, 결정적으로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함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는 빼박문장이다. 이제 막 수면에 떠오른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식도 요모냥이니, 유수한 세월동안 성교육=정절교육 쯤으로 생각해온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말해 뭐하리. “남자의 성욕은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일어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밤거리를 혼자 걷는 것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등등등 블라블라개소리 교향곡~~.  ! 도대체 왜 교육부는 딸가진 부모들이 집에서 매일하는 잔소리를 굳이 자료집으로 만들어 교사에게 가르치라는 것일까. 도덕 교과서도 이렇게 만들어보라지.  “인간은 거짓말을 달고 사는 존재이므로, 늘 상대방의 말을 의심해가며 들어야 한다.” “인간은 본래 폭력적인 본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자신의 생명과 안전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정직, 생명존중, 평화, 자유 등 모든 구성원들이 지향하기로 합의한 보편적 덕목을 인간 본연의 사악성을 핑계로 싸그리 뒤엎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라 피해입지 않는 대상으로 자라도록 가르치는 교과서를 써보라구. 그럼 이 자료집이 얼마나 덜 떨어지고 수준이하의 소리를 교육이랍시고 지껄인건지 바로 눈에 들어올 테니까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기자가 되면, 여자를 강간하고 몰카 찍어 주변에 뿌린 의대생을 두고 촉망받는 예비의사, 잠깐의 충동에 눈 멀어 일탈한 대가같은 문장, 말하자면 이 악질적인 범죄를 두고 '어떤 개구쟁이 소년의 철없는 모험이 불러온 비극' 같은 무드의 기사를 쓰는 거다. 폭력 문제에서 진보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흔한 말은 그럼 너는 네 딸에게 야한 옷 입고, 술취해서 밤길에 혼자 비틀대고 다녀도 그것은 너의 권리므로 괜찮다고 말할 것이냐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이 험하니 실제로 피해입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이 진정으로 약자를 위하는 교육이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 대다수의 비극이 친밀한 개인간에 허용되는 말과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명히 선언해야 할 말을 자꾸 헷갈리는 데서 절반 이상 유래되고, 유지되어 왔다고 본다. 강간, 몰카촬영 및 유통, 미성년 성폭행 같은 중범죄도 본인 맘속의 강간판타지와 관음증, 로리타 콤플렉스에 이입하여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남자들이 법정에서, 언론에서, 교육현장에서 그렇게 범죄자에 대해 남자 대 남자가 되어 친밀한 브라더로 변모한다. 그러니 말로는 나쁘다 하면서 결과는 경처벌, 동정어린 시선, 여자탓.


 18-4. '역차별이야'  전도사들.


역차별이란 말은 모든 상황에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런 말은 주로 유구한 차별의 역사를 망각한 기득권자들이 차별금지 공세로 자신이 사사롭게 처한 권력의 역전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분노감을 극대화함으로써 성급하게 내지르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그것은 반동의 에너지를 갖고 전파된다. 차별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그것을 바로잡고자는 제도적 장치는 개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며, 간간 현장에서 무리수가 된다. 왜냐하면 차별하던 자들이나 차별받던 자들이나 예전의 인식수준에 머물러있는데다,  사회적 여건 또한 무르익지 않았으니까.  일례로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침해받는 상황이 폭증했다.'는 교사의 아우성 같은 걸 보자. 그 아우성은 현장에서 사실상황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황이 사실이라고 해서 '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한다,'는 문장이 참이 될 수 있는가?  그만큼 인권조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반교육적 여건들이 산적하여 이것들이 인권조례와 충돌하며 불협화음을 내는 것인데, 그것을 하나씩 바로잡기 보다는 단체기합과 귓싸대기권을 다시 가진다고 해서 예전의 '교실군주'는 복권되지 않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역차별을 성토하는 남자들은 '위해를 가할 의도가 없는 성욕이 범죄 취급 받는 것', 여성적 미덕도 두루 갖추길 요구받는 것, 이렇게 남성성을 억압받는데도 육체적 수고와 경제적 비용은 여전히 몰빵당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엄청난 분노감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본성은 억압 받고, 남자로서의 의무는 그대로 강요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치녀''꼴페미',  여성부를 이 부당한 풍토의 원흉이라 여긴다.  그 본성을 제한받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여성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빈번하게 저지르고 있는지에 대한 감안은 전혀 없으며, 다만 자신은 그런 사람 아닌데 사회분위기가 그런 게 짜증나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새롭게 직면한 그 고통은 수세기 동안 여자들이 감내해온 고통이며 ('여성다운 행동' 중에 인간의 자연스런 모습을 억눌러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가. 또한 내가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자에 대한 많은 부정적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기단속을 하고 사는가.  듣기로 요즘은 김치녀 혐의때문에 더치페이 강박증에 걸린 여자들도 무지 많다고 한다. 마치 예전 여자들이 '걸레' 혐의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처녀막 강박증을 앓았듯이. ), 또한 그들이 여전히 짊어지고 있는 그 멍에의 몇 배를 여자들도 여전히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계급적 사고가 결여되어 항상 서민남성인 자신의 삶과 고급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는 유한부인들의 삶을 비교한다. 그리하여 모든 남자들은 자신처럼 헬조선에 살고, 모든 여자들은 천국의 꿀빠는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현실은? 자신의 미래부인은 맞벌이와 가사노동과 육아를 동시에 짊어진 자신보다 몇 배 가엾은 여인이다

바야흐로 여혐의 정점에서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다. 우리아기도 헬조선의 비극적인 프로세스를 거치고 나면 여혐종자가 될까?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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