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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8호 (2015.10.8 발간)


[담론과 문화] 주연쌤의 학교이야기

10개월차 혁신학교 이야기


 

최주연 / 마곡중

 




올 해 3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혁신학교로 개교한 마곡중학교 이야기이다.

아직 1년도 안 된 학교에 무슨 얘기가 있을까 싶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뭐가 되는 일이고 뭐가 안 되는 일인지 몰라서 생각나는 일들을 다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뜻밖에 다양한 일을 하게 되어 없는 길을 가려는 다른 이들에게 이럴 수도 있다고 말 할 만 하겠구나 싶어 몇 가지 적으려 한다.

 

1. 민주주의는 교사들로부터 - 소통과 합의 그리고 행복한 번복

 

학교 하나를 개교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 비유할 만 한 일이다. 공사도 끝나지 않아 교무실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1월부터 모여 개교를 준비하면서, 교사들은 하루 종일 한 곳에 앉아 끊임없이 논의를 해야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찌 갈등이 없었겠는가. 그래서, 학교와 관련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과정에 소통과 합의의 예술이 필요했다. 민주주의란 단지 앙상한 다수결만은 아님을 다 같이 온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었다. 교화(校花)를 정하는 과정으로 예를 들어 보겠다.

우리 학교 개교 정신에 맞는 꽃을 정하기 위해 몇 주에 걸쳐 식물도감을 쌓아 놓고 고민했으며, 이미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더 좋은 꽃을 발견하면 바로 정정했다. 그렇게 어렵게 결정했던 교화는 천인국’. 모여 있으면 예쁜 작은 국화인데, 꽃말이 단결/화합이어서 우리 학교에 맞춤이라고 여겨 만장일치로 정했다.

그런데, 다음 날 교장 선생님의 근심 어린 한 마디.

양키 고 홈을 외쳤던 사람으로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꽃을 교화로 정하기는 어렵다

결정 과정의 지난함을 너무 잘 알기에 꺼내기 어려웠던 말이지만, 결코 그냥 넘어갈 수도 없어 너무 저어하며 내 놓은 한 마디. 우리는 동의하며 가차 없이 천인국을 폐기하고, 비슷한 분위기인데 토종인 흰 민들레를 교화로 정했다.

충분히 얘기했고, 서로의 진심을 안다면 다수결이 아니라도 훌륭한 합의가 가능함을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결코, 교장 선생님의 말이라서 번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순간이 마곡중학교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좋은 예가 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곧 소통. 서로 논의한 결과가 아니라면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민주주의엔 독이다. 마곡중학교는 대부분의 교사가 경력 20년 이상의 베테랑들로 혁신학교에 뜻을 두고 모인 학교이다. 그만큼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확고한 교사들이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방식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의 수업과 학교 운영을 하겠다고 모였으니, 그 논의의 깊이는 일반의 상상을 넘는다. 개교 전 21312일 워크샵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은 세상이 두쪽이 나도 회의하는 날로 삼아 전교사회의를 한다. 회의장에선 직급이 따로 없다. 교장선생님도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발언 기회를 얻어 발언을 한다.

아래는 마곡중학교의 전교사회의 장면이다. 수업 할 때처럼 교사회의도 모둠으로 자리를 배치해서 한다. 사진에 교장선생님도 있다. 어디일까?

 

2. 조금은 특별한 출발 마곡 여는 날, 마곡 아는 날

 

겨우 테이블 하나 놓고 개교를 준비하던 시절, 입학식 얘기를 하다가

식상하게 딱딱한 입학식 하지 말고 마곡 여는 날로 할까요? 어차피 없던 학교가 열린 거고, 2/3학년들도 전학 와서 새로 시작하는 거니까

라는 말이 나왔다. 말이 나오기 무섭게 준비팀이 꾸려지고,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좀 더 재미있는 이벤트를 찾아 여기저기 헤맸다. 가볍게 시작했던 처음과는 달리 32일 마곡 여는 날의 계획은 점점 커져 엄청난 이벤트가 되었다.

우선 10시에 새로 전입 온 2/3학년을 강당에 모아 맞이하는 이벤트를 하고, 다시 1시에 신입생들과 함께 입학식과 이벤트를 하는 초고난이도 계획.

동네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상황에서 교장/교감이 따로 없었다. 모두 강당에 모여 창고에 있던 200개의 의자를 내리고, 그걸 걸레로 일일이 닦고, 풍선에 헬륨 가스를 넣고, 그 끝을 리본으로 묶어서 의자 뒤에 하나하나 달기까지. 시간 안에 할 수 있을까했던 막막함은 사람 힘의 위대함을 느끼는 감동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대성공!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감동을 받았고, 교사들은 스스로에게 감동과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날 서로가 보여 준 모습에서 얻은 감동이 앞으로 닥칠 예상 못한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사진은 몸 풀고 친해지기로 토끼와 거북이 손등치기 하는 장면. 가발 쓴 분은 담임 선생님이시다. 손 잡고 훌라우프 돌리기, 풍선에 꿈 써서 날리기. 교육관련 신문들에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는 전 학년이 교실 책상을 열린 구조로 배치하고 모둠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 또한 방학 중 3번의 연수와 전교사회의를 통해서 결정된 사안이다. 암묵적으로 혁신학교라면 다 그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객관화시켜 다시 전교사회의에서 결정하고 학생들과 함께 교실 내 자리를 배치했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 민주주의. 작은 것 하나라도 전 교사가 모여서 얘기하고 조율해 나가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입학식과 마찬가지로 오리엔테이션도 마곡 아는 날로 명명하고 수업과 학교 생활을 안내했다.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모둠 수업에 익숙치 않으므로 33일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수업을 직접 해보도록 했다. 이건 말 꺼낸 사람이 책임졌다. 그가 누구이던간에^^

 

3. 민주주의는 학생들과 원탁토론과 416 1주기

 

아직 완성 학급이 되지 않아 전교생이 320명이어서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원탁토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항에 대해 학생들이 모여서 원탁토론으로 결정한다.

학생회 각 부서의 이름과 역할을 구성하는 자리로부터 시작하여, 생활 규칙을 지나 교육부에 바라는 일 까지. 이제 전교생이 모여서 얘기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2년 후 완성 학급이 되면 공간의 제약으로 지속하기 힘들겠지만, 학생들에게 참여와 민주주의 유전자를 새겨 놓는다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다.

 

4. 수업과 생활의 연결 교과 페스티발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에 관한 것이다. 마곡중학교는 전 교사가 연 1회 공개수업을 하며 이 내용이 교사 수업연구회를 통해 피드백된다. 아직 개교 첫 해라 범교과 통합수업까지는 진행되지 못했지만, 곳곳에서 그 맹아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5월 수련회부터 수련회 형식이 아니라 학년별 주체 체험(독서, 생태, 전통)으로 진행했는데, 준비 과정에서부터 각 교과에서 적절한 역할을 나누어 맡아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다. 한 학기동안의 그런 노력들이 총화된 자리가 여름방학식에 진행했던 교과 페스티발이었다.

평교사 전체 27명인 학교에서 자발적인 참여만으로 24개의 부스가 만들어졌고, 전교생 320명이 몰리거나 지루해하지 않고 학교 곳곳에서 체험에 참여했다.

교과 페스티발 계획서를 첨부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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