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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6(발간 : 2015327)

 

[현안]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방안 모색

- 최근의 대입제도 개편 논의에 부쳐-

 

 

이 현 (진보교육연구소 운영위원)

 

 

 

1. 들어가며

 

수능 출제 오류가 2년간 잇따라 불거지면서, 수능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대입제도에 관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한국 사회에서 대입제도는 단순히 교육적인 문제에 그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자주 정치-사회적인 이슈로 비화하며, 실제로 대통령 선거에서 대입제도 개편 정책이 중요한 공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은 대학입시 경쟁에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가 투입된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노후 준비도 팽개친 채 대부분의 자원과 시간을 자녀의 대입 경쟁에 아낌없이 투여한다. 엄마들은 자녀의 학원비에 한 푼이라도 보태기 위해 열악한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극성스런 학부모를 둔 경우에는 그 이전부터) 대학입시경쟁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어떤 곁눈질도 하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할 것을 강요당한다. 끝없는 암기와 반복되는 문제풀이로 그의 모든 정신력이 고갈될 정도가 되어야 대입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사회적 지위 배분에 막강한 힘을 발휘해왔다. 최종 학력이 어느 수준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에 따라 사회적 자원에 접근할 기회에 근본적인 차별이 생겼고, 개개인의 사회-문화적 위신도 이에 따라 결정되었다. 명문대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실제적인 능력이나 인격과 상관없이) 탁월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최근에 능력 중심 사회로 재편되면서 학력-학벌의 규정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사회양극화가 깊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면서 대입경쟁은 오히려 격화되고 있다. 입시 전쟁이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라 실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입시는 민감한 사회-정치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대학입시 제도가 어떤 계층과 지역에게 유리한지, 사교육 유발 효과는 어느 수준인지,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합리적인 선별기능을 발휘하는지 등이 항상 사회적 쟁점이 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출제 오류는 단순한 교육문제가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다. 수능 한 문제의 차이로 갈 수 있는 대학이나 학과가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수능 출제 오류에 대한 시비 및 이에 대한 항의가 계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대학입시제도는 또한 초중등 교육에 막대한 규정력을 발휘해 왔다. 학부모나 학생은 물론 대다수의 교사들까지 초중등교육의 최종 목적이 대학입학경쟁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데 대하여 동의하고 있는 현실에서, 학교는 사교육 기관과 비교 당하면서 대입 경쟁력을 높이라고 끊임없이 압박을 받아 왔다. 학교 급별에 따라 압박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지만 초중등 교육을 규정하는 최종 심급이 대학입시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학교에서는 형식과 실제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나타난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공식 문건이나 교육학자들의 연구보고서에서 어떤 교육정책이나 제도의 목적을 대입준비로 명시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런 문건에서는 교육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목표를 기술하지만 학교현장이나 교육주체들은 대학입시라는 프리즘을 통해 이를 재해석한다. 이에 따라 공식적 언어(겉으로 표현된 언어)와 실제적 언어(실제로 의미를 구성하는 언어)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나타난다. 이는 교육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가로막는다. 교육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주체들(주로 관료나 학자들)도 자기들이 생산한 문자와 언어가 형식적으로만 수용될 것임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의 담론이나 정책 생산활동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외래의 정책들을 한국적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쉽게 수입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한국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이를 수용하는 주체들도 생산된 문자와 언어가 형식적인 것[사탕발림]이라고 예단하기 때문에 이를 숙독하거나 경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쓰고 말하는 주체와 읽고 듣는 주체 간에 형성되는 이 미묘한 관계는 교육에 관한 모든 사회적 대화를 공허하게 만들고, 어떤 화려한 정책이나 담론이 난무해도 실제 현실에서는 대학입시가 계속 교육주체를 지배하는 것을 방치하도록 만든다.

 

과도한 대학입시 경쟁이 교육에 미치는 폐해, 특히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폐해는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담론들이 제출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구성원 중 대다수는 그 폐해를 생생하게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특정한 제도나 정책의 폐해는 그 자체로 경험되기보다는 다른 경우와 비교를 통해 훨씬 생생하게 경험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다른 교육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며 따라서 한국의 교육이 자신을 또는 자기의 자녀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교사들 또한 기존의 대입 준비를 위한 학교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수업과 교육 방식을 바꾸면 학생들의 지적, 윤리적, 정서적 측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예견하지 못한다. 대학입시결과는 매우 구체적이지만 입시경쟁에 의한 폐해는 추상적이다. 이것이 누구나 대학입시경쟁의 폐해를 떠들지만, 대학입시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 동력이 쉽게 확보되지 않는 이유이다.

비록 대입제도 개혁을 위한 주체 동력의 형성은 어렵지만 입시문제에 대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민감한 이해관계를 갖게 돼서 대입제도는 국가 수준에서 관리해야 할 중대한 문제가 되었으며, 그래서 수많은 입시제도가 수없이 바뀌어 왔다. 한국에서처럼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손질에도 불구하고 대입제도의 본질적인 변화는 느낄 수 없다. 이는 입시제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변화가 매우 기술적인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학서열 체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는 태도가 일반화되고, 차별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 현실에서 대학입시는 학생들의 서열화화 선별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전제, 국가수준의 객관식 시험이 가장 공정하고 타당한 시험제도라는 믿음 등에 대한 근본 성찰 없이 근본적인 대학입시 제도개혁은 불가능하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라고 표현되는 입시중심의 학교 교육의 파산, 혁신학교 실험 등을 통한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의 확산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수능 출제 오류와 한국사-영어 절대 평가제 도입 등이 맞물리면서 대입제도 개혁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대입문제를 중심으로 교육의제가 다시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를 것이다.

이 글은 확정된 대입제도 개혁 방안을 제출하기보다는 새로운 방안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할 지점들을 밝히는데 중점을 둔다.

 

 

2. 무척 복잡한 함수, 대입제도

 

한국 사회에서 대입은 여러 가지 변수들이 결부된 복잡한 함수이며, 거의 전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대입제도는 사교육비 문제와 긴밀히 연관된 사회적 사안이며, 계층과 지역 간의 이해가 걸린 정치적 사안이며, 초중등 교육을 규정하는 교육적 사안이다.

수능 난이도가 높아지면 당장 사교육비 상승, 공교육 무력화, 중하위 계층과 지방 학생들의 불이익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수능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반면에 수능 난이도가 낮아지면 변별력의 부재로 인한 대입과정의 혼란, 실력보다는 운에 좌우되는 로또 수능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물수능이라 비난한다.

수능 탐구 과목을 늘리면 학생의 부담 과중을 비판하고 과목을 줄이면 영수의 과도한 편중과 탐구과목의 수업 파행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실제로 수능에서 탐구과목을 4과목에서 2과목으로 축소하면서 원래부터 과도했던 영수의 비중이 학교교육과정에서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사회-과학 수업의 파행이 증가하고 있다.)

EBS 연계출제 강화로 인해 학교 수업이 EBS 교재와 문제풀이에 얽매이면서 수업의 자율성이 극도로 파괴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사교육비가 감소하고, 사교육 소외 계층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EBS 연계라는 반교육적 발상이 정당화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논술시험의 경우 (오지선다형인 수능시험을 통해 평가할 수 없는)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찬성론과 사교육비 유발 및 학교교육의 무력화를 초래한다는 반대 입장이 병존한다.

학교내신에 대해서도 학교간-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찬성론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 학력 격차의 문제, 내신에 대한 신뢰성의 부족 그리고 학생들이 3년 내내 시험에 시달린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서도 학생들의 잠재력과 다양한 활동을 평가할 수 있다는 찬성론과 인위적 스펙 만들기 경쟁과 학교교육의 파행을 불러온다는 반대론이 있다.

 

이렇듯 대입제도는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난도의 함수이다. 지금까지의 대입제도 개선은 이런 함수 관계 전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변수만 고려함으로써 풍선효과를 일으켜왔다. 따라서 대입제도 개선 문제를 고려할 때 몇 가지 원칙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선 대입제도 개혁은 학교교육 정상화와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에 기여한다는 교육적 측면을 가장 먼저 고려하면서도 교육 불평등 해소, 사교육비 감축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둘째로, 대입제도의 기술적 개선을 넘어 대입제도의 기반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안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회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엄격한 선별 기제로서 대학입시가 필요하다는 상식, 대학서열 체제는 고등교육의 특성상 당연하다고 여기는 편견 등이 우리가 넘어서야 할 대입제도의 기반이며, 이런 문제의 해결이 동반되지 않는 대입제도 개혁은 실패하거나 유의미한 결과를 생산하기 어렵다.

 

셋째로, 단기적, 중기적, 장기적 대안이 동시에 제출되어야 한다. 대학입시는 매우 현실적인 사안이며 대중의 이해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급격하게 바꿔내기 어렵다. 변화의 추이를 학교와 학생-학부모가 충분히 따라가게끔 여유를 주어야 한다. 또한 단기-중기-장기 방안을 단계적으로 제시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변화의 방향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단기적 방안만 제출함으로써 대중의 기대감을 낮추고 방향감을 잃어버리게 해서도 안 되며, 장기적 방안만 제출하여 현실성을 느끼지 못하게 해서도 안 된다. 뚜렷한 방향을 가진 일종의 로드맵을 제출하여 현실성과 방향성 둘다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3. 대입제도 개혁을 위한 고민의 지점들

 

1)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정부와 야당의 수능 개선 방안

2년 연속 수능 출제 오류가 불거져서 수능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자 교육부는 수능개선위원회를 구성하여 수능 개선 방안을 제출하였다. 수능개선위원회 구성 당시부터 대학교수 일색인 위원회 구성을 놓고 비판이 쏟아졌다. 역시 예상대로 지난 정부들이 수능 출제 오류 때마다 내놓았던 개선방안을 다시 재탕해서 내놨다. 출제기간 및 인력 보강, 출제인력풀 확대, 검토과정 보완 등 이전의 방안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편 수능분석위원회를 설치하여 불수능과 물수능이 아니라 적정 수준의 난이도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였다가 쉬운 수능의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였다. 대입제도 개혁에 대한 분명한 방향 설정이 없는 상황에서 기술적이고 단기적인 정치적 접근으로 일관한 결과다,

야당인 새정치연합도 대입제도 개선 방안 초안을 발표하였는데, 역시 수능출제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부의 관리 책임 강화, 특정 대학 출신의 출제위원 제한 규정 강화, 출제위원 교사 100%-검토위원 교수 100%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역시 이전부터 제시된 방안들로서 새로운 제안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오히려 눈에 띠는 것은 전과목 절대평가 도입 제안인데, 이 역시 원칙적인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스스로 변별력 확보의 문제, 대학별 고사 부활의 위험성, 사회적 혼란과 논란 등의 우려를 제기하면서 민관학 협의체 구성 등 장기 과제로 미루고 있다.

 

교육부안

새정연 수능특위안

수능책임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육부 국가시험관리위원회설치’(위원장-교육부 차관)로 책임성 강화

출제오류방지

출제진과 검토진의 2원화

 

문항점검위원회 신설

출제기간확대 및 출제위원 증원

특정대학출제위원30%이하로 제한

출제위원 교사100%, 검토위원 교수100%

출제위원 및 검토위원 확대

난이도조정

EBS 연계율 70% 유지 및 EBS지문을 그대로 활용하는 문항의 비율 단계적 축소

수능분석위원회로 난도 유지

EBS 연계율 70%고수

수능연계 EBS교재 난이도 완화 및 연계 교재수, 문항수, 분량 감축 즉각 시행

 

2) 단기적 방안으로 대입제도 간소화 방안에 대한 검토

 

대입제도 간소화 방안은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대입자율화라는 명목으로 대입 전형의 종류가 급격하게 늘어나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제시되었다. 크게 수시는 내신(학생부), 정시는 수능으로 2원화하는 방안을 제출하였다.

현재 대입 전형은 교과 내신, 수능, 논술, 비교과 활동, 면접 등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중상위권 대학에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동시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수험생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입시제도의 구조적 개혁을 진행하기까지 대입제도 간소화는 과도기 방안으로 충분히 의의를 가질 수 있지만, 박근혜 정권은 사실상 공약을 포기하거나 축소해 버렸다.

 

 

. 내신-수능 완전 분리형

이 방안은 우선 논술이나 구술 면접 등 현재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준비할 수 없는 전형을 폐지하고 대학 입시를 내신전형과 수능전형으로 2원화하는 방안이다. 이는 현재의 수시와 정시 전형에 해당하는 것으로 수시 전형은 내신으로 단일화하고 정시 전형은 수능으로 단일화하는 방안이다. (예체능 과목은 실기 전형 인정) 전문대학은 내신 전형으로 단일화하고, 4년제 대학은 내신전형(수시)으로 70% 이상을 뽑고, 수능전형(정시)30% 이하로 제한한다. 따라서 이 방안은 사실상 내신 전형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며, 수능 전형은 일종의 패자 부활전(내신성적이 안 좋은 학생, 재수생, 특목고 학생 등)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방안에서 논란거리는 우선 내신에 비교과 활동을 포함시킬지 여부이다. 비교과활동은 자격기준이나 동점자 처리를 위한 사용으로 제한해야 하며 비교과 활동을 직접 점수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그 상세한 이유는 별도로 논의하겠다].

내신과 수능은 상대평가를 유지하여 변별력을 확보한다. 내신의 신뢰성을 높일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지필 중심의 평가를 지양하기 위하여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다양한 수업방법과 평가방법의 도입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 방안은 현행 입시제도의 변화 없이도 즉각 시행이 가능한 장점이 있으며, 내신 전형이 대입의 중심을 이루면서 고교 교육 정상화와 계층간 지역간 불평등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비평준화 상황을 반영하여 이른바 자사고-특목고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이 방안의 가장 큰 문제는 수능 전형을 일정하게 제한한다 할지라도 학교에서 내신-수능의 이원적 수업 부담을 막기 어려운 문제점이 존재한다. 또한 상대평가 체제에서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이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학생들도 상위권일수록 내신과 수능을 모두 준비해야할 가능성이 높다.

 

. 수능-내신 융합형

독일의 아비투어처럼 4년제 대학의 경우에는 수능-내신 융합형으로 하고, 직업대학의 경우에는 하나의 유형을 선택할 수 있다. 우선 수능은 고 1~2학년 공통 과정에서 출제하며, 쉬운 난이도와 절대평가제를 실시한다. 이 때 절대평가제는 느슨한 등급제(최대 5등급제)를 도입한다. 어설픈 절대평가(예를 들어 9등급제 등)는 변별력과 학습부담 경감 등 두 측면 다 실패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소지가 높다.

내신은 3학년 과정의 심화선택 과목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의 진로 희망에 따라 내신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며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상대평가로 진행한다. 이 방안의 특징은 수능은 느슨한 의미의 자격 기준으로 설정하고 실제적인 변별력 확보는 내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능에 의한 초중등 교육의 왜곡을 최대한 막을 수 있고, 학교간-지역간 평등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안은 현재의 수시-정시 구조를 해체해야 하고, 고교 교육과정의 변화도 필요하다. 또한 내신이 절대적인 변별력을 지니게 되면서 고교평준화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사고-특목고나 특정 지역의 반발이 예상된다. 따라서 단기적인 과도기 방안이 될 수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일부에서 수능-내신 모두 느슨한 절대평가제 도입을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적 원리로서는 맞지만 모든 평가의 절대평가화는 대학서열체제의 해체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가와 대학체제가 조응하지 않으면서 평가체제의 최소한의 합리성마저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유일한 방법은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가진 사람 중에 추첨해서 뽑는 경우인데, 현재의 대학 체제에서는 누구도 수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새로운 선별 시험 즉 대학별 고사를 막기가 실제적으로나 명분상으로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 비교과 학생부 전형(입학사정관제)에 대하여

최근 수시에서 순수 내신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상위권 대학에서는 내신 이외에 비교과 활동(학생부+자기소개서+추천서)과 면접을 결합한 전형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형에 대한 호불호가 교육주체들 사이에서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

찬성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좁은 의미의 학력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동경험과 여러 분야의 능력 그리고 잠재력과 인성까지도 고려하는 선발이라는 의미에서 훨씬 교육적이라 주장한다. 또한 일반고 학생들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는 제도이고 학교 교육의 다양한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라 주장한다.

반대의 입장은 비교과 면접 전형은 인위적인 스펙만들기 경쟁 때문에 학생과 학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학교교육활동을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봉사활동이나 자치활동까지도 대입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인위적 스펙을 만들기 위한 불필요한 활동 때문에 기본적인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비교과활동은 공정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비교과활동은 학생의 실제적 활동 + 교사의 학생부 기술 능력 + 학교의 스펙만들기 행사 조직 능력 + 부모의 지원과 사교육기관의 활용 능력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또한 비교과 면접 전형이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일반고 학생의 진학 통로가 될 수 있지만 중상위권 대학에서는 자사고-특목고나 특정 지역 학생들을 자의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대학에 제공하는 것으로 의심한다.

필자는 후자에 동의하는 편이며, 대안으로 가능하면 교과성적의 평가 과정에서 지필고사 중심의 평가를 넘어 다양한 활동과 과정을 평가할 수 있도록 내신평가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에서 비교과활동을 직접 대입 전형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드물다.

 

3) 중장기적 방안에 대한 검토

 

중기적 방안의 핵심은 대학 서열체제의 해체와 대입제도 개혁을 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우선 국공립대와 정부지원 사립대의 공통선발-공통학위 부여의 통합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학생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이 네트워크를 통해 4년제 진학 희망 학생의 대부분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입시제도는 이에 조응하여 전면 개편한다. 대학입시는 수능이나 내신을 가리지 않고 국공립대 네트워크의 지원 자격을 평가하는 자격시험으로 전환한다. 우선 내신 성적으로 일정 비율을 우선 선발하고 수능자격시험으로 나머지 인원을 선발할 수 있다. 이 경우 수능자격고사는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패자 부활전의 성격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입학 자격은 최대한 개방하며 진급과 졸업을 엄격하게 한다.

당연히 수능과 내신은 절대평가이며, 과목별로 느슨한 등급 체계를 갖추고 그 결과를 종합하여 입학자격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사실 내신평가의 경우 각 학교에게 일정량의 대입자격의 쿼터를 부여하면 학교는 자율적으로 평가방식을 결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또한 초중등 학교의 학급당 학생수 감축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수능과 내신의 기본 시험 성격을 논술형 중심으로 바꾼다. 지금과 같이 입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논술 시험은 평가결과의 공정성에 대한 엄청난 사후적인 문제제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느슨한 등급제와 자격고사화가 되어야 논술 중심의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다.

이렇듯 국공립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모든 사립대까지 포괄하는 대학 통합 네트워크로 확산해나간다. 국립대와 희망 사립대 통합네트워크 체제에서는 일부 사립대들의 귀족화 현상이 나타날 염려가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교육의 공공성에 관한 사회-정치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하며, 국공립대-희망사립대 통합네트워크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4. 나오며

 

대입제도는 한국교육의 블랙홀이다. 대입제도 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교육정책은 대부분 대입 블랙홀에 빠져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오히려 왜곡된 결과만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에서도 대입제도 간소화나 수능 한국사-영어 절대평가제 도입 등 대입제도 개선을 계속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행의 대입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입제도의 전면적 개혁을 위한 현재의 지형은 매우 유리하다. 계속된 수능 출제 오류, 수능 절대평가제에 대한 쟁점화, 압도적 다수의 진보교육감 당선, 4/16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관심 등. 여기에 내년과 내후년에 총선과 대선 일정이 자리 잡고 있다. 전교조 등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이 중심이 되어 과감하면서 전면적인 대입제도 개선 방안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체제 개편에 대한 청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또한 치밀하고 현실성 있는 단기적-과도기적 방안을 동시에 제출함으로써 대입제도 개혁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대한 대중적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의 교육체제를 지탱하는 힘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아니라 치열한 대학입시경쟁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체제 개편은 곧바로 한국교육체제 전반의 개편을 불러오는 뇌관일 수밖에 없다. 바꾸어 말하면 대학입시체제 개편 없는 교육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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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초점1]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 투쟁의 의미와 투쟁 방안 file 진보교육 2015.04.12 402
160 [전망2] 교육혁명, 3년간의 대장정 깃발을 올리다 file 진보교육 2015.04.12 404
159 [열공] 2.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역사 공부 file 진보교육 2014.07.15 406
158 [현장에서] 1. 초짜 지회장의 투쟁기 file 귀카 2015.07.28 413
157 [맞짱칼럼] 모진 꿈이 우뚝 서는 날들 file 귀카 2015.07.28 414
156 [만평] 나의 옛날 이야기 file 진보교육 2014.07.15 417
155 [맞짱칼럼] Again, 1989! file 진보교육 2014.07.15 423
154 [권두언]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 file 진보교육 2014.04.16 431
153 [책소개]1. <교과서 밖에서 배우는 철학 공부> - 옛 것에 기대지 말고 길을 찾아라 file 진보교육 2015.01.12 431
152 [담론과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 푸른나래 이야기 file 진보교육 2015.01.12 434
151 [맞짱칼럼] 여전히 교육복지에 목 마르다 file 진보교육 2014.04.16 436
» [현안]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방안 모색 진보교육 2015.04.12 440
149 [현장에서] 2. 불통 교육과정에 분통 터지는 이야기 file 귀카 2015.07.28 442
148 [사례보고] 사회적 맥락에서 음악을 읽는 즐거움 file 진보교육 2013.12.18 446
147 [현장에서] 중등교사로 살아가기 - [자본론]으로 아이들에게 사회적 상상력을! file 진보교육 2016.05.04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