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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권두언] "달나라의 장난"

2015.01.12 16:35

진보교육 조회 수:372

[권두언]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數千年 前)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군더더기 넋두리

삶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팽이와 같다.
돌지 않고 바닥에 누워 있는 팽이는 팽이가 아니다.
죽어서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팽이가 돌기위해 존재하듯 우리는 살기 위해 존재한다.
잘 살아야 한다. 혼자서는 잘 살 수 없다. 함께 잘 살아야 한다.

더불어 잘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가렴주구, 십상시(十常侍), 땅콩, 甲질.
그들의 ‘달나라 세계’ 같은 짓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아마도, 그러한 그들에겐 우리가 ‘그놈들’이겠지.

그럼에도, 시인 김수영은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팽이처럼 삶을 살아내라 한다.
돌아라 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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