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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칼럼] 왜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좌파의 위기’를 수반하는가?

- 우리 시대에 ‘진보의 재구성’이 절실한 이유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작인 <진보의 미래>라는 책에서 현대 세계사의 시간대를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로 나눈 바 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세상이 ‘진보의 시대’였다면, 그 이후는 ‘보수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시대 구분법을 참여정부의 실패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동원한다. 참여정부의 한계와 오류는 “보수 시대에 집권한 진보 세력”이 떠안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 탓이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노 전 대통령 스스로 규정했던 것처럼 “좌파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자기 변호의 냄새가 너무 강한 논리 전개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시대 구분법 자체는 나름 곱씹어볼 데가 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가 폭발하기 전까지 인류 사회는 신자유주의 유일 사상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후 4년 동안 위기의 폭발이 거듭됨에도 불구하고 시장 지상주의 체제의 기본 골격이 아직 건재한 데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는 참으로 강력했다. 그것은 보수 세력뿐만 아니라 진보 세력조차도 시대의 음조에 자신을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만들 만큼 강력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좌파 지형

 

신자유주의 시대에 좌파의 주류는 ‘제3의 길’ 노선이었다. 신자유주의 자체가 낙조를 드리우는 지금, ‘제3의 길’ 노선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굳이 길게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제3의 길’ 경향은, 한 마디로, 대처, 레이건 등 신보수주의 정권이 열어놓은 금융화의 파도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완성하는 데 앞장섰다. 이들에게 금융화 ‧ 세계화는 ‘정치’의 이름으로 감히 손대어서는 안 될 신성한 ‘경제’의 영역이었다.

이들 ‘좌파 신자유주의자’들이 ‘우파 신자유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다만 금융화 ‧ 세계화가 사회에 던지는 충격들(노동 유연화, 양극화 등등)을 완화하려 좀 더 노력했다는 점이다. 복지국가를 해체하려고만 하기보다는 노동 유연화에 조응하는 ‘생산적 복지’ 식으로 축소 ‧ 변형시키려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든 좌파가 다 ‘제3의 길’로 전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운동이나 진보적 지식인 사회에서는 ‘제3의 길’의 지지자보다는 비판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정치적 흐름도 분명히 존재했다. 블레어 노동당 정부의 ‘제3의 길’ 노선에 반대하던 노동당 좌파 켄 리빙스턴이 무소속으로 런던 시장에 당선된 것이나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 당수 오스카 라퐁텐이 사민당 정부의 정책들을 맹비난하며 탈당해 ‘좌파당’을 만든 게 모두 그런 흐름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에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이런 세계적 흐름을 대변했다.

‘제3의 길’과 대비하여 이러한 흐름을 ‘반신자유주의 좌파’ 정도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서 기존 복지국가의 고수 혹은 확대를 주장했고, 미국 ‧ 영국 등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데 앞장섰으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어찌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주류 세력들이 버린 정통 사회민주주의의 이념 공간을 이들이 메웠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2008년 분당 이전에 사회민주주의와 그 왼쪽의 정치 세력들을 포괄했던 것도 이런 전 세계적 맥락과 관련이 있다.

 

‘반신자유주의 좌파’로 충분한가

 

하지만 과연 ‘제3의 길’과 ‘반신자유주의 좌파’ 사이의 거리가 과거에 이야기되던 것처럼 그렇게 먼 것이었을까?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가시화된 최근 몇 년 동안 정치 무대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우파 정치 세력보다는 좌파에게 기회로 다가와야 한다. 또한 좌파 내에서도 ‘제3의 길’ 류보다는 ‘반신자유주의 좌파’에게 도약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실제 그렇게 되기도 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슬란드에서는 우파 정부가 무너지고 급진 좌파인 ‘좌파녹색운동’이 ‘사회민주연합’과 함께 좌파 연정을 구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다. ‘제3의 길’을 주창하던 정치인들(고든 브라운, 세골렌 르와얄 등)이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반신자유주의 좌파’ 진영이 그만큼 새로 부상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사회민주주의 정당) 왼쪽의 ‘연합좌파’가 의석을 배로 늘린 것처럼 일정한 지지층 이동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류 좌파 패배의 가장 큰 수혜자는 오히려 극우파다. 유럽 곳곳에서 기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극우 정당 쪽으로 쏠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위기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반신자유주의 좌파’가 정체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비주류 좌파가 주류 좌파와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주지 못하고 독자적인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 이런 의문은, 다시, 신자유주의 시대에 좌파의 주류와 비주류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차이가 사실은 그렇게 심대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적응이었던 것만큼이나 ‘반신자유주의 좌파’ 역시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들어놓은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생산적 복지’를 이야기하든 ‘복지국가 수호’를 외치든 모두 부의 재분배의 크기에 대한 논란이었을 뿐이다. 둘 다 금융화의 발단이 되는 자본-노동 관계 자체의 변혁을 현실 정치의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식의 좌파 정치는 1980년대 초 이후(더 정확히 말하면, 1983년 프랑스 미테랑 정부의 굴복 이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적어도 2000년대에 라틴아메리카 몇몇 나라(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에서 ‘국유화’나 ‘노동자 자주 경영’이 다시 의제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랬다.

 

한미 FTA 반대 투쟁은 적을 제대로 지목하고 있는가?

 

지금 한국에서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맥을 잇는 정치 세력들과 진보정당운동의 상당한 흐름이 하나로 합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이 함께 정당을 만드는가 하면 이들과 민주대연합당이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때 한미 FTA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치하던 세력들이 이제는 한미 FTA 반대 투쟁의 같은 편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두들 ‘복지국가’를 외친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제3의 길’ 류와 ‘반신자유주의 좌파’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나라의 ‘진보적’ 여론은 이런 두 흐름의 합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 자체가 신자유주의 ‘이후’를 준비하는 하나의 ‘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물론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한미 FTA 반대 시위대 안에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이 싹트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 우리의 상상력이 신자유주의 전성기의 이념적 그림자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 예로 한미 FTA 반대 투쟁을 보자. 요즘 시위대의 분위기는 ‘이명박 정권 환원론’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화살을 정권에만 돌리고 있다. 투쟁의 물결을 주도면밀하게 “한나라당 심판(총선)”과 “정권 교체(대선)”로 향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한미 FTA 반대 투쟁이 맞서 싸워야 할 적을 절반도 채 지목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주범이 아니라 종범만 잡고 늘어지는 격이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대적인 미국 정부를 논외로 한다면, 이 투쟁이 지금 제대로 지목하지 못하고 있는 그 주범은 바로 한국의 거대 자본이다. 한미 FTA로 이득을 얻는 것은 단지 미국 자본만이 아니다. 수출로 기업 실적을 올리기만 하면 국내 경제야 어떻게 되든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미국 자본과 마찬가지로 금융, 서비스 영역에 뛰어들려 하는 한국의 거대 자본 역시 그 수혜자다. 이들은 이미 모국의 민생 경제와는 괴리된 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이해를 함께 하는 (한국산) 초국적 자본들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노무현 정부를 움직여서 이명박 정부 때는 이명박 정부를 내세워서 한미 FTA를 실현하는 동력이 된 이들 거대 자본과 대결하지 않고서는 한미 FTA 반대 투쟁은 신자유주의의 뿌리를 도려내는 운동으로 발전하기 힘들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이 전선의 선두에 한데 모여 ‘더욱 커진 진보’를 이야기하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출신자들과 진보정당 출신자들에게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을 찾는 것 역시 힘들 것이다.

‘진보의 재구성’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상력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일

 

결국 한국 사회에서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든, 진보 좌파는 아직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착된 이념 지형, 그 상상력의 감옥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함께 (좌파의 도약이 아니라) ‘좌파의 위기’가 나타나는 주된 이유다.

한국에서는 아직 유럽처럼 좌파에 대한 실망이 극우파 지지로 이어지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낙관하기는 이르다.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의 반사 이익으로 차기 권력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민주-진보 연립정부 추구 세력들이 실제 집권 이후 보여줄 모습에 따라서 한국에서도 유럽과 같은 사태 전개가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진보’ 정권이 위기의 근본 병인에 손도 대지 못할 경우 그 실망감이 역사의 반동으로 이어질 비극적 가능성이 엄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의 재구성’ 혹은 ‘좌파 재구성’이 점점 더 절실한 과제로 다가오게 된다. ‘진보의 재구성’에는 여러 과제들이 포함되어 있지만(가령, 새 세대 좌파 정당의 독자적 존립과 발전 등), 이념적 측면에서는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형성된 진보 좌파의 왜곡되고 축소된 정체성을 넘어서는 것이 핵심이다. 단순한 재분배 정책의 틀을 넘어 자본-노동 관계의 역전을 비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아마도 고전 사회주의의 이상이었지만 국유화만으로는 제대로 실현할 수 없었던 과제, 30여 년 전 스웨덴 임노동자기금 구상이 신자유주의의 공세 앞에 좌절한 이후 망각되어온 그 과제가 다시 전면에 부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가 기업 경영권을 쟁취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또한 거대 자본 권력 해체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필자주-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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