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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특집1] 2-1. ‘성과급’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2012.03.22 16:02

진보교육 조회 수:1104

 

2. 2012년 주요 투쟁과제

 

2-1 [성과급]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손지희 / 상신중

 

 

짜증난다 성과급

 

넌덜머리가 난다. 2007년부터 시작한 균등분배, 순환등급제 여기에 사회기금모금. 나날이 쪼그라드는 '대오'. 몇 개 학교에서 얼마나 '현장무력화'를 해내고 있는지 집계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 괴물같이 커져가는 성과급을 이제는 외면하고 싶다.

'현장무력화', '사회기금' 전술이 현장에 들어오고 나서 성과급에 관한한 현장은 철저히 무력화되어 왔다. 분회가 살아 있는 학교는 유지하지만 그나마 희망자 위주로 축소되어 왔고 처음부터 아닌 학교는 계속 아니고. 돈 걷고 다시 나누고. 번거롭고 힘은 드는데 그만큼의 보람이 없다. 투쟁의 위력? 전망? 대중적 참여 확대? BC끼리 모여서 나누고 A는 점점 이탈하고. 심리적 위안이라도 얻겠지 싶었지만 이제 그도 아니다. 등급매기기는 더 ‘엄격’해져서 정부가 내려 보낸 지표 거의 고스란히 시행되고 있다.

충분히 예견된 바였다. 성과급과 평가공세가 앞서 들이닥친 공무원들만 보아도 능히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초반부터 균등분배로 대응했다. 기껏 줬더니 나눠먹는다고 이래서야 제대로 효과가 나겠냐고 보수언론으로부터 먹지 않아도 좋을 욕까지 얻어먹었건만 대오는 와해되었고 성과급, 인사고과제가 안착된 지 한참이다. 성과연봉제 형태의 임금체계를 시행하는 곳도 제법 된다. 일반 공무원은 성과급 4등급(S,A,B,C) 중 최하위는 한 푼도 받지를 못한다. 남들처럼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건 최하등급일 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한 달 치 월급 덜 받고 생계를 꾸려야 한다. 그 타들어가는 심정이 오죽하랴. 그런데 제도가 안착되는 과정을 겪은 결과 사람들의 인지와 정서에 남는 것은 '무력감', '위화감', '박탈감'이고, 싫지만 어쩌겠냐는 "대세론"이란다.

우리가 위축되는 만큼 저들은 더 기고만장했다. 2009년, 경력 요소는 기준에서 제외시키라고 하명했고 급기야 균등분배 참여자는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협박까지 일삼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성과급을 점점 키워가는 동안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 하는 자괴감만 커진 것은 아니다. 흐지부지 어영부영 대처한 지난 5년 간 갉아먹은 소중한 자산은 '투쟁동력'이다. 성과급 같이 교사대중이 가장 예민하고 대중적 동력이 확실한 핵심사안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데 다른 사안에 대중동력이 깜짝 확대될 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직감'이 아닌 '이성'에 기반하여 나서야 하는 여타의 신자유주의정책들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지난 5년간 '되지도 않을 투쟁'처럼 보여 지레 겁먹고 성명서 낸 것으로 소임을 다한 것인 양 지도부부터 투쟁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대다수 사안은 지역별로 알아서, 학교별로 알아서 대응이 일관된 기조였고 '서명'이 슬그머니 '수위 높은 전술'의 위치에 올랐고 정권 바뀌기만을 벼르는(?) 정서가 팽배해져왔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의 추이와 역학관계

 

한국교육사에 성과급이 등장한 지 길게는 16년 본격적으로는 10년째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되어 점점 괴물처럼 커지고 있다. 지난 흐름을 한 번 돌아본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1996년 ‘성과상여금’으로 그 시작은 미미 (그 끝은 과연 창대할까?)했다. 당시는 '이게 뭥미?'라는 정서를 촉발하긴 했지만 소수를 대상으로 지급되다 말았고 전교조 비합법시기였던 데다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때라 대체로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1998년 중앙인사위는 상위 50% 교원에 대한 교원성과급제를 도입코자했으나 때마침 터진 IMF사태의 여파로 ‘예산문제’ 때문에 유보했다.

 

분수령이 된 2001년 - 대규모 반납투쟁으로 일단 승리

2001년 1월, 정부는 정원 70%에 대한 교원성과급 차등지급을 결정하였으나 교직단체 반대로 일단 유보하였고 9월, 예산액 10%는 단위학교 복리후생비로, 90%는 4등급으로 차등하여 지급을 결정한다. 이에 전교조는 전액반납투쟁으로 맞섰다. 반납결의서명자는 80,540명이었고 전국 4,411개 학교에서 반납결의서명자 수보다 많은 81,602명의 교사가 전액반납투쟁에 동참하여 370여억원(세금과 이자를 제외하면 298억원)을 반납하였다. 가히 그 열기가 짐작이 간다. 이에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성과급 수당화 또는 폐지 등 전면 개선안을 마련키로 전교조와 협약을 체결한다. 2002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성과급제 폐지, 자율연수비 지급으로 당초 방침에서 크게 후퇴하여 사실상 성과급이라 할 수 없는 형태로 지급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전교조는 일단 투쟁을 종료한다. 2002년 2월8일자 긴급속보를 보자.

 

“우리는 올해의 승리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올해는 정부가 굴복했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로 다시 부활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공무원수당등에 관한 규정에 ‘성과상여금’ 지급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수당규정 개정에 의해 성과급이 완전히 폐지되지 않는 한 정부는 언제든지 성과급을 들이대 교육현장을 또 혼란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2002년 4월 중앙인사위는 10% 모범교원에게 포상금 지급방안을 제안하였고 교직단체는 이에 반대한다. 9월, 교육인적자원부는 90% 능력개발지원비 명목으로 균등지급, 10% 차등지급을 제안하고 이 방식으로 성과급이 지급되었다. 폐지 또는 수당화라는 협약내용을 벗어난 것으로서 약한 형태일지나 성과급을 너무도 빨리 부활시킨 것인데, 당시 전교조는 이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 지급방식은 2005년까지 유지된다.

2001년 당시 성과급투쟁 전술과 관련하여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는데 균등분배를 주요 전술로 논의하다가 "투쟁이냐 투항이냐"라는 현장의 문제제기, 서울 등 몇 개 지부의 앞선 결의로 반납투쟁을 전격 결정함으로써 정부의 시도를 파탄냈고 결과적으로는 차등확대를 늦출 수 있었다.

 

개악시도가 본격화된 2005년

2005년 7월, 교육인적자원부는 성과상여금 지급 개선(성과급을 성과급답게) 계획을 발표한다. 일단 2005년도 성과급은 ‘2006년 성과급제도 개선 방안 협의’를 전제로 일단 예년 방식으로 지급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중앙인사위원회에 교원4단체가 성과급제도개선 협의를 승낙했다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즉 이때 개선협의에 전교조 지도부가 합의함으로써 '개악'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2006년 1월, 중앙인사위원회는 기본급 비중 확대라는 명목을 내세우면서 정부는 각종 수당 축소/폐지에 성과급 비중 확대를 동반하였다. 2006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공무원 성과상여금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한 후 5월말, 교육인적자원부 ‘다양한 기준’(즉 경력순으로 지급하지 않고 평가하겠다는 의미로)에 의한 3단계 등급화로 50%차등지급으로 방침을 구체화하여 발표한다.

아랫돌 빼어서 윗돌 얹는 식인데도 위원장 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일 당시 전교조 집행부(이수일 위원장 사퇴로 비대위체제였음)는 본봉인상에만 의미를 크게 부여하여 조합비 인하방침을 결정했고 이는 위원장 보궐선거와 함께 치러진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확정된다. 과연 저렴해진 조합비로 조합원이 확대되었을까? 이 성급한 결정은 조합원 감소 추세와 정권의 탄압이 이어지면서 조직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는 성과급 확대라는 본질은 외면한 채 당장 있을 위원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결과였다. 임금의 전반적 하락, 임금격차 확대를 어찌하여 가볍게 여긴 것일까? 2006년 성과급 투쟁이 성과없이 종료되었고 이후 교사들은 본봉이 올랐는데도 제자리걸음인 월급명세서에 분통을 터뜨렸고 해마다 확대되는 성과급 격차에 입이 벌어졌다.

 

2006년 전액반납으로 성과급 저지투쟁에 돌입하였으나...

2005년 시작된 개악시도에 당시 지도부의 섣부른 협의 승낙으로 초기대응 기회를 놓쳤으나 2006년 상반기 전교조는 성과급저지투쟁을 결정하여 117,000여 교사가 전액반납결의 서명에 참여하였고 당초 계획보다는 낮춘 차등20%로 지급(교총은 조건부 수용, 자교조는 찬성, 전교조는 반대)이 강행되자 1차 성과급이 지급된 직후인 8월 전액반납에 돌입하여 그 규모가 900억원에 달하였다.

2006년 하반기 노무현 정부와 보수언론의 전교조 때리기 공세는 극에 달하여 전교조 출신 인사가 대놓고 '초심론'을 들먹이며 전교조 비방에 나서고 전교조 4대 선거를 앞두고 위원장이 해직되는 등 보수진영은 물론 자유주의 세력이 앞장선 총공세가 이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정부는 '협상 안 해주고 버티고 계속 때리면 되겠지'라는 속셈이 분명했던 듯하다. 때리기 공세와 정부의 모르쇠 때문인지 선거를 앞두고 조직 내에서도 분열이 발생한다. 성과급 반환을 독촉하는 등 정권과의 대치상태에서 단결을 헤치는 신중치 못한 행위들이 나타났다. 정부의 공세 때문에 분열이 생긴 것인지 분열을 틈타 정부가 공세를 강화한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아직 성과급 투쟁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정진화 후보진영은 '성과급 투쟁 패배론'으로 장혜옥 후보진영을 공격했고 강신만 후보진영은 교원평가 수용론을 제출했다. 때 아닌 "진성반납" 논란이 조직 내에서 (광범하게는 아니었으나) 일었고 이때 시작된 반납을 둘러싼 옳지 않은 논의구도는 2011년까지 지속된다.

2006년 지도부는 9월14일 기자회견문에서 “차등성과급을 폐지하고 연구수당으로 지급할 것”과 “차등성과급이 폐지되는 그날까지 반납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전개해 갈 것”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투쟁이 장기화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고려하지는 못했다. 투쟁목표 쟁취 때까지 완강히 반납대오를 유지해야 함을 분명히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연말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조직 내외적으로 버티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 결과 전교조 선거에서 성과급반납투쟁 반대진영이 승리하고 신속하게 반환조치가 이루어짐으로써 대규모 전액반납 참여에도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후 성과급 전술 논의 때마다 '걷었다가 다시 돌려주는 일을 반복하는 반납은 더 이상 안 된다', '반납은 실패한 전술'이라는 사실관계가 정확하지도 않은 주장이 힘을 얻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16년 간의 성과급 역사에서 반납투쟁을 한 것은 성과급 성격의 변화가 감지된 2001년과 2006년 단 두 번이었다.

 

대응기조가 전환된 2007년

2007년 새 집행부는 성과급 반납액을 조기반환하고 성과급 투쟁에 대한 방향전환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한다. 2007년부터 전교조는 현장무력화 및 사회기금조성 전술을 성과급 저지를 위한 주요 전술로 내세웠고 이 기조는 2010년까지 유지된다.

전교조의 방향선회 후 나타난 성과급의 변화는 우선 규모와 차등비율의 꾸준한 확대이다. 아래 표에서 보다시피 2007년에는 차등비율을 20% 유지하되 규모를 확대하여 1회에 걸쳐 지급하였고 2008년에는 차등비율을 30%로 확대하는 한편 규모도 확대하였다. 2009년에는 차등비율을 최저 30%로 하여 50%까지 학교별로 결정하도록 열어두었는데 결과적으로 이 조치는 바로 다음 해인 2010년 차등비율을 최저50%로 상향조정하는 발판이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의 '새로운 전술'이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음은 이미 경험으로 입증되었다.

 

 

2011년, 새로운 상황의 도래

 

2011년 학교별 성과급의 등장

불행인지 다행인지, 위기인지 기회인지, 정부는 이정도면 전교조도 저항을 포기한 것이라 는 확신이 들었는지 2011년 성과급의 재변모를 감행한다. 바로 학교별 성과급의 도입이다.

 

 

성과급의 이원화는 교원평가, 기관평가, 성과급의 합체 및 성과연봉제로 가기 위한 전단계이자 과도기적 형태로 보아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정부가 성과급의 재편을 꾀할 때마다 성과급 '개선연구' 보고서가 나온다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2011년 학교별 성과급 도입 시기를 전후로 개인별 성과급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기관 평가'를 도입, '집단 성과급'을 결합(집단별로만 하면 '무임승차'가 생겨서 안된다는 논리)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보고서가 몇 편 나왔다. 개인별 성과급의 한계로 지적한 내용이 가관인데, '협력을 도모하는데 문제가 생기며' 공공부문의 성과라는 것이 개인의 성과로 퍼펙트하게 귀속시켜 평가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불만이 고조되고 동기유발에 실패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국내에 [경쟁에 반대한다]는 저서로 잘 알려진 알피 콘은 당근과 채찍에서 당근도 결국은 채찍이 된다는 사실을 '보상으로 벌하기'라는 문구로 표현한 바 있다. 성과급도 '상을 주는 듯' 가장하지만 결국은 처벌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일침이다. 사실이 그렇다. 성과급이 정말로 '상'이라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불편해하겠는가. 중간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듯 하고 최하를 받으면 '더러운 기분'일 듯 하고 최상을 받으면? 글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거기까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교직사회에서 대놓고 잘난 척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보완책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아울러 보상' 아니 등급과 그에 따른 돈으로 '연좌제로 벌하기'를 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로 '학교 성과급'이다.

학교성과급은 교육의 문제를 학교와 교사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야할 교과부에겐 평가자라는 면죄부를 준다. 가히 신자유주의의 최고형태라 아니할 수 없다.

작년에 적용된 학교성과급 평가지표는 다음과 같다.

 

올해의 공통지표 역시 작년과 다름이 없는데, 달라진 점이라면 체력발달율을 중학교 평가지표에 포함시킨 정도이다.

 

캠벨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양적지표를 많이 사용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한 부담을 높이면, 즉 고부담평가가 되면 과정자체가 아예 왜곡된다는 것이다. 계량화하여 비교하고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하게 되면 애초 평가하려던 것, 측정하려던 내용과 과정은 파탄이 나버리고 엉뚱한 실적경쟁, 눈속임, 부정행위가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NCLB에 따른 책무성평가가 그렇고 이를 따라한 우리나라의 일제고사가 딱 그렇다. 시험의 결과, 평가의 결과가 나 혼자로 끝나지 않고 소속된 집단에도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에 따른 차이가 커질 때 자꾸 엉뚱한 짓을 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되고 구성원들은 다양하고 독창적이고 교육적인 방식을 모색하기를 멈추게 된다. 시험기술을 측정하는 것인지 학력을 측정하는 것인지 역전된 현상이 비일비재하듯이 학교성과급으로 부담감을 주면 줄수록 망가지는 건 교육이고 교사들은 서로 공범이 되어 평가지표에 어울릴만한 성과를 만들기에 급급하게 된다.

개인성과급은 좀 과장하자면 '개인이 경제적 손해와 감정적 손실'을 감당하면 되는 문제에 그칠 수 있고 사실 정부로서도 개인성과급만으로는 '성과급의 취지'를 살리지 못해왔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학교성과급이다. 개인성과급의 '한계' 즉 여러 연구에서 언급하는 개인성과급이 경쟁의 동기유발책으로 크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인식하고 도입한 제도가 학교성과급이다.

 

2011년 전교조, "반납"을 둘러싼 혼란

 

2007년을 기점으로 성과급 대응 방향이 전환되고 개인성과급이 갈수록 확대일로에 있는 중에 학교성과급이 도입됨으로써 '현장무력화'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기금조성사업도 그간 공식 인정된 바는 없으나 사실상 실패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남은 대응수단은 뻔했다.

하지만 2011년 2월 대의원대회에서 전교조 지도부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대의원들로부터 학교성과급 '반납' 제안이 제법 나왔다. 물론 제안들이 구체적이지는 못했다. 대대에서 학교성과급 대응방안은 구체적으로 정리될 수 없었고 반납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정도로 대의원대회는 마무리되었다. 세부 대응 방안 수립은 중집에 위임되었다. 이후 수차례 대응방안에 대한 현장의견을 수렴해달라는 부탁이 지회로 전달되었다.

혼란이 시작되었다. '반납'을 (전교조에 반납하는) 기금조성과 동의어(수령자가 그 돈을 액수가 얼마든, 어디로든 내놓으면 반납으로 이해)로 이해한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일정액 반납까지 열어두었고 어디다 사용할 지 8월 대대에서 결정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조합원들에게 전달된 선전지에는 '반납투쟁'이라는 문구가 선명해서 과거 두 차례 반납 경험이 있는 조합원들은 당연히 정부에 거부의사표시로 반납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성과급이 방학 때 지급되고 '모금'임이 분명해지면서 (성과가 없을 것이 뻔한 돈 내달라는 얘길 해야 하므로) 활동가들은 맥이 빠졌고 서명에서 확인되었던 가능성은 학교성과급 투쟁동력으로 현실화되지 않았다.

8월 대대에서 사용처 및 성과급 투쟁 전술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쏟아졌고 기금사용처에 대한 수정안과 재수정안이 속출하고 전술의 방향도 분명히 정리되지 않은 채 대대는 유회되었다. 전국적으로 10억 원 정도가 모였다. 기자회견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가 이 돈을 수령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에 반납을 하려면 명단도 공개해야 한다' 등 상층부에서 논란이 약간 벌어지다가 결국 11월8일 교과부 앞에서 반납 기자회견을 하고 2011년 학교성과급 투쟁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물론 교과부는 돈을 수령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본부의 반납 기자회견에서는 투쟁의지가 읽히지 않았다.

 

 

끝장내자 성과급

 

성과급, 누가 끝장낼 수 있는가

2001년 성과급 투쟁을 할 때 그 시작이 곧 끝이기를 바랬건만 성과급의 역사는 아직 끝날 줄을 모르고 있다. 정부는 2005년 세운 계획대로 교원 성과급 규모와 차등폭을 계속 넓혀왔다. 물론 저항이 없지는 않았지만 2007년 이후의 추이를 보면 정부가 현재로서는 winner다.

하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성과급의 보완할 점으로 '평가기준의 합리화'를 그들 스스로 얘기했지만 결국 예견한 대로 관료세력과 정권의 전횡만 강화되었다. 요컨대, 그들 스스로 성과급을 정당화할 이론적, 경험적 명분은 깡그리 바닥이 났다. 다만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을 따름이다.

첫째, 정부는 이 정도에서 즉 학교성과급에서 멈추지 않고 성과급 제도를 교원평가와 결합시켜 더더욱 '퍼펙트'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성과급이 폭력적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여전하다. 둘째, 정부의 괴롭힘 수위가 높아질수록 교사들의 불만 정서는 광범위하고 깊어진다. 대중의 자발성에 기대어 '저절로 폭발'을 기다리는 것은 금물이지만 성과급의 질적 변화는 교사대중의 저항을 조직할 계기가 되기도 한다. 맞서 투쟁할 가능성 역시 여전하다. 문제는 전술이다.

성과급을 끝장내는 키는 정부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체들의 조직적 저항을 일으키느냐 못 일으키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맞서지 않으면 성과급은 다른 평가제도와 합체한 괴물로 우리 앞에 등장하여 교육을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두고 두고 후회하게 된다.

2011년 학교성과급 투쟁이 결국 기금으로 귀결됨으로써 투쟁의 최적기를 살짝 놓친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그 과정을 통해 '올바른 성과급 투쟁전술'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더 늦으면 곤란하다. 게다가 2012년은 정치적 변화의 시기다. 'mb정권초기'라는 조건에 비하면 주체적인 투쟁으로 변화를 일굴 가능성은 훨씬 큰 때가 아니겠는가.

 

2012년, 어떻게 맞설 것인가 - "성과급거부, 수당화 쟁취"를 위한 차등액 누적반납

2011년 '반납'의 의미를 둘러싼 혼란과 전술의 오류 속에서도 현장교사들은 누적반납 기자회견, 지역별 균등분배 전개가 진행했다.

서울지역 현장교사들은 '차등성과급 폐지를 위한 학교별성과급 누적반납추진단'을 구성하여 '성과급폐지, 수당화 재지급'을 요구사항으로 목표가 실현될 때까지 학교성과급 전액반납을 통해 성과급 거부의사를 표명한다는 의미로 교육청 앞에서 11월8일 반납 기자회견을 했다. 전교조의 공식 전술은 아니었던 탓인지, 178명, 3400여 만원으로 규모는 적었지만 2007년 이후 전교조의 성과급 대응 전술을 바로 잡고 '성과급 폐지'라는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현장의 실천으로 나타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2년 대대에서 지도부가 내놓은 전술은 개인성과급은 학교내 균등분배, 학교성과급은 지역 혹은 전국 균등분배였다. 사회기금전술의 실패가 5년 만에 인정된 셈이다. 남은 전술은 지역별 균등분배와 누적반납 두 가지로 좁혀져 있다. 누적반납 전술의 여지는 열려 있다. 지부와 현장의 결의, 이를 통한 전국화 추동이 남은 과제다. 뻔한 답을 찾아 몇 년의 세월, 투쟁의 동력을 잠식하며 돌고 돌아 온 것이 야속할 따름이다.

공무원들과 우리 교사들의 경험에서 확인된 바지만 수 년간 성과급 투쟁 전술이 아닌 것을 성과급 투쟁인 양 해온 전교조로서는 그 끝을 분명히 알 수 없는 반납투쟁을 시작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 진성반납 논란에 휘말리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되고 혹시나 더 대중적이지 않을까 싶어 균등분배가 (지금 시점에서는) 타당하다고 여길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균등분배는 성과급폐지에 근접하는 상황을 만들지도 못할뿐더러 지속이 가능한 전술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과급'에 대한 교사들과 전교조의 입장을 다시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를 분명히 하는 유일한 수단은 '성과급을 거부하는 행동의 조직'이며 명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거부의 방식은 '성과급 폐지 수당화 쟁취라는 투쟁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성과급을 거부' 즉 "정부에 반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이 의지를 '누적반납'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누적반납은 수당으로 그 성격이 변화되었을 때 비로소 정당한 임금으로서 받겠다는 의지의 실질적 표현이다. 정부가 받지 않을 것이고 결국은 돌려줄 것이므로 진정성이 없다는 논란은 쓸 데 없다. 문제삼는 것은 돈을 주는 자체가 아니라 '돈의 성격과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냉큼 받아버리면 어쩌나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정부는 그 돈을 받을 의사도 근거도 없다. 작년에도 그 전에도 확인이 된 바다. 일단 '성과급으로 지급'하면 자신들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더. 반납투쟁은 정부가 제일 싫어하고 곤혹스러워하는 전술이다. 왜? 사회적으로 시끄러워지니까!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돈만 쌓아놓자는 건 아니다. 지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사회적 반향'이다. 성과급 폐지 나아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끝장내는 것은 주체들의 '행동' 없이는 곤란하다. 적절한 행동만이 사회의제화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과거 성과급 관련 기사의 양을 보면 2001년과 2006년, 전교조가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행동(반납투쟁)했을 때가 가장 많았다. 2011년 기금사용처를 결정 못해 마지못해 한 본부의 ‘반납기자회견’도 언론을 탔다. 기금조성과 균등분배는 아무런 반향 없이 끝났다. 투쟁을 해야 공간이 비로소 열린다는 뜻이겠다. 일단 공간을 확보해야 성과급의 부당성 나아가 신자유주의 평가정책의 반교육성을 알릴 여지도 생긴다.

정치적 역동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정권이 바뀔 지 그놈이 그놈일 지, 보수가 환생을 할 지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다. 지금은 선거용 좌클릭이 대세이긴 하지만 그냥 믿고 맡길 수 없다. 그 어느 경우든 다음 정권에서 승부를 보려면 지금부터 쟁점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 정권의 성격이 어떠하든 할 말이 생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에 이르기까지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차지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기조는 점점 강화되었다. 성과급은 신자유주의 정권들에 의해 '성장'해왔고 자유주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도 예외는 없었다. 2006년 성과급 투쟁 당시 전교조 때리기에 골몰하며 지도부를 감히 선택하려 선거에 개입한 자들은 바로 자유주의 정권과 세력이었다. 신자유주의 공세의 강화는 성과급의 확대 강화와 양의 상관관계를 이루었으며 전교조의 투쟁 포기와 반비례였다. 총선, 대선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차기 정권을 누가 차지하든지 간에 "정권 교체"만 염원해서는, 균등분배 정도로는 그들이 알아서 '성과급 폐지하고 수당으로 전환해 드릴께요'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자유주의 세력이 차기에 집권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완전 백지화를 알아서 실천할 리 없다. 입장에 따라서는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자체에 의미를 두고 '선거 올인'을 주장하지만 '사기당했다'는 후회, 제 손가락으로 자기 눈 찌른 꼴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학교성과급에 관한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분명하다. 아마도 5월 쯤 등급이 통보될 것이고, 6월에는 통장에 기분 나쁜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나마 방학 전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과급 거부, 수당화 쟁취'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즉 '누적반납'을 지금부터 결의하고 실천하는 것. 개인성과급 차등액도 묶어서 전국적으로 하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하겠지만 최소한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을 결의하는 지부, 현장의 움직임이 3월 내에 나오는 게 지금 기대할 수 있는 그림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국적 실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싶다. 적어도 작년부터 서울지역에선 학교성과급 누적반납을 실천했고 지속을 다짐했다. 서울지역 누적반납 추진단은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추진단을 믿고 누적반납에 동참에 주신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싸움을 계속할 각오가 되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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