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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제언] 조용한, 그러나 거대한 혁명의 시작

2012.10.15 15:18

진보교육 조회 수:449

[제언]
조용한, 그러나 거대한 혁명의 시작

이성대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이 시작되다.

지난 9월 9일 일요일 오후, 용산에 있는 철도노조 본부 대회의실에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260여명의 민주노총 현장 활동가, 좌파 제 정치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대토론회’가 진지하고도 열띤 가운데 열렸다.
4.13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전제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 등 3정파가 통합진보당을 만들면서 시작된 ‘통진당 사태’가 몇 달을 끌면서 도매금으로 ‘진보’가 매도당하기에 이른 진흙탕도 이런 진흙탕이 없는 참담한 풍경 속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논의! 정치 근처에도 가기 싫은 분노와 좌절감과 무기력감이 켜켜이 쌓여 온 와중에서 새롭게 시작된 이 판이란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 노동자의 정치 세력화에서 좌파들은 한 번도 현실 정당정치에 발을 담근 적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내세웠던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하여 만든 정당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좌파들은 초대받지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도 않았다. 좌파들은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를 설정하고, 다른 면으로는 의회주의를 경계하면서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힘 있게 조직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런 그들이 왜 하필이면 ‘진보’가 철저하게 심판받고 있는 이 척박한 와중에서 정당을 건설하겠다고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인가?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논의의 배경

현 시점에서 좌파 활동가들이 노동 현장이라는 한계와 소그룹적 결사의 한계를 넘어 전국 단위의 정치 세력화, 전체 사회와 노동자들의 전면에 나서는 정당의 건설에 나서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주객관적 배경이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로는 세계 경제의 공황 국면이 심화되면서 대안 사회를 요구하게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융자본의 탐욕으로 인한 위기,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가 부도 위기로 현상되고 있는 세계 공황과 그로 인한 노동자 민중의 대량 실업과 빈곤의 고통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자본가들이 호기롭게 외쳤던 ‘역사의 종말’이 완전 허구였으며 이제야 새로운 대안 사회가 모색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개량이 아닌 새로운 대안으로서 ‘민주주의가 있는 사회주의’를 내걸고 정치의 전면에 나설 때 노동자 민중의 결집과 진정한 정치 세력화가 가능해진다는 판단이 좌파 활동가들에게 주저 없이 깃발을 들게 하고 있다. ‘진보적인’ 모 경제학자는 ‘착한 삼성’을 말하면서 자본과의 대타협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지금 우리는 현실로 개량의 종착점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로는 최근의 ‘통진당 사태’가 참담하기는 하나 ‘운동권’에서 오만과 독선의 헤게모니를 휘둘러 왔던 우파(=자주파)의 철옹성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이다. 그동안 우파들에는 종북주의, 개량주의, 타협주의의 비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해로운 것은 그들이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권력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변혁이 아니라 운동권 귀족, 운동권 기득권층이 되어버린 상황은 치명적으로 한국 사회 노동운동,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병들게 하고 있고 그 극적 표출이 바로 이번 ‘통진당 사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을 개혁하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희망 있게 만들 의지와 전망이 있다면 지금 당장 대안 세력으로 나서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운동이 기대하는 중간 목표점은 우파에 대한 반정립 정도가 아니라 그들까지 변혁 세력으로 일신하는 것이고 최종 종착점은 대안 사회의 건설,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승리이어야 한다.
셋째로는 좌파를 둘러싼 주관적 요인의 변화들을 꼽을 수 있다. 80년대 이후 성장해온 한국 사회의 노동 운동, 노동자 계급 투쟁 속에서 서서이나마 성장해온 좌파들이 이제 전체 사회에 당당히 대안 정당을 건설하여 나설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이다. 좌파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정치 세력화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투쟁을 힘 있게 조직하는 것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 실업, 학생 등 미조직 대중을 결집시키고 지역 차원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자면 좌파의 대안을 제시하고 대안 세력으로 나서는 정당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 부르주아 정치의 한계가 분명하지만 SNS 등 정보통신의 변화에 따라 선거를 포함한 현실정치에 의미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의회 주의는 경계해야 하나 의회 진출과 전술적 활용은 필요하다는 것 등의 인식의 전환이 있어 왔다. 이러한 역량의 성장과 인식의 전환은 <노동자전선> 건설 이후의 실천 활동 속에서  축적되어 왔다.

정당 건설 논의의 전개과정

사실 노동자 계급정당, 좌파 정당, 사회주의 정당 건설 논의는 2012년 초에도 이미 있었다. 당시 논의는 좌파 정치 사회단체들의 연석회의에서 건설해야 할 정당의 성격, 노선을 합의하기 위한 토론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3년 총선을 1년여 남겨두고 있는 시점이었으므로 당시 논의가 기대대로 이루어졌다면 정당이 만들어지고 이번 총선 정국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론회는 좌파 단체들을 망라하는 토론회를 가졌다는 점,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점, 그러한 방식의 당 건설 논의가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는 성과 이상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논의는 2월에 통진당으로 3당이 합당하는 것에 반대하는 현장 활동가 선언을 조직하면서 단초를 열었다. 통진당 야합, 야권 연대 단일화 속에서 치러진 4.13 총선이후, ‘통진당 사태’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당 건설 논의는 현장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되었다.
금속노조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5.12에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전 모임, 6.9에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1차 토론회, 7.14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2차 토론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당 건설 논의는 좌파 활동가들은 물론 노동운동가들에게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대전에서 열린 7.14 토론회에는 1백여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참여하여 힘 있는 현장 투쟁과 당 건설 투쟁을 결의하여 당 건설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이후 활동가들은 지역별, 연맹별로 활발한 토론회를 갖고 당 건설의 필요성, 당의 성격, 당 건설의 경로 등에 대한 의견들을 수렴하였고 마침내 9.9 ‘변혁적 현장실천,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대토론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7월 이후 논의는 전교조, 공무원노조, 공공운수연맹 등 공공부문 3조직의 활동가들로 확산되었다. 3조직 활동가들의 연석회의가 열리고, 각 연맹별 회의가 2~3회 열려 그간 금속노조 활동가들의 논의 결과를 확인하고 9.9대회 참가자를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정파 중심에서 현장 활동가 중심으로 논의의 틀을 바꾸면서 노동자 계급정당 논의는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장 활동가 중심의 토론회’가 정파들을 배제하거나 당 건설의 과제들을 정파들에 떠넘기는 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토론회에는 여러 정파에 가입되어 있는 활동가들이 정파 구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참석하였다.

9.9대토론회가 남긴 성과와 과제

9.9대토론회가 남긴 성과는 현장 활동가들의 당 건설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10.13 당 건설을 위한 전국 활동가 대회를 결의함으로써 그동안 안팎에서 ‘좌파들의 당 건설 논의가 있긴 하나 현실화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상당 부분 불식시켜냈다는 점에 있다. 9.9토론회에서는 먼저 쌍용차지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3지회,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 등 3개 투쟁 주체의 투쟁 보고와 연대 투쟁 결의가 있었다.
토론회는 김일섭 전 대우차 노조위원장의 발제와 이호동 전 발전노조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발제는 8.10 이후 전개되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투쟁을 외면하고 있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행태는 2008년 기륭전자 94일 단식농성, 2009년 쌍용차 77일 옥쇄파업,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25일 점거파업,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의 309일 고공농성 투쟁을 방기하고 배신했던 타성과 관료주의에 원인이 있으며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 운동이 현장 투쟁을 복원시켜야 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통진당 사태의 핵심은 그들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점이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악법을 만들었던 세력과의 ‘묻지마 통합’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비판하고 이를 묵인한 민주노총은 또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앞장서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하였다. 결국 통진당 사태는 현장 투쟁과 정치 활동, 민주노조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현장에서 실천하는 노동자들이 무너진 노동운동을 일으켜 세우고, 탐욕의 자본주의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하였다. 건설되는 정당은 자본주의를 개혁하는 정당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노동해방, 사회주의 사회를 목표로 하는 정당,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는 정당, 당원들이 노동자 민중과 함께 실천하고, 당의 노선과 활동방침을 결정하고 집행해 나가는 정당이어야 한다고 발표하였다. 토론에서는 비판을 넘어 우리는 무얼 했느냐는 자성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의회주의로 흐른 것은 전망과 대안의 부재에도 원인이 있다, 노동자 계급 정당 건설로 대중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자, 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열정이 요구된다, 오늘 250여 명이 모였는데 다음 대회에는 2, 3천명이 모일 수 있도록 모두가 주체가 되자 는 등의 발언이 나왔다. 토론의 결과는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되었다.          
1. 변혁적 현장실천의 방향과 노동자계급정당건설의 기조는 토론회에서 제출된 내용을 추가하여 확정한다.

2. 9.21 쌍용차 정리해고 철폐 3차 범국민대회, 9.26 공동투쟁단과 함께하는 희망 연대의 날, 9월말 또는 10월초 현대차 비정규직 2차 포위의 날 투쟁에 적극 결합하며 이후 투쟁계획을 마련한다.

3. 2012 대선투쟁을 전개한다는 전략 방침을 확인하고, 후보 전술의 방향에 대해서는 확대된 기획단과 지역별 논의를 모아 10월 13일 활동가대회에서 최종 확정한다.

현장 투쟁에 연대할 것, 10.13대회를 힘 있게 조직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당 건설은 전 사회에 좌파세력의 대안과 의지와 역량을 투사하는 전면적 활동이다. 사회 변혁을 꿈꾸는 활동가라고 자임하는 모든 동지들, 민주노총의 타성을 개혁하여 노동운동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동지들, 스스로 좌파임을 자임하는 모든 동지들이 당면 투쟁과 10.13 대회의 힘찬 조직에 떨쳐나설 것으로 믿는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꿈꾸고 용기 있게 첫 걸음을 떼는 사람들에 의해 전진해 왔다. 우리들이 20여 년 전에 전교조를 건설했던 그 때의 열정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