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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비고츠키 발달원리로 보는 선행학습의 문제점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분과


1. 다들 선행학습이 문제라고는 하는데....

  한국은 매우 비정상적인 선행학습의 나라다. 유치원 시절부터 원어 영어학습에 수학에 난리다. 망국병으로 불리는 과외의 많은 부분도 선행학습으로 채워진다. 선행학습의 폐해에 대해서는 그 동안 교육계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지적해 오고 있다. 학업성취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연구들도 있다. 최근에는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선행학습이 정상적 발달에 매우 해롭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 선행학습 부작용…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아이들, 결국 하나도 몰라
“정말 아는게 아니라 아는 체” “새로 가르치기 매우 힘들다” “학교수업에 집중을 하지않고 딴짓” “수업분위기도 흐트러지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이 피해”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학습집중과 사고력 훈련이 되지 않는다.” “먼저 주입이 된 오개념은 상당히 고치기가 힘들다” “학원식 문제풀이 위주의 학습에서 오는 폐해도 심각 - 과정에 충실하지 않고 결과가 맞았는지 틀렸는지에만 관심, 기초과정을 생략”(인터넷 게시판에서)

선행학습을 상품으로 파는 사교육계도 교육적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진도를 앞당겨 '훑는' 선행학습, 학습 효과는 없어" "선행학습한 학생의 70~80%는 사실상 배운 게 배운 게 아니다" "'공부를 했다'가 아니라 '진도를 훑는다'고 표현하는 게 선행학습의 현주소"(최영석 송파청산수학원 원장. 2012 ‘수학 선행학습의 실태와 바람직한 규제 방안' 토론회에서)

교사들의 수업권을 침해하기도 하며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흥미도가 상실되고 무기력에 빠지게 되는 점 역시 지적된다.

"수업하러 가면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이 엎드려 자고 있거나, '다 알아요. 그 다음 나갑시다'라고 말한다"(수학교사모임. 최00교사) "아이들은 다 안 다고 착각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도 모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유치원 때부터 선행학습에 시달린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만 돼도 수학을 지긋지긋해한다" "과도한 학습노동이 교실에서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눈으로 봤을 때 그 절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서울D초 조00교사)


2. 선행학습의 발달역행적 성격
  이처럼 선행학습의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아이들이 힘들어 하거나 흥미도를 잃더라도 선행학습과 더 많은 공부가 아이들이 감당하기만 한다면 어쨌든 발달에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발달원리의 차원에서 선행학습이 지닌 문제점을 비고츠키의 발달원리로 살펴본다.

* 발달 최적기 위반
  비고츠키발달론에는 발달최적기라는 개념이 있다. 발달단계에 따라 특정 정신기능이 급속하고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시기 발달최적기 개념은 교육심리학 분야에서는 일반적 관점인데 몬테소리에서는 ‘발달의 민감기’라고 하고 피아제는 ‘전환기’라고 부르고 있다.
가 있다는 것이다.
  아동이 출생,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물학적 조건과 문화역사적 조건이 결합하면서 부모와의 정서적 교류가 중요한 시기, 지각과 감각이 발달하는 시기. 초기언어발달 시기, 개념적 사고가 발달하는 시기가 도정에 놓이게 되는데 이 때 그에 적합한 활동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질 때 발달이 효과적이고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 최적기를 이끄는 최적 활동을 ‘선도활동’이라고 하는데 선도활동은 해당 발달단계에 민감하게 형성되는 기능만이 아니라 발달의 여러 기능 발달을 함께 북돋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초기언어발달은 대개 1-2세경부터 시작되는데 이 때 초기언어발달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며 이 시기를 놓칠 경우 언어발달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달최적기 개념은 특정 정신기능을 담당하는 뇌부위가 발달과정에서 변화한다는 최근 뇌과학의 성과를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의 뇌는 크게 3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1층은 생명 유지의 뇌, 2층은 감정과 본능의 뇌, 그리고 마지막 3층은 공부와 이성의 뇌입니다. 뇌는 20년 동안 서서히 발달하는데 시기별로 뇌의 발달 부분과 각 부분이 기능하는 영역이 다 달라요. 그래서 아직 인지가능이 발달 안 된 유아에게 모국어가 아닌 인위적인 외국어 교육을 하면 원래 이 시기에 발달해야할 감정과 본능의 뇌가 잘 발달하지 못합니다. ... 모든 것 중에서 뇌 발달과 맞지 않는 선행교육이 가장 나쁩니다. 이제는 부모들이 남보다 일찍 하면 우리 아이 뇌가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서유헌, ‘선행교육은 뇌에 치명적 손상’, 한겨레 2013. 6. 11.)

  선행학습은 해당발달 시기 발달을 위한 최적 활동과 무관하게 진행된다. 그로 인해 최적 활동은 놓치고 대신 현재의 발달상황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운 활동을 주되게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한 발달적 폐해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발달 최적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됨으로써 해당발달단계에 형성되어야 할 발달기능들이 제대로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폐해가 심할 경우 이후 지속적인 발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둘째,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학습활동을 함으로써 실제 발달 효과는 없는 대신 다양한 악영향을 가져 오게 된다. 정신활동의 과부하와 스트레스, 정신기능간 네트워크 혼란, 집중력과 사고력 저하 등의 문제들이 파생된다.

* 안정기 파괴
  비고츠키발달론에 따르면 인간발달은 숨가쁜 상승의 연속이 아니라 비약적 발달 시기와 안정적 시기를 번갈아 경유하는 과정이다. 비약적 발달시기와 안정적 체화 시기로 구성되면서 하나의 발달 단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비약적 발달기와 안정적 체화기로 구성되는 하나의 발달단계 전체가 발달의 최적기를 이룬다.  
비약적 발달 시기는 새로운 생물학적, 역사문화적 조건을 맞이하면서 이전 시기와 질적으로 다른 정신기능이 새로이 형성되는 시기이다. 주요 시기는 신생아-1살-3살-7살-13살-17살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 구분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
  비약적 시기에는 새로운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발달의 새로운 어려움들이 등장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한 단계 발전된 정신기능들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어려움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해 나간다는 차원에서 비고츠키는 비약적 발달의 시기를 ‘위기의 시기’로 규정한다.
그러나 비약적 시기에 새로이 형성된 정신기능들은 아직 불안정하며 충분히 발달되지 못한 것이다. 안정적 시기는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발달기능들이 다양한 활동과 상호작용 속에서 안정화, 내면화, 체화되는 시기이다. 뇌과학으로 본다면 새로이 형성된 뇌기능과 기능 간 네트워크 체계가 안정적으로 재구성되는 시기라 할 수 있으며 안정적 시기를 즐겁고 활동적으로 잘 보내야 새로운 정신기능들이 자기 것이 되고 숙성된다. 안정적 시기는 단지 새로운 발달기능을 안정화하는 의의에 그치지 않으며 새로운 기능을 충분히 내면화, 체화함으로써 이후 비약적 발달의 토대가 된다. 즉 숙성은 새로운 비약의 조건인 것이다.
  이에 대해 선행학습은 새로운 정신기능을 안정화할 겨를 없이 소화하기 어려운 새로운 발달과업을 끊임없이 부과한다. 그럼으로써 발달의 위기를 항상적으로 조성한다. 이에 따른 우선적 폐해는 이제 막 새롭게 형성된 발달기능들을 미성숙 상태로 방치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달의 위기 상황을 일상화, 구조화함으로써 아동과 청소년에게 엄청난 정신적 과부하, 스트레스와 불행감, 자아존중감 상실 등을 야기한다. 그 결과는 발달 잠재력의 커다란 훼손이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지속적인 발달 위기 상황을 견디지 못하거나 실패를 반복함으로써 능동적 학습력과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현재 목도되고 있는 교실붕괴, 청소년발달위기의 근원이다.

* 리듬파괴
  안정기 파괴는 거시적 차원의 발달리듬 파괴이다. 그러나 발달의 리듬은 매일매일의 생활과 각 교과의 진행에서도 적용된다. 뇌과학에서는 열심히 공부한 다음에는 충분히 쉬고 잠을 자야 활성화된 뇌신경 간 네트워크가 제대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학습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박탈하며 미시적 차원의 발달리듬도 파괴한다.

* 총체적 발달 장애
  비고츠키교육학은 제 발달기능의 총체적 연관을 강조한다. 각각의 발달기능은 별도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며 여러 정신기능의 연결을 통해 총체적 역량이 구성되며 개개의 기능도 향상된다고 본다. 인간발달은 지식과 정보만이 아니라 정서적, 감각적 활동과 기능을 토대로 구체적, 기능적 활동과 지식을 쌓고 추상적, 개념적 사고와 실천으로 나아갈 때 올바로 진행될 수 있다. 전인교육 혹은 지덕체예 등의 총체적 발달 개념은 그냥 풍부하고 다양한 발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지적 기능이 튼튼하고 풍부한 기초기능발달을 토대로 이루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창조성은 별개의 개별 기능이 아니라 제반 발달기능의 총체화된 역량의 표현이다. 창조성만이 아니라 고등정신기능 일반이 그러하다. 이러한 관점은 다중지능이론과 현대뇌과학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현대뇌과학의 성과를 기반으로 다중지능이론을 제시한 가드너는 각각의 지능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특정 지능이 발현될 때 다른 지능들이 함께 참여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선행학습은 이러한 총체적 발달에 위배될 뿐 아니라 장애를 형성한다. 선행학습은 발달최적활동을 위반하며 발달기능의 안정화를 저해함으로써 이후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제반 기능을 시기에 맞게, 제대로 형성시키지 못하게 하고 미숙성상태를 방치하게 한다. 모든 정신기능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할 때 이 문제는 단지 개개 발달기능이 미성숙, 미발달된다는 아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발달의 잠재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게 되는 것이다. 후속발달을 제약하며 나중에는 같은 활동과 노력을 해도 발달적 성과가 크게 제약된다.
  총제적 발달의 관점에서 본다면 발달단계에 맞는 발달기능들을 충분하고 튼튼하게 쌓아 나가는 것이 발달잠재력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며 선행학습은 그 적이 된다. 교육선진국에서 선행학습을 거의 도덕적 차원에서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의 진정한 발달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발달 만큼은 ‘빨리빨리’와 ‘많이많이’가 적용되지 않는다.

* 근접발달영역 창출/효과적 도움의 어려움
  발달을 위한 효과적 상호작용에 대한 비고츠키발달론의 주요 개념과 원리로 ‘근접발달영역 창출’이라는 것이 있다. 근접발달영역은 ‘현재적 발달상황과 잠재적 발달 사의의 거리’로서 발달적 도움이 가능하고 필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데 효과적 도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0 목표의 공유 0 상호존중과 이해 0 주제의 적절성 0 매개, 활동의 활성화 0 협력학습의 결합 등을 필요로 한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협력적 도움주기’, ‘긍정적 상호작용’의 활성화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선행학습은 기본적으로 ‘주제’ 자체가 발달상황을 뛰어넘음으로서 근접발달영역이 창출되기 어렵다. 선행학습 상황에서 실제 발생하는 것은 발달적 상호작용이 아니라 주로 일방적 전달이나 잘해야 기능적 수행을 숙달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이 문제는 발달상황을 넘는 과도한 난이도를 지닌 공식교육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수행학습을 진행한 아동, 청소년이 학교수업을 할 때도 어려움을 야기한다. 심지어 해당 수업이 발달단계에 맞는 주제라 하더라도 선행학습을 이미 수행한 아동, 청소년은 이미 안다는 착각으로 목표공유, 상호존중이 약해지고 교수-학습과정에 적극적이고 협력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그럴 경우 해당 주제에 대한 교수-학습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발달의 기본기능이자 주체적 학습력의 기초인 집중력, 공감 및 협력기능의 저하를 야기한다. 공감 및 협력기능은 단지 공동체가치와 태도 형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지발달의 기본기능이다. 최근 뇌과학에서는 공감기능을 담당하는 거울뉴런이 인지작용에 적극 작용함을 밝히고 있다.
  또한 개념학습은 이론적, 추상적 개념과 일상적, 경험적 활동이 함께 결합되어야 제대로 성취될 수 있으며 비고츠키발달론에서는 아동, 청소년의 풍부한 생활과 경험, 활동을 과학적 개념 형성을 위한 근접발달영역 창출의 기본적 토대이자 과정으로 본다.  그런데, 선행학습 풍토는 기본적으로 과학적 개념발달의 토대가 되는 일상생활,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등한시하며 실제로 그에 대한 기회를 박탈시킨다. 기본적으로 선행학습에 결부된 관점과 상황 자체가 협력적 상호작용을 배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 발달생태의 관점에서 선행학습은 함께 망하는 길
  사회전체의 역량강화와 모든 아동, 청소년의 발달 차원에서 상호작용적 발달 관계를 일종의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어떠한 상호관계적 상황이 서로의 발달을 북돋을 수 있으며 사회전체의 발달역량이 강화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고츠키발달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본적으로 인간발달은 상호 협력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며 또래를 통한 상호작용은 매우 관건적이기도 하다. 발달생태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또래 간의 수평적 다양성과 일정한 발달의 속도 차이, 그리고 협력적 태도는 발달적 상호작용을 활성화시키는 생태적 조건이 된다.
  그러나 수평적 다양성이 제약되고 발달속도의 차이가 지나칠 경우 게다가 비협력적 경쟁 상황일 경우 발달생태는 매우 부정적 상황이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선행학습으로 인한 학습혐오 정서, 상호준중 약화(교사 및 학생 간), 부적절한 주제들의 도입, 발달상황 스펙트럼의 지나친 확대(선행학습이 전반적, 장기적으로는 발달은 물론이고 학습에도 악영향이지만 기능적 수행의 차원에서는 일시적, 부분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면서 스펙트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