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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기획] 4. 비고츠키 '생각과 말'의 교육적 의미

2011.07.18 21:47

진보교육 조회 수:1955

<비고츠키 『생각과 말』의 교육적 의미 : 인간 의식과 교육의 내적 관계 규명>

비고츠키교육학실천연구모임


난해함도 난해함이거니와 [인간의식의 자본론]이라고 불리는 저작을 정리하는 것은 영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직은 천박한 이해수준이지만 그럼에도 정리를 자임한 것은 ‘낱말의미는 발달한다’는 [생각과 말]의 핵심주장이 세미나라는 사회적 과정과 [생각과 말]이라는 학문적 개념체계(수단)를 통해 우리에게 일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2개월 반 정도 진행한 읽기와 토론의 과정을 돌아보니 [생각과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뭔 소리야’에서 시작했지만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더 나아가 ‘한국교육의 제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될 수 있고 나의 교육실천의 방향으로 구체화할 수 있겠다’라는 데 이르기도 했다.
‘이건 뭥미?’라 느껴질 정도로 정리가 서투르지만 교육을 고민하는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될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 어설픈 정리는 세미나를 함께 한 이들에게는 더 풍부한 이해와 해석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연구 문제와 연구의 구성
비고츠키는 서문에서 말한다. 이 책은 "생각과 말의 문제를 다룬 심리학 연구물"이다. "실험을 통해 축적된 자료를 분석하고 사실들을 토대로 작업가설을 도출하고 이를 이론으로 일반화하는 것과 함께 다른 연구와 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 등 다양하고 복잡한 연구"라고 연구의 구성과 구조를 밝힌다.(그래서 결코 읽기 쉽지 않은 텍스트이다.) 다양하고 복잡해보이지만 수렴되는 지점은 ‘발생 과정에 대한 분석’이며 이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것은 ‘사고와 낱말’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며 이것이 이 연구의 최종적 목적이다. 이 연구가 나아가고자 한 곳은 ‘인간의식의 문제 규명"이며 이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비고츠키는 간략하게 연구의 의의, 즉 기존 이론의 비판적 점유(중심 대상은 피아제의 생물학적 인지발달이론)와 실험을 통해 [새롭게 밝힌 바들을] 이렇게 간추린다.

① (실험-블록 실험을 주요 기제로-을 통해) 아동기를 통해 낱말의 의미가 발달하며 발달의 주요 단계를 결정함.
② (실제 개념에 대한 실험적 연구를 통해) 자연발생적 개념(일상적 개념)과 비교하여 과학적 개념 발달의 독특한 궤적을 드러냈고 이 발달의 근본법칙들을 설명함.
③ 말의 독립적 기능으로 글말의 심리적 성질을, 생각과의 관계를 드러냄.
④ 내적 말의 심리적 성질을, 내적 말과 생각의 관계를 실험을 통해 드러냄.  

맑시즘적 방법론에 입각할 경우, 연구의 과정과 서술(설명)의 과정은 반대이다. [생각과 말]에서는 연구의 종착점을 서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비고츠키는 연구로부터 드러낸 사실과 ‘분석 단위’에 대한 서술로부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단위인 “상품”에서 출발하는 자본론의 구성과 마찬가지다. 추상(총론, 1장)에서 구체(각론, 2~6장)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총체화(변증법적 종합. 7장 내적 말의 문제) 부분(낱말)에서 전체(의식)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운동을 통해 종합에 도달하는데 7장 마지막에서 “낱말의미는 인간의식의 소우주”라는 문장으로 저작은 끝을 맺는다.
비고츠키와 그 동료들이 내용 뿐 아니라 연구과정에서 취한 자세는 ‘변증법적 지양’이다. "진전에 대한 확인과 오류로 입증된 것을 배제하면서 재구성"(예컨대, 자극-도구-반응의 삼각형)하였고, "이전 작업들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되 어떠한 것도 절대적으로 올바르다고 상정하지는 않으면서 설명에 도달하고자" 한다. [생각과 말]에서 밝힌 바들도 불완전할 수  밖에 없음을 전제하면서 단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는 점에 의의를 부여한다. “생각과 말의 문제를 부각시킴으로서 ‘인간 의식’의 심리학 이론의 첫 걸음을 떼었지만 그 지점에서 연구는 중단”되었다고 토로하면서 향후 심리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한다. 결핵에 걸린 비고츠키는 병상에서 구술로 [생각과 말]을 저술하였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그는 아마도 통렬한 심정으로 인간 의식 연구의 첫걸음 단계에서 자신의 연구를 중단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하지만 인간 문화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그는 후속 세대가 이를 발전시킬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분서갱유에 버금가는 스탈린의 탄압으로 그의 연구가 사장되면서 이 발전은 한동안 미루어진다.  

* 인간의식의 고양을 위한 사회적 실천은 무엇?
앞서 언급한 대로 [생각과 말]의 근본 관심은 인간 의식의 본질 규명 즉 의식과 실재의 관계(인식)이다. 의식은 인간(주체)이 세계(대상)을 인식하는 심리적 구조로서 그것이 심리학의 관심사항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은 현상으로서 나타나며 본질을 즉각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발생적 과정'으로는 인간은 대상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상을 통해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자연발생적 과정을 통해(달리 말해, 저절로) 가능하지 않으며 비자연발생적 과정(달리 말해, 의식적 실천)을 경유해야만 한다는 것이 비고츠키 이론의 기저를 이룬다. 개인적 경험세계의 한계(시각적, 공간적 한계 등), 맥락에의 종속을 뛰어넘어 추상적으로, 탈맥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는 인간의 능력은 바로 비자연발생적 과정, 주요하게는 아동기에 있어서 학교교육의 과학적 개념(비자연발생적 개념의 최고의 유형. 혹은 학문적 개념) 형성(형식교과의 교수학습과정을 통한 발달)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소 과장하면 일상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결코) 인간은 추상적 사고능력을 획득할 수 없으며 일상적 개념이 나이를 먹으면서(일상적 경험의 양적 누적을 통해) 개인 내에서 저절로 과학적 개념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고등정신기능의 획득은 유목적적, 의지적 실천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심리학적 탐구에서 출발하는 [생각과 말]의 내적 관계는 의식과 교육의 내적 관계라는 교육적 의제가 된다.  

* 발생론적 방법 : 역사와 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인간 존재를 이해(문화역사주의)
[생각과 말]은 맑스와 엥겔스의 인간 의식에 대한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전개된다. 맑스는 인간을 사회, 역사적 맥락을 떠나 추상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의식이 마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의식의 본질을 분석한 학자들을 매우 비판했으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역사발전의 특정한 시점에서의 그들의 물질적 생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고의 내용은 역사발전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의 인지능력도 역사적 변화, 특히 기술적 발전의 결과로서 변화한다. 초기 도구사용이 진보된 지능과 언어 같은 고유한 인간특질의 발달을 가져왔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생각과 말]의 중심 연구대상은 ‘어린이'의 생각발달과 말 달발의 관계다. 의식 연구의 핵심 계기는 생각(개인)과 말(사회적)의 관계이고 그 출발점으로 ‘아동기의 개념 발달“을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은 역사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맑스의 기본관점과 동일하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 발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인간의 발달된 사고형태의 본질을 규명하려면 ‘과정적으로’ ‘발생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 기존의 사고 발달 이론에 대해 어린이의 생각이나 성인의 생각이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 없으며 ‘양적 차이’만을 가진다고 주장하거나 시기가 되면 발현되는 것으로 본 것을 비판하면서 ‘변증법적 비약’의 발생적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아동기 개념형성 과정을 중심적인 연구주제로 채택하면서 청소년, 성인 사고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생각과 말]에서 일관되게 그리고 핵심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발생적 방법론의 핵심은 ‘변증법적 부정’이다. 이 점에서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주의는 기존의 교육이론들과 다르다. 진보주의, 구성주의, 학습자중심주의 등등 각종 ~ 주의들은 ‘지금까지의 교육은 다 틀렸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현장의 교육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심리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비고츠키 교육학은 지금까지의 교육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부정을 통한 고양의 길을 제시하기 때문에 ‘전면 부정을 통한 새로운 것의 창조’의 어찌 보면 소모적이고 허무한 과정의 반복일 필요가 없다.
변증법적 부정을 통한 고양의 설명방법은 비고츠키가 인간발달의 목적이자 결과로서 제시하는 고등정신기능의 내재화에서 전면적으로 나타난다. 그에 따르면 ‘고등정신기능’은 ‘기초정신기능’의 토대 위에서 발달한다. 자연적 지각, 감각적 주의, 자연적 기억, 비언어적 사고, 기초적 정서 등의 자연적 과정을 토대로 하는 기초정신기능은 사회적 과정을 토대로 하는 고등정신기능 즉 자발적 주의집중, 논리적 기억, 개념적 사고, 심미적 정서, 상상적 창조력, 주체적 의지 등으로 고양된다. 고등정신기능은 인간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발현되는 인간 내부에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기초정신기능은 인간의 계통발생 과정 혹은 개체 발달 과정에서 소멸되는 부정적 대상이 아니다. 기초정신기능의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고양된 형태가 새로운 통일체로서의 인간적 능력이 고등정신기능이다.
아동(개인)과 성인(사회), 글말과 입말, 자연발생적 개념와 비자연발생적 개념,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사고와 행동, 구체와 추상, 생각과 말,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 내적말과 외적말 등 비고츠키는 수많은 대립의 쌍을 제출한다. 비고츠키는 대립물의 내적 관계, 변화 속에서 통일(질적 변화)을 바라보고 설명한다. 변증법적 이론가인 비고츠키는 발달에 있어서의 두 대립적인 힘인 ‘자연적 힘’과 ‘사회적 힘’ 중 하나를 택하거나 외적으로 둘 다 영향있다고 얼버무리듯 절충하는 입장을 거부한다. 두 대립물이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지양을 통한 고양. 즉 변증법적 통일의 과정)라는 관점 속에서 수많은 개념들의 쌍을 제출하고 두 대립물의 상호작용을 살핌으로써 내적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대립물이 만나서 일어나는 상호변화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전반을 관통한다.

* 인간발달의 역동성과 전면성
고등정신기능에 대해 흔히 지적되는 바는 ‘지적 기능 중심’이라는 것인데, 비고츠키는 사실상 ‘정서’가 배제된 지적 측면만의 의식을 상정하지 않았다. ‘낱말가치’는 사회적, 지적 과정의 단위일 뿐 아니라 동시에 정서적 단위이다. 모든 관념에서 욕구와 동기는 사고와 역동적으로 결합된다. 실재에 있어서는 총체적이지만 그 총체는 그냥 덩어리 내지 기계적인 산술적 더하기가 아니라 이질적, 대립적인 것의 내적 관계 속에서 총체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논리적 구분은 내적관계의 본질을 밝히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며 그래야 비로소 통일을 과정적으로 규명할 수 있다. 늘, 항상 우리의 생각은 지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이 결합된 ‘낱말’로서 구현되는 법이다. 어떤 교사가 교실에서 어떤 낱말을 발화할 때 그 속에는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사전적 정의만을 표현하기 위해 발화하고 있지 않다. 전 신체적으로 그 교사는 무언가를 구현하기 위해 발화하는 것이다.
비고츠키가 생각과 말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채택한 분석단위는 낱말가치이다. 그에 따르면 낱말은 인간의식의 소우주(그리고 인간의 문화적, 역사적 발달의 결정체)이다. 낱말 가치는 생각의 영역(일반화)에 속하는 동시에 그 정도만큼 의미를 가지므로 말(의미를 빼앗긴 낱말은 말이 아니다)의 영역에서 속한다. 즉 말인 동시에 생각이다. 또한 낱말가치는 의미와 기호의 통일체인 말의 의사소통적 기능(사회적 접촉의 수단)과 지적 기능(생각)이라는 두 기능에 대한 단위이다.
이는 생각과 말에 대한 인과-발생적 분석을 가능케 해준다. 사회적 접촉과 일반화의 통일과정(*사회적 접촉 없이 일반화는 불가능하며 일반화 없이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다)을 알게 됨으로써 어린이의 생각발달과 사회적 상호작용과의 실재적 관계를 이해. (*한 마디로, 고등정신기능은 아동(인간) 내부에 있지 않고 사회에 그 기원이 있다.)

“아동의 문화적 발달에서 어떠한 기능도 두 개의 무대, 두 개의 국면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사회적 국면으로, 다음에는 심리적 국면으로 나타난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고등정신기능 획득과정은 곧 낱말의미의 발달과정(즉, 낱말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는다.)으로서 고등정신기능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인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설명하는 분석적 개념이며, 이는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내재화(개인화)된다.

* 인간의 개념 형성(발달)의 핵심수단과 동력
개념적 사고 형성은 비고츠키 교육학의 중심문제이며 사실상 이는 인간의 지성화 뿐 아니라 심미적 정서와 윤리적 감성 형성의 핵심적 계기이기도 하다. 지적 과정이 생략된 행동주의적 방식과 당위성에 입각한 도덕성 교육은 그 토대가 미약하기 마련이며 지적 과정이 생략된 즉각적 느낌과 기술적 표현에 치중된 예술교육은 숙달된 기능형성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지적 측면과 분리된 인성교육의 강조는 형식적으로 그친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비고츠키에 있어서 지성화의 핵심은 개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고양에 있다. 그렇다면 개념 형성의 핵심수단과 경로, 동력의 문제가 해명의 대상이 된다. 비고츠키는 개념 형성의 결정적 요인을 기호나 말의 기능적 사용으로 설명한다. 즉, 개념적으로 생각할 수단을 갖지 못하면 개념적 사고는 불가능하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인식의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세계와 대상을 인식하겠는가. 표현의 수단이 없는데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즉 과학적 개념을 인식의 수단으로 가질 기회를 박탈당한 노동계급은 아무리 착취와 억압에 노출되어 있어도 이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분노를 표현할 수단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상 속에서 접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느낌([생각과 말]에서의 어린이에게 있어서는 감각적 재료에 대한 지각)으로 그치고 말 것이며 힘의 논리, 대세론에 굴복하기 쉽다는 것을 우리는 잘 보아 왔다.
개념형성의 불가피한 두 자질을 낱말과 감각적 재료이다. 어린이에게 개념은 감각적 재료의 지각과 재가공을 통해 생겨나며 이와 더불어 낱말은 개념 형성에 있어 필수 불가결하다. (낱말-낱말의미-실재(객관적 현실)). (객관적) 재료는 개념발달의 토대이며 말을 통해 개념이 생겨난다. 개념은 정적이고 고립된 형태에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핵심적인 과정에서 생겨난다. (과제, 목적, 도구 혹은 수단(기호))
개념형성의 발생적 통로에 있어서, 시작은 유년기 가장 초기, 성숙은 오직 과도적 시기에 이루어진다.(외적으로는 유사) 유년기 동안 형성, 발달된 지적 기능들의 조합을 통해 개념형성과정의 토대를 이룬다. 청소년기에 접어들 때 개념적 사고 영역으로의 마지막 이행이 나타난다.
개념적 사고 형성의 결정적, 필수적 요인은 기호나 말의 기능적 사용이다. 연상, 주의, 표상, 판단 또는 결정적 성향의 과정 모두가 개념형성의 종합적 과정에 필수적이지만 이들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과정의 중심은 기호나 말의 기능적 사용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은 스스로의 정신적 운용들을 숙달하고 지배하며 직면한 과업의 해결을 위해 이들의 활동을 지휘한다. (기호나 말의 매개된 과정 속에서 기초정신들이 개념형성과정에 참여)
요컨대 개념형성의 핵심수단과 동력은 다음과 같다.
◯ 핵심수단 : 개념은 말 없이는 불가능하며 개념적 사고는 말로 하는 생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단이 존재해야 가능하다) 개념형성과정을 위한 근본적 바탕은, 그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기제의 일부로서, 개인이 말이나 기호의 기능적 사용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 과정을 숙달했느냐에 있다. (개념 형성은 (연합의) 양적 누적과 확대가 아닌 질적 변형의 과정. 연상(생각의 하위 형태)과 개념형성(고등심리형태)의 근본적 차이는 비매개적인 지적 과정으로부터 기호에 의해 매개된 조작으로의 전이에서 찾아야 한다)
◯ 동력 : 또한 개념형성을 추진하는 동력은 청소년의 밖에 있다. 사회적 환경(성인세계의 문화적, 직업적, 사회적 입문과 연관된 과업들)에 의해 청소년에게 주어진 과업들은 개념형성을 자극, 독려하는 중요한 기능적 요인들이다. 그렇기 지성의 발달을 자극하지 못하는 사회적 환경에 처해있다면 청소년의 생각은 타고난 잠재력만큼 온전히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사회적, 교육적 환경은 청소년의 생각 발달 나아가 성인의 생각 발달을 막는 역할을 한다. 입시, 점수경쟁으로 왜곡된 교육의 과정은 아동기, 청소년기에 있어서 지성의 발달을 고통스런 과정으로 각인시키며 이는 성인이 된 후 학습을 고통으로 여기는 기초가 되어 버린다. 심지어 진보진영에서조차 이론 학습을 폄훼하는 정서가 알게 모르게 퍼져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공부와 학습으로부터의 이탈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조건을 입시경쟁이 조장하고 있다.

* 학교에서 실제 교과수업에서의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
학교의 교과학습에서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은 시시 때때로 만난다. 예컨대, 중학교 2학년 수학 교육과정에는 ‘근삿값’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근삿값’으로서 의식하여 접하기 전에 이미 아이들은 근삿값을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사용해왔다. 몸무게와 키, 길이를 재고, 개수나 사람수를 어림잡아 헤아리고, 물건값을 계산하면서 늘 사용해던 ‘친숙한’ 개념(자연발생적 개념)이 학교에서의 교수학습과정을 통해 비로소 ‘의식적 파악’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예는 허다하다. 구입한 물건의 개수와 가격의 관계, 주차시간과 주차요금의 관계.. 이 모든 것이 ‘함수’임에도 특유한 관계의 성격을 의식없이 능숙하게 사용한다. 백분율, 분수, 소수, 각종 단위 등등 일상적으로 비의식적으로 접하던 낱말들은 학교에서의 교수-학습을 통해 의식적 파악의 대상이 되면서 인간의 의식을 일깨우고 이에 대한 숙달을 통해 내재화됨으로써 일상적 개념에 대한 변증법적 지양을 통해 고양의 길로 들어선다. 함수라는 과학적 개념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각종 관계를 의식적으로 파악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고 좋은 학교 수학교육은 이런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이 서로 상승되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낱말의미는 발달한다’는 [생각과 말]의 핵심 내용이 아닌가 싶다. 어떤 개념을 학교에서 접할 때 그것은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작인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교수학습의 과정에서 매 순간이 의미로운 과정으로 느껴진다. 완성된 형태의 의미를 지금 당장 어떤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답답해하지 않아도 좋다. 이후의 과정 속에서 그 학생은 비약적으로 ‘아하’ 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런 점에서 수준별 수업은 이를테면 정수의 사칙연산을 틀리지 않을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지만 비고츠키 이론에 따르면 굳이 그러지 않아도 좋다. 1학년에서 정수 계산을 놀라울 정도로 버벅대던 학생도 2학년의 다항식 계산에서 정수계산은 이상하게도 잘 해내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적 수준의 비교와 수량화, 그에 따른 능력별 집단편성은 교육학적으로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발달을 오히려 방해한다.
지금까지의 학교교육에서의 개념학습은 이 둘을 서로 상승시키는 대신 과학적 개념을 추상적으로만 다루거나 이를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해야 한다는 반주지주의적 경험주의가 대립해 왔다. 한국의 경우 입시가 과학적, 일상적 개념의 추상적 수준으로의 상승, 과학적 개념의 구체로의 상승을 방해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동해왔다고 보면 될 것이다.

<표> [생각과 말]에서의 일상적 개념과 과학적 개념의 비교와 둘의 관계 (파일 참조)


* 형식교과 교수학습의 의의 : "과학적 개념은 의식 고양의 문을 열어제친다"
비고츠키는 개념적 사고가 질적으로 다른 발달의 단계를 거친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밝혔고 나아가 그 단계들 간의 이행은 ‘학교에서의 형식교과의 교수-학습을 통해서’임을 밝혔다. [생각과 말]에서 세계를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사유방식을 ‘일반화 구조’로 개념화하고 일반화의 구조의 발달 단계를 실험을 통해 확정한 후 비고츠키는 질문한다. “일반화 구조들 간의 이행을 추동하는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대답한다. 그것은 학교에서의 형식교과의 교수-학습을 통해서이다. 복합체적 개념(유아기)에서 전개념(학령기)으로 그리고 진개념(청소년기)으로의 이행은 일상적 과정, 자연발생적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의지적) 과정’을 통해 즉 학교에서의 ‘과학적 개념의 교수-학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발달과 교수학습의 관계에 대해 발달의 곡선과 교수학습의 곡선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기본적인 학교 교과목에 대한 연구 분석 결과(쓰기, 문법, 외국어, 셈하기 등), 교수-학습이 시작될 때 생각이 성숙되어 있지 않다. 교수-학습을 위한 공통적 심리적 기반은 의식적 파악과 숙달(때로는 의식적 파악과 의지로 표현함)이며 이러한 심리적 기반의 발달은 교수-학습을 앞서지 않고 교수-학습의 경로 속에서 발생한다. 개념에 대한 의식적 파악은 일상적 개념의 비체계성, 무의식적, 비의지적 측면과 반대로 과학적 개념이 ‘체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의식적 파악과 숙달을 공통된 기초를 토대로 하여 개별 심리기능들은 의존성을 가지면서 의지적 주의와 논리적 기억, 추상적 생각과 과학적 상상력과 같은 고차적 심리기능들로 연결될 수 있다.
교수학습과 발달과정의 시간적 순서는 ‘아하 경험’(결정적 순간들)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듯 교수학습의 결과가 발달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변화로 나타난다. 곡선으로 나타낸다면 발달의 곡선은 때로 교수-학습을 추월하는 순간을 가진다. (1학년 과정에서 다 틀렸던 문제를 2학년이 되면 이상하게도 다 맞추는 등. 오늘 못한다고 해서, 내일도 못한다는 예단은 금물이다.)
발달의 잠재력, 가능성을 설명하는 개념이 근접발달영역이다. 근접발달영역은 실제적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 간의 거리, 독립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과 도움을 통해 . 과학적 개념은 어린이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일상적 개념의 토대 위에 근접발달영역을 창출한다. 형식교과들 각각에서의 교수-학습 과정에서 가능성은 현실화될 수 있다. 어린이들은 준비된 상태에서 학교 교육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한다(쓰기, 외국어). 물론 모든 교수학습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예컨대, 현학적인 언어적 교수방식). 훌륭한 교수-학습은 발달의 최저임계점(기존의 교육학은 주로 이 점을 부각시켰다. 피아제처럼) 뿐만 아니라 최고임계점 간의 민감한 영역을 설정하는 것을 통해서이며 이러한 교수-학습이 발달을 이끌 수 있다.

* <협력에 기초한 발달과정>을 경험한 시간들
‘발달과 협력’의 근본적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주의는 이론적으로 중요성이 있는 것은 물론이요 실천적인 면에서도 비고츠키 교육학은 유용하다. [생각과 말] 어디에서도 비고츠키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기술들을 직접 제시하지 않지만,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제 현상에 대해 의식적 파악을 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 지식교육보다 인성교육이 먼저야라는 이분법에 혹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그 둘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 제대로된 지식교육이란 무엇인지, 초절정 지식교육 형태로 간주되는 입시교육이 도리어 지성화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논리와 근거를 제공한다. 교사들은 교육관계 속에서 긍지나 기쁨 대신 고통을 느끼고 있다. 4차원 같은 아이들, 도대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이들, 심지어 대드는 아이들에 대해 그들의 상태에 대해 진단할 수 있게 해주며 어느 정도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 세미나 팀원 중에서 고교선택제 때문에 주변 교사들의 고통은 엄청 늘었는데 오히려 고통이 줄었다고 ‘간증’하기도 한다. 이는 [생각과 말]을 함께 학습하면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마 혼자서였다면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주장하듯 경쟁에서의 승리의 쾌감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적 본질은 결코 아닐 것이다. 협력적 관계 속에서 함께 발달해가는 가운데 기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존재적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