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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담론과문화] 4. 윤리적인 아름다움, 쇼스타코비치

2011.04.10 16:49

진보교육 조회 수:1821

윤리적인 아름다움, 쇼스타코비치
                                            
-- 송재혁(서울, 미성중학교, 계발활동 사회와음악반 지도교사)


파시즘의 기운이 유령처럼 떠도는 사회에서 쇼스타코비치를 듣는다는 것은 여전히 짜릿한 경험이다.  국가보안법의 나라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들을 온전히 읽어낸다는 것은 아직도 지적인 모험이다. 교향곡 2번 ‘10월혁명에 바침’, 3번 ‘메이데이’, 5번 ‘혁명’, 7번 ‘레닌그라드’, 11번 ‘1905년’, 12번 ‘1917’년, 13번 ‘바비야르’, 14번 ‘죽은 자의 노래’. 표제만 봐도 이 곡들의 주제 의식이 20세기를 뒤흔든 현실 사회주의 역사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추상적인 예술인 음악에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음악의 형식적 차원이 아니라 내용적 차원에서 리얼리즘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고 그 소리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이 읽혀지기에,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한다. 한없이 풍부한 음악적 아이디어들은 음악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놀라게 하면서 어느덧 지고한 감성과 도덕적 각성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그야말로 러시아의 베토벤이라고 할 20세기의 문제적 인물, 쇼스타코비치가 남긴 작품 대부분을 합법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민주화를 쟁취하고 발전시켜 온 수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생각할 때, 30년 전 광주에 대한 부채감을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늘 민주화의 성지에서 듣는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은 30년 전으로부터 오늘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복기하게 하며 미완의 과제를 꿈꾸게 할지 모른다.  

  2006년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으로 떠들썩했는데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이기도 했다. 세간의 관심은 모차르트에 많이 쏠리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간간히 무대에 올려진 그의 관현악 작품들은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지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이 있었다. 너무도 뒤늦은 후진적 발견이다. 분단 모순과 계급 모순으로 인해 이리저리 뒤틀려 암울하기 짝이 없던 1980년대와 90년대에 쇼스타코비치 작품의 대부분은 적의 음악으로 간주되었고 그것을 듣는 것은 이적 행위였다. 오늘날 유독 음악에 있어서는 관대한(?) 정책으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원하기만 하면, 영화음악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있는 그의 작품들을 대부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냉전적 문화의 그늘이 엷어졌을지언정 사회의 집단 무의식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우리에게 그것은 여전히 불편한 음악일 수 있다. 모든 문예 작품과 모든 사상서가 자유롭게 향유되고 담론화되는 사회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현실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 머리 속에서 상상되는 것마저 검열하고 단죄하는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인간적인 인간 관계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허용되는 것만 상상하는 사회에 진보는 없고 답보만 있을 뿐이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프로코피에프와 더불어 20세기 현실사회주의의 종주국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한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과거 냉전 시대에 그에 대한 평가는 참 극단적이고도 간단했다. 공산주의 체제 선전에 충실한 프로파간다의 도구적인 음악으로서 위험한 것으로 단정되었거나, 뭔가 진보적인 이상을 듬뿍 담은 진실의 음악으로서 반드시 몰래 들어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은밀하게 회자되었다. 그의 5번 교향곡은 몰래 테이프로 복사되어 손에서 손으로, 이불 속에서 이불 속으로 전해졌다. 반면, 소련에서 망명한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쇼스타코비치 사후에 미국에서 출간한 구술 회고록 「증언」이 나오자 그 내용의 진실성에 이런저런 의문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주의에 억눌려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늘 강요에 의해 체제가 요구하는 음악을 억지로 써내곤 했던 불운하고 유약한 음악가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그의 사회주의 음악은 진정성이 없는 가짜라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정부들이 몰락하고 냉전의 베일에 싸였던 비밀문서가 해금되면서 소련의 과거가 새롭게 드러났다. 스탈린주의에 비판적인 트로츠키주의적 연구를 통해서 소련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반성적 비판이 가해진다. 사회주의는 모름지기 민주적이고 인간적이어야 하는데 소련을 중심으로 한 현실 사회주의권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비판은 자유주의나 자본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소련에 대한 비판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다. 여하튼 냉전 체제가 허물어지고 혼란기를 거쳐 이제 돈이 안장에 앉아 인간을 몰고 가는 시스템이 전일적으로 안착되는 시대를 맞이하자 그의 음악가로서의 삶 또한 다양한 맥락에서 읽혀지게 된다. 그가 생산한 음악적 실물 또한 여과 없이 다양하게 공개되고 향유되자 이념적 잣대 보다는 작품 자체에 주목하여 그를 재평가하게 된다. 적성음악으로 간주되어 감상이 불가능했던 작품들을 직접 들어보고 사회주의리얼리즘 음악으로 과감하게 분류해낸다. 한 편 내면적인 고백을 담은 많은 작품들이 두루 소개되자, 그의 음악은 간단히 몇 마디로 규정해 버리기 힘든 복잡한 면모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다. 클래식 음악이란 기본적으로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쇼스타코비치에는 유니크한 음울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서늘하고 그로테스크한 음색과 선율에서 스며나오는 독특한 정서는 수수께끼같이 오묘하다. 수수께끼는 더해진다. 그는 과연 어떤 작곡가였는가? 더하여, 음악과 사회, 음악과 정치, 개인과 사회는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 다시 던져진다. 탈정치의 순수 예술론으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겠지만, 탈정치 또한 하나의 교묘한 정치에 불과한 것이기에 성급한 결론과 침묵의 강요가 능사는 아닐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망명의 기회들을 이용하지 않고 소련에서 평생을 보냈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사회에서의 음악적 삶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크게 두 번의 위기를 겪는데, 1934년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내용을 담은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초연하자 ‘프라우다’를 통해 “음악이라기 보다는 카오스”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어서 작곡한 교향곡 4번의 연습을 중단하였으니 그 초연은 스탈린 사후인 1961년으로 미루어지게 된다. 또 한 번의 위기는 1948년 즈다노프 비판이다. 예술에 있어 사회주의성을 강하게 요구하는 두 개의 조치는 그의 작풍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듣는 5번 교향곡은 그에 대한 소련 문화 정책 당국의 비판에 대응하여 탄생된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초기의 소련 예술계에는 새로운 활력이 넘쳤다. 진보적인 기법이 광범위하게 실험되었는데, 쇼스타코비치 역시 아방가르드적이고 혁신적인 음악 기법을 즐겨 시도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의 등장은 예술 정책의 보수화를 가져왔다. 서구에서 파시즘이 등장하자 이에 대응하는 또 다른 파시즘적 사회 구성 논리가 득세한 것이다. 적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내부 정비의 명분 아래 강력한 통제 시스템이 구축되었는데 전쟁을 거쳐 이것이 장기화되면서 화석화된 관료 사회를 가져온다. 이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 시스템이 부재하게 된다. 결국 내부적으로 경직된 사회는 외부 자본주의권의 공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붕괴로 귀결되었다. 스탈린 시대 초기에 당국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나서 이에 부응하여 소위 형식주의, 엘리트주의, 아방가르드 경향을 청산하고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간결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으로 돌아섰음을 선언하기 위해 화답으로 내어놓은 작품이 교향곡 5번이라고 한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한 판본에는 그의 8번 교향곡 3악장과 더불어 5번 교향곡이 중요하게 배치된다. 실제로는 실패했던 봉기를 찬란한 승리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5번 교향곡의 4악장이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곡은 ‘혁명’이란 제목으로 알려져 암울한 시대에 많은 젊은이들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1937년,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일에 지휘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당시 소련 사회에서의 긍정적 평가를 그대로 수긍하기에는 음악이 뭔가 좀 억지스럽게 들리기도 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여기저기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암울한 공산 체제하에서의 개인의 고통과 해방을 묘사했다는 견해가 곧 잘 등장한다. 특히 3악장의 스산함과 4악장의 작위적인 마무리가 근거로 인용된다. 동독 몰락 후 자살을 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케겔의 녹음을 들어보면 4악장 마지막에 종소리를 가필하는데 아마도 뭔가 아쉬운 부분을 보완하려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다른 교향곡들과 달리 5번은 이미 전두환 군사 독재 시절에, 아버지 사후 망명한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의 지휘 아래 서울에서 공연될 수 있었다. 일종의 귀순용사 이벤트 같은 반공 음악회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소련 악단이 연주한 5번 연주도 FM에서 종종 방송되었다. 5번 교향곡의 진실은 무엇인가? 무덤 속의 작곡자 본인만이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쇼스타코비치를 듣는다는 것은 음악 감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넘어, 문화에서 냉전의 그늘을 적극적으로 걷어내는 실천의 의미도 지니게 될 것이다. 이제는 쇼스타코비치란 이름이 제법 우리에게 친숙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아마도 ‘재즈모음곡’의 왈츠일 것이다. 3박자의 뽕짝풍인 이 곡은 실제로 막걸리 잔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면서 흥얼거려도 자연스럽다. 실제로 어떤 모임에서 여럿이 함께 그렇게 해 봤는데 우리 정서와 잘 맞는다. 한국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사용되어 더 친근해졌다. 더불어 ‘로망스’가 인기 있다. 이 곡의 출처는 1955년 발표한 영화 ‘The Gadfly(등에, 쇠파리)’에 붙인 영화음악으로, 원 제목은 ‘청춘’이다. 그런데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 감상적인 곡이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곡조차 혁명과 관련이 있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한 혁명가가 지배 계급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퍼 붓자 가축에 들붙어 괴롭히는 ‘쇠파리(등에)’라는 별명을 얻었단다. 그의 고뇌를 담은 곡이 바로 이 ‘로망스’이다.

  한 편, ‘축전 서곡’은 모순 없는 천진한 기쁨이 넘친다. 소비에트 혁명 37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으로 1954년 초연되었는데, 소비에트의 위업을 찬양하는 매우 밝은 분위기로 일관된다. 요즈음 우리 공연장에서도 이제 심심치 않게 연주되는 아이러니가 즐거운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에 대해 “힘겨운 전쟁을 체험하고, 적에게 짓밟힌 조국을 부흥시키려는 한 남자의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 “신 5개년 계획 재건 사업에 대한 열광적인 표현”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관변 음악 같지만, 민중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써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매우 충실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잘 정돈된 곡이다. 기본적으로 온음계를 사용하여 귀에 쉽게 들어온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공식 주제가로도 사용되었다.

  작곡가 본인이 5번보다 더 아낀 교향곡은 7번 ‘레닌그라드’였다고 한다. 그 자신이 소방수로서 참전한 바 있는 2차세계대전(대조국전쟁) 중에 작곡되었다. 집요한 북소리와 반복되는 음형으로 나치의 침략을  장시간 묘사하는 1악장과, 러시아 민중의 결사 항전의 의지와 승리에의 예감, 또는 전쟁에서 생존하려는 민중들의 절박한 의지가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4악장이 훌륭하다. 그 말미는 공교롭게도 베토벤의 ‘운명’의 동기와 유사한 4연음으로 처절하게 마무리된다. 음악 생성의 조건과 음악의 내용성 양면에서 리얼리즘 음악의 전형이다. 엄청난 희생 끝에 나치를 물리친 사회주의 소련의 의지가 표출되는 듯하다. 역사가들이 말하듯, 당시 소련이 동부전선에서 처절한 사투로 버텨주지 않았다면 히틀러는 세계를 더 많이 망가뜨렸을 것이다. 동시에,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서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도 읽혀진다. 국가 간의 전쟁이란 결국 지배계급의 욕망을 위해 민중들의 소중한 생명이 헐값에 동원되는 내부의 전쟁에 다름 아니며, 전쟁은 국가가 수행하는 규모가 큰 테러이자 범죄행위라는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한,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전쟁과 승리의 다이내믹한 음악적 도식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빛바랜 역사책으로부터 ‘러시아혁명’을 다시 꺼내어 비판적으로 고찰함은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지적 과정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영화 ‘10월 혁명’에는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끊임없이 흐른다. 러시아혁명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교향곡 11번 ‘1905년’과 12번 ‘1917년’은 그가 반공주의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당혹감과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리얼리즘의 걸작인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음으로 쓴 역사 다큐멘터리다.
  
   11번 1악장, ‘동궁 앞 광장’에 이은, 2악장 ‘1월 9일 (피의 일요일)’! 동궁전을 향해 청원행진을 계속하는 무방비 상태의 민중에게 황제의 군대가 일제 사격을 가한다. 악의 근원이 황제의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 내에서 황제의 자비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민중은 이 살육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훈을 주는 역사적 장면이다. 이 잔혹한 살육의 현장이 무자비한 음의 폭력으로 묘사되다가 북소리가 일순간 정지하고 괴기스러운 정적이 흐른다. 이 2악장을 반복해 듣는 것은, 피의 일요일을 여흥으로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 음을 통해 역사의 교훈으로 새기려는 것이기에 도덕적이다. 이어지는 3악장 ‘영원한 기억’은 불의에 저항하다 희생된 수많은 민중들에게 바쳐지는 진혼곡. 후반에서 몹시 고양되는 부분과 이어지는 팀파니의 연타 부분은 아마도 저항의 민중사에 공감하는 사람에게 가슴을 치는 충격을 줄 것이다. 4악장은 씩씩한 혁명가요들이 등장한다. 우리의 군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와 유사한 선율도 반복된다. 1차 러시아 혁명의 실패에 대한 슬픈 추억을 담은 잉글리쉬 호른의 노래를 거쳐, 장래의 투쟁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는 힘찬 경종의 울림으로 끝난다. 이 마지막 부분은 미완의 혁명이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라는, 미래에 대한 여지를 강하게 남기는 부분으로, 참으로 무서운 경종 소리와 그 잔향의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윤이상의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4악장의 제목은 ‘경종’이다. 4악장의 끝 부분은 나태한 우리의 이성에 ‘경종’을 울린다.

   11번 교향곡은 러시아혁명이라는 시·공간을 넘어 올해 30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 23주년을 맞은 6월 민주항쟁 등, 지배자들의 폭력에 의한 희생과 이에 맞선 값진 저항의 역사에 대해 뭔가 말해 준다. 영문도 모르고 숨져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수많은 생명들을 추모하거나 전쟁과 폭정에 의해 희생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곡이 연주된다면 곡의 의미가 진정한 맥락 속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교향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혁명가요들을 많이 사용했다. ‘죄수의 노래, 들어주오!’, ‘동지는 쓰러지지 않는다’, ‘압제자들이여! 격노하라!’, ‘바르샤바 노동가’, ‘밤은 어두워’, ‘오오! 황제, 우리들의 아버지여’, ‘모자를 벗자’, ‘희생당한 당신은 영웅이었다’, ‘안녕, 자유여’ 등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임을 위한 행진곡’, ‘파업전야’,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곡들이 교향곡의 주요 모티브로 사용된 셈이다.

  그는 11번을 1957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초연하였고, 58년에 이 작품으로 레닌 훈장을 받았다. 1960년 9월에는 공산당에 가입하고 이어서 러시아 2차 혁명을 다룬 교향곡 12번 <1917년>을 쓴다. 이 작품은 11번에 비해 직접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악상이 조금 부족한 듯 하지만 역시 좋은 작품이다. 2003년 가을에 소련 출신의 드미트리 키타엔코와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초연했다. 2003년에서야 이 곡이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연주된다는 사실 자체가 희극이지만, 마지막에 조심스럽고 어색하게 나오는 청중의 박수 소리는 또 하나의 희극이었다. 11번 역시 2005년 11월 말에 위 연주자에 의해 초연되었다. 2년 사이에 세상이 변했던가, 청중의 반응도 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당시 KBS 교향악단은 무자비한 구조조정이 완수된 서울시향에 이어 독립법인화 논의가 진행되던 시점에 놓여 있었다. 단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단결되고 긴장된 모습으로 이 곡의 폭발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어 주었는데, 마치 자신들의 분노를 음악으로 표출하는 것 같았다.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몇 곡은 루돌프 바르샤이에 의해 편곡되어 ‘실내교향곡’으로 만들어졌다. 현악사중주 8번(1960년)은, 부제가 ‘전쟁과 파시즘의 희생자들을 상기하여’인데, ‘실내교향곡’에서는 소리가 더 확대되어 있다. 이 부제가 쇼스타코비치의 본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 인기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작품들이나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 2악장과 더불어, 문어대가리 출현 시마다 섬뜩하게 흘러나온 음악이 이 곡의 4악장이다. 날카로운 현에 의한 인상적인 임팩트에 이어 비올라가 비 오듯 절절이 눈물을 흘린다. 5악장은 쇼스타코비치 이름의 이니셜 ‘D-S-C-H’에서 따 온 ‘레-미플랫-도-시, D-Es(E♭)-C-B(=H)’ 4개의 음으로 조용히 마무리된다. 그의 걸작 중 하나인 교향곡 10번 또한 이 4개의 음을 사용하여 내면의 은밀한 독백과도 같은 분위기를 부여한다.

  교향곡 2번 ‘10월’, 3번 ‘5월 1일’, 13번 ‘바비 야르’, 그 외 ‘스테판 라친의 처형’,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와 수많은 영화 음악들 또한 완성도 높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이다. 그 밖에 더 많은 작품들은 사회적 사건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유머와 신랄함, 독특한 어두움을 담은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고 그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과거의 은밀한 연인이었던 쇼스타코비치를 다시 만나 보고픈 사람은 더 이상 이불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볼륨을 최고로 올리고 쏟아지는 소리의 폭포 속으로 들어가 그가 말하고자 한 진실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다 보면, 좌우를 넘어선 어떤 지평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혁명‘이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정치적 격변 이상의 그 무엇이다. 음악이 선취한 아름다운 이상향을 동경하는 사람에게, 현실의 부조리와 비참함을 진정으로 넘어서기를 갈구하는 사람에게, ’혁명‘이란 단어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의 어떤 낭만적 표상일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도덕적 아름다움을 향해 변증법적으로 ’되어가는‘ 음악적 과정을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고뇌를 넘어 환희에 도달하기도 했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의 많은 부분이 현실의 과제와 맞부딪쳐 형성되었기에 이미 사적 차원을 넘어섰고, 그래서 사회의 공동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에게 큰 공감과 연대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쇼스타코비치는 누구인가? 반공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회주의자인가?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그의 음악은 그저 휴머니스트로 불러달라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이 우선하는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모두 휴머니스트로서, 현실의 벽을 넘어서려는 전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 지휘자 구자범은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로 활동 중 돌연 귀국하여 2009년 3월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2년 간 활동하였다. 2010년 5․18 항쟁 30주년을 기념한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의 한국어 공연(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가사 번안)은 한국 클래식음악 공연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 공연에는 전교조서울지부합창단(지휘 이영국, 영림中)도 시민합창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광주시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새로운 시장의 취임, 비문화적인 문화정책은 지휘자의 재계약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의 상황과 유사하여 희극적인 비극으로 여겨진다. 결국 구마에는 광주시향을 떠나 2011년 3월부터 경기필하모니를 지휘한다. 빛 바랜 빛고을이 구마에를 버렸으나 구마에는 빛고을을 떠나서도 빛고을의 빛을 쫒을 터, 광주시향도, 구마에도, 앞길에 '한빛' 함께 하기를 바란다.

*[편집자주] 이 글은 광주시립교향악단 255회 정기연주회(구자범 지휘, 2010.4.3) 팜플렛에 실은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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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맞짱칼럼] “교원능력평가가 유감인 까닭” file 진보교육 2011.04.10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