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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현장스케치] 524대회 왜 나는 재미없었지?

2008.06.26 18:01

진보교육 조회 수:1904

524 대회 왜 나는 재미없었지?
조영선 ‖ 서울 경인고

나는 아직도 이 글을 청탁받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일언지하에 거절을 잘하는 ’나는 사실 일언지 하에 거절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관성적으로 예스한 것이 화근이었다.  
524대회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517 촛불집회 이후 약간의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5월달 지회 집행위로 안해보던 분회 교선도 하고 이것저것 뛰어다녔는데 그래서 그렇게 뛰어다닌 목표가 바로 517 사제동행 촛불 문화제와 524대회였다. 나는 여러 가지 열심히 했고 517에도 사람들 많이 왔고, 524도 유례없이 많이 왔다는데 나는 왜 재미가 없었을까?

‘배후 조종’의 덜미에 묶여있는 전교조 교사
517은 원래 사제 동행 촛불문화제였는데 그날이 애들 휴교 시위 문자가 도는 날이어서 교감들이 창덕여중에 모인 날이었다. 나는 전교조 활동가로서 아이들을 열심히 조직하고 있었는데 교장이 그걸 알고 학부모가 항의한다며 sicko를 보러가려던 나의 학급 행사를 방해하였다. 교장, 교감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짜증났지만, 사제 동행 촛불문화제라는 것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는 어느 선생님의 발언이 나를 더 힘빠지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애들을 이끌고 촛불 문화제에 갔는데 김장훈과 윤도현과 이승환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애들에게는 참 좋았겠지만, 나는 내가 이거 보여주려고 그런 생난리를 쳤나 하는 생각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여의도의 마천루 사이에 조금씩 보이는 변종인간 엑스맨들
바보가 된 상태로 일주일을 보내고 수련회를 다녀와서 524대회를 갔다. 여의도에 가는 버스가 여의도를 한바퀴도는 버스였는데 코스콤 노동자들의 천막이 보였다. 그 외에 어느 외국계열의 보험회사 노조도 투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한국의 월가 같고 여의도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다 연봉5000만원이상일 것 같은 여의도에 벌어진 진 풍경이었다. 여의도 문화마당에 도착해보니,   매우 찌는 듯이 더운 날씨였는데도 정말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모였고, 토요일이라 텅빈 여의도에 공무원들의 집회와 전교조의 집회로 투쟁가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평소에 변종인가 엑스맨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던 노동자들이 작년에 강남 한복판에서 시끄럽게 노동가요를 틀고 그들이 벌레처럼 여기는 소위 운동권들이 1000명씩 모여 그들의 조용한 주택가를 시끄럽게 했었던 이랜드 뉴코아 투쟁이 생각나면서 여의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오늘 여의도 공원에 와서 무슨 생각을 할까 조금 궁금해졌다.

다 좋았는데.......... 나는 왜?
요즘 집회의 컨셉에 맞게 사회자도 발랄하고 무대도 발랄했다. 중앙에 거대한 영상을 설치하여 잘 보이고, 89년 전교조 투쟁과 함께 했던 정태춘의 공연도 89년 전교조 창립의 역사를 함께 해온 선생님들께 심금을 울렸던 것 같다. 전교조 문예패가 중심이 된 사전 마당도 흥겨웠고, 우회전 우회전을 외치던 이명박을 비꼬는 연극도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여러 부스가 차려졌는데 초등강서지회에서 파는 미친소 미친교육 현수막을 샀고, 동부 지회에서 티를 불티나게 팔았다고 했다.  
  96학번인 나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많이 만났는데 돗자리를 깔고 유모차와 함께 나와 있는 선배와 동기들의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내가 속한 남부는 역시 200명 가까이의 사람이 왔고 우리 분회에서도 전현직 분회장님 두 분이 참여하셔서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게 평화롭고 모든게 돌아가던 그대로 였다. 근데 왜 난 재미없었을까?

415조치가 나에게 준 상처 -정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
415조치가 단행되고 나서 무척 놀랐다. 이명박이 화끈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폭탄을 종합선물 세트로 날릴 거란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반 농담이었지만 우리 지회의 세 명의 90년대 중반 학번 3종세트가 명랑 삭발단을 꾸리자고 까지 했었다.
그런말을 할 때는 농담도 있었지만 앞으로 20년은 해야 연금을 받는 우리가 견뎌나가야할 학교 생활이 너무 암울 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전교조 1세대 선생님들이야 ‘관둘까?’를 고민해도 되겠지만 연금을 타려면 20년은 버텨야하는 우리는 지금도 죽을 지경인데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그래서 나름 위기감을 가지고 지회 활동을 처음 하는 주제에 다른 분회에 교선도 가고, 뭐 여러 가지를 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524대회로 수렴되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내가 524대회에 오라고 사람들을 조직한 건데 막상 524대회를 하면서 보니 좀 벙쪘다.
이명박이 524대회를 보며 뭐라고 할까?
“ 노는 날 반납들 하고 잘들 놀고 있네. 부디 즐거운 시간되기를... 나는 니네까지 신경쓰기엔 소고기 수입, 민영화 할일이 많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이 이 모습을 보고 과연 긴장할까?
  
예상외 촛불 정국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나
사실 촛불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나의 마음은 복잡했다. 초기에는 이명박을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시키고서 부글부글 끓는 네티즌을 보며 ‘니네 이럴 줄 몰랐니?’ 하는 냉소적인 마음도 들었고 소고기 문제가 뭐 그리 중요해,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을 하다 죽은 노동자들과 입시에 지친 10대들이 자살할때도 가만있더니 소고기 먹고 내가 죽는다니까 겁나냐? 뭐 이런 못된 마음도 가졌었다. 하지만 그런 못된 마음들이 집회장에 나와서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자유발언을 들으면서 많이 보드러워졌다. 특히 아이들의 발언을 들으며 ‘저렇게 말할 공간이 없어서 니네 모르는 척 하는 것 처럼 보였구나’, ‘참고참고 참다가 니네 이제야 일어서려고 하는구나’ 학생들의 고통에 화답하는 것이 내가 학생 때 선생님들이 보여준 전교조 선생님들의 모습이었는데 나도 너희의 부름에 화답해야겠지.
가면 갈 수록 촛불 집회의 열기가 더해지고 제자들을 만나는 횟수는 많아지는데 여전히 전교조 깃발은 없었다. ‘미친소, 미친 교육’이라는 구호가 전면으로 나오는 때에도 학교에만 돌아가면 나는 배후조종의 덫에 갇혀 침묵해야했다.
아마 많은 조합원들이 있었겠지만, 우리는 낮에만 노동자였다가 밤이 되면 네티즌이 되어 촛불을 밝히지 않는가?

주경야데모는 너무 힘들어
나는 이중적인 존재로 살기 싫다. 낮에는 조합원으로 배후조종세력이 될까봐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해방구로 나와 물대포를 맞고 해가 뜨기 전에 좀비처럼 집으로 돌아간다.  집회에서 만났던 학생들을 학교에서 만나면 왠지 뻘쭘한 기분과 비밀을 공유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집회 참여 금지를 주입하는 가정통신문을 몰래 버리고, 가정통신문을 뒤로 한 채 밤의 해방구에 함께 나섰지만 생산공간에서 우리는 여전히 두발 검사를 하는 관리자와 피관리자의 자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말하던 탈주가 시작된 것일까? 낮에는 좀비처럼 학교에서 수동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10대들이 밤에 열린 공간을 맞이하여 새벽까지 물대포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온수’를 외칠 수 있는 발랄함으로 존재의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것이 자본주의의 코드화를 뛰어넘는 탈주자들의 해방인가?  여전히 자본주의의 그림자로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생산공간에선 좀비같이 일을 하고 7시 이후가 되어서야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한계인가?
524대회가 재미없었던 것은 415조치에 대한 투쟁이 524대회를 끝으로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524대회를 하고 저녁 때 촛불집회를 하러가는 것이 낮에 일을 하고 밤에 데모하러가는 지금의 나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의도 공원이 학교의 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저녁까지 사교육에 묶여있는 아이들이나, 촛불집회에 나와있는 아이들이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동력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의 억압된 에너지가 밤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들의 낮의 삶에도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갖추려고 하는 것, 밤의 해방구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학생들이 낮에 학교에서 안전한 급식에 대한 요구과 0교시반대에 대한 요구를 학교에서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대학생들이 동맹휴업도 하는데, 적어도 하루쯤 학교를 쉬고 낮에 전교조 조합원의 정체성으로 이 거대한 대열에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교조 창립을 기념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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