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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평준화는 어떻게 ‘좌파’ 정책이 되었나.

-- 최고봉(연구소회원)



1. 고교평준화의 전사

요즘에는 일부 보수진영에 의해 고교평준화가 ‘좌파정책’으로 비난받지만, 고교평준화의 출발이 박정희 정권이라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평준화는 산업화로 인한 대중교육의 팽창과 정권 정통성 위기 극복을 위한 인기관리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한 편으로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과잉교육열을 완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의 평준화 도입은 1969년 도입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의 후속조치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문교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에서 ‘91년부터 고교입시 부활을 검토하라’고 지시를 하면서 평준화 해체가 본격화되었다. 문교부는 ‘대도시는 평준화를 계속 적용하고, 소도시는 지역실정과 지역여론을 수렴해 결정하되 춘천, 원주, 이리, 천안은 평준화의 존폐 여부를 교육감에게 일임’했다. 이에 따라 1990년에 군산, 목포, 안동이 비평준화로 돌아섰고 1991년에는 춘천, 원주, 이리(익산)의 평준화가 해제된다. 춘천은 1979년에 도입되어 12년 만에, 원주는 1980년 도입되었으니 11년 만에 평준화가 해체되었다.
1990년 당시 평준화 해제에 맞서 고등학생과 학부모, 교사(특히 전교조 조합원)들이 거리에서 싸웠다. 출범 직후의 전교조는 고교평준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고, 관변단체 회원과 보수교원단체 회장 등은 평준화 해체를 위해 나섰다. 정부는 1992년에 평준화 해체의 한 방편으로 각종학교 형태였던 외국어고등학교를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지정해 더욱 육성했다. 이런 연유로 인해 평준화는 ‘좌파정책’, 비평준화는 ‘우파정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995년 천안까지 평준화가 해제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해졌다.


2. 고교평준화 운동의 현재

1990년 이후 한동안 시들했던 고교평준화 운동은 2천년 대가 되자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평준화에 부정적이었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지나가고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것도 하나의 배경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90년, 91년에 평준화가 해제되었던 군산과 익산(2000)에 평준화가 재도입되고, 2002년에는 수도권 지역 7개 도시에 평준화가 도입되었다. 평준화는 2005년에 목포, 순천, 여수 2006년 김해, 그리고 2008년에는 포항으로 확산되었다.
비평준화 지역으로 묶여있던 경기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평준화를 실시하기 위한 요구를 계속했다. 전교조 강원지부도 고교평준화 재도입을 위한 캠페인, 서명, 집회, 단식농성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시민의 여론은 평준화 지지였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교육감이 평준화에 반대하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표) 고교평준화 적용/ 해제 지역 (첨부파일참조)

2010년 6.2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하면서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이전까지 평준화를 미뤄왔던 강원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은 평준화 여론에 밀려 여론조사, 공청회 등을 거쳐 고교평준화 도입을 결정했다. 특히 강원도교육청은 2만 명이 넘는 설문지 방식의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평균 70% 이상의 지지를 받은 바 있었다.
평준화를 지지하는 그룹은 전교조, 대부분의 고등학교 동문회, 시민사회단체 등이었고 평준화를 반대하는 그룹은 이른 바 ‘지역 명문고’ 측 동문, 보수교원단체 등이 주축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이미 평준화를 실시하고 있는 여러 도시가 있었기 때문에 반대가 덜 했지만, 강원도에서는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셌다. 이로 인해 1차 설문에도 불구하고 평일 낮 시간대 유선전화응답 여론조사를 통한 2차 설문 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표) 선호하는 고교 입시제도 (첨부파일 참조)


3. ‘일단’ 좌초된 고교평준화 도입

강원도 고교평준화 운동을 주도한 한 축이 전교조였다면 또 다른 축은 강릉, 원주, 춘천의 고등학교 동문회였다. 동문회에는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고교평준화는 가입 정당의 당론을 넘어서 ‘입장의 통일’이 이뤄졌다. 예컨대, 원주지역 고교 동문회를 대표해 고교평준화 투쟁을 전개했던 인사는 한나라당 당원이었지만 고교평준화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사 중에도 이른 바 ‘지역 명문고’ 동문인 경우는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찬성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정권답게 고교평준화를 진보의 아이콘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교육감의 권한 사항이었던 고교평준화를 ‘부령 개정 거부’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방해하고 나섰다. 교과부는 1월과 2월에 걸쳐 강원도 강릉, 원주, 춘천과 경기도 광명, 안산, 의정부 등 6개 지역에 대한 평준화 승인을 2차례 반려했다.
2011년 1월 10일 뉴시스를 통해 교과부가 평준화 신청을 반려할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이튿날 한겨레신문에서 1면 톱기사로 ‘고교평준화 유보 분위기’를 보도했다. 같은 날 교과부가 이를 부인하고 나섰지만,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사실상 방침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극한 상황은 1월 18, 19일 이틀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벌어졌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등은 공식 회의 일정에 앞서 이주호 교과부 장관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평준화 승인을 요청했으나, 이주호 장관은 평준화 승인 반려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6개 진보교육감들은 이를 교육자치 말살로 인식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민병희 교육감은 ‘6개 교육감을 미운 오리 새끼 취급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교과부라는 현실 권력 앞에 평준화가 좌절되자 평준화 운동 주체들의 의지로 흐트러졌다. 이전에는 평준화의 열쇠를 교육감이 쥐고 있었으나, 교과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까지 개정해가며 방해하는 상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1월 25일에는 강원도와 경기도 교사,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300여 명이 참가해 고교평준화 승인을 촉구하는 교육주체결의대회를 개최했다. 2월 24일에는 제2차 교육주체결의대회를 개최했으나, 바로 전날 불거진 ‘내부형 교장공모제’ 재청거부 발표로 인해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사연이 있었다.
교과부는 교과부령에 ‘교육감이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을 기재하던 방식을 바꿔 시도의회가 조례로 정하는 방안을 포함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3월 1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한편으로 이미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까지 개정한 이후인 3월 16일에야 ‘고교평준화 재신청 반려’ 공문을 강원도교육청에 발송해 빈축을 샀다.

4. 다시 시작되는 평준화 운동
문제는 보수진영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준화 운동이 ‘진보’라는 스펙트럼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준화에 대해 진보진영은 물론, 지역 질서의 주류에서 배제된 다수의 인사들이 지지를 보낸다. 이념에 앞서 사회경제적 지위로부터 배제된 현실이 제도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는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지만, 다시 평준화 운동이 고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항상 존재한다.
특히 올해는 도의회에서 평준화 실시 여부를 결정짓게 되어 지역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평준화에 대한 지지여론이 강한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에서도 도의원에 대한 강력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도교육청을 향한 운동이었다면, 앞으로는 도의회를 향한 압력이라는 형태로 이뤄지는 셈이다.
다만 평준화 운동을 추진하는 진영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도 있다. 필자와 라디오 토론에서 마주친 학사모의 모 인사는 “대학이 평준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평준화가 되면 안 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대학평준화가 되지 않으면 고등학교 평준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비논리적이지만, 최소한 평준화가 단지 교육을 넘어선 ‘사회적 의제’임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었다. 아시다시피 대학이 평준화 되지 않은 이유는 직업선택과 부의 축적 문제 때문이다. 비평준화는 이런 불합리한 욕망에 근거한 카스트제도이다.
평준화 운동 성패 여부는 교원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동문회에 그친 평준화 운동을 대중화하고 생활화하는 것에 있다. 진보는 보다 낮은 곳에서, 보다 대중적으로 나가야 한다. 평준화 운동 한 번의 순환, 그 결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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