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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통합네트워크와 국립교양대학 안 논쟁에 부쳐

-- 정진희(다함께 회원)


최근 교육운동에서는 대학 체제 개편 논쟁이 일고 있다. 2월 19일에 열린 한국사회포럼에서 두 개의 대학 체제 개편 방안을 두고 열띤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민운동본부(이하 입시폐지국본)의 김학한 교사와 한신대 경제학과 강남훈 교수가 각각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과 국립교양대학안을 발표했다. 이 중 국립교양대학안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안이라 아직 진보진영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 날 모인 교육운동가들은 이후에도 두 안을 놓고 더 토론을 하기로 했다.  
산적한 교육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학 교육이 전체 교육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기 때문에 대학 체제 개편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5퍼센트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학 교육은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 직결되고, 대학 체제는 대학교육뿐 아니라 초중고 교육의 방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대학 체제 개편 논의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더욱 황폐해지는 교육을 살리는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경쟁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지금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 진보진영은 어떤 대안을 제시해야 할까? 먼저, 최근 논의중인 진보진영의 두 안을 간추려 본다.

1.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한국 사회에 심각한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출됐다. 무한입시경쟁의 본질이 대학서열체제에 있기 때문에 단지 입시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대학을 평준화해 서열체제 자체를 깨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서열체제 해소 논의는 김경근 교수의 ‘대학서열깨기’, 장회익 등 서울대 교수들의 ‘서울대 학부개방론’, 김상봉 교수의 ‘대학평준화론’ 등으로 이어졌는데, 정진상 교수의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이 가장 체계적인 안으로 꼽힌다.  
대학서열화 문제가 한국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혀 온 만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학평준화 방안은 진보진영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안은 2004년 전교조와 범국민교육연대의 공교육개편안으로 제시됐고, 2007년 출범한 입시폐지범국민운동본부도 이 안에 기초해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 운동을 벌여 왔다. 또,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2007년 민주노동당의 대선 공약이었고, 그 뒤 창립한 진보신당도 이 안을 채택했다(두 진보정당의 안은 정진상 교수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몇몇 쟁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학과 대학원제도>
1) 서울대학교를 포함해 전국의 국립대학을 하나의 통합네트워크로 구성한다.
2) 일정한 수준이 되는 사립대학들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로 편입한다.
- 사립대학을 통합네트워크에 포함시키도록 유도하는 방안은 두 가지다. 첫째, 국립대와 동일한 재정 지원을 한다. 둘째, 각종 전문대학원 설치권을 국립대통합네트워크에 편입하는 대학들에만 부여한다.
3) 학부과정은 4년인데, 1기 과정(2년)에는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계열 두 계열만 두고 2기 과정(2년)은 학부제로 운영한다.
4) 법대, 사범대, 경영대, 의대, 약대 등 전문직을 위한 학부과정을 폐지하고, 이 과정들을 전문대학원에 설치한다.
5) 지역의 국립대학들을 현재의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학구별로 통합하고 몇 개의 캠퍼스로 조직한다.
6) 대학원은 일반대학원과 전문대학원으로 구분한다. 학문을 위한 일반대학원은 대학별 특성화를 유도한다.
7) 전문직을 위한 전문대학원은 학구별로 인구비율에 따라 입학정원을 조정한다.

<대학·대학원 입학제도>
1) 신입생 선발 단위는 대학별·학과별이 아니라 전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총정원으로 한다.
2) 대학입학자격은 인문사회계와 자연계 등 계열별로만 나눈다.
3) 대학입학자격은 고교내신성적과 계열별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해 선발하며 수능시험은 대입자격시험으로 대체한다.
4) 대입자격을 획득한 학생들은 먼저 1, 2, 3지망으로 대학을 지원해 배정받고, 정원이 초과돼 대학을 배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배정받는다.
5) 학부 2기 과정의 각 학부는 학부 1기 과정 이수자 중에서 무시험 서류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6) 일반대학원은 학부과정의 성적을 중심으로 한 서류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7) 전문대학원은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의 취지에 따라 동일 학구의 학부 출신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의 운영>
●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등록금을 단계적으로 인하해 무상교육으로 나아간다.
● 교원확보율을 100퍼센트에 도달하게 하고 비정규직 교수를 정규직화해 교수와 연구활동을 안정화한다.
● 대학운영은 대학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학점 취득은 네트워크 내에서 개방한다.
● 중앙 차원의 네트워크뿐 아니라 거점대학을 중심으로 권역별 네트워크 체제를 만든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의 성공을 위한 다른 조치>
●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 지역균형인재등용제도 도입
● 조세제도 개혁
- 부유세 도입 등
2. 국립교양대학

국립교양대학안은 진보진영에서 비교적 낯선 안이다. 주경복 교수(2008년 서울시 교육감 후보)와 김하수 교수 등이 국립교양대학안을 주장한 바 있지만,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이 안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지 않아 그 내용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하수 교수는 2007년 대선 때 민주당 정동영 대선 후보 교육정책 자문이었는데, 당시 김 교수가 낸 교양대학안은 개혁의 폭이 너무 크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등의 이유로 민주당 대선 공약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당시 정동영은 대학수학능력시험 폐지·대학별 입학시험 금지를 내세우고, 대학을 연구·교육·직업 중심 대학으로 개편해 분야별로 특성화된 대학을 육성해 서열체제를 해체하겠다고 공약하는 데 그쳤다.
최근 강남훈 교수가 새롭게 밝힌 국립교양대학안의 핵심은 고교와 대학 사이에 예비대학 성격의 교양대학을 신설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현행 6-3-3-4로 돼 있는 학제를 6(초등)-5(중등: 중·고교 통합)-5(고등)으로 개편한다. 고등교육 과정은 교양대 2년+일반대 3년으로 이뤄진다. 고교 졸업 뒤 일반대학에 진학하려면 교양대를 의무적으로 거치게 하는 안이다. 기술대학은 고등학교 졸업 직후나 교양대학교 1~2년 이수 뒤 진학할 수 있다.
② 법학, 교육학(사범대), 경영학, 회계학, 의학, 약학, 행정학, 외교학 등 전문직 자격증이 부여되거나, 고위공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거나 좋은 직업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교육과정은 일반대학 과정에서 금지하고 전문대학원 과정으로 설치한다.
③ 교양대학 과정은 전국 단일의 국립 교양대학을 설치해 교육한다. 교양대학 시설로는 권역별로 일반대학과 기술대학(전문대학)의 시설을 활용한다. 교양대학에서 선발은 논술 형식의 입학 자격고사로 뽑는데 절대평가 방식이고 대학 수학 능력 여부만 평가한다. 기술대학은 교양대학보다 낮은 자격시험 기준을 적용하거나 자격시험 기준을 없앤다.
④ 교양대학은 4개 계열(인문, 사회, 자연, 공학)로 운영한다.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대 20 이내로 한다. 일반대학 교수와 국가연구교수를 강의에 활용한다. 학점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유급제도를 두어 일정한 학력 이상을 갖춘 학생들만 일반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한다. 자연/공학계 학생들도 인문/사회 과목을 30% 이상 듣도록 한다. 교양대학의 성적은 권역별 혹은 대학별로 상대평가로 하거나, 독립된 평가기구에서 채점하고 관리한다.  
⑤ 일반대학 입학은 교양대학 내신 성적 70%와 논술 형태의 대학별 학과별 논술고사 30%로 선발한다.
⑥ 고등학교는 조기 졸업이 가능하게 하고 중기적으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을 통합해 5년으로 줄인다. 교과과정이 줄어드는 만큼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낮춰 교육의 질을 높이도록 한다.
󰊏 중등과정, 교양대학, 기술대학은 무상으로 하고, 장기적으로 일반대학까지도 무상으로 한다. 대학원과 전문대학원은 후불제로 운영한다.


3.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 vs 국립교양대학안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립교양대학안이 진보진영에서 급부상하는 듯한데, 교수노조 강남훈 위원장이 한국사회포럼에서 발표한 안은 <한겨레> 2월 18일자에 개인의 안이 아니라진보성향 교수3단체의 안으로 보도됐다. 한국사회포럼 2011 집행위원장을 맡은 배성인 교수는 학술단체협의회는 이 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한겨레> 보도에 불만을 표했다. <한겨레>의 실수라는 해명이 있었다지만, 적어도 교수단체 내에서는 상당한 지지가 있는 듯하다.
국립교양대학안만 놓고 본다면, 이 안은 현재 한국의 열악한 교육 현실을 개선하는 안이다. 복잡한 학제 개편의 효율성 문제는 제쳐 두고 말하면, 신설하는 교양대학이나 일반대학 모두 무상교육을 표방하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교양대학 교수진 충원을 대폭 높이는 것도 교육 여건 개선에서 긍정적이다. 수능시험 대신 대학입학자격고사로 바꾸는 것도 입시 경쟁을 완화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국립교양대학안을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과 비교해 보면, 이 안이 통합네트워크안보다 딱히 더 나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국가의 재정 지원 확대를 통해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에도 들어 있다. 수능을 대학입학자격고사로 바꿔 입학 과정에서 경쟁을 완화하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두 안의 핵심적 차이는 대학서열화 문제 해결을 시도하느냐 여부다. 교양대학안은 치열한 입시 경쟁의 핵심 원인인 대학 서열화 문제를 건드리지 않지 않고 “우회”해 국립교양대학을 신설해 경쟁의 시기를 2년 뒤로 늦추는 안이다. 입시경쟁을 늦춰 초중고 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국립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통합 선발과 공동학위 수여 등의 방식으로 대학평준화에 착수하는 안이다. 이 방안은 국립대부터 평준화를 시작하면서 점진적으로 사립대까지 포괄하는 구상을 담고 있다.  
한국처럼 대학이 고도로 서열화된 나라에서 서열체제에 도전하지 않고서 초중고의 입시경쟁을 크게 완화할 수는 없다. 한국은 ‘학벌사회’로 불릴 만큼 학벌이 취업이나 승진 기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은 학벌에 따른 임금과 소득 격차로 드러난다. 또, 한국에서 학벌은 결혼이나 인간관계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학서열화에 도전하지 않으면, 강남훈 교수가 제안한 국립교양대학과정 역시 일반대학 진학 경쟁으로 파행을 겪기 쉬울 것이다. 일반대학 진학 경쟁이 치열하면, 초중고 교육의 파행도 불보듯 뻔하다. 사교육비 축소 효과도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대학서열화가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여러 사회 불평등을 낳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므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담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이 교양대학안보다 훨씬 낫다.
강남훈 교수가 국립교양대학안을 내놓은 주요 배경 중에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으로는 대학서열화를 없앨 수 없다는 비관적 인식이 있다. 한국에 사립대학 비중이 80%가 넘는데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잘 작동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것이다.
이런 생각은 그동안 진보진영 내 많은 사람들이 품은 의문이기도 한데, 정진상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어느 글에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어 이런 우려에 답했다. 사립대학은 법적으로 사유재산이 아니라 공공재산이다, 현재 사립대학들은 대부분 재단전입금보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므로 사립대학의 학생들과 교수들이 공영화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전문대학원 설치를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참여와 연계하면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이 통합네트워크에 편입될 것이다.
이런 전망은 다소 낙관적으로 보인다. 사립대학이 법적으로는 사유재산이 아니고 대학 운영 자금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사학법인이 사립대학을 자신들의 사유재산처럼 여기면서 학교 구성원들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운영해 온 것도 사실이다. 대학당국이 갈수록 대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경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사립대학들이 자신들의 이윤 추구에 제약을 가하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을 반길 리 없다. 물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들에게 전문대학원 설치를 금지하면 사립대들에게 큰 타격이 되겠지만, 일단 이런 조처를 시행하려 하면 사립대학들의 큰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퇴출 위기에 몰린 부실 사립대학들은 비교적 쉽게 그런 유인책을 받아들일지 몰라도, 서열화 해소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권 명문 사립대학들은 정부 지침을 순순히 따르기보다 저항의 선봉에 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사립대학들의 참여를 유도할지언정 그것을 강제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으므로, 주요 사립대학들이 반발할 경우 통합네트워크 진척은 난항에 빠질 것이다. 결국 수도권 명문 사립대학들이 평준화 체제에 동참하지 않으면 서열 완화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강남훈 교수가 우려했듯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출범 뒤 명문 사립대학이 1위 자리를 꿰찰 수도 있다.
대학평준화가 본격 시행되려면 수도권 명문 사립대학들의 소유나 경영권 침해도 불사하는 과감한 조처가 꼭 필요한데,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그 점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즉,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반자본주의 변혁 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 틀 내에서 추진하는 개혁 강령이다(물론 대학서열체제에 도전하고 무상교육 실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급진적 요소가 있다).
그런데 강남훈 교수의 국립교양대학안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의 한계를 더 급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더 후퇴하는 방식으로 극복하려 한다. 정진상 교수나 다른 좌파 교육운동가들과는 달리, 강남훈 교수에게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 추진시 생길 수 있는 난관을 대중투쟁을 통해 극복한다는 관점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나 비록 국립교양대학안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보다 훨씬 더 온건한 안이기는 하지만, 그조차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년 간 교양대학 학부생을 사립대학이 뽑지 못하게 하는 안에 사립대학들이 반발할 것은 분명하다. 등록금에 압도적으로 의존해 온 사립대학들이 2년 간 ‘등록금 장사’를 할 수 없다면 가만히 있겠는가.  
강남훈 교수는 사립대학들의 국립교양대학안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시장 논리를 대폭 수용한다. 교양대학을 사립대학들의 손실을 벌충해 주는 방식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즉, 교양대학의 시설을 사립대학에서 임대해 사용하고 소속 교수들이 교양대학 강의를 하게 해 시설 사용료와 강사료를 사립대학의 수입원으로 만들자고 한다. 그리 되면 사립대학의 수입이 늘어나 “퇴출 위기에 놓인 많은 지방대학에 대해서는 교양대학 운영이 기사회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수도권 일류 사립대학이 국립교양대학안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지만 “수입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면 저항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발상은 현실성 문제는 논외로 해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국립교양대학을 왜 퇴출 위기에 놓인 사립대학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회로 만드는가? 부실 사립대학 자산을 국가가 인수해 국립대를 늘려가면 사립대학들의 힘을 약화시켜 대학 공공성 강화에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무릇 대중의 삶을 개선하는 진지한 개혁 시도는 어떤 것이든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학 교육은 지배자들에게 국가경쟁력의 척도로 여겨지므로, 진보적 대학 개혁에 반발하는 세력은 단지 사립대학들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보수 언론, 기업주, 국가 관료 등 지배계급의 광범한 저항이 있을 것이다. 이런 반발 앞에서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반발을 뚫고 개혁 성취를 위해 지배계급과 기득권 세력들을 압박할 수단을 동원하느냐, 아니면 스스로 후퇴하느냐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갈림길에서 후퇴를 거듭했고, 마침내 그 자신이 우파적 정책의 선봉에 섰다. 정권 초기 기대를 모았던 사립학교법 개정은 용두사미로 끝났고, 2007년에는 그마저 한나라당과 야합해 더 후퇴시켰다. 서울대를 포함해 모든 국립대를 한꺼번에 법인화하려 했던 게 노무현 정부였다. 진보진영에서 민주대연합 노선이 득세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 강남훈 교수도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 지원 약속(3조 1천억 원)을 언급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민주당의 핵심 계급 기반은 어디까지나 자본가계급이므로, 진보진영이 민주당의 약속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급진적 교육개혁의 진정한 동력은 대중투쟁이다. 프랑스에서 대학평준화가 높은 수준으로 이뤄진 것은 1968년의 대규모 투쟁 분출 덕분이었다. 캠퍼스 점거와 거리 시위로 전국을 뒤흔든 학생 반란이 일어났고, 이것은 사상 최대 규모인 1천 만 명의 공장점거 파업이라는 강력한 노동계급 투쟁과 결합됐다. 이것이 1968년 이후 프랑스에서 대학평준화를 포함해 복지 확대 등 여러 급진적 개혁들이 가능했던 힘이었다.
서울대 같은 국립대조차 법인화된 마당에 대학평준화는 더 먼 꿈이 되지 않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학시장화에 대한 반감은 매우 크고, 학생·교수·교직원들의 저항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투쟁이 괄목할만하게 성장한다면, 대학평준화는 대중에게 상당히 현실적인 요구로 여겨질 수 있다.
투쟁은 단지 점진적 과정을 거쳐 성장하지 않는다. 서서히 저항이 벌어지는 듯하다가 사람들의 분노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대규모 투쟁이 급격히 분출하는 비약의 시기가 역사에는 무수히 많다. 격변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올 수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혁명이 삽시간에 이집트, 리비아로 확산되면서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격변이 일어나는 것을 보라.
물론 현재 한국의 경제·정치 상황이 이들 지역과 꼭같지는 않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렁이는 혁명과 반란의 물결은 세계의 민중에게 빈곤과 불평등이 없는 다른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가 193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겪으면서 체제의 정당성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대중의식의 급진화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급진화가 일어나고 있다(비록 불균등하고 모순적인 과정이기는 하지만).
평등하고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교육은 불평등하고 획일적이고 비정한 자본주의를 넘어설 때 온전히 성취할 수 있다. 대학평준화는 경쟁 교육에 반대하고 평등을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드러내고 이를 위한 투쟁에 초점을 제공할 수 있는 요구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은 대중운동의 힘이 뒷받침되면 대학평준화를 향한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대학평준화를 효과적으로 실행하려면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안보다 더 나아가, 주요 사립대학 국유화를 포함해 지배계급의 부와 특권 침해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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