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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비정규직, 교육노동자의 시선 둘

2003.07.14 10:41

특집팀 조회 수:1931 추천:3

비정규직

비정규직, 교육노동자의 시선 둘

진보교육연구소 회보 특집팀


1. 비정규직, '온정적 관심' 이상의 시선이 필요한 문제

4월 4일, 전교조를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등극케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진상과 본질은 간데 없이 보수언론-교장단-우익학부모가 결탁한 수구 집단은 전교조와 해당 기간제 여교사를 '살인마'로 신속히 규정했다. 차시중 요구가 발단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건의 이면에는 성차별적 업무를 버젓이 강요할 정도로 봉건적인 교직사회(특히 초등) 풍토와 신분불안에 시달리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문제가 구조적으로 얽혀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운동에서 아직은 주변적 이슈였던 비정규직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 증가 경향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 구체적인 실천으로 엮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는데, 이제 교육운동도 넓은 시야로 비정규직 문제를 조명하고 실천의 방향을 모색할 때다. 기간제 교사 등 교육부문의 비정규노동자가 겪는 노동권, 인권침해를 시정하는 일이 시급한 것도 사실이나, 여기에만 머무를 일은 아니겠다.

비정규직화는 교직 내부에만 눈길을 고정시켜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회적 변화이다. 사회 전반의 급속한 비정규직확산 흐름 속에 비정규 교원의 증가가 놓여있는데, 이 점에서 교직내 비정규직화 경향은 물론이려니와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화 현상을 공교육기관의 교사가 예의주시할 이유가 발생한다. 교육부문의 비정규직화는 교육노동자의 이해와 직결되는 변화임은 물론이고 이를 포함한 사회전반의 비정규직화 경향은 공교육과 후대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터이고 결국 현재의 교육을 왜곡시킬 요소가 될 터여서이다. 공교육기관의 교사는 지금 당장 다음의 문제에 진보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실업 혹은 실업을 면해도 비정규직일 확률이 50%를 훌쩍 넘는 사회(즉, 아무리 애써봐야 안정된 일자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불안사회)의 갑남을녀의 삶과 그 속에서 공교육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망가질까? 그리고 이런 운명을 직감하는 아이들은 현재를 어떤 모습으로 살려 들까?

실제로, 지난 40년 간 임시일용직 비중을 살펴보면, 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계속 감소하던 임시일용직 비중이 82년 2사분기를 최저점으로 가파른 증가세로 돌아서 87년 3월 45%를 넘어섰다. 88년 2월(45.6%)을 정점으로 돌아선 임시일용직 비중은 94년 5월(41.7%)을 저점으로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99년 3월에 50%를 넘어섰고, 1999년에는 51.7%(1999년 11월에는 53.0%로 최고치 기록), 2000년에는 52.4%까지 상승하였다가 이후 52%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노동인구의 절반이상이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소득'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 대다수는 높디높은 정규직 진입장벽에 부딪혀 '무기력'과 '저숙련' 상태에 밀어 넣어지고 만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곧 우리사회의 상당수 인구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노동권과 생존권의 사각지대인 노동시장의 '2등 시민'의 지위를 강요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노동시장의 변화는 그 자체로 마감되지 않고 교육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비정규직 대량화란 심각한 변화를 동반하며 일어나는 노동시장 구조변화를 교육노동자는 하루라도 빨리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하에서는 먼저 교육부문의 비정규직의 실태와 그 동인을 따져본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전반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양산 흐름을 노동시장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살핀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노동자를 가르치는 교육노동자―특히, 정규직 교육노동자와 교원노조―는 이 문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덧붙인다.

2. 시선 하나 : 교육부문 비정규직 실태

교육부문에서 비정규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확산되었다. 먼저 그 실태와 원인을 짚어야한다. 확실히, 비정규직 확산 흐름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교원정책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노동정책 및 노무관리 전략과 관련이 있는데, 급격한 교직 비정규직화 양상을 교사 노동, 교육운동, 교육공공성의 측면에서 비정규직화가 내포하는 의미를 따져봐야 한다.

가. 초중등교육기관의 비정규 교원 실태

1) 비정규 교원의 확산

"…2000년 7차 교육과정의 시행과 더불어 비정규직 교원 확대 흐름이 가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1년 906명이었던 국공립고 비정규직 교원이 2002년 1,885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고 사립고의 경우에도 2001년 2,666명이었던 비정규직 교원이 2002년 5,822명으로 2배가 훨씬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 이는 2002년 7.20교육여건개선사업시행과 맞물려 있다.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명분으로 학급당 학생수를 감축하고 이에 따라 교원을 증원하겠다던 7·20사업은 증설된 학급에 정규교원 대신 비정규교원을 채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기존의 관행과 맞물리면서 임용사유가 불분명한 채 비정규 교사 비율이 20%에 이를 정도로 정규교사 대체인원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위 표에서 비정규직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임이 확인된다. 사립은 국공립에 비해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신자유주의와 무관하게 사립은 이미 비정규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신자유주의 교육과정 정책, 교원정책이 시행되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이로써 사립 뿐만 아니라 초중등교육 전체에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데 불을 붙인 요인은 바로 '정책의 성격'에 있음이 드러난다.

게다가, 사립고등학교는 2002년의 경우 비정규직이 무려 휴직교사의 28배에 달하고 있다. 이쯤 되면, 비정규직은 이제 불가피한 경우에 활용되는 예외적 임용 방식이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이 교사 임용 패턴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뜻이겠다. 결국, 비정규 인력 활용은 국가 차원 교원교육 정책의 하나이며 이로써 교직 전반의 임용 유연화가 진행되고 있다.

2) 비정규 교원의 근무조건

비정규 교원의 근무조건의 특징은 한 마디로 '차별과 부당함'이다. 비정규 교원은 계약과 신분, 임금, 근로조건 등에서 차별과 부당함을 감수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교원의 노동과정은 이의 일방적 수용을 요구하는 불공정 계약서에 '자기 손으로' 서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권리인 퇴직금과 해고시 사전예보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방학기간에 보수가 지급되지 않아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은 기본적 노동권을 법적으로 보호받기는커녕, 국가는 이들의 희생감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면서도 이들은 임금상의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기간제 교사는 경력에 관계없이 고정급으로 14호봉 이상을 부여할 수 없도록 공무원보수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설문조사결과 비정규직 교사들은 정규교사와 비슷한 업무를 맡으면서도 86%가 방학 중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부분 정규교사보다 낮은 보수를 받고 있고 시간강사의 경우 92%가 월 100만원 미만이었고 응답자의 90%가 퇴직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사용자들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1년 미만으로 갱신하도록 강요하기도 한다.  

불공정 계약과 더불어 사용자에 대한 부당한 예속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들은 보호받을 법·제도적 장치도 극히 취약하며 노동조합의 조합원 신분을 가지지도 못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용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스르기 힘들다. 설문조사 결과, 사립 비정규직의 경우 40%정도가 해고의 부담을 안고 있으며 신분불안을 느끼는 비율은 전체 응답자 수의 70%정도에 이른다. 게다가, 신분불안이라는 위협요인은 이들이 소신껏 교육활동에 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최소한의 권리조차 주장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 그들이 '못나서' 지금은 비정규직인 거고 노력만 하면 언제든 정규직이 될꺼다?

정규교원이냐 비정규교원이냐는 사소한 절차를 거쳐 가름된다. 즉, 교직에서의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은 임용형태 다양화에 의해 구획화된 결과일 뿐 노동력의 '질'이 정말로 차이가 나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량으로 배출시킨 예비교사들을 책임지지 않은 채 국가는 일방적으로 임용고시라는 '합리적' 절차를 만들었다. 엄청난 경쟁 끝에 좁디좁은 문을 극적(!)으로 통과한 소수만이 '정규직으로 선택'받는다. 나머지 절대다수는 학교든 학원이든 비정규직 혹은 실업의 상태를 감수해야 한다. 이 차이는 교사로서의 자질의 차이에서 비롯된 차이인가? 단언컨대, 어떤 노동력의 숙련/비숙련이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기준이 아닌 것이다. 임용 및 노동력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려는 의도의 정책이 많은 비정규직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비정규직이 처한 객관적 조건은 이들이 '숙련노동자'로 성장할 기회도 박탈한다. 불안정 고용구조 속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이직을 쉼없이 해가면서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사용자의 코드를 열심히 익혀야만 한다. 첫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실업과 비정규노동을 넘나들며 비정규직으로 고정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한다. 이런 경험적 증거들은 이미 이것은 개인에게 이유를 물을 문제가 아닌 구조적 원인을 가진 성질의 것임을 일깨워준다.

- 조직화 가능성

신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은 조직화된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질 높은 교육은 이들의 교육철학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노동자를 고용함에 있어서도  '효율성' 즉 '통제효과'와 '비용절감'을 가장 우선 순위로 올려놓는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비정규 교원들은 바로잡으려는 열망을 폭넓게 갖고 있다.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78.1%가 공감한다. 하지만, 지금의 조건에서는 그런 열망이 곧장 조직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노동자 개개인은 자신의 현실을 '실업상태를 면하기 위해' 차악으로 택한 한시적 상황으로 받아들일 뿐이며 정규직이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비정규교원 대부분은 연령이 낮은, 정규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개개인은 위험부담을 감수해가며 조직화에 동참하여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당분간' 감내하며 장기적으로 그런 상태에 놓이기 않기 위해 (즉,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애쓴다. 부당한 처우와 신분불안의 위협 때문에 조직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런 필요성이 거꾸로 조직화를 가로막는 직접적 요소로 작용하는 모순적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이 처한 조건을 보건대, 현재로서는 직접적인 조직화로 교육운동의 주체로 성장해가기에는 난관이 많다.

- 비정규직 양산정책과 교육노동자의 조직적 역량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노동강도를 완화시켜주고 자신의 안정적 지위를 유지시켜주는 안전판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착취를 용이하게 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외형적 효과 외에 노동통제의 기제로서 대단히 효과적이다. 내부시장을 형성하여 그 내에서 바닥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기제가 바로 비정규인력의 양산이 갖는 노동통제 측면에서의 효과이다. 교육부문의 경우,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를 중심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면서 비정규직화 등의 노동유연화 전략을 사립 → 공립, 사교육시장 → 공교육의 방향으로 전개하면서 전반적인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비정규직 비중의 확대는 인건비 절감,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노동통제는 물론 정규직에 대해서도 경쟁을 강화하고 통제를 용이하게 해주는 이중적 효과가 있다. 더군다나 단일 직종 내에 차별이 분명한 두 노동자 집단으로의 분화는 내부 갈등을 초래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의 증가는 교육노동자들의 조직적 역량에 있어서도 해악적 요소다.

나. 대학

얼마 전 한 대학강사가 죽음을 택했다. 이를 계기로 대학 시간 강사의 처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는데, 현재 대학에서 시간강사는 전체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전임교수보다 훨씬 많은 인원의 시간강사가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고등교육법은 시간강사를 대학교원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시간강사들은 강의시간당 수당만 받는 '도급계약자'의 처지에 몰려 있다. 대학은 시간강사를 포함, 명칭만 교수인 사실상의 비정규교원인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게는 50%가까이에 이른다.

이미 알려진 대로 비정규대학교원의 노동조건은 상당히 열악하다. 고용상태가 대단히 불안정하고 전임교원이 될 전망도 불투명하기만 하다. 40대가 넘도록 불안정 고용 내지 준실업상태를 못 면하기 일쑤다. 그래서 배우자나 집안의 조력없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버거운 경우도 적지 않다. 적어도 2개 대학 이상에 강의를 나가야 하며, 부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학마다 시간당 강사료로 최고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며 대체로 시간당 강사료는 2만5천 원 내외 수준이고 방학중에는 이마저 지급되지 않아 대부분 가정을 꾸리고 있는 가장이 많은 탓에 생활조차 어렵다. 그래서 논술이나 번역 등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일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전공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없어서 이른바 자기발전의 과정이 보장되지 않은 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학의 인건비 절감을 위한 교양 강의용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이 말은 곧 안정적으로 학문연구와 교육활동에 몰두할 조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며, 이로써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가 뻔해진다.

대학당국은 교육의 질과 대학교육의 절반을 감당하고 있는 이들의 생존권에 아랑곳없이 '시간제 도급인력'을 착취하고 있다. 이것이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교수의 현실이다. 사립이 80% 가량을 차지하는 대학은 '교육의 관점'이 있어야 할 곳이 '경영의 관점'과 '경제 이데올로기'로 이미 얼룩져 있다. BK21 등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이 설자리를 잃게 만드는 경제 지상주의와 노동인력 유연화, 다기능화를 꾀하는 대학정책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한편, 대량의 '교수 바라기' 인력이 배출되어 수용은 안되는 악순환은 대학사회의 비민주적, 봉건적 풍토 재생산과도 연결된다. 이들은 대학사회의 봉건적 위계질서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어 이를 재생산하는 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대학교원 임용구조는 교육과 학문의 질을 떨어뜨림은 물론, 대학사회의 봉건적 위계질서를 재생산하는 고리구실을 하고 있으며, 경쟁을 부추기는 대학정책은 기존의 대학사회의 병폐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 같은 대학의 현실은 초, 중등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립의 비율이 알려주듯이 공공성의 사각 지대에 놓인 대학은 경쟁력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의 1차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처럼 대학에 초, 중등 교육이 종속된 구조에서는 대학을 바로 세우지 않는 한 초중등 교육도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 대학에서 중등으로 이어지는 교육시장화, 노동유연화 흐름을 그대로 둘 경우 왜곡된 대학 및 사교육시장의 인력구조를 따라가라는 압력이 초중등에도 더 거세질 날도 멀지 않다.

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전략

노동유연화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핵심으로써 노동유연성은 다음의 4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첫째, 수량적 유연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고용형태를 동원하여 해고, 고용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노동자 수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기능적 유연성이다. 수요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동자의 과업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부서나 일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세째, 임금유연성이다. 경영층이 노동시장의 변화 또는 경쟁에 적응키 위해 단체협약에 얽매이지 않고 임금이나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넷째, 노동시간의 유연성이다. 이는 사용자가 사람의 수가 아니라 노동의 양을 바꾸는 것을 말하여 변형근로제가 이에 해당한다.

교직 내 비정규직의 양산은 최근 몇 년간의 교원정책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교원 정책은 교사 노동의 유연화를 의도하면서 입안되었다. 정년단축, 경쟁적 교원정책과 함께 폐쇄적인 교원수급 구조를 탄력적이고 유연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 정부가 몇 년간 추진해온 교원정책의 중요한 축이다. 이 정책은 '정규직'의 입장에선 미미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전반적으로 그 진행속도와 현실에 대한 영향력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가 누누이 지적해왔듯이 '교원구조조정'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구조조정 정책은 때로는 우회적인 양상을 띤다. 예컨대 교육과정정책에 수반되기도 하며, 때로는 정년단축이나 지방직화처럼 직접적인 방식을 취하여 전개되는데, 교원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전반의 논리와 방식과 연동되어 진행되고 있다.

교원구조조정의 시작은 정년단축이었다. 정년단축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은 것은 초등교육부문으로써, 갑작스럽게 줄어든 교원의 빈자리를 수량적 유연성으로 대체할 구조적 기반을 마련했다. 정년단축은 또한 '효율성'의 논리를 교원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유포시키는 고리가 되었다. 이후 노동유연성을 제고하는 교원정책은 다채롭게 전개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교원지방직화'를 적극 추진하려 들었다. 많이 지적된 대로, 2000년 7차 교육과정의 시행은 우회적이긴 해도 핵심적인 구조조정 정책이었다. 7차가 표방한 선택논리는 교육노동의 수량, 기능, 게다가 임금 및 시간의 유연성을 모두 요구하는 논리다.

교사 양성 과정에서는 노동력 유연화 및 유연한 공급구조를 마련하는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학부제, 광역단위모집, 복수전공, 부전공 등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에 의한 대학의 구조 개편은 유연한 노동력 공급을 뒷받침하는 정책들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교원수급과 연결되면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등이상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이미 고착화되어 있다. 양성과정 개편은 경쟁이 치열한 임용고시에서의 가산점 제도를 매개로 실제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초등만 다소 예외일 뿐 중, 고등은 공급이 수요를 훨씬 상회하는 상황에서 사용자는 경쟁 선발 체제를 매개로 교육노동인력의 형태를 자신의 의도대로 재구조화하기 쉬웠다. 이는 이미 기형적 교원수급 정책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배태되어 있었다. 게다가 경제 위기에 따른 실업 증가로 대부분은 공교육기관 및 사교육시장에서 열악한 고용조건을 수요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기능적 유연화와 수량적 유연화, 노동비용절감을 위한 방책이 양성과정에서부터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교사에 대한 정부, 시도교육청 그리고 사립학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단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정규교사를 줄이고 대신 중초임용이라든지, 기간제 교사, 시간 강사 등 계약직 비정규 교사를 늘리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실례로, 7.20 교육여건개선 사업에서 인천지역 사립고 교원증원인원이 199명이 발생했는데 이중 4명을 제외하고 195명을 기간제로 충원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교사 노동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교사 임용의 한 패턴으로 자리잡고 있다.

라. 비정규직은 가까이에도 : 2003년 학교 비정규인력 실태

이미 공공기관의 위치인 학교에도 다양한 비정규인력이 정규직노동자와 언저리에 공존한다. 2003년 학교 비정규인력의 규모는 기간제 교사, 임시강사, 전산보조, 영양사, 사서, 조리사, 조리보조원, 과학실험실보조원, 전문순회코치, 사무보조원, 기타 일용인부 등 도합 10만 여명에 이른다. 일용직이 차지하는 비율에 있어서 영양사 27.64%, 조리사 47.44%, 조리보조원 94.84% 로 합계 81.30%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과학실험보조원은 100% 일용직이다. 사서의 경우, 사서교사는 149명, 일용직은 877명으로 일용직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들 중 60%를 점하고 있는 영양사, 조리사(조리원), 과학실험보조원, 도서관 사서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속기간은 1년 이상이 79.5%, 3년 이상 47.1% 일용근로가 아니라 상시근로가 필요한 자리에 수차에 걸친 재계약을 통해 일을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일반에서처럼 학교 내 비정규직인력 역시 임금차별, 고용불안 등을 겪고 있다. 첫째, 정규직과의 차별이 심각하다. 임금차별, 임금지급 내역 차별, 휴가제도 및 휴교일 임금지급 차별, 방학중 임금미지급, 공휴일(선거일)무급 등 다양한 형태로 차별을 당하고 있다. 둘째,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다. 현재 비정규직은 1년 단위의 계약을 하고 있고, 계약당사자가 학교장의 재량으로 하게 되어 있어서 장기근속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이 바뀌거나 재계약 시기만 되면 고용불안을 느낀다. 또한 재계약이 되려면 계약자의 마음에 들어야 하므로 계약자의 지시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게 된다. 그밖에 시도교육청별, 직종별 임금 지급액과 근무지침이 다르고, 근로기준법을 위반 및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는 등, 다각도의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정규직은 이들을 어떤 시선을 바라보아야 옳은가? 가방끈도 (교사에 비해) 짧고, 하는 일도 전문적이지 않으니 교육예산도 부족한 판에 '비용절감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외면할 일은 아니겠다.

자! 이 시점에서 시선을 바깥으로 조금 더 돌려보자.

 

3. '알바' 전성(!) 시대 :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과 불안정 노동인구의 증가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노동자가 겪는 차별은 매우 심각하다.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치닫게 하는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전략, 기업의 노동통제 전략 및 사회통제전략(분할통치) 이에 수반될 노노갈등과 노동자집단의 조직적 역량 저하, 그리고 20대80으로의 사회양극화, 이런 사회의 노동시장과 노동현장에서의 학력·성차별과 적극적으로 연결되면서 신자유주의 사회재편의 모순들이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는 곳이 비정규 노동이다.

가. 이들이 바로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이다.

임금 노동자는 안정/불안정이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분되며 비정규직 노동자는 고용계약 형태로는 임시근로이며 이 내에는 장기임시근로와 계약근로가 있다. 또한 근로시간의 측면에서 이들은 파트타임이며 근로제공방식에서는 호출근로, 특수고용, 파견근로, 용역근로, 가내근로의 형태가 있다. 그러면 우리 사회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떤 처지에 있는가?

노동권의 사각지대, 노동시장 내의 '이등시민'의 주변적 지위에 있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한마디로 비정규노동의 특징은 ▶저임금 단기근로, ▶심각한 고용불안, ▶임금·법정근로기준·사회보험·기업복지 등에 있어 매우 열등한 지위에 있는 데다가 별다른 제도적 보호장치도 없다. 그나마의 보호장치마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사용자들의 탈·편법적 노무관리에 노출되어 거의 무방비상태로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고용계약과 임금 관련 권리침해의 사례가 가장 빈번하며, 근로시간, 노조활동, 사회보험, 차별대우, 노무공급, 성희롱 관련 권익침해 등이 있다. 이들은 권리 침해에 직면해서도 마땅히 호소조차 못하는 처지이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비조직화된 대규모 노동자군이 바로 비정규노동자들이다.

또 하나, 어떤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비정규직에 내몰리는가를 보면 사회적 차별의 잣대들이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르는 데에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주변화되어 겪는 차별을 당하고 그 차별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게끔 하는 것이 바로 학력과 성별임이 드러난다. 첫째, 남녀 별로 보았을 때, 남자 비정규직이 적다고도 보기 어렵지만 차이를 지적한다면 여성이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혼여성의 경우 정규직에 있다가도 자녀 육아기를 거쳐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할 때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대부분 비정규직인 탓에 40대 이후에는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진다.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학력분포를 보면 중졸이하 33.1%, 고졸 48.1%로 고졸이하 학력이 전체의 81.9%를 차지하고 있다. 각 학력별 비정규직 비율은 중졸이하 81.4%(무려 5명 중 4명) , 고졸 60.4%, 전문대졸 43.5%, 대졸이상 28.1%로 학력이 낮을 수록 비정규직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경쟁이 왜 일어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며, 제도교육이 이 사회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나. 비정규직 확산의 배경과 노동시장의 변화 : 노동시장 분단 구조의 고질화, 고착화

비정규직 증가요인으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사항들은 취업구조의 변화나 유연화와 같은 노동시장 전반의 변화라는 측면과 기업의 편법적인 경영, 노무전략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기술적 변화나 산업구조 변화의 측면, 경기침체에 따른 실업 증가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 세계화의 추세에 따른 경쟁격화는 사용자로 하여금 인건비 등의 절감을 압박함에 따르는 고용유연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 증가로 단시간근로계약이나 특수계약과 같은 노동계약의 선호, 정부의 단기적인 실업정책, 경제위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우리나라의 이중노동시장구조가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 가운데 이중화된 노동시장 구조는 비정규직의 증가 및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함에 따라 더욱 고착화되고 고질화되는 양태를 보인다. 정태적으로 노동수요의 성격과 단체교섭력의 불평등성은 노동조합이 강력하고 근로조건이 좋은 일차부문과 노동조합이 유명무실하거나 없는 이차부문으로 나누어지는 계층적 노동시장현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비정규직은 이차부문에 고용된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기존의 이차부문에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차노동시장 자체의 비대화와 일차노동시장의 축소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노동유연화 전략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정책은 이중노동시장구조를 더욱 고착화, 고질화시키고 있다.

위와 같은 비정규직 확대를 두고 여러 갈래의 원인 규명이 있을 테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비정규노동 확대는 노동 공급 측면보다는 수요측면에 그 근본적 원인이 있으며 이는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즉 이중구조의 고착화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극소수 외에는 비정규노동자 대부분은 자신의 필요나 능력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선택한' 계약이라기보다는 기업의 노무관리 및 유연화 전략, 그리고 정부의 노동정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열악한 고용 조건을 감수하며 노동시장의 하층민의 지위에 처해지는 경우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진행됨에 따라 비정규 노동층이 확대되었고, 정부의 구조조정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의 실업대책은 단기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률은 감소시켰을지 모르지만 비정규직의 증가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경제위기를 계기로 급격한 구조조정(정리해고, 공공부문 민영화 등)과 이에 따라 유발된 대량실업 사태에 대해 정부는 위장된 실업 즉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특히 공공 및 금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 정책은 비정규직 증가에 기여하였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단시간근로자 증가의 63%는 공공부문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급격한 구조조정의 결과 실업이 증가하고 이에 대해 비정규직을 대량 산출하는 방향의 정책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시장 양극화는 한층 심해졌다. 비정규직 확산은 기업의 노사관리 전략이 관철된 결과이기도 하다. 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의 보호 하에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보호막이 없는데 이는 노동자 집단 내부의 갈등으로 발전, 증폭될 소지마저 있다. 계약고용은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조직의 성장을 저해하는데, 비정규직의 양산은 노노갈등을 유발하면서 결과적으로 노동자 집단의 단결력을 저해하는 치명적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것이 사용자 입장에서 비정규직화가 가져오는 유리한 효과인데, 즉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통한 분할 통치가 갖는 노동통제 효과가 그것이다.

4. 시선을 다시 안으로: 이들을 '폐인'으로 만들려는가

얼마 전, '폐인'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며 농담거리로 각광받았다. 폐인이란 사회 생활 없이 '방콕'하여 하루종일 인터넷에만 매달려 있는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유행어이다. 이들에게는 자신들끼리의 폐쇄적이고 독특한 문화와 언어가 있으며 주로 20대 초반의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이 폐인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만든 자신들끼리의 공간이 실제 사회보다 더 위안과 전망을 주는 곳이고 그래서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폐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의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는 '알바'의 애환이며 이상스럽게도 '알바'가 이들의 직업이며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이들에겐 없다.  

"…PC방,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노래방, 주유소, 대체로 이 순서요. 여기엔 대학생들이 많고, 일부는 형용모순인 것 같지만 알바가 직업이요. 알바보다 훨씬 수가 적은 전문직장인(?)들은 대체로 둘 중의 하나인데, 서비스상담원 아니면 이른바 IT 종사자들이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정말 몸으로 절감하게 되오. 둘러보시오. 지금 20대 초중반, 고졸이거나 전문대졸이거나 이런저런 대학생 및 졸업생들이 대체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이오. 20년 전 같으면 노동자가 되었을 것이오. 물론 지금의 젊은이들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게 아니오. 분명히 노동해서 벌어먹고 사는 '정상적인' 노동자들이라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다오. 내가 보기엔 분명 '직업'인데도 이들은 스스로를 '알바'라고 지칭한다오. 각종 서비스업 알바는 그만두더라도, 상담원이나 IT 종사자들이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이직률이 극도로 높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이들도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알바의 일종으로 생각한다오. 말하자면, 백수와 노동자 사이를 아주 쉽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라오."

따져보면 이들은 사실 억울하고 서글픈 민중들이다. 노조를 통해서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국가나 정치로부터 얻을 것도 하나 없고, 월수 몇천은커녕 몇백만 되어도 꿈같은 상류층 얘기로 들리고, 약한 나라에 태어나 미국에 멸시받고 사니 분할 뿐인, 노동자임에 분명하지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백수'와 '알바'를 아주 쉽게 넘나들며 살아야 하는, 학력도 보잘 것 없고 빵빵한 부모도 만나지 못해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과외비 40만원이라니 어이가 없다.

난 시급 2000원에 하루 10시간씩 알바한다.

이렇게 4가지가 없는 설대 넘들이 다 해 쳐 먹으니 나라가 이꼴이지."

폐인들은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정치에 대한 혐오는 넘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뿐이다.

그럼 다시 학교와 아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자. 지금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산으로 나타나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거칠게나마 '교육과 노동'의 연결 속에서 짚어보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이 노동자고 아이들 역시 대다수는 그들의 부모처럼 노동자의 삶을 엮어가게 될 터이다. 공교육기관의 교사들은 함부로 무시해선 안되는 문제며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현실도 아니다. 교육현장의 문제는 언제나 바깥과 관련을 맺고 있는데, 갈수록 거칠어지고 사이버에 매달리는 아이들의 문화에는 그들과 부모가 그렇게 살게끔 구획된 거친 삶의 현실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은 상황이 더 나빠졌고 아이들의 삶도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은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공교육 기관의 교사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교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열심히 공부해야지'라 독려하거나 '커서 뭐가 되려고 하니', '그래서 사회생활이나 제대로 하겠니'하며 아이들을 윽박지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 실태를 통해서 노동인구의 절반이상이 실업상태에 있거나 위장된 실업상태인 비정규직 즉,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시장의 하층에 위치지워져 있다. 이런 말을 하기엔 절대다수 아이들의 삶의 기반이 많이 무너져있고 이들에게 '건강한 노동자로서의 삶의 전망'을 제시하기 난감한 현실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야만적인 노동시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지금 상태대로라면 니가 들어갈 곳이라곤 (아래 쪽 어딘가를 짚으며) 여기 뿐이야. 더 열심히 해서 경쟁에 이겨야 이 위에 들어가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인 거고 그렇다고 해서 '해봤자 뭐'라는 식으로 교사로서의 직분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게 참 난감한 거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성공과 실패를 구분해내고야 마는, 게다가 점점 더 다수가 실패의 반열―'알바'가 직업인―에 밀어넣어지도록 변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은 결국 다수를 노동시장의 하층으로 밀어넣고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적극적인 교육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하층에 밀어넣어진 사람들(다름 아닌 우리의 제자)은 '폐인'이란 이름으로 인터넷에서나 울분을 토하며 자기들끼리 위안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글의 법칙을 숙명처럼 받아들여 생존경쟁에서 혹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독려하거나 아예 포기하라고 위로하는 건 허위이고 기만이다. 차라리 구조 그 자체를 건드리는 일에 나서야 옳다.

지금의 경쟁적 교육구조 속에서 많은 가정은 교육비 부담으로 가계경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잘 살든 못살든 교육비지출을 포기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보니 저소득층일수록 고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열심히 '투자'해도 이미 불공정한 게임이다. 자식들이 일자리나 제대로 잡고 살지, 아프면 병원에라도 맘놓고 갈 수 있을 지는 이들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다. '알바'와 '백수'를 넘나드는 불안한 삶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들은 치열한 경쟁에 출혈을 감수하며 뛰어드느냐 아니면 자포자기하고 '폐인'으로 살도록 자식을 방치하느냐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겠으나, 지금의 교육구조(특히,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노동시장 구조를 공공성을 확대하는 쪽으로 바꿔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않고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전망을 싹틔우기 어렵다. 요컨대,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노동시장 재편은 교육노동자의 정체성, 교육의 공공성, 더 중요하게는 후속 세대의 노동권과 생존권, 이 사회 노동자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이다. 따라서, 교육노동자는 그 누구보다도 노동시장 변화에 (진보적인 감각으로) 민감해야 한다. 노동시장분단이 고질화,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노동시장-교육의 연계성 강화 압력은 교육을 양극화시키라는 압력으로 가공되어 전달되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에 그냥 굴복할 일은 아니겠다. 교육운동은 현재 노동시장에서 차별의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는 학력을 생산하는 기지역할을 하는 제도교육 내의 차별적, 서열적 구조를 혁파해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공교육을 공교육답게 만드는 교육공공성 강화운동이다. 더불어 교육운동은 '교육공공성'과 '재생산', '노동자의 정체성'의 측면에서 불안정 노동층 증가경향에 내포된 의미를 꿰뚫어보고 사회운동, 노동운동과 만나 노동시장 양극화 경향을 분쇄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결국, 교육과 노동은 다른 영역이되 이 사회에서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된, 교육노동자로서 더불어 통찰할 하나의 문제이다. 교사가 노동자라는 사실과 함께 이 점이 교육운동이 '교육노동운동'이란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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