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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논단_대학으로 침투하는 자본의 손

2004.04.28 16:10

jinboedu 조회 수:1503 추천:39

대학으로 침투하는 자본의 손
김 실∥교육운동연대회의
 

0.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자본의 침투

이번 학기 들어서부터 학교 안에 패스트푸드 전문매장이 개점을 했다. 초국적 자본을 상징하는 세속적인 패스트푸드는 비록 퇴락한 명성이지만 한때 고매한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렸던 대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특히 모 교수의 말처럼 반미운동이 가장 활발한 이 학교에는 더더욱이나. 하기야 어디 패스트 푸드점만인가, 이미 학내에는 편의점도 들어왔고, 모 이동통신업체도 학내전산실을 마련해 주는 것을 빌미로 학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 있지 않은가. 이 같은 일은 단지 상징적인 일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오늘날 대학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거센 자본의 침투 속에서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공간으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자본의 대학으로의 침투는 패스트푸드점처럼 소비자인 대학생에게서 당장의 이윤을 얻기 위함 보다는 좀 더 거대한 목적 속에서 진행된다.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교육은 노동력 재생산의 기능과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때로는 평범하고 식상한 게 진리여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처럼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의 운명이 달려 있다. 자본에게 현재의 한국대학은 이러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만족스럽고, 이전과 달리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학에 침투하고 있다.

이때 자본의 침투방법은 대학의 기능을 비판하는 가운데 헤게모니를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경제발전을 해야 하는데, 대학이 낙후되어 있으니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가 헤게모니를 잡는데 있어 가장 쉽게 채택된다.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 의해서 대학이 바뀌어야 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은 경제발전이 국민의 뇌리에 그것이 자신의 발전일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경제발전논리와 대학개혁논리는 대중적 동의를 형성한다. 게다가 대학의 낙후성이야 대학의 부실한 교육여건과, 한해에도 수차례씩 언론의 집중을 받는 횡령, 입시비리가 비일비재한 지금 얼마나 유효적절한가. 누군들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를 하지 않을까. 대학개혁의 헤게모니를 쥐게 된 후, 주도권은 자본에게 주어져 있다. 결국 대학재편의 정당성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후 자본에 의해서 개혁의 방향이 결정되고 이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취하게 된다.

1. 순력되고 유연화된 노동력 재생산

가장 먼저 자본이 손질하고자 하는 바는 노동력 재생산 과정이다. 이전까지 노동력 재생산기능은 기업이 교육기관과 함께 분담을 해 왔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취업 이후 직접 실무에 배치하기 전까지 직무에 적합한 실무기술교육을 해야하는데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재생산 과정을 수정하기 위해 전통적인 논리를 부각시킨다. "오늘날 대학은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배양해 내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 50만, 취업이 인생최대의 희망이 되어버린 시대에 이는 청년실업의 원인을 노동시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뒤쳐진 대학에게 전적으로 돌려버린다. 그리고 대학재편의 방향은 "자본이 원하는 기술을 대학이여 가르쳐라"로 수렴된다. 그러나 자본의 대학 침투 목적이 실무기술이 없어서 취업 못하는 어여쁜 대학생들,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 시켜서 취업시키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요구사항은 점차 늘어난다. 실무교육은 대학교육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리 기업체를 돌아다니며 경력을 쌓아야 한다고 외친다. 물론 경력을 쌓으라는 말은 인턴활동을 하라는 것이며, 기업에서는 정규직 한 명 쓸 바에야 인턴 2, 3년 쓰더라도 비용이 덜 나가기 때문에, 정규직은 점점 더 축소가 된다. 결국 인턴제 확대는 정규직취업을 위한 경력마련이 아니라 노동력의 과잉현상을 발생시켜 노동의 유연화를 심화시키고 그로 인한 이익은 전적으로 자본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2.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서 대학의 기능 약화

그러나 대학의 개편을 통해 자본이 원하는 기술을 숙련한, 그러면서도 과잉 생산되어 유연화된 노동력을 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부족한 점이 있다. 칼이라는 것이 아무리 예리하게 목표물을 잘라주더라도, 방향이 바뀌면 칼을 들고 있는 이를 해치기 마련이다. 자본에게도 숙련되고 유연화 된 노동력의 재생산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조직되어 자신들을 향하게 된다면 기껏 대학의 재편을 시도했다고 해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다.

민주노동당이 13%의 지지율로 원내 10석을 차지한 이후 자본은 진보정당의 국회진출이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려고 했다. 비록 의회정치라는 체제 내의 편입과 제 3당이라고 하나 전체 의석의 3%를 조금 넘은 미니정당이 가지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장 쟁점이 될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 노사관계에 있어 자본의 입지가 조금은 축소될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총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 진보운동의 성장의 배경 속에 학생운동의 힘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학생운동이 기반하는 공간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에 비해 학생운동의 영향력과 규모가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대학에서의 담론형성은 여전히 학생운동이 주되게 맡고 있다. 이로 인해 대중들이 의식/무의식적으로 학생운동의 논리를 부분적으로나마 수용하게 되며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반자본주의 논리에 감염된 이들이 사회에 침투하게 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 반자본주의 투쟁에 동참을 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지 모르며, 최소한 진보정당/단체의 후원자가 되어 자본의 입지를 축소시키게 된다. 과장을 하면 자본의 입장에서 대학이란 공간은 알튀세르가 말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민중장치로 여겨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온전하게 대학을 장악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자본의 이데올로기 침투이다.

 3. 시장을 옹호하는 '경제수업'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2월 보도자료를 통해 "시장경제원리 확산과 반 기업정서 해소를 위한 경제교육(이하 경제교육)"실시를 올 한 해 최대 역점사업으로 잡은 바 있다. 최대 역점사업이니 만큼 초·중·고·대·교사·일반인 등을 포함하여 연 28,100명 규모로 실시되는 경제교육은 주된 공략의 대상을 대학생으로 잡고 있다.

전경련의 '경제교육' 추진 배경은 '정치자금 수사 등 사회 전반에 반 기업정서가 위험수준에 도달하여 성장 동력이 붕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시장경제이념 확산을 통해 친시장·친기업적인 사회여론을 조성한다'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미 지난해 2학기 대학가에서는 '경제교육'이 공식 수업으로 개설되었다. 8개 대학과 자유기업원이 전경련이 강사비를 부담하는 대신 대학에서는 정규과정으로 개설하는 업무 협약을 통해 지난해에만도 600여명의 대학생들이 이 수업을 신청했다. 올해와 차이가 있다면 작년의 경우는 명목상으로나마 '경제학 지식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경제메커니즘과 현실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개설취지를 내걸었고, 올해의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친 기업정서의 확산을 목표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말이야 좋게 포장해서 경제에 대한 이해도 증진이나 친 기업정서라 할 수 있겠지만 '경제교육'이 노리는 것은 자본주의 논리를 내면화한, 순종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찬양하는 주체의 양산이다. '경제교육'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자본주의의 온갖 병폐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오해이거나 경제발전의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 변명하거나,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와 차별 속에서 삶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민중들에게 '그들은 무능하며, 노력하지 않았다'라며 매도하는 지식이다. '경제교육'은 옴니버스 강좌에 초청되는 성공한 CEO들의 입을 통해 자본주의가 주는 혜택(오직 그들에게만 주어진)에 대한 찬양은 매우 구체적이며, 강의를 듣는 이에게 노력하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품어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남아 어느 국가에서 하루에 14시간씩 과학적인 축구공 피버노바를 만들기 위해 바늘에 손을 찔려가면서 시력을 잃어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착취에 대해서는 눈감을 것이다.

실제로 작년 진행된 '경제교육'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과 시작 전후의 인식변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이미 효과를 본 듯하다.

설문내용

강의전

강의후

자본주의 체제가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48%

27%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기조가 경제성장보다 복지정책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

45%

21%

 현재는 일부 대학에만 선택과목으로 개설되어 있기에 수강생의 수가 많지 않지만 점차 실시 대학은 확대가 될 것이며, 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경제교육'을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수업을 듣지 않고서는 졸업을 하지 못하는 필수교양과목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은 언젠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주류가 될 것이다.

4. 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킬 핵심 주체의 양산.

학생운동이 약화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소위 운동의 명가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비운동권이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또 이들 비운동권 총학생회들은 '학생연대21'이라는 비운동권총학생회연합를 결성하며 대학사회 내에 커다란 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이전까지 한총련이 차지했던 대학사회의 대표성을 위협하고 있다. 대학사회에 존재하는 반운동권 정세에 기대어 운동권을 비판한다.

이들은 지난 방학동안 자유기업원 주최의 미래청년캠프를 다녀온 바 있다. 12개 대학 비운동권 총학생회 임원 60명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청년캠프의 일정표를 보면 4일간의 프로그램은 주류 경제학자, CEO들의 강의가 줄지어 있다. 과거에 학생회의 수련회 및 캠프가, 각 학생운동정파가 자조직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조직화를 위한 사업이었다면, 이와 비슷한 사업이 시장주의자들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좀 더 전문적인 인사들이 대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정도. 우수한 강사진이 즐비한 4일간의 일정을 참여하는 이들이 받을 효과는 '경제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보다 클 것이라 예상된다.

이들이 '경제교육'보다 집중화된 행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대학사회 내에 시장주의의 영역을 넓히기 위함이다. 대학재학생의 연령대에서는 '젊음 = 진보'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보수의 입지는 그리 넓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수라고 커밍아웃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진보적 학생들이 정치적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공부할 시간 쪼개어서 남들은 창피해서 못할 율동까지 추며 선전활동에 나서는데 보수의 활동은 기껏해야 인터넷의 익명성을 통해서만 진행되고 이마저도 비논리적인 욕설이 태반이다. 이래서는 운동권이 대중들을 전취하는 것을 막아낼 수 없다. (이들이 열성적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나는 '경제교육'의 내용 의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모순으로도 본다. 경제교육 자체는 '개인주의'를 지향하면서 자기계발에만 힘을 쏟으라 강의하면서 운동권처럼 자기 시간 소모하면서 선전활동에 임하길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경제교육'의 강사들과는 별개로 시장의 논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적극적인 이데올로기의 담지가가 필요하고, 바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임원들이 이러한 담지자가 되는 셈이다. 아직은 총학생회를 운동권들로부터 방어하는데 집중하고 있지만, 조직적으로 단련된 이들 보수학생들의 시장주의에 입각한 활동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학생회 임원들 외에도 '경제교육' 이수 후에도 싹수가 있어 보이는 학생들끼리 서로 정보와 의견을 교환 활 수 있기 위한 후속모임은 '젊은 시장경제 지도자 양성위원회', '자유주의 동아리'들이 점차 활동반경을 넓혀 가고 있고 전경련은 이러한 동아리들의 후원과 운영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5. 마치며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았다. '결혼이 여성의 최대행복'라 믿으며 살아가는 1950년대 미국의 보수적인 웨슬리 여대 학생들과 새로 부임하여 학생들의 틀에 박힌 사고를 깨려 하는 여교수 캐서린, 그리고 보수적인 학풍에 도전하는 캐서린을 통제하려는 대학당국의 갈등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당시에 비해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나아진 현대를 살고 있는 관찰자의 시점에서야 결혼에 목을 매고, 남편 내조를 위한 교양수업을 듣는 웨슬리 학생들이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이데올로기에 갇혀 사는 그녀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현대인이 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1950년대의 이 시대의 여대생들과 2000년대 한국의 대학생들 사이에는 유사한 구조가 발견된다. 남성이 기업으로, 결혼이 취업으로 변화되었을 뿐이다. 웨슬리 여대생들은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믿으며, 자신의 몸을 옥죄는 코르셋을 기꺼이 입었고,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은 기업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 믿으며, 자신의 삶을 통제할 시장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감스러운 것은 50년대의 웨슬리 여대생들이 지금이라면 '결혼〓행복' 논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겠지만 대학을 향한 자본의 침투는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대학인들이 점차 늘어난다는 차이에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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