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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기획연재_교육사회학 훑어보기(2)

2004.04.27 22:19

jinboedu 조회 수:2062 추천:21

교육사회학 훑어보기 2
송경원 l 진보교육연구소 이론분과

 

쓰는 사람의 앞말

그러니까 작년 5월의 회보 15호에서 '교육사회학 훑어보기(1)'을 썼었는데, 거의 1년 만에 '훑어보기(2)'를 내놓게 되었다. 미안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번에 말한 대로, 전적으로 쓰는 이의 무지와 게으름 때문이다. 여기에 무슨 변명을 하겠는가.

전체적인 흐름을 위해서 지난번에 다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 1950∼60년대를 풍미하였고 지금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구조기능주의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는 교육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조금씩 '이게 아닌가 봐'라는 의심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먼저 구조기능주의의 탄생지면서 수출국이었던 미국에서부터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1966년의 콜맨 보고서이다. 한편 수입국에서는 종속이론과 탈학교론이 등장하게 된다.

(1) 종속이론(dependence theory)

종속이론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웬만한 사람은 익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종속이론의 배경은 간단하다. 종속이론 이전까지의 주된 사고방식은 구조기능주의, 특히 근대화이론이다.

"국가들의 성장 경로는 거의 유사하다. 그러므로 먼저 선진화된 국가의 모범을 따르면 된다. 경제체제, 정치체제, 사회체제, 문화체제, 행위와 사고양식 등 사회 전체를 근대화시키면 우리도 성장할 수 있다."라고 근대화이론은 말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70년대 후반∼80년대. 제 나이 30대 초반입니다), 선생님들로부터 귀에 박히게 들었던 "한국은 일본에 10년 뒤져 있고, 미국에 20∼30년 뒤져 있다"라는 말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이 말의 뒤에 붙였던 "한국에 자원이 어디 있나? 오직 사람뿐이 없다. 공부해라. 열∼심히"라는 표현은 인간자본론 그 자체이다.

이런 형태로 오직 성장을 위해 선진화된 서구, 특히 미국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당연히 한국의 전통은 미신이라 하여 배척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를 가급적 빨리 한국에 이식해야 한다. 내 것을 버리고, 잘 나가는 나라 것을 취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이건 속도의 문제다. 일본과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렇게 조국근대화의 길이 제시되었고, 그 와중에 초가지붕을 걷어버리고 온통 시멘트로 뒤덮는 새마을운동이 전개되었다. 물론 한국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진영에 속하면서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 등을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구조기능주의와 근대화이론에서 말했던 성장은 10년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작용이 두드러질 뿐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은 불평등이다. 근대부문과 전통부문의 불평등, 도시와 농촌간의 불평등, 계급이나 계층 간의 불평등이 그것이다. 이런 현상을 분석·설명하는 과정에서 종속이론이 탄생한다.

종속이론은 서구 선진국을 제국주의로, 근대화이론의 수입국들을 신식민지로 규정한다. 그리고 중심부와 주변부의 개념을 활용한다. 이렇게 되면, 중심국가(제국주의 국가)의 중심부와 주변부, 주변국가의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며, 아래 그림과 같은 착취와 지배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래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의 주변 국가는 나름대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이 더디며, 그나마 존재하는 혜택도 주변국가 내의 중심부만 입게 된다.

 결국 종속이론은 국제적인 권력관계가 제3세계의 발전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본다. 제3세계의 저발전을 중심부 국가와의 관계에서 찾는 것이다. 대표적인 종속이론가인 프랭크(A. G. Frank)는 이것을 '저발전의 발전(development og undevelopment)'라고 지칭한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심국가와의 대등하지 못한 관계, 사실상의 주종관계는 중심국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부문만이 기형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전통적인 분야는 쇠퇴하고, 근대적인 분야라고 일컬어지는 부문이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제3세계 국가들이 보통 국가차원에서 성장을 꾀하는 까닭에, 근대부문이 국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관련된 기업 영역과 국가와 관련된 관료 영역이 확장되고, 해당 국가의 전통적인 부문, 주로 농업 분야는 점차 쇠퇴한다. 당연히 성장의 초기에는 전통부문에서 근대부문으로의 대규모 사회이동 현상이 목격되는 바,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농, 노동자·농민 자녀의 신 중간층으로의 진입 등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국가가 의식적으로 확장(질적으로가 아니라 양적으로)시킨 교육이 통로로 작동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 가능하므로, 대거 교육으로 몰리게 된다.

하지만 '저발전의 발전'처럼 중심국가와 주변국가 간의 불평등한 관계, 주변국가 내부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주변국가의 성장은 한계를 드러내어 서서히 정체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한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학습을 경험적으로 한 개인들은 졸업 이후의 진로가 뚜렷하든 뚜렷하지 않든 간에 보다 나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교육에 전력투구한다. 여기에 국가는 교육기회의 양적 확장으로 대답한다. 그 결과 교육의 파행적인 팽창, 고학력 실업, 과잉교육, 하위노동(이전에는 고졸자가 하던 일을 이젠 대졸자가 하는 것) 등 교육받은 인력의 공급과 수요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며, 교육을 교육으로서가 아니라 교육을 하나의 신분증명서 등으로 간주하는 교육의 수단화·도구화와 비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동시에 주변국가가 정치적으로는 독립하였으나, 중심국가에게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종속되어있는 것처럼 교육의 내용과 형식 역시 중심국가에게 종속된다. 주변국가 내에서의 지식의 생산 및 유통 구조가 무너지고, 오로지 중심국가에서 만들어진 지식을 수입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는 것이다.1)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말하자면, 한국은 지금 유학 2·3세대 정도 된다.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 중에서 유학파는 유학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유학 1세대의 임무는 무엇일까? 적어도 선진국의 학문을 그냥 유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학문의 방법과 내용을 배워와 한국에 적용하면서 한국 나름의 학문을 개척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강의시간에는 원서를 보고, 미국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항상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아니 왜 이걸 번역해야 돼?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한국에 와서 번역본을 출간하면 되잖아. 도대체 몇 십 페이지 번역해서 별 내용이 없다는 걸 가르쳐주는 것야, 뭐야?" 라고. 물론 이런 불평에 대해 누군가는 "네가 영어를 못해서 그래"라고 말하곤 한다. 그럴 땐 정말 전투력 상승한다.

그런데 종속이론도 한 가지가 아니다. 큰 틀에서 국제권력관계를 지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주변국가의 주체적인 측면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다. 사람들마다 달리 구분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보면 된다. 하나는 종속이론을 태동시킨 바란(P. Baran), 프랭크, 아민(S. Amin) 등의 견해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어 주변국가의 성장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 카르도조(F. H. Cardoso)와 에반스(P. Evans) 등은 종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가의 주체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국제자본, 국가, 토착자본의 3자 연합을 제안한다. 간단히 말해, 국제자본, 주변국가의 토착자본, 국가가 연합하여 성장을 꾀함과 동시에 서서히 주변국가의 토착자본과 국가가 그 주도권과 열매를 획득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변국가의 자본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누가? 국가가. 당연히 국가 관료주의와 민중배제가 문제로 등장한다.

실제로 카르도조는 브라질 노동자당(PT당, 좌파 연합)과 정치적으로 반대편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 중도우파)에 서있었으며, 브라질 대선에서 PT의 룰라와 겨루면서 2번이나 대통령을 지냈다. 90년대 재임할 당시 그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편 바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종속이론가 개인의 변절이라기보다는 카르도조, 에반스 등의 '3자 연합론'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종속이론 자체는 계급 모순보다는 민족 모순을 자본주의의 주요 모순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주체적인 측면의 능동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민족 내부의 자본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3자 연합은 그 결정체이다.

종속이론의 결과야 어떻든 간에, 적어도 종속이론이 구조기능주의(근대화이론 포함)가 틀렸음을 만방에 고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만은 사실이다. 구조기능주의의 수입국에서 '구조기능주의가 아니잖아'라는 선언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종속이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종속되어 있는 라틴아메리카가 지식과 학문, 사고 영역에서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점은 분명 본받아야 한다. 한국은 더더군다나 정말.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세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2) 탈학교론(Deschooling)

1970년대 초반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에서 탈학교론의 바람이 불어온다. 1971년 일리치(I. Illich)와 라이머(E. Reimer)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 결과를 각각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와 [학교는 죽었다(School os Dead)]로 출간했다.2)

탈학교론은 단순히 학교교육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과 대안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 학교를 거론하고 있다. 물론 구조기능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의 평등에 관한 것이다.

구조기능주의에서 학교는 위대한 평등장치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학교가 크게 확장되었지만, 그 열매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공교육제도 운영에 필요한 재정은 모든 이들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이 때 간접세 비율이 많은 역진적인 조세구조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이 더 내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소수 상류층이 점유하는 비율은 높다. 당연히 소수 상류층은 다른 사람들이 내는 돈을 가지고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교육의 결과로 다시 상류층이 된다. 이것을 평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학교란 교육기회를 평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선별·배제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근원에는 교육을 독점하고 있는 학교제도가 놓여 있다.

탈학교론에서 바라보고 있는 현대문명은 상품의 물신화와 소비신화3)가 만연한 사회이다. 상품과 소비에 맹목적으로 빠져들어 정작 자신은 잃어버린 인간소외 현상이 광범위한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품과 소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먼저 '제도화된 가치'가 있다. 이것은 개인이 욕구를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수단을 찾는 방법을 결정해준다. 예컨대, 교육을 받고 싶으면,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교육을 독점하고 있는 학교에 의해 개인들은 학교에서만 교육받아야 한다고 믿게 된다. 곧 제도화된 가치란 개인들의 욕구와 의식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사실상 개인의 자발적인 의식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의는 1990년대 들어 각광받기 시작한 대중문화 비판과 흡사하다. 대중매체를 활용한 광고는 대중의 욕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욕구를 창출해낸다. 여기에는 심리학 등 여타 현대과학의 원리가 동원된다. 오리온 초코파이와 '정(情)'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고전적 조건화), 오리온 초코파이와 정을 연결시키면서 오리온 초코파이 하면 '정'이 떠올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정'을 전달하고 싶을 때 오리온 초코파이를 사게 된다. 광고에서 섹스(sex), 동물, 어린아이, 유명모델 등을 보여주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소구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소비욕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욕구를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인가? 당연히 광고기획자이고, 기획사들과 계약한 자본주의 기업이다. 음반 산업의 경우 대중문화의 주체로 10대를 상정하고 있지만, 대중가요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실제 주체는 30·40대의 기성세대가 운영하는 유명 기획사들이다.

탈학교론에서 말하고 있는 '제도화된 가치' 이면에 존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탈학교론에서는 현대 산업경제의 공급체계를 문제 시 삼는다. 학교, 병원, 사회복지기관 등 서비스는 복지부문의 관료체계가 공급하며, 상품은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인 기업이 공급한다. 따라서 기업과 관료제에 의한 거대한 공급체계가 사실상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에서 개인은 자기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망각한 채(소외된 채), '제도화된 가치'를 내면화하고 행동할 뿐이다.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이렇게 유지·강화되어 간다.

탈학교론에서 바라보고 있는 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근대 공교육제도는 교육을 독점하면서 교육에 대한 '제도화된 가치'를 유포시킨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강요된 청소년기, 의무교육, 교육평등 등이다. 강요된 청소년기는 청소년기가 있어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취학 중이기 때문에 청소년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발달에서 청소년기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이 던져진다. 의무교육 역시 개인을 강제하면서 '교육과 학습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강요한다. 따라서 현대의 인간은 진정한 교육이나 학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래서 탈학교를 주장하게 된다. 물론 이 경우 교육이나 학습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공교육체제, 제도화된 교육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탈학교론에서는 대안적 교육체제로 네트워크(network)를 이야기한다. 누구나 원하면 자유롭게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는 것 없이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학습망(Learning Webs)' 또는 '기술교환(Skill exchange)'을 제안한다.

이런 탈학교론의 입장에 대해 어떤 평가들이 나왔을까? 먼저 로널드 도어는 탈학교론의 대안으로 제시된 학습망이 일정 수준의 경제력이 요구되는 바, 가능한 국가 또는 한 사회 내에서의 가능한 집단이 한정되어 있다고 비판했다.4) 사실 라이머와 일리치가 제안한 학습망의 개념은 당시로서는 현실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비춰졌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금방 눈에 띄는데, 인터넷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역시 기존 사회의 모순을 다른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정보사회(개인적으로 이게 정말 도래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전의 문제들, 특히 불평등과 관련된 문제는 정보사회 안에서도 나타난다. '정보격차'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이것은 경제자본, 사회자본, 문화자본에 의해 정보가 불평등하게 배분된다고 본다. 그래서 경제자본(돈)이 없으면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없고, 사회자본이 없으면 어디에 어떤 사이트가 있는지도 모르며, 문화자본이 없으면 어떤 지식과 정보가 괜찮은 것인지 판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심한 경우에는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인터넷이 기존 사회의 모순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었다. 탈학교론에서 상정하고 있는 현대사회의 근본 모순, 상품의 물신화와 소비신화가 정말 근본 모순인가 라는 물음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나왔다. 경제 재생산론으로 유명한 보울스와 진티스(S. Bowles & H. Gintis)는 탈학교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일리치의 소비조작모델은 그의 정치적 논의의 각 단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오류를 지니고 있다. … 일리치는 사회적 부패의 근원을 법인 관료주의의 자율적이고 조작적인 행동에 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장해온 것처럼 그 근원은 자본축적과 위계적 분업의 요구를 위해 노동, 교육, 사회적 평등의 건전한 발전을 끊임없이 희생시키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경제제도의 작용에서 찾아야 한다. 더구나 개인이 경제활동에 참여해야만 한다면, 이러한 사회적 결과는 개인의 기호나 가치와도 무관하고, 또한 조작적 관료나 속기 쉬운 소비자의 자율적 의지의 반영도 분명히 아니다.

…(중략)

만일 사회문제의 근원이 소비자 조작에 있고, 그 중 학교가 대표적 본보기이며 또한 학교교육이 앞으로의 조작을 위한 중요한 준비기간이라면, 탈학교 교육을 위한 정치적 운동은 일리치가 말하는 것처럼 "∼ 인간해방을 위한 근간이 된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노동을 위한 준비기간이며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중심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면, 경제생활의 변혁 없이 학교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필경 사회적 혼돈의 상황으로 나아갈 것이며, 아무래도 건설적인 사회 변동을 위한 대중운동으로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5)

 

물론 탈학교론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구조기능주의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하게는 교육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분명 오늘날의 공교육제도는 서구에서는 길어야 200∼300년, 한국에서는 길어야 100년이다. 다시 말해 교육제도의 모습이 언제나 동일한 것이 아니었으며, 미래에도 동일하다고 보면 안 된다. 그러기에 한국교육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특히 교육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금방 부딪치는 장벽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불행히도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으로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생각으로 예전 사람을 바라보고, 지금 생각으로 미래를 본다. 한국교육은 단 한 가지이고, 공교육은 모두 국가주의라고 보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그래서 공공성 하면 떠오르는 것이 없단다. 물론 공공성이 실현된 교육제도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요즘은 조금만 돈이 있어도 유럽여행을 떠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구당의 선본에서 일하면서, 언론사와 사회단체 등에서 물어오는 질문에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 가장 전투력이 급상승된 질문(홈페이지에서의 질문)이 '국민연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국가부담이 없고, 월급쟁이만 봉이고, 부유층은 적게 내고, 기금 관리는 엉망이고 하는 등 현행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질문자는 계속해서 "그러니까 국민연금을 없애자"라는 주장을 해왔다. 이에 대해 "한국사회의 복지 수준이 열악하다", "제도 자체와 현행 제도는 분리해서 보자", "국민연금제도의 다른 형태도 생각해보자"라며 당의 정책공약을 제시해도, 변함이 없었다. 초강력 에네르기파를 날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의견은 교환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 서로를 존중하자는 글로 마무리 지었다. 물론 그 후에도 질문자의 주장은 계속해서 올라왔다.

탈학교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처음 접했을 때(대학 2학년 때인가)의 충격은 매우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한계도 어느덧 하나씩 알게 되었다.6) 특히 한국교육의 오늘에 비추어 볼 때, 탈학교론이 스스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장주의자들에게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일명 사회권) 중의 하나인 교육선택권이 시장주의자들을 통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이용되는 것처럼. 따라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분명 탈학교론을 통해 우린 교육적 상상력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탈학교론 역시 한계가 있으며, 한국사회 현실에의 적합성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끝말

시간이 없어서 이번엔 여기에서 마칩니다. 죄송스럽네요. 다음엔 신교육사회학(일명 교육과정사회학)과 재생산이론을 할까 합니다. 그럼, ∼   m(^ ^)m  m(_ _)m

 


1) 종속이론과 교육에 대해서는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규환·강순원 편(1984), "제2부 제3세계의 교육", [자본주의사회의 교육] 중, 서울: 창작과비평사.  로널드 도어, 이건만·김성학 역(1992), [졸업장열병], 서울: 양서원.           돌아가기

2) 한국에서의 번역본은 다음과 같다. 최근 재 발간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구하기는 어렵다. 에버하트 라이머, 김석원 역(1982), [학교는 죽었다], 서울: 한마당 ; 이반 일리치, 김광환 역(1984), [탈학교논쟁], 서울: 한마당.           돌아가기

3) '신화(myth)'는 보통 거짓된 믿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국인이 지금 가지고 있는 '교육은 공정하다', '교육은 평등하다' 역시 신화이다. 오죽 하면, 인본주의 교육심리학자인 콤즈(A. Combs)가 [교육신화]라는 책까지 출간했겠는가.           돌아가기

4) 로널드 도어, 앞의 책.           돌아가기

5) 보울스와 진티스, 이규환 역(1986),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서울: 사계절. 300∼301쪽.           돌아가기

6) 그런데도 만나는 탈학교론자들은 왜 대부분 '탈학교가 교육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라며 날 가르치려고 하는지.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보이는지. 아무리 박(薄, 얇을 박)사과정이라고 해도.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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