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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 2호 한교총 정치투쟁에 어찌 맞서야 했는가?

2001.10.11 14:00

정은교 조회 수:1684 추천:4

한교총 정치투쟁에 어찌 맞서야 했는가?

한교총 정치투쟁에 어찌 맞서야 했는가?

정 은 교(연구실장)

4월 22일, 본조 이용관 정책위원장이 한교총쪽의 이해찬 퇴진서명과 관련하여, <전교조의 대응방안과 지침>을 발표했다. 얼핏 읽어서는 무슨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쪽이 '교사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저희들 기득권을 붙들려는(='교섭권' 확보) 속셈이라는 것은 뻔하니까. 또, 개혁의 대안을 내놓을 생각은 없이, '교사들의 감성에 호소해' 느닷없이 "물러가라!" 외치는 것이 기회주의적인 태도라는 것도 분명하니까.

그래서 본조는 "한교총 서명에 반대하라!"고 지침을 내려보냈다. 다음과 같이 '대응 논리'를 펴라고 덧붙였지. "이 서명운동은 저희 조직을 지켜내려는 조직이기주의일 뿐이니 그 놀음에 덩달아 춤출 것 없소! 전교조만이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파행적인 교원정책을 막아낼 수 있소! 곧 체력 단련비 원상회복투쟁에 나설 테니까 우리만 믿고, 우리 품에 들어오시오!" 여러분, 이 '지침'에 아무런 문제가 없소?

서명운동이 벌어진 모습은 학교마다 달랐다. 아마도 교장/교감/부장이 '눈치파'였을 곳에서는 쥐죽은 듯했고(4/25현재), 서명용지가 나돈 곳에서는 교직원 대부분이 서명하는 바람에 우리 조합원들이 곤혹스러워 했다. 사례 하나: 우리 위원장 TV 기자회견을 본 어떤 교사가 조합원에게 와서 따졌단다. "전교조에서는 퇴진서명에 반대한다구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왜 훼방을 놀아요?" 사태가 이런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 위원장은 <한교총의 서명에 반대>한다 했지, 교원정책에 찬성한다 한 것이 아니오. 하지만 일반 교사들한테는 <이해찬 퇴진에 반대했다>는 면만 다가갑니다. 당장 서명용지는 돌고 있는데, "우리는 한교총이 하는 것이니까 싫고, 교원정책은 문제가 많지만 딴 부분은 잘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꼭 '퇴진'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고..." 이렇게 애매모호하고 지리한 논거를 대서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까? 아니, 들을려고나 할까요?

여러분, 비조합원 교사들 중에는 <교육부하고 전교조하고 밀월관계를 누려왔다>는 인상마저 품은 사람들이 있답디다. 이것이 꼭 근거없는 오해일까요? 문제 하나: 다음 중에 맞는 답은? ①김대중정권은 전교조 안에 저희 지지파를 심으려고 꾸준히 애썼는데 꽤 성공했다 ②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③포섭작전을 펼친 적 없다?

우리가 선거 치르느라 손놓고 있을 때 교총쪽은 발빠르고 영리하게도 '교사들 불만'을 휘어잡는 정치투쟁을 엮어냈다.(유수용쪽 희망과 달리, 교총과 우리가 통합할 조건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교총 상층부의 정치력이 발휘될 때엔 일반 회원들이 와르르 흩어지지 않는다.) 이 서명운동은 '지침'에도 적혀 있듯이 '일정한 호응'을 받는 것이어서 갓 출범하여 어수선한 본조 집행부가 기민하게 대응해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 고충은 헤아리지만, 그렇다 해도 본조가 내려보낸 지침은 너무나 무사태평한 전술이 아닐 수 없었다. 옛 버릇과 '사고의 관성'에 따라 짜낸 졸작이다.

글 앞머리를 보라. <퇴진 서명은 한교총 저희들 잘되자고 하는 것>이란 설명은 조합원들 교육엔 도움되겠지. 하지만 <한교총 잘되자고 하는 일이니까 한교총 회원 아닌 사람은 거기 동참할 것 없다>고 일반 교사들한테 말해 보라. 끄덕일까? 우린 한교총 회원까지도 우리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 꽤 많은 분들을 그쪽 탈퇴하고 이쪽 가입하게 해야 <통큰 조직>으로 클 수 있다. 그 지침이 과연 그들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천만에! 그 지침은 <전교조가 옳고 한교총은 어용>이란 앎을 이미 간직해 왔던 사람들한테 그 앎을 확인시켜주는 쓸모밖엔 없다. 조합원끼리 자기 정체성만 확인하는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전술이다.

일반 교사들은 누가 서명을 주도했건 내용이 찬성할 만하면 써준다. 이번 서명에선 저쪽이 궁리를 많이 해서 '전교조를 비방하는' 내용을 뺐다. 별로 문제삼을 것도 없는데 <교총을 지키려는 속셈이니까 우리 반대합시다!>하는 설득이 먹힐 수 없다. 자칫하여, 통합예찬론자들이 걱정했던 '노/노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통합예찬론자들이 <노/노 갈등의 위험성>을 너무 야단스레 선동했던 것은 좀 언짢은 풍경이었다만, 행여라도 우리가 '노/노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일반 교사들한테 비쳐선 안 된다는 사실도 또 분명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부영 진영은 '(정권에 대해) 타협의 길'을 걷지 않겠으며, 통합도 '전교조가 주도하는 원칙'을 지키겠노라 약속했다. 딴 두 진영에 <견주어>, 그 점이 믿을 만했기에 우리는 지지를 보냈다. 헌데, 이번 지침을 보아하니, 그 원칙은 머리 속에서만 존재할 뿐 구체적인 사안을 다루는 과정에서는 실종돼 버린 듯하여 실망을 지울 수 없다. 갓 출범한 처지라 얼마동안 비판을 삼가는 것이 '정치적인 예의'이긴 하지만, 사안이 범상한 것이 아니라서 이렇게 '쓴 소리'를 낸다. 어쨌어야 할꼬?

"저쪽에선 당장 이해찬 물러가라고 하는데 당신네는 뭐하고 있느냐?"고 추궁이 들어올 때, <쟤네들, 못 믿어! 그러니까 우린 조금 있다가 따로 싸우겠어!> 고개 돌리고 뜸들일 노릇이었을까? 일반 교사들이 그 충정을 헤아려 줄까? 여러분, 한교총쪽에 더 대담한 제안을 되돌려 보내서 그들을 쩔쩔매게 했어야 할 일 아닐까? "한교총이여, 우리 공동의 적에 함께 맞서서 싸웁시다! 서명도 같이할 뿐 아니라 대중 집회도 함께 열어서 신자유주의 교원정책에 대한 교사 대중의 분노를 만천하에 본때 있게 터뜨립시다!" 한교총 사람 중에 저희 잇속만 챙기는 교장/교감/부장네는 대정부 투쟁이 저희 계산을 넘어서 발전하는 것에 대해 당황할 것이고, 일반 교사들은 한교총 지도부의 실상/허상을 깨닫고는 '회비' 아깝다는 생각이 솔솔 피어날 터. 저쪽이 공동투쟁을 안 받을 경우, 모처럼 쌓으려던 저희 위신, 스스로 깎아내릴 터이고!

이부영 지도부여, 앞으론 교총쪽을 '무턱대고' 비판만 해선 안됩니다. 때론 '손잡고 싸우자'고 제안하여 저들을 채근하는 식의 정교한 작전을 짜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쪽 평교사 회원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교육부를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할 때입니다.(전체 민중운동에서도 진작에 김대중정권 반대의 결의를 다져왔어야 합니다) <교총을 칠 때가 아니라, 교육부를 칠 때>임을 몰랐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긍정할 것은 긍정한다'는 그럴싸한 논리에 사로잡혀 무심결에 '정부 비판'을 뒤로 미루려는 것 아닙니까?

머지 않은 9월에 성과급이 지급된단다. 어떤 초등학교에선 학급 경영록을 평가하여 성과급에 반영하기로 얘기되자, 경영록 꾸미기 경쟁, 서로 보여주지도 않는 삭막한 풍토가 생겨났단다. 출근에 늦으랴 너무들 벌벌 떨어서 교장이 오히려 교사들을 달래는 학교도 있다.  이렇듯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체가 시시각각으로 드러나는 판인데, 립 서비스, 또는 구두선(口頭禪)으로만 떠드는 '교육개혁'의 담론에 취하여 마냥 '만만디'로 걸음 옮길 셈인가?

<단체교섭을 힘있게 하려면 '쪽수'가 많아야 한다>는 얘기는 상식이지만, 형편에 따라서는 딴 얘기를 강조할 필요도 있다. 우리에겐 단체행동권이 없지 않은가?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얌전하게 교섭 테이블에만 앉아 있어서는 저들이 던져주는 떡고물밖에 얻을 것이 없다. 이것도 '상식'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해찬들 고추장조차 꼴보기 싫다'는 불만들이 팽배하고, 교총쪽이 이를 틈타 모처럼 반정부 진영에 기웃거릴 때를 잘 활용해서 힘있는 정치투쟁을 벌여야 '교섭' 자체도 힘을 받는다. 정권의 반민중성을 본때 있게 공격하지 않고서는, '전투적 기풍 없이는' 전교조에게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지도부는 한시라도 잊어선 안 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때가 늦은 것은 아니다. 저쪽이 불러일으킨 정치투쟁의 분위기를 받아 안아서, 할 수 있는 한껏 '교원정책 싸움'을 키워 나갈 때라야 조직 확대도 가능하다. 저쪽이 '퇴진 서명운동'을 벌였다면, 우리는 더 큰 소리로 '교원정책 반대 집회'를 열어 교사 대중의 불만을 대변해내야만 한다.

※4월 27일에 이 글을 덧붙인다. '일방적 구조조정을 그만두어야 파업을 거둬들이겠다'고 버티던 서울지하철노조가 정권의 끈덕진 공격을 견디다 못해 파업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신문을 도배질한 날이다. 정권 안에는 "한노총만 파트너로 삼고, 민노총은 내치자"는 강경세력이 득세하여 경찰력을 마구 뽐내고 있는 판이다. 이 정부나 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일삼았던 김영삼정부나 전두환정부나 노동자 탄압면에서 다른 점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날로 분명해져 간다. 이 정권은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에 고개 끄덕여준 민주노총쪽에 '교원노조 인정'이라는 선물을 베풀었다만 지금 대다수 사람들이 평가하기로, 그때 '정리 해고'에 손들어준 일은 우매하고 또 우매했던 짓이라 여긴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온나라 노동자들이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러니 새로 출범할 본조 집행부여!! 전교조가 인정받았다 해서 '봄'이 왔는갑다 착각하지 말자. 김영삼정권과 마찬가지로 이 정권도 부르조아민주주의 정권이자 부르조아독재 정권이다. 봄은 왔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