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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대학정보공시제에 관한 범국민교육연대 의견서(2005. 6. 8)

2005.08.29 13:15

범국민교육연대 조회 수:2291 추천:1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관한 의견서

1. 의견서를 제출하게 된 배경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교육부는 ‘대통령 업무보고’, ‘대학경쟁력 강화 방안’, ‘대학구조개혁방안’ 등을 통해 꾸준하게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해왔습니다. 더구나 교육부장관의 인선에 있어서도 3일 만에 낙마했던 이기준씨나 현 김진표장관의 임명에서 드러나듯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대학구조조정을 힘있게 추진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대학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이른바 ‘대학정보공시제’를 도입하여 대학의 주요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선택권을 보장하고 대학교육의 질 개선을 촉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현재 대학들이 학교운영에 있어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학에 대한 주요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은 절차적으로 투명한 학교운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점은 교육부의 처방이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단순한 땜질식 처방에 머물고 있어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점입니다.

2. 대학구조조정을 말하기에 앞서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교육부가 대학정보공시제의 실시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각 대학의 교원확보율과 신입생 충원율, 취업률, 재정현황 등이 공개되기 때문에 수요자(학생, 학부모, 기업체)의 선택과 평가에 의해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란 엄포를 놓기 전에 왜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 신입생 미충원 문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교육부는 정원미달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지난 90년대 중반에 신입생 미충원 현상을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1996년 ‘교육개혁위원회’는 ‘2003년부터 대학신입생이 미달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여 그 이후 2004년까지 43개 대학과 82만 여명의 학생이 증가하였습니다. 즉 정부는 향후 신입생 미충원 현상이 발생할 것이란 것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여 구조조정을 유도한 셈입니다. 정부가 당시부터라도 대학설립요건을 강화하고 정원정책을 제대로 해왔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태를, 이제 와서 대학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 정부는 사립대학에 대한 관리․감독을 회피해왔습니다.
정부가 대학교육기회의 확대를 사립대학에게 떠넘긴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정부가 사립대학의 무분별한 팽창을 묵인․방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립대학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79년부터 2004년까지 교육부의 종합감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립대학은 60.3%(94개교)에 이릅니다. 그나마 1회 감사를 받은 학교는 28.8%(45개교), 2회는 10.3%(16개교)에 불과할 정도로 종합감사를 받은 학교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정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학교법인이 저지른 각종 부정과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1990년 이후 2004년까지 알려진 것만 총 79회의 사학분규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반 이상은 재단비리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처럼 정부가 대학교육의 확대를 오로지 시장에 맡긴 결과, 사립학교의 비대화․부실화는 부패한 사학자본들의 난립과 경쟁으로 인해 심화․확대되었으며, 경쟁력 이데올로기가 학생, 교직원사회에 퍼지면서 대학과 학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돈 몇 푼으로 대학을 협박할 줄만 알았지 자신의 무능과 정책실패를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얘기하기에 앞서 교육부의 무책임과 정책실패를 엄밀하게 따져야 합니다.

3. 대학정보공시제, 무엇이 문제인가

○ 교육소비자의 선택권이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추진해온 국가에서는 한결같이 공교육재정이 감소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97년 이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교육재정을 줄여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한편으론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더 많은 투자와 고급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능력 있는’ 소비자와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교육정책을 확대하여 수익자부담원칙을 확립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보편적 기본권이어야 할 교육권이 단지 지불 능력이 되는 소비자들을 위한 배타적인 권리로 축소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권이 능력 있는 소비자와 기업체의 요구로 축소되는 한 교육의 공공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입니다.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화로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고, 그에 반해 대학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나고, ‘있는’ 집안 자식들이 명문대 입학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한 ‘선택권’이란 가당치도 않습니다.
더구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소비자들이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대학의 교육여건 보다는 대학의 서열임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대학정보공시제는 실효성이 없는 대책입니다.

○ 대학의 퇴출과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지표가 될 것입니다.
대학정보공시제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함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향후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결국 평가란 수치화·계량화 될 수 있는 것들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어 교육목표와 질 등에 대한 평가보다는 '투입 대비 산출'과 같은 경영성과, 교육여건의 단순지표 등 '교육'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경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게 되어 향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판단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기학과, 명문대학으로의 집중경쟁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즉 지방대학들은 교직원들이 학생모집 품팔이에 나서거나 신입생들에게 각종 혜택까지 제시해도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반면, 수도권 대학이나 지방대도 의대와 같은 학과들은 서로 못 들어가서 안달입니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만연하는 한 당장 현실적으로 정원을 감축한다 해도 꾸준히 공백은 발생할 것이고, 한 학교 내에서 모든 학과가 골고루 정원을 못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취업전망이 불투명한 기초학문분야가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구조조정의 목표는 바로 이들 학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의 상시적인 평가는 결국 기초학문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각 대학들은 평가와 연계된 한정된 예산을 따내기 위한 경쟁적인 조건 속에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윤창출과 밀접한 연구에만 집중투자를 하게 될 것은 뻔합니다. 또한 경영합리화란 명분으로 불필요한 인원과 시설,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될 것입니다.

○ 숫자 맞추기에 급급하여 편법과 탈법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비인기학교와 비인기학과들은 정부가 강제하는 각종 지표들, 즉 교원확보율과 신입생 충원율, 취업률, 재정현황 등을 억지로라도 맞추기 위해 오히려 각종 편법과 탈법을 저지를 것이 뻔합니다. 안 그래도 각 대학들이 교원확보율을 맞추기 위해 전임교원이 아닌 비정년전임트랙을 늘리고 있으며,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 인턴사원 등을 통계에 넣는 편법이 횡행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정보를 과연 누가 곧이곧대로 믿을까요?

○ 대학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은 대학주체들에 의한 민주적인 의사기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국공립대학의 경우 그나마 교육부에 의무적으로 보고를 하지만, 사립대학의 경우엔 대학운영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서 대학구성원들이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상황에서 대학정보공시제가 의무화된다 하더라도 투명하고 민주적인 학교운영이 될 리는 만무합니다. 오히려 학내 자치기구(교수회, 학생회, 직원노조)를 공식기구화하고 이들로 구성된 대학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를 통해 일상적으로 학교운영에 관한 사항들이 공개되고 논의되는 민주적인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길입니다.

4. 대학정보공시제를 철회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평가를 말하기에 앞서 얼마나 책임 있게 대학정책을 펴왔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인색한 교육투자, 무분별한 대학설립·정원증원 인가, 사학비리 방관 등으로 인해 발생한 폭등하는 등록금, 늘어가는 시간강사, 열악한 교육환경 등의 문제는 대학주체들의 교육권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습니다. 실로 평가는 대학 스스로가 자율적인 환경에서 교육과 연구활동에 힘쓸 때라야 비로소 가능할 터인데, 교육과 연구는커녕 돈벌이와 비리에 매진하는 대학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무슨 평가가 가능하겠습니까.
대학서열체제로 인해 대학간․학과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대학정보공시제를 도입한다면 오히려 더 큰 부작용만을 낳을 것이 뻔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교육부는 자신의 정책실패와 무책임을 반성하고, 교육주체들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기를 촉구합니다.

2005. 6. 8
범국민교육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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