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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졸업앨범에도 "000기간제 선생님

2003.04.19 12:47

치우 조회 수:2312

졸업앨범에도 "000기간제 선생님"

김경남 (전 기간제 교원)
<2003년 03월호-비정규노동>

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처음 '기간제 교원'으로 근무했고, 지금은 시간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계약직 교원으로 느낀 불안정한 신분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IMF 이후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원은 방학 중 보수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교육부에서 6개월 이상 계약한 기간제의 경우 학교장 재량으로 방학 중 보수 지급가능하다는 공문을 내린 것을 계기로 방학 중 보수를 받는 학교들이 생겼다(전국에서 14%의 기간제가 방학 중 보수를 받는다).

내가 근무하던 경기도의 실업계 고등학교(이하 ㅇ학교)에서도 기간제 교원들의 노력과 전교조 소속 교원들의 노력으로 방학 중 보수가 지급됐고, 운이 좋게도 퇴직금 혜택도 받았다. 그런데 올 들어 태도가 돌변했다. ㅇ학교는 학급 수 증감으로 지난해 필요했던 23명의 기간제 중 13명이 올해도 다시 필요해서 재계약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학교측은 "재계약을 해서 생기는 추가적인 퇴직금 지불이 '불필요한 지출'로 추후 감사대상이 된다"며 전원 재계약이 안 됐다.

그 과정에서 "추가적인 퇴직금 지불이 교육적 투자로 생각하면 안 되느냐"는 동료 기간제 교원의 질의에 학교측은 "기간제는 비용절감의 대상"이라고 답변했고, "비용절감보다 교육적 효율성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의에, 학교측은 "재계약이 더 효율적이라고 어떻게 감사 때 증명하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학교측은 기존 기간제 교원들에게는 공개채용의 응시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전원 계약만료로 퇴직시켰다.

기간제 교원의 신분을 규정한 법에서 기간제 교원은 1년 단위로 계약하게 돼 있고, 계약해지 이유만 명시되어 있어 계약만료가 되면 당연 퇴직해야 한다. 필요시 3년까지 연속계약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기간제교원의 임명권자는 학교장이므로 1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우리 모두를 해고시킨 학교에서 잘못한 것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재계약을 못하겠다고 한 이유가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었고 교육청의 추후 감사를 걱정해서였기에, 또한 재계약이 효율적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냐고 하면서도 공개채용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다. 그래서 경기도 교육청 중등인사과에 질의를 했는데, 교육청은 단위학교의 관리감독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장 재량이므로 교육청과 상관 없다"는 답변만 했다.

이에 경기도 교육감과 교육청에 민원을 냈더니 역시 "교육적 효율보다는 비용절감을 우선시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기간제 교원의 임명권자인 학교장 판단, 즉 '학교 교육상 효율에 따른 판단'이므로 학교장과 상의해보라"며 역시 공을 학교로 넘겼다.

그러나 그동안 교육부에서 우수 인력확보란 명목으로 하였던 방중 보수 지급은 우습게도 1년 이상 재계약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악용되거나, 학기별로(6개월이 안 되게) 계약하거나, 방학을 빼고 계약을 하거나, 퇴직금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고 재계약을 하는 등 짧은 기간의 계약으로 기간제 교원의 신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또한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년 계약의 시점을 수업학기 시작이자 일반 정교사의 임명일인 3월 1일이 아닌, 그 이후로 잡아서 '364일'짜리 계약을 강요해 퇴직금 뿐 아니라 호봉까지 인정되지 않도록 하는 악랄한 짓을 해왔다.

방학 중 보수를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교육청은 학교장 재량이란 말로 미루고, 학교는 "보수를 지급해도 된다는 공문을 받은 뒤에 주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ㅇ학교 기간제 교원들은 '교육청이 빨리 공문을 시달하라'는 연명서를 쓰는 등 난리를 쳤다. 다행히 연명서 제출 전에 주변 학교가 방학 중 보수를 지급하는 걸 학교에서 확인한 뒤에야 보수 지급 결정을 내려서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방학 중 보수 지급에 대해서도 학교장과 교육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재계약 거부 역시 학교는 교육청 감사 때문이라고 하고 교육청은 학교장 재량이라고 했다.

재계약을 거부당한 우리는 재계약 거부가 교육부 졸속행정의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교육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으나 답변이 없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그러나 고충처리위원회는 "교육부에서는 2003년도에 실시되는 시도교육청 평가 때부터 기간제교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을 위한 시도교육청의 노력여부를 연계해 평가하기로 하는 등 기간제교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진정내용은 진정이 접수된 다음날 교육부로 넘겨 처리완료했다"고 했다. 여러 기간제교원의 질의에 단 하루만에 '무의미하게 동일한' 답변을 해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또 한번의 배신감이 들었다.

대구교육청은 공식 공문으로 학기별로 두 번에 나누어서 계약하라고 시달해 그 쪽 기간제교원들은 아직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서울의 공립학교 기간제교원들도 학기별로 계약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처럼 학교는 기간제교원의 불리한 입장을 학교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주도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각 교육청 예산절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기간제 교원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수록 각 기관 사이에 책임 전가만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에 주당 18시간 시간강사를 한다. 학교에 4대보험을 요구하니 "교육청에서 18시간을 초과하면 고용보험 대상자가 되므로 18시간까지만 시간강사 신청을 받게 하는 것"이라며 "4대 보험은 안 된다"라고 했다.

그래서 관련한 사항을 여기저기 더 알아보니, 나는 한 달에 80시간이 안되므로 고용보험이 안 되고 실업급여 대상에서도 빠져있었다. 내가 한 학기를 근무하기로 계약을 했으므로, 상시 근무로 국민연금 대상자는 되지만 의료보험은 시간당 보수를 받는 일용직이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고 다만, '학교장 재량'으로 의료보험은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학원강사 경력은 추후 교사가 되었을 때 50% 인정되지만 시간강사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당 1만4천 원, 기간제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주당 18시간 근무를 해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고 4대 보험 안되고 의료보험은 학교장 재량으로 가입여부가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올해는 기간제 교원보다 더 험악한 시간강사의 현실까지 경험하면서 계약직 교원, 비정규 노동자를 의미하는 '불안정함'을 처절하게 느낀다. 내가 느끼는 부당함을 수용하지 못해 세상을 향해 덤볐던 내가, 이젠 덤빌수록 느껴지는 벽에, 한계에, 이 현실에 지쳐간다. 아니 익숙해져 간다. 그것이 두려워진다.

기간제 교원도 아이들에겐 정규직 교원과 동일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해 그동안 누구보다 성실했고, '기간제 교원'이란 것은 단지 학교와 나의 고용계약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초 발행한 졸업앨범에 나는 '○○○ 기간제 선생님'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분노할 힘도 없다. 허탈할 뿐이다.

지금 시간강사로 있는 내가 더구나 여자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고등학교 학생들이 무시할까봐 걱정한 부장선생님께서 첫 수업에 함께 교실에 들어오셔서 "○○대학원을 나오신 훌륭한 분으로 일부러 여러분들을 위해 초빙한 강사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래도 근무조건이 같아도 정규직교원 밑에 기간제교원이 있고, 또 그 밑에 시간당 1만4천 원을 받는 강사가 있기 때문에 또다시 나를 구분해내려는 것 아닌가 하며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아르바이트하는 강사'로서 충실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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