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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푸르트시 사건'으로 되돌아본 독일 교육의 문제점

[독일] "한 아이 키우기 위해선 한 마을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

강윤주 기자 kangy@uni-muenster.de

지난 <퇴학당한 학생의 앙심 품은 살인극> 기사에 소개된 바 있는 독일 에어푸르트시 구텐베르크 김나지움에서의 끔찍했던 사건 이후 독일 언론 매체들은 계속해서 이 사건에 관련된 소식들을 보도했다. 교사와 학생, 학교의 비서와 경찰관 등 16명을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학생 로버트 슈타인호이저의 주변 관계, 곧 가족과 학교 친구들이 그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사부터 독일 교육 방식을 다루는 기사까지 다양한 관점의 기사가 실렸으며, 결국은 독일 사회 전체의 정서적 피폐함이 이런 사건을 낳게 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필자는 이중 몇 가지 중요한 분석점들을 찾아 이곳에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필자주>

첫째, 슈타인호이저가 총을 들고 학교에 와서 학생이든 교사든 보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교사들만을 살해하려 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단지 자신의 상황에 절망해서 세상을 향해 절규하듯이 사건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살해된 16명 중 두명은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슈타인호이저가 닫힌 교실 문밖에서 사격을 하는 와중에 총을 맞았고, 경찰관과 비서를 제외한 나머지 희생자들은 모두 교사였다고 한다.)

▲ 구텐베르크 김나지움 앞에 놓인 꽃다발 더미 사이에 로버트 슈타인호이저의 사진이 놓여 있다. "살인자! 왜 그런 짓을 했는가? 왜?"라는 문장이 씌어 있다. ⓒ 2002 Yahoo

슈타인호이저는 교실 문을 연 뒤 교사가 그 자리에 없으면 다시 문을 닫고 나갔으며 교사를 발견한 교실에서는 반드시 그 교사를 똑바로 겨누고 총을 쏘았다. 왜 그는 교사들에 대해 그토록 강한 증오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구텐베르크 김나지움이 속한 튀링엔 (Tueringen)주의 학제 관련 법규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왜냐하면 튀링엔주의 학교법은 독일의 다른 주들과 달리 매우 가혹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주의 김나지움 학생들은 아비투어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자동적으로 레알 슐레 (김나지움보다 낮은 성적의 학생들이 가는 학교) 졸업장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튀링엔주 김나지움 학생들은 만약 아비투어에 불합격하면 레알 슐레 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또 다른 시험을 치뤄야 하며 그 시험에도 불합격하면 아무런 졸업장도 받지 못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슈타인호이저는 바로 이 경우의 학생으로, 그는 또 한번 아비투어를 치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다시금 불합격할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의사의 진단서를 위조해서 학교에 제출하고는 시험에 불참했다. 진단서는 가짜로 밝혀졌고, 그는 더 이상 아비투어를 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문제는 튀링엔주라는 특정한 곳의 학제가 아니라, 독일 전체의, 일찌감치 선택을 '강요'당하는 '걸러내기식' 학제라는 지적도 있다. 알다시피 독일 학생들은 4년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김나지움이냐 하우프트 슐레냐 등, 우리나라로 치자면 인문계냐 상업계냐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이 잘 되어 있어서 하우프트 슐레에 갔더라도 나중에는 김나지움으로 전학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 또한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옛날부터 있어온 비판이다.

또한 50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 반에 수용하고 수업하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는 상대적으로 훨씬 나아 보이는 교육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은 독일의 교육이 다양성과 학생 개인의 발전을 무시하는 획일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이밖에도, '걸러내기식' 학제는, 처음에 김나지움에 들어올 수 있었더라도 학습 능력이 부진해서 다른 학생들과 보조를 맞출 수 없는 학생들을 레알 슐레로, 그곳에서도 견디지 못하면 하우프트 슐레로 한 단계 한 단계 내려보내면서, 그 학생들이 견딜 수 없는 자기모멸감을 고스란히 혼자서 짊어지게 만든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시각은 독일 교육 제도에 대한 구체적 지적을 넘어서서, 문제는 학생에게 좋은 성적만을 요구하며 전인적 교육을 받는 데에는 등한시하는 독일 교육 제도 전체다, 라고 분석하는 시각이 있다.

필자가 이미 기사화한 것처럼, 몇 달 전 발표된 피사 보고서의 결과로 충격을 받은 독일인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킬까 하는 문제를 교육계뿐 아니라 온 나라의 과제로 떠올린 바 있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에어푸르트시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성적 위주의 교육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경종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피사 보고서의 교훈은 성적 향상의 중요성이 아니라 오히려 전인적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어떤 전반적 교육 환경 개선이 필요한가를 지적한 데에 있다며, 에어푸르트시 사건은 피사 보고서에서 얘기하는 개선점의 시급성을 극명히 드러냈다고 말하고 있다.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기사를 여러번 썼던 수잔네 가쉬케는 이번 사건을 두고도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방에 노크하고 들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을 구시대적 부모의 모습이라고 치부하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슈타인호이저가 더 많은 교사를 살해하지 못하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이 학교의 한 역사 교사가 슈타인호이저를 맞닥뜨렸을 때, 용기있게도 "자, 나를 쏘아라! 하지만 내 눈을 들여다 보면서 쏴!"하고 말했으며, 그 다음 순간 곧장 슈타인호이저를 한 교실에 가두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가쉬케는 이 예를 들면서, 이 시대 교사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의사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전통적으로 개인주의가 지배되어 온 탓에 어른이든 아이이든 개인의 공간이 대단히 존중되고 있는 나라 독일에서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단시간에 정적이고 밀접한 관계로 변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힐라리 클린턴이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한 마을 전체의 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지만, 교육 문제가 사회 전체 어느 요소와도 분리되어서 생각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 이번 독일 에어푸르트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2002.05.13 ⓒ 즐거운뉴스


강윤주 기자는 <즐거운뉴스> 독일 통신원입니다. 한국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하면 힘을 합쳐 대안적인 영화 산업 구조로 헐리웃의 상업 영화 체제에 대항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으며,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인 청소년 문화 교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즐거운뉴스의 즐거운 통신원이 되도록 즐겁게 뛰어볼 작정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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