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한국은 1위, 독일은 20위

[독일] 피사 연구보고서 결과에 흥분하는 독일

강윤주 기자 kangy@uni-muenster.de

"학교가 불 딴다!" 12월 첫째 주판 독일 주간지 <디 짜이트>(Die Zeit) 맨 첫장에는 녹색 칠판에 씌어진 윗 문장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었다. "불 탄다"가 아니라 "불 딴다"라고 쓴 것은 그만큼 독일 학생들의 맞춤법 실력이 엉망이라는 걸 비꼬는 풍자.

독일 매체들은 지난 주 내내 피사 보고서에 대한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가히 미국의 아프간 공습 뉴스를 보도하는 정도의 열성으로 전해준 피사 보고서가 과연 무엇일까?

독일 학생 학습능력 32개국 중 21위

피사(PISA) 는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assesment'의 약자로 OECD 의 위임을 받아 32개 나라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테스트한 연구이다. 32개 나라 중 스물여덟 개 나라는 OECD 소속이며 대상은 15살 학생들이었다.


▲ '불탄다'는 뜻의 독일어는 이 문장 안에서 brännt 가 아니라 brennt 여야 맞다. 독일 학생들의 맞춤법 실력이 엉망이라는 걸 비꼬는 그림. ⓒ Die Zeit

테스트 분야는 세 가지로 '독해력', '수학 계산력'과 '자연과학 이해도' 였다.

독일은 세 분야에서 각각 21위와 20위를 차지했다(반면 한국은 각각 6위, 2위, 1위를 차지해서 독일인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있다). 이 순위가 바로 독일 매체들이 지난주 내내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떠들어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디 짜이트"는 이 연구결과에 대해 특별기획으로 십여 면에 이르는 지면을 할애했다. 이 기획 기사에는 피사 보고서가 믿을 만한 보고서인지, 독일 교육의 문제는 과연 어디에 있는지 등이 폭넓게 실려 있다.

피사 보고서 자체에 대한 독일인들의 평가는, 이 보고서가 단순히 수학경시대회 같은 학습능력 테스트가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해서 얻어낸 체계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이같은 평가를 신뢰한다는 전제하에, 필자 역시 이 보고서 관련기사를 여러 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기획으로 피사 보고서에 대한 좀더 자세한 기사를 내보낸다.

종합 이해력 중점의 학습능력 테스트, '피사 연구'

피사 연구에서 중시한 점은 한 학생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만이 아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도 필요한 중요한 상식과 능력들 역시 중시되었다. 또한 과목들 사이의 경계를 넘어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종합 이해력도 중요한 요소였다.

피사 연구는 매우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3개의 테스트 분야가 있는데 2000년, 2003년, 2006년 각각 3년에 걸친 테스트에 이 3개 분야가 모두 포함되지만, 해마다 중점 분야가 달라진다.

곧, 3년 모두 3개 분야가 테스트되지만, 2000년에는 독해력이 중점대상이 되고, 2003년에는 수학 학습력이, 2006년에는 자연과학 이해도가 중점적으로 조사되는 식이다.

독해력을 중점적으로 조사한 2000년 연구에는 각 나라에서 4500명~1만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조사되었다. 독일에서는 219개 학교 50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각 주들 사이의 비교를 위해 따로 1466개 학교 5만명의 학생들에게도 이 표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2002년 여름이나 가을에 발표될 예정이다.

피사 연구는 참가국 전문가들에 의해 공동으로 제작된 국제 표준 학습력 측정법으로 실시되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이 조사에서 중시한 점은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과 개념 이해 정도, 또한 다양한 컨텍스트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두 시간이며 객관식과 주관식이 섞인 형태이다. 이 시험 말고 학생들은 각자의 사회적, 개인적 조건에 대해 이삼십분 동안 질문지를 채워야 한다. 교장들도 각자의 학교 상황에 대해 대답하는 질문지를 30여분의 시간 동안 채워내야 한다.

<디 짜이트> 지는 조사 대상이 된 학생들이 공통으로 받은 문제를 지상에 소개했다. 그 중 수학 학습력 문제 하나를 아래에 소개한다.


경주용 자동차가 3킬로미터의 구간을 달리는 동안 낸 속도 변화표. Y 축은 속도를 뜻하고 X 축은 거리를 뜻한다.

<문제> 아래에 다섯 개 모양의 구간 모형이 있다. 이중 어떤 구간을 달렸어야 위와 같은 속도 변화표가 나올 수 있겠는가?


<답> B

이 문제가 요구하는 이해도는 그래픽과 물리적 구간의 모양 사이의 상관관계에 관한 것이다. 학생들은 그 관계를 해석하고 실제상황에 적용시켜 볼 수 있어야 한다. 피사 연구팀은 이 문제의 난이도를 가장 높은 것으로 잡았다.


2001.12.10 ⓒ Die Zeit


강윤주 기자는 <즐거운뉴스> 독일 통신원입니다. 한국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하면 힘을 합쳐 대안적인 영화 산업 구조로 헐리웃의 상업 영화 체제에 대항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으며,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인 청소년 문화 교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즐거운뉴스의 즐거운 통신원이 되도록 즐겁게 뛰어볼 작정이라는군요.


기사 관련 링크 : http://www.zeit.de/2001/pisa

-----------------------------------------------------------------------------

부자 부모 둬야 '김나지움' 간다?

[독일] 피사보고서 이후 독일 교육계의 반응

강윤주 기자 kangy@uni-muenster.de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독일 교육계에 파문을 일으킨 피사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싣는다.

독일 교육 체제의 적신호에 관해 독일의 유명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 (Max-Planck-Institut) 교육 분과장인 위르겐 바우메르트 (Juergen Baumert) 와 함부르크 교육청 위원이면서 피사 연구 독일 담당 위원인 헤어만 랑에 (Hermann Lange) 가 장시간에 걸친 대담을 했다.

피사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학생들은 각 분야의 성적만 나쁜 것이 아니라 빈부 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몹시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독일 함부르크 교육청 위원이자 피사 연구 독일 담당 위원인 헤어만 랑에 (Hermann Lange) ⓒ Die Zeit

랑에: 말씀대로 결과는 매우 우려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 주정부에서 이 보고서를 그냥 넘기지 않고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겠지요. 특히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에 대한 대책을 중점적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 층도 너무 얇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랑에: 그래도 그 문제는 성적 부진 학생들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시급하다고 보여집니다. 이는, 현재 중요한 것은 엘리트 학생을 양성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지요. 엘리트 양성 교육 역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피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것은 성적 부진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지요.

바우메르트: 조사 대상 중 거의 사분의 일에 속하는 학생들이 가장 단순한 텍스트를 겨우 이해하는, 심각하게 우려 할 만한 수준에 놓여 있습니다.

상관 관계를 이해하고 읽어서 새로 얻은 정보와 원래 알고 있던 정보를 효과적으로 조합해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걸 못한다는 뜻이죠. 이런 학생들은 상공 회의소 등에서 실시하는 채용 시험 등에 결코 합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결과들이 예상 외였습니까?


▲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Max-Planck-Institut) 교육 담당 소장인 위르겐 바우메르트(Juergen Baumert) ⓒ Die Zeit

바우메르트: 성적이 그 학생의 출신 환경과 그렇게까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학생의 하지만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노동자 가족의 자녀가 레알 슐레 (김나지움에 갈 성적이 못 되는 아이들이 가게 되는 일종의 실업 학교)가 아닌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는, 상층 가족의 자녀가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의 사분의 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어떤 이들은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바우메르트: 국제적인 비교 결과가 말해주듯이 그건 오로지 추측일 뿐입니다. 한국이나 스웨덴 혹은 핀란드는 교육 체제가 출신 환경과 성적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약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곧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어도 교육 과정에 따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랑에: 그 나라들에서는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이 완전히 탈락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어떤 학생이 읽기 능력이 부족한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런 학생이 있으면 보충 수업을 통해 학생을 끌어올리는 모양입니다.

빈익빈 부익부 조장하는 독일 교육체제


▲ 28개 OECD국가를 포함한 32개 국가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피사보고서. 3개 영역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은 1,2위의 상위권인데 비해 독일은 20위권에 머물러 독일 교육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 디 짜이트(Die Zeit)

독일에도 보충 수업은 있습니다.

랑에: 연구 결과로 보자면 그 보충 수업은 효율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나 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이를 테면 유치원에서 이미 언어 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듯합니다.

초등학교 이전에 또 하나의 학교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뜻인가요?

랑에: 다른 나라의 학생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유치원 등에서 많은 것을 학습합니다. 독일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요. 이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초등학교와 김나지움 저학년에서도 성적 부진 학생들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겠지요. 그를 위해 방학 때나 방과 후에도 보충 수업 등이 있어야 합니다.

피사 보고서는, 동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상층 가정의 학생이 김나지움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노동자 가정의 자녀보다 세배나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온 겁니까?

바우메르트: 한 학생의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초등학교에서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그 순간을 한번 살펴봅시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4년 제로, 졸업과 동시에, 곧 열살 때에 어느 상급 학교로 갈지 가 결정된다. 이 결정에 따라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에 가게 될지, 아니면 상업 학교에 가게 될지 정해진다-필자 주) 상층 가정의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김나지움에 갈 수 있는 성적에 다소 못 미치더라도, 아이가 차차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김나지움에 보낼 것을 고집합니다.

필요하다면 과외를 해서라도?

바우메르트: 그렇지요.

교사들이 그에 반대하지는 않나요?

바우메르트: 한 학생이 김나지움을 가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교사들의 결정 역시,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받은 주관적인 인상과 교사가 학생에게 가지는 기대치의 결과물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김나지움에 보내려고 고집하면 교사도 그 학생이 김나지움에 다니면서 부모로부터 얼마만큼 지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지요. 학생들이 가정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교사들은 다소 성적이 딸리더라도 상층 가정의 학생들에게 김나지움에 진학하라고 권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볼 때 독일의 교육 체계는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겠군요.

바우메르트: 맞습니다. 김나지움으로 진학할 수 있는, 하층 계급 학생보다 네 배 높은 기회라는 건 곧장 높은 수입과 인생에서의 성공을 의미하지요.

초등학교 4년이 지난 뒤 상급 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이런 제도는 결국 어디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되나요?

바우메르트: 극심한 사회적 격차를 낳게 되죠. 성적과 출신 사회 계층이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이 성적에 따라 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이미 어릴 때부터 교육 체제를 통해 사회적 계층 차이를 분명하게 하는 겁니다. 이런 경향은 미국의 교육 체제보다 우리의 교육 체제에서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혹 성적이 부진한 독일 거주 외국인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피사 연구에서 독일의 성적을 저하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요?

바우메르트: 외국인 학생들의 성적을 조사에서 제외시킨다고 하더라도 독일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이민 가정 학생들의 성적을 독일 거주 이민 가정 학생들의 성적과 비교해 보았을 때 독일의 이민 학생들은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습니다. 독일어로 이야기하는 한 가정의 학생과 터키어로 이야기하는 다른 가정의 학생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 두 학생의 성적 차이는 무척 컸지요.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두 학생의 성적 차이가 그리 크질 않습니다.

어쨌든 여태까지는 독일의 교육 과정이 이민 가정 학생들이 처음에 잘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질 못한 게 사실입니다. 이민 가정 자녀들 중 70 퍼센트가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다른 독일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독일 교육 과정을 똑같이 이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나쁜 성적을 보이고 있거든요.

다른 나라들은 도대체 어떤 면에서 잘 하고 있는 건가요?

바우메르트: 예를 들어 노르웨이나 스웨덴은 엄격한 입학 과정과 그에 따른 지원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 나라 언어를 충분히 구사하고 수업을 따라올 수 있어야 입학이 허용되지요.

다음 주에 계속될 대담 기사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의 교육 과정, 독일 전체 교육 과정에 걸리는 시간, 독일의 수업 형태에 대한 내용이 실린다.


2001.12.17 ⓒ Die Zeit


강윤주 기자는 <즐거운뉴스> 독일 통신원입니다. 한국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하면 힘을 합쳐 대안적인 영화 산업 구조로 헐리웃의 상업 영화 체제에 대항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으며,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인 청소년 문화 교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즐거운뉴스의 즐거운 통신원이 되도록 즐겁게 뛰어볼 작정이라는군요.


기사 관련 링크 : http://www.zeit.de/2001/50/Hochschule/200150_pisa-interview-l.html

-----------------------------------------------------------------------------

교사간 '수업방식 교환 네트워크' 절실

[독일] "교사의 수업방법이 변해야 교육이 산다"

강윤주 기자 kangy@uni-muenster.de

지난 회에 이어 독일의 유명한 막스 플랑크 연구소 (Max-Planck-Institut) 소장인 위르겐 바우메르트(Juergen Baumert)와 함부르크 교육청 위원이면서 피사 연구 독일 담당 위원인 헤어만 랑에(Hermann Lange)가 피사 보고서를 두고 한 대담을 소개한다.

그들의 대담은 독일 교육 체계 전반에 관한 것으로, 이 기사를 읽어 보면 독일 교육 체계가 당면한 문제점들을 광범위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학습 지진아가 한 학년을 한번 더 다닐 수 있게 하는 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독일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더 길게 학교에 남아있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다시금 뒤늦은 대학 졸업을 유도해서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를 늦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 Ullstein

랑에: 노르웨이나 스웨덴에는 독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아동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 과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독일은 그렇질 못하지요. 독일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아이들을 맡아 돌보아 주는 데에만 치중하고 교육적인 면은 중시하질 않는 듯합니다. 바로 이런 점이 변해야 합니다. 또한 김나지움 저학년까지도 외국인 아동들을 위한 꾸준한 보충 수업 과정이 개설되어야 합니다.

진도를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한 학년을 다시 한번 다닐 수 있지 않습니까?

바우메르트: 그런 방식으로는 학습 지진아들이 한 학급의 평균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랑에: 한 학생이 특정 과목에서 학습 부진을 보여 한 학년을 반복하게 되면 그 학생은 다른 과목 수업 때에는 지루해 할 게 뻔하지요.

바우메르트: 한 학년을 반복해서 다닐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피사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의 15세 학생들은 김나지움 7학년에서 10학년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15세 학생들이 대부분 10학년에 속해 있지요. 반복 학년 과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 학생들은 전체 평균으로 볼 때 독일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바우메르트: 뉴질랜드의 15세 학생들 중에는 벌써 11학년을 다니고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15세 학생이 8학년을 다니느냐 10학년을 다니느냐 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합니까?

바우메르트: 김나지움에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과적으로 대학 졸업도 늦어집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24세에 벌써 대학을 졸업하는데 독일은 대부분 29세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하우프트 슐레와 외국인 아동들을 위한 보충 수업, 유치원에서의 교육 과정, 주말수업, 이 모든 것들을 위한 재정적인 지원은 어디서 나오지요?

랑에: 독일의 교육예산 집행 총액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독일은 중간 수준입니다. 하지만 별로 효과적으로 집행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초등학교와 하우프트 슐레를 위해서는 너무 적은 예산을 짜고, 이미 대학 입학을 위한 준비 과정에 들어선 김나지움 고학년들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합니다.

그 말씀은, 교육 예산은 충분하지만 다른 식으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랑에: 전체 교육과정을 들여다보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또 한가지, 오전 수업만 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시간과 교사의 수업시간을 너무 짧은 시간에 국한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독일 김나지움은 고학년이라 해도 대부분 오후 1시 이전에 수업이 끝난다. –필자주)

오후까지 수업을 하는 종일 학교를 더 늘려야 한다는 뜻입니까?

랑에: 그게 개선안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이제까지의 수업 과정은 그대로 두고 시간만 늘린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업내용을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독일 교사들이 어떤 점에서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랑에: 우리는 다른 교육적 개념, 새로운 커리큘럼과 지도안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학습'의 개념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바우메르트: 세계의 교수법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게 있습니다. 제대로 된 수업이란, 어떤 개념을 '이해' 시키는 것이라는 점이죠. 각 과목들에서 중요한 중심 개념들을 올바르게 이해시켜야 합니다. 이 물리학적 개념은 왜 중요한가? 민주주의는 어떻게 시행되는가? 좋은 수업이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좀더 자유로운 수업, 혹은 학생들끼리 논의하게 하는 연구 수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바우메르트: 하나의 방식으로 국한시킬 수는 없겠지요. 훌륭한 교사는 다양한 수업 형태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을 개발해냅니다. 한번은 고전적 방식의 수업, 한번은 집단 수업…. 처음에는 실험이다가 점점 그 방식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학생이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랑에: 학생만이 아니라 교사도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는 교습 방식 –교사가 묻고 학생이 대답하는– 은 심리적으로 양쪽을 모두 긴장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45분 수업을 다섯번하고 나면, 그 수업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풀고 앉아있을 수 없기에 기진맥진해지게 마련이죠.

바우메르트: 다른 어떤 나라도 독일만큼 교사를 심리적으로 혹사시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마도 교사 조기 퇴직의 원인인지 모르죠. 교사들은 기운이 소진되지 않도록 수업하는 방식을 택해야 합니다.

랑에: 동시에 김나지움과 하우프트 슐레 학생들에게 좀더 수준높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수학 수업이 너무 계산 중심입니다. 학생은 문제를 받아서 맞는 답을 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는 심오한 수학적 이해도를 끌어낼 수 없지요.

좀더 높은 수준의 수업과 좋은 성적을 끌어내려면 우열반식 수업을 하는 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랑에: 제 생각으로는 우열반으로 나뉘어지지 않은 한 반에서라도,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더 수준 높은 과제를 주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수준의 과제를 주는 식의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새로운 방식의 수업이 실제로 학교에 도입될 수 있을까요?

랑에: 교사들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겠죠. 교사 개개인의 노하우가 교사 집단 전체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개개인의 노력보다는 집단적 노력이 더 효과적이니까요. 연수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개개 학교들이 각자의 특수성을 잘 분석해내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건 독일 학교에 일종의 '문화 혁명'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바우메르트: 독일 교사들에게 부족한 것은 과목에 대한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그들이 젖어있는 고전적 수업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한 것이죠.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가 어떻게 수업하는지 견학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과 의사들은 수술할 때 남들이 옆에서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방식의 시술법을 시도하게 되면 동료 의사들은 모니터를 통해 그걸 관찰합니다.

비디오를 통해 동료 교사들이 자기 수업을 볼 수 있게 한다구요?

바우메르트: 안될 것 없지요. 학생들에게 서너달 정도 자기 수업을 녹화하게 해서 그걸 가지고 동료 교사들과 토의해 보는 거죠. 또는 학생들에게 수업 중간 잠시 시간을 내어 그들이 이해한 걸 말해 보게 합니다. 왜 그 학생이 그 수업의 중점적인 사항을 귀기울여 듣지 않게 되었는가? 등을 연구하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하면 교사는 일종의 피드백을 얻게 되죠.

랑에: 이런 방식은 절대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점검이며 상호 지원을 위한 겁니다.


▲ 좋은 교사가 되려면 다양한 수업 방식을 실험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노하우가 담긴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내야 한다. ⓒ Der Spiegel

교사들이 이런 방식에 반대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합니다. "그들은 오로지 우리를 감시하고 점수를 매기려 한다!"

랑에: 누가 누구를 감시하고 점수를 매긴다는 겁니까? 학교는 교육청이나 교육학자들의 도움을 기다리지 말고 자율적으로 개선안을 찾아내야 합니다. 함부르크에는 만오천명의 교사가 있는 반면 삼사십명의 장학사밖에 없습니다. 그 장학사들은 만오천명 교사들의 수업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감시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안을 평가할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랑에: 평가 역시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해야겠지요. 교장이 한 학교에서 맡게 되는 역할이 커진 요즘 교장이 교사들 수업에 내리는 평가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교장이 떠맡아야 하는 책임도 커졌습니다. 교장이 수학 교사가 아닐지라도 수학 수업에서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개선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학교의 석차를 매기는 건 어떨까요? 그런 방식으로 각 학교의 자율적 개선 노력에 압력을 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랑에: 이미 게으른 학교라면 석차에서 나쁜 성적을 받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학교는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객관적 평가를 해야겠지요. 그걸 위해서 피사 보고서를 만든 겁니다.

바우메르트: 학교는 정말 여러 분야의 가치들이 복합적으로 어울려 돌아가는 기관입니다. 학부모들의 지원도 매우 중요하고, 교사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수업할 수 있는 교사들이 필요합니다.

랑에: 피사 보고서가 말해주는 희망적인 소식은 '학교는 개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영국계 학교들은 이미 십년 전에 학교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었습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번 피사 보고서에서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2002.01.02 ⓒ Die Zeit


강윤주 기자는 <즐거운뉴스> 독일 통신원입니다. 한국에서 국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독일 뮌스터 대학에서 영화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의 영화인들이 어떻게 하면 힘을 합쳐 대안적인 영화 산업 구조로 헐리웃의 상업 영화 체제에 대항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으며, 더불어 인터넷을 통한 진보적인 청소년 문화 교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합니다. 즐거운뉴스의 즐거운 통신원이 되도록 즐겁게 뛰어볼 작정이라는군요.


기사 관련 링크 : http://www.zeit.de/2001/50/Hochschule/200150_pisa-interview-l.html

즐거운학교에서 퍼왔습니다.
http://www.njoyschool.net/news/default.asp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 [교육개방]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국제학생행동그룹 2002.07.29 1513
27 [펌] "불필요한 학위 경쟁 취업난 가중시킨다" 치우 2002.07.26 1119
26 [한겨레21] 교육이 세계를 자유케 하리라 처음처럼 2002.07.22 1286
25 주4일 수업해서 비용을 절감하자_뉴욕타임즈 file 치우 2002.06.14 1646
24 [즐거운뉴스] '에어푸르트시 사건'으로 되돌아본 독일 교육의 문제점 처음처럼 2002.05.18 1215
23 미국홈스쿨링의 경향과 특징 file 치우 2002.05.16 1793
22 바우처, 다양한 교육을 위한 값비싼 개혁 치우 2002.04.08 1340
21 [즐거운뉴스] '교사파업'과 '성 스캔들'의 함수관계 처음처럼 2002.04.03 1532
20 교사가 학생의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 치우 2002.03.02 1381
19 [펌]BBC, 영국과 한국 교육제도 비교 치우 2002.01.11 2045
18 [펌]부시, 교육개혁법안 서명 치우 2002.01.10 1365
» [독일] 피사 연구보고서 결과에 흥분하는 독일 처음처럼 2002.01.03 1759
16 [교육개방]미국-대학팝니다 치우 2002.01.02 1446
15 [교육개방]캐나다의 대학은 기업이다 치우 2001.12.22 1524
14 [펌]미 양원협의회, 부시의 교육개혁안 최종안 합의 치우 2001.12.18 1393
13 [펌]미 경제불황, 교육현장에 직접적 타격 치우 2001.12.12 1183
12 [펌]장애아동교육계획 평가보고서 제출 치우 2001.12.12 1419
11 한국과 미국의 교육 행정상의 차이 오마이뉴스 2001.12.01 1877
10 바우처의 거짓 약속_강신현역 Bob Lowe 2001.11.08 2355
9 [펌]교사헌팅에 나선 영국 교육 진보교육연구소 2001.10.26 1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