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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의 문화정치>(스튜어트 홀 지음, 김영호 옮김, 한나래 펴냄)

2008.04.04 22:24

반자본주의 조회 수:2597 추천:277

프레시안에서 기사를 퍼 왔습니다. 이 책 한 번 읽고 세미나 하는 것도 괜찮을 듯....

  서평의 일차적 기능은 서평을 읽는 독자가 서평의 대상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인 대처리즘의 사례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나, 최근의 신보수주의 이명박 정부의 집권과 유사한 점을 찾아내어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은 전혀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
  
  대처리즘 당시의 영국의 정치경제 상황 및 계급적, 사회적 역학 관계와 한국의 상황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대처리즘에 상응하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프로젝트를 제시한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보수당이 장기집권(대처 1979~90년 및 메이저 1990~1997, 총 18년)하고 더 나아가 전 사회를 신자유주의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던 반면에 좌파는 위기에 빠졌던 원인을 살펴보고, 이로부터 앞으로의 한국의 정치 및 사회 개혁에 대한 몇 가지 통찰을 얻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이 제공하는 대처리즘 분석은 매우 유용한 준거틀이 될 것이다.
  
  문화이론/연구와 정치경제학, 이 양자는 원래는 전분과적(pre-disciplinary) 또는 탈분과적(post-disciplinary) 연구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둘은 각자 하나의 독립된 분과로 정립되어 가는 듯하다. 마치 문화이론/연구와 정치경제학 사이에는 어떤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문화 분석에서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또는 '미시정치학' 에 대한 언급 외에 본격적인 정치경제 분석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고, 정치경제학에서 문화 분석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주변적인 관심사에 머무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자신 문화연구를 개척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이 책에서 문화 분석을 정치(경제)학적 분석에 모범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그람시적 관점에서 그는 "좁은 의미의 선거 정치나 정당 정치, 또는 심지어 국가 권력 장악이 현대 정치 자체의 기반을 이룬다고 착각하"지 않으며, 권력이 구성되는 장소는 다양하기 때문에, "도덕적, 지적 리더십의 문제들, 국가의 교육적, 구성적 역할, 시민 사회의 '참호와 요새들,' 대중의 동의라는 중요한 쟁점, 그리고 새로운 유형이나 수준의 '문명'과 새 문화의 창조" 등 문화 분석의 대상들을 바로 정치적 의제와 연관시키고 있다(329~330쪽).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특정 사회세력의 정치적 승리란 단지 국가기구를 장악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구를 넘어서는 시민사회와 문화적 영역에서의 헤게모니, 즉 설득과 동의에 근거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헤게모니는 그냥 주어지거나 한번 얻어지면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과정'중에 있다"(31쪽).
  
  그런데 홀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정치란 바로 '정치' 이상의 것이라는 점, 즉 "정치는 다양한 장 내부나 장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의 '작동'이며, 일정한 계기에서만 국가와 관련해 '정당'이나 선거제도로 농축된다"(22쪽)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 것은, 아무래도 그람시에 대해서 더 많이 들어보았을 노동당과 좌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급진우파의 정치적-헤게모니적 프로젝트로서의 대처리즘이었다. 반면에 영국의 좌파와 노동당은 경제적 위치, 즉 계급적 이해관계가 자동적으로 노동계급의 지지를 이끌어낸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홀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노동당과 좌파가 패배한 원인이자 보수당이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당이 시민 사회, 대중 문화와 도시 생활에서 주도적인 문화적 세력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34쪽)"은 치명적이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대처리즘의 승리는 좌파의 위기에 대한 거울 이미지이기도 하였다(38~39쪽).

  그렇다면 대처리즘이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홀에 따르면 그것은 종래의 우파와 달리 전통에 집착하는 보수주의가 아니라 "유지되려면 개혁해야 하고 지속되려면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철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자기 혁신적 정치세력의 프로젝트였다(256쪽). 특히 내용적인 측면에서 대처리즘은, "사회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국가를 변혁"하고 사회민주주의적 "전후 체제를 분산화, 대체"하고 노동-자본 간 대타협의 토대를 이루었던 "정치 문화를 뒤집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대처리즘은 영국에서 1945년 이후 형성되었던, 국가 개입과 계급 타협이라는 '새로운 합의' 및 전후 복지국가 체제를 사실상 해체하고 소유적 개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사회로 재구조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역사적 대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홀에 따르면 이는 대처리즘이 "늘 단기적인 선거 판세 역전이 아니라 장기간의 역사적인 권력 장악을 목표로 삼았"으며, "대중적 권위와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역사적 투쟁"(321~322쪽)을 통해 사회민주적 합의를 해체하고 "이질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서로 분산된 수많은 의지들"을 함께 결합(36쪽)하여 "새로운 종류의 대중적 상식"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397쪽). "새로운 우파"의 "목표는 경제적-기업적 전선에서뿐 아니라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투쟁하는 것"이었고, 이는 "어떤 사회 구성체를 진정으로 지배하고 재구조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배에 정치적, 도덕적, 지적 리더십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깨달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승리'해야 한다는 것을 대처주의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305쪽). 실제로 대처 여사는 자신이 단지 권력을 위해 싸우지 않고 '21세기의 의제 설정'에 기여하고 있어 기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429쪽).
  
  이렇게 단순한 정권획득을 넘어서 사회전체를 설득하고 재구조화하기 위해 감행한, 즉 그람시적 의미에서의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 수행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투쟁 속에서 대처리즘은 특히 다음과 같은 전략을 구사했다. 첫째, 대처리즘은 빅토리아시대 부르주아적, 가부장적 전통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진보적'인 이미지의 (신자유주의적) 선진화/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322~323쪽). 둘째, 이러한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결합은 이른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에 근거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국민'에 대한 호소 위에 두고, 상식적 경험과 실천적 도덕주의라는 본질주의의 범주에 이 정책들의 뿌리를 두는 것"이었다(155쪽). 대처리즘은 "'계급'과 '노조'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국가(nation)'와 '국민' 담론들을 구사해 훨씬 더 큰 효력과 대중적 호소력을 확보"했으며, 통화주의와 같은 이론적 이데올로기를, '영국인답게 되는 것', 가정 경제 등과 관련된 포퓰리즘적 상용어구와 구속력 있는 도덕주의의 언어로 옮기는데 성공해 경쟁, 채산성 회복, 엄격한 지출과 건전한 재정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교의를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103~105쪽).
  
  하지만 우파의 입장에서 볼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포퓰리즘적 정서의 각성을 아주 적절한 순간에 차단해서 권위와의 동일시, 전통주의의 가치, 단호한 리더십 비슷한 것으로 포섭하거나 변형"(155쪽)시키고, "사회적 규율과 리더십의 새로운 체제를 '위로부터' 부과하는 것"이었다(182쪽). 이는 학생운동, 저항문화, 도덕적 관용성, 젊은 층의 향락주의, 권위와 사회적 가치의 위기 등 도덕적 공황 상태 속에서 결집한 '밑으로부터의 외침', 즉 (노동자를 포함한) 대중과 전통주의 사회세력의 '위로부터의' 도덕적 규제와 '법과 질서'의 회복에 대한 요구에 근거하고 있었다(278~280쪽). 간단히 말해 대처리즘은 전통적 가치로 포장된 권위주의적 규율 및 소유적 개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위로부터 추구하면서도 이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대조적으로 영국의 좌파는 "자신이 사회나 문명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중 많은 수는 "헤게모니적인 정치 전략 개념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39쪽). 이는 노동자의 객관적 경제적 위치가 자동적으로 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는 '경제주의'를 반영한다(328쪽). 하지만 그람시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 관계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항상 정치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치란 "단지 이미 통일된 집단적인 정치적 정체성 이미 구성된 투쟁 형태들을 단순히 반영하는 장"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 형태, 지배 형태를 도출해내기 위해서 경제에서, 사회에서, 문화에서 여러 세력들과 관계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곳"이다(328~331쪽). 그럼에도 "사회 민주주의는 자신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계급들에 대해 이러한 종류의 도덕적-사회적 리더십을 오래 전에 포기"했으며, 계급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계급을 형성해야 하지만, '계급'과 관련해서 '정당'의 교육적, 구성적 기능이라는 관념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290쪽).
  
  그러므로 홀은 영국의 좌파가 대처리즘으로부터 배울 필요성이 있음을 역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안한다. 첫째,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순되는 다양한 욕구와 요구들을 보다 큰 강령 또는 정치 프로젝트 하에 조정하여, 선거의 편의를 위한 결합을 넘어서는 다수 세력의 '역사적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387, 527쪽). 둘째, 이를 위해, 곧바로 사회주의 이념의 충분조건이 되기에는 부족한 노동계급의 직접적 경험을 "심문, 교정, 변형, 교육"하고 "계급 자체 내부의 '노동 계급 상식'에 대항해 (…) 전면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349~350쪽). 셋째, 이러한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중요한 것은 대처리즘이 제시한 것에 비견되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비전과 이미지이다(386~387쪽).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합리적인 희망이나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을 때에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일을 기꺼이 고려할 것"(355쪽)이며, "점차 유권자의 정치적 사고가 정책이 아니라 이미지의 측면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정책들은 사람들이 일체감을 느끼는 이미지 속으로 구축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장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491쪽). 넷째, 좌파는 우파가 제기한, 복지국가의 억압성, 사회민주주의 하에서의 다양성과 선택권 제한 등의 문제들(433~437쪽)을 무시하지 말고 우파의 시장주의적 대안과 맞서, 사회와 약자로의 권력 이전이라는 민주주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441~442쪽).
  
  이러한 홀의 대처리즘 및 영국 좌파의 위기에 대한 분석이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현재 상당한 사회적, 정치적 위기의 징후가 보이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도 좌든 우든 아직도 대처리즘에 비견될 만한, 구체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정치적-헤게모니 프로젝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미래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나 이슈도 없었던 지난 대선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물론 이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형이 이미 거의 완료되었고, 실제적인 대안은 보이지 않으며, 주요 정치-사회 집단들이 이 새로운 현실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는 분명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낳고 있고, 이 세계의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이 정치경제 체제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사회에서의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부재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특히 하이에크 등이 주도하여 설립한 몽페를랑 협회(Mont Pelerin Society)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도 피노체트, 대처, 레이건 등을 통해 실현되기까지 무려 30년 이상이 필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느 때보다도 삶의 진정한 희망을 주는 구체적인 비전과 이미지, 그리고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이 요구를 충족시키는 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 그람시의 신군주와 같은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그러한 정치세력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지주형/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