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분과] 프랑스 학교

2002.04.26 14:21

신호승 조회 수:1030 추천:1

프랑스의 학교
- '교육권' 논의 기초자료

2002년 4월 25일 / 신호승

노동자와 민중의 '교육권'과 관련된 논의는 근대 공교육 체제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제기되었다. 물론 이것은 우리 공교육 체제가 가진 특성을 밝혀내고, '바람직한' 공교육 체제의 형성을 위한 이론적 바탕을 찾아야 한다는 실천적 필요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즉, '교육에 대한 권리'의 사상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되었는지를 밝히는 작업은 이러한 사상이 형성된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보편적 '인권' 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다루어져야 그 총체적 맥락이 드러난다.

또한 이는 역사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법학/철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의 기존 논의를 검토함은 물론, 현재 우리의 공교육 체제의 현실에 대한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논의의 출발로는 미약하지만, '프랑스 학교'에 소개된 글을 통해 '교육권'에 대한 단초를 찾아보려 한다. 아래 글은 창해출판사에서 펴낸 '프랑스 학교'라는 책(2000년 발행)의 일부를 요약/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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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진다면, 권리나 이론상의 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 현실적인 평등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 쥘 페리, <교육의 불평등에 대한 담화>, 1870


학교 이야기

프랑스에서 종교색을 띠지 않은 무상 및 의무 교육이 제도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3공화국(1871-1940)의 학교 법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에 선포되었다. 사실 역사의 관점에서 한 세기란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 동안 겪어온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인 변화와 발전을 고려해볼 때 그것은 긴 세월이기도 하다.

분명 21세기의 학교는 쥘 페리 시대의 학교와는 다를 것이다. 교육 체제의 확립은 단순히 사회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일 수 없는데, 거기에 강한 정치적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공화국 시절의 초기 학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학교가 지향하는 전망과 그 목적을 정의하는 일이다. 공화국의 학교는 새로운 과학 기술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여기서의 과학 기술은 특히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에 변화를 가져오는 새로운 기술이 문제이다. 모든 영역에서 상호 교환의 세계화가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학교는 그 거대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시민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정보의 원천과 거기에 접근하는 방법이 증가하고 다양화하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회 속에서 학교가 담당해야 할 학습과 교육 그리고 지도 방향은 어떠한 것일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첫째는 제3공화국하에서 무상 및 의무 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되짚어보는 역사적 관점. 둘째는 프랑스의 학교 체제를 유럽의 교육과 비교해보는 문화적 관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에 설치된 프랑스 교육체제의 조직망을 통해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개념이 국제적으로 어떠한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고, 아울러 지식에 대한 접근에서 대혼란을 야기시키는 새로운 과학 기술들을 명확히 밝혀보는 미래 조망적 관점이 세번째다.

다니엘 메예


공화국 시대의 학교

쥘 페리 이전에도 학교는 있었고 교육이 드물었던 것도 아니다. 1833년 6월 28일자 기조법에 의해 새로운 국가 교육정책이 실시되었다. 그 결과 면이나 읍 같은 최소 행정구역에는 저학년 과정의 초등학교가, 각 지방의 도청소재지와 6,000명 이상의 주민이 살고 있는 도시에는 고학년 과정의 초등학교가, 그리고 모든 도에는 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제2제정(1852-1870)하에서 빅토르 뒤뤼는 여자 아이들을 위한 대중 교육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1870년에는 11만 명의 초등학교 교사가 7만 개의 학교에서 약 650만 명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기에 이르렀다.

특히 1880년부터 1914년까지의 프랑스 대중 교육은 국가의 경제적 발전, 더 나아가 프랑스 사람들의 사회적 상승 욕구에 완벽하게 부응함으로써 확실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학교 : 정치적 의지와 인간

르느상스 시대의 흥분의 도가니로부터 생겨난 '교육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사고는 17세기에 와서 법적 문제로 상정되고,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법안으로 화정되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오랜 정치적 흐름 속에서 구체화되었다. 탈레랑과 콩도르세, 그 펠르티에 드 생 파르고 등의 인물이 중심이 되어 교육 제도 구성과 관련한 일련의 계획들을 혁명의회에 제출했다.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교육 체계의 기반은 총재정부 특히 라카날과 도누 등이 오늘날의 그랑제콜로 성장한 몇 개의 학교를 창립하면서 그리고 제정 시대에는 퐁탄에 의해 대학이 설립되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2제정 말기에 야당 후보자로서, 종교색을 띠지 않은 무상 및 의무 초등교육을 창설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수립하면서 국민의 교육을 책임진 사람은 쥘 페리이다. 그는 학교와 공화국이 서로 밀접한 연계성을 갖도록 노력했고, 1881년과 1884년에는 총리로서 몇 가지 기본적인 법을 추진했다. 그의 주변에는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페르디나 뷔송은 19년 동안이나 초등 교육 국가 감독관으로 있었으며 그의 저서인 <교육학 사전>은 교사들에게 새로운 국민 교육의 이론과 실천에 참고 자료가 되었다.


학교와 사회

19세기 및 20세기 민족학자들의 구어 문화 공동체와 원시 사회에 대한 연구 결과로 밝혀진 사실에 의거해 볼 때, 지식의 전수는 본래 엄정한 규범에 다라 이루진다. 즉 엄격하게 규정된 날짜와 장소에서 전문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신성 불가침이 성격을 띤다. 특별히 기술적인 내용을 전수하는 경우에는 이미 기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선정하여 이루어진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교육은 사회 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그 사회의 유용한 관심사에 부응하며 존립해 왔다. 예를 들어 아테네와 로마 사회에서는 고대 사회가 필요로 했던 특수하고 전무적인 인간상, 즉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다양한 행정직을 수행할 수 있는 시민의 양성을 명시적 목표로 하여 교육이 이루어졌다.

또한 사를마뉴 대제는 라틴 문화의 단편들을 수집하여 투박하고 이질적인 그의 제국에 최소한의 행정 조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전념하여, 이에 적절한 교육 목표가 설정되었다. 그런가 하면 중세의 성직자들은 봉건적 봉사에서부터 왕실의 행정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결국 학교는 사회를 앞서가면서 동시에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계획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공화국 시대의 학교는 농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음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농부들은 아이들을 들판으로 보내 밭일을 하게 한다거나 가정의 힘든 살림을 돕게 하기보다는 학교로 보냈다. 그 당시 부르주아 계급의 사람들은 아이들을 리세에 보내어 군대나 국립 및 사립 행정직에 대한 준비를 시켰다. 따라서 프랑스의 시골 농부들은 자신들의 자녀들도 학교에 가면 좀더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며, 공무원과 같은 안정된 직업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식이 생기기 전까지는 농부들에게 학교란 무용한 것이었다. 농부들은 방언을 사용했지만 학교에서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방언 대신 표준 프랑스어를 가려쳤고, 농부들이 여전히 리외, 투아즈, 피에와 같은 구식의 척도 단위를 사용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새로이 미터법을 가르쳤다. 이와 같이 쥘 페리 시대의 학교는 확실하게 실용성이 있는 것을 제공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화국 시대의 종교색이 없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학교가 공헌한 바는 사회와 인간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였다. 특정한 일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저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화국을 건설하자는 것이 바로 공화국 건립자들의 기본 이념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교육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단절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실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및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위해 학교 밖에서 진행되는 부수적인 활동으로부터 야기되는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변화를 학교는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이 당시의 학교 관계 당국자들은 학교를 어린이와 어른,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사고들이 집결될 수 있는 첫번째 문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야망은 즉각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반대에 부딪혔다. 공화국 시대의 학교는 관용의 정신과 더불어 주변의 모든 반대에 대항할 수 있는 전투적 태세를 갖춘 투쟁의 장소가 되었고, 지주인 귀족 계급과 부유한 부르주아 계급에 맞서 싸웠다. 특권층의 사람들은 그들보다 숫자가 많은 대중들이 지식과 사고에 접근하게 되는 것을 걱정스럽게 생각했다. 또한 학교는 젊은이들 특히 여자아이들과 시민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는 교회와도 맞서 싸웠고, 심지어 대중 교육의 수립으로부터 최대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농부들 및 노동자들과도 투쟁해야 했다. 이러한 모든 저항과 반대를 이겨내는 것만이 제3공화국 창설 세대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일이었다.

<중략>

21세기의 학교 : 목표와 관점

오늘날 사람들은 학교에 모든 것을 요구한다. 일반적인 교육을 시켜줄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직업 세계에서 전문 직업 준비를 시켜줄 것, 각기 다른 문화적 감수성을 가지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 자녀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해 줄 것,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가족의 교육적 역할 포기를 보완해 줄 것, 청소년들에게 삶의 이유와 방향 그 이상의 것을 제시해 줄 것 등등.

이와 같이 학교는 그 자체로 불안과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대에 대한 희망도 품고 있다. 학교는 마치 지적이고 과학적이며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힘에 흔들리는 지진의 공명기와도 같다.


학교와 새로운 과학 기술

약 10년전부터 초등학교와 대학가에서 학교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앙케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학교 교육과 세계의 미래에 대한 전망 형성에서 주용한 역할을 하는 문화 영역의 구성 기준을 정하는 일에서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지식과 그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이 일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고는 청소년 각자의 개인적인 세계가 움직임, 이미지, 소리 등을 통해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론의 세계와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가능해질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지식은 검정 칠판에 의해서라기보다 컴퓨터와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더욱 많이 전달되고 있다. 표현 체제의 속도만 해도 더 이상 책장의 내용을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가는 리듬이 아니라 텔레비전 광고가 지나가듯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책이라는 일정한 틀 속에서 변화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논쟁에 열중하기보다는 컴퓨터 마우스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의 세계로 무한한 여행을 하게 된다.

<중략> 앞으로의 교육 세계에서는 몇 그램밖에 되지 않는 탄산염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한장의 콤펙트 디스크가 교육 영역에서 제기되는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중략> --- 21세기의 학생은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기보다는 딱딱한 디스켓 안에 넣어 간직하게 될 것이고, 책은 그저 부주적으로 이용될 것이다. 지식을 얻기 위한 학습 활동은 그가 필요로하는 지식의 요소들을 간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요소들 사이에 필요한 맥락과 관계를 성립시켜줄 보정 기술에 의해 계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다.

새로운 대중 매체와 컴퓨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자서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의 은하계로 진입하게 해주고, 원하는 자료를 찾기 위한 자신의 여정을 스스로 결정한 자유를 제공한다.

따라서 학교라는 공간에서 새로운 과학 기술을 수용해야 하는 것은, 정보에 접근하는 부수적이고 특수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지혜의 습득과 지식의 접근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관점에 따른 필요성 때문이다. 학교는 텔레비전의 도래로 겪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정보처리방법으로 인해 재현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만약 학교가 청소년들의 시간 활용을 두고 이 작은 스크린과 자리 싸움을 해야 한다면, 현실 세계 밖으로 학교를 완전히 고립시켜버릴지도 모를 정보 처리도우의 발전을 나몰라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중략>

또 다른 교육 체제

학교는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도구'를 생산해내고, 직업에 대한 능력과 태도를 발전시키는 것만으로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초등학교 1학년 첫 학기부터 세계에 대하여 그리고 여러 가지 세계 동항에 대하여 분석력과 사고력 및 비판력을 키울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 학교에 이런 기능이 없다면 사람들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문제는 비단 어른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연역적 체계 안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강조하면서도, 논리적 사고를 통하여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문화를 학생들이 습득하게 하는 것은 학교라는 환경 안에서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지리적이고 역사적이며 민족적인 여러 형태의 호기심의 발전이 일반 문화의 발전에 기반이 되기 때문이며, 인간 관계와 일상적인 사물들과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복구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사회 저변에 잠재된 배타성이라는 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강력한 해독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첫번째 과제는 지식 습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듣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이 모든 능력은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 어린이는 한 인간이 되기 위해, 그리고 학생은 건실한 시민이 되기 위해 교육받아야 한다.

... (학교의 기본 목표는) 우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적 정신 구조의 기초를 이루고 있으나 공간과 시간 상으로 현재와 단절되어 있는 문화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어야 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시각과 그에 대한 정신적이고 철학적이며 정치적인 개념은, 세계는 고정되어 있고 이미 다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던 시대 즉 인간 수명에 대한 기대치가 30년을 넘지 못하던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한 평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가지 환경에서 다양한 직업을 갖게 될 청소년들, 다시 말해 여러가지 삶을 경험하게 될 청소년들에게 단지 기존의 것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방법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변화를 자신의 삶에 수용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가르쳐야 한다.

인터넷은 현대인에게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문화와 사고의 다양성 및 풍요로움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줌으로써 정보의 바다 속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비록 미리 짜여진 틀에 의해 어느 정도 제한을 받는다 해도, 한 번의 클릭으로 이곳 저곳을 아무 제약없이 떠돌아 다닐 수 있는 인터넷과 함께 학교와 사회는 또다른 임무를 지니게 되었다. 학교는 새로운 과학 기술과 인간의 가치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열린 공간의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사람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서로 협동하고 한 단체의 일원으로 가입하면서, 사람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서로 협동하고 한 단체의 일원으로 입문하게 된다. 학교는 가족 공간이나 공동체 공간 나아가 국가 공간도 모방하지 않는다. 학교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곳이지, 철학적이고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신념들이 서로 맞닥뜨려 부딪히는 닫혀 있는 공간이 절대 아니다. 이곳에서 개인은 자신이 안고 있는 공동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한께 시민의 공간을 창조하도록 촉구받는다. 따라서 한 사회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 속에서 재구성됨을 의미한다.

개인의 직업적인 능력은, 혁신을 본질적인 동력으로 삼는 교육 체제 내에서 습득한 기초 지식들을 재결합하고 갈고 닦으며 적응시키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역적이고 국가적인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분야에서 각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행하는 적극적인 참여 능력에 따라 보장받는다. 사회는 개인에게 사회성을 요구하며, 그 대가로 사회 일원으로서 자율성을 허용한다.

따라서 21세기의 학교는, 끊임없는 개헉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공통으로 가치를 함께 누리고 또 문화 유산의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장소로서, '지식 사회'의 도래를 준비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

자크 드무쟁


■ 무상 교육 - 만인을 위한 교육
제3공화국 초기에는 초등학교 학생의 3분의 2가 무상으로 교육을 받았다. 교육비의 보조는 원래, 국가가 국민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차원에서 불우한 아동들이 이러한 제도적 혜택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와서 교육이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사업으로 여겨지면서 이러한 규칙은 완화되어, 교육비 보조의 대상이 확대되었다.

이미 빅토르 뒤뤼는 원하는 마을에는 무상 교육을 실시할 권한을 부여했고, 당시 특별세로 마을이 학교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되자 1867년 6월 10일자 법에서는 '학자금보조금고'를 설치하여 원조를 활성화하고 보조를 더욱 확대했다. 한편 1866년 3월 28일자 법령에서 이미 도지사들은 불우 학생들의 최대 숫자를 정하는 일에서 면제되었다. 결국 무상 교육으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1881년 6월 16일자 법에 의해 쥘 페리는 바라던 바를 이룬다. 그가 발표한 법령 제1조는 '이제부터 국립 초등학교와 유치원에서는 교육비가 징수되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법 조항에서는 '사범학교 기숙사 비용도 무료'임을 덧붙였다. 이러한 조치는 도청소재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숙사비 때문에 매일 통학을 해야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소직이었다. 1886년 10월 30일에는 고등 초등학교를 다시 설립하고 보충 수업을 시행한다는 법이 발표되는데, 여기에도 무상교육의 원리는 적용된다. 그 이후로 모든 국립 초등학교와 관련된 모든 교육은 '무상'이라는 개념 아래 운영된다. 국립 중등 교육에까지 무상 교육이 전파되는 것은 1933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 민주화
쥘 페리 시대이 학교는, 고학년 강의는 무상의 초등 과정 및 우상으로 기본 과목들을 수강하는 중등 과정으로 구분된다. 초등 과정은 농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과정으로서, 농업과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에서 훌륭한 인력으로 일할 수 있는 데 필요한 교육을 보장했다. 반면에 중등 과정은 부유층이나 특권층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었다. 이와 같은 교육 과정의 분리는 사회적인 이동과 기회의 균등에 제한을 가져왔고, 분리된 이 두 교육 과정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하게 된다. 교육의 민주화는 무엇보다 재산으로 학생을 입학시키던 제도가 폐지되고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지급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중략> 증등교육이 무상 교육화되는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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