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유럽의 반극우파 시위에 관한 짧은 글

2002.05.06 12:33

아끼는 후배의 글 조회 수:1012 추천:1

<퍼온자의 변>
프랑스에선 요즘 반 르펭 시위가 한창이죠(이었죠?). 그리고, 아마 시라크가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견되고 있습니다... 이것도 지금 시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 후배 중에 날카로운 식견으로 짤막하게 논평을 잘하는 녀석이 있는데, 다른 게시판에 그가 쓴 글을 옮겨 봅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쉽게쉽게 짤막한 논평을 하게 되려나... "좌파여 헤매지 말자"가 제가 얻은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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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가 헤매고 있을 때, 오늘날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신자유주의]아니면 [파시즘]밖에 없음. 즉 70년대 후반 이후로 [케인즈주의-복지국가] 패키지가 실패하면서 좌파는 헤매고 있고, 그러다 보니 [시장에 모든 걸 한 번 맡겨보자 주의]와 [남의꺼 뺏어와서라도 우리끼리 잘먹고 잘살아 보자 주의]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것임. 첫번째 꺼는 조금 아리까리하기는 하지만 많은 잘난 경제학자들이 이러면 된다고 우기니깐 한 번 미친척 하고 믿어볼만하다 싶은 거고, 두번째 꺼는 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제일 확실해 보이는 거니깐 눈이 안 갈 수가 없는 것임.

요는, [르펭돌풍]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게 아니라, 20년 넘게 진행되어온 [복지국가의 실패], 그리고 [대안적 기획의 부재] 라는, 철저하게 실존하는 [역사적, 사회적 조건]의 산물이라는 점. 그래서 몇 십만명 모여서 데모 몇 번 한다고 사라질 현상도 아니고, 우리 홍세화 선생님의 그 유명한 [똘레랑스 살리기 켐페인]만 주구장창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점. (덧붙여 [똘레랑스]는 그것이 발휘될 수 있는 [특정한 역사사회적 조건]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점.) 한편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하신 히틀러 선생님 시절부터 [좌파 지지자]와 [파시즘 지지자]는 그 물이 그 물이었다는 점, 즉 [왜 파시즘이 부상하는가?]라는 질문은 [왜 좌파가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동의어라는 점을 명심할 것.
결국, 좌파들 중 똘똘한 자들이여, 데모도 좋지만, 반성하고 빨리 정신차리자는 게 내 얘기. 서울대 총학 선거에 당선된 [광란의 10월] 반대 데모를 운동권 5천명 쯤 아크로에 모여서 크게 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을까? 그들로부터 총학생회 사무실을 뺏어왔더니 대학사회가 확 바뀌었나? 학생운동권의 위상이 높아졌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데에서 놓여있는 것임.
글구, 오늘 아침 한겨레에 실린 우리 홍세화 선생님의 글을 읽어봤는데...이 아저씨, 할 얘기도 없고 쓰기도 싫어 죽겠는데, 기자가 어지간히도 귀찮게 했던 모양...왜 [우리의 위대한 똘레랑스의 나라]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본인도 어리벙벙한 듯...한 가지만 일러드리죠. "어처구니 없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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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제 동기 하나가 톨레랑스가 발휘될 수 있는 역사사회적 조건이 뭐냐는 질문을 이 후배에게 했고, 다음은 이에 대한 후배의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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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의 작동을 가능하게 했던 역사사회적 조건이 구체적으로 뭐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맥락, 즉 [인종주의의 대두]라는 맥락에서는 분명 프랑스의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쉽게 말해, 예전에 프랑스가 잘 나갈 때는 머, 외국인 좀 들어와도 [똘레랑스]를 발휘하여 다 받아 안아 주고 그랬는데, 이제 당장 [우리]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니깐 [쟤네]가 저렇게 설치고 다니는 꼴을 못 봐주겠다 는 거 아닌가 하는 얘깁니다. 간단한 얘기죠.

[똘레랑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의 핵심 중 하나는 [차이의 인정]이라는 걸 겁니다. 생각이 다르든, 피부색이 다르든, 지위-신분이 다르든, 그 차이를 그대로 인정하고 [나]와 [너]를 동시에 존중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건 [자신감]이 있을 때,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현실적 여건이 구비될 때 얘깁니다.
대부분의 서유럽 사람들이 그렇지만 특히나 프랑스 사람들, 19세기 이후로 자기네 역사에 대한 자부심 대단하고, 자기네 문화에 대한 자신감 대단했지요. 근데 2차 대전 이후로 세계의 패권이 대서양 건너로 완전히 넘어가버리면서 얘네들 자존심이 상당히 망가졌던 모양입니다. 오죽했으면 히틀러로부터 되찾은 나라에서 드골 같은 꼴통 우익이 그렇게도 위세를 부렸겠어요. 그나마 이내 이게 대충 봉합이 될 수 있었던 건 사민주의 좌파의 [복지국가]가 그럭저럭 성공하면서 [프랑스의 번영]이 다시 부활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근데 80년대 접어들면서 [사민주의]가 도저히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프랑스 경제도 맛이 가기 시작하자 슬슬 얘기가 달라진 거죠.
자신의 생존이 외국인들에 의해 위협받는건 아닌가 하고 불안해 지기 시작한 하층계급들(노동계급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은 뭔가 다른 거 없나 하며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거고, 이에 힘입어 르펭의 [국민전선]은 선거 한 번 치를 때 마다 팍팍 크기 시작하고, 머 그랬던 거라고 봐야겠죠. (이건 그냥 제 주장이 아니라 엄연한 팩트입니다. 또 프랑스만의 문제도 아니구요. 글구 경제학 쪽에서는 80년대 이후로 가장 뜨겁게 진행되었던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이거에 대한 거였습니다. 제 학위논문이 바로 이 문제하고 직접 관련되죠.) 얘네들의 슬로건이 뭐냐면 "외국인 싫어~! 세계화 싫어~!" 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지나가는 외국인 붙잡아 놓고 안 죽을 만큼 두들겨 패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시애틀에서 좌파 애들하고 나란히 서서 [반세계화]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당장 르펭만 하더라도 자기가 대통령 되면 [유럽연합]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겠다고 공언하고 다니고 있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르펭에 대한 중도파들의 태도입니다. TV 에서 보셨나 모르겠는데, [유럽의회] 회의장에서 르펭의 연설에 대한 집단적 보이콧을 행하기도 했죠. 이런 류의 집단적 보이콧은 유럽의 정치문화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죠. [니 얘기는 들을 필요도 없으니깐 그냥 찌그러져~!] 하면서 [왕따] 시키는 거잖아요? 바꿔 말하면, [너 같은 민주주의의 적은 입을 꼬매 버려도 돼~!] 하는 건데, 어째 좀 그렇죠? 요즘 중도파들도 그만큼 불안해 하고 있고, 자신없어 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죠. 다시 말해, 얘네들 조차도 르펭같은 애에 대해서만큼은 [똘레랑스]를 발휘할 수 없을 만큼, 현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다는 얘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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