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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분과) 영국 노급의 학교교육-"타협? 포섭?"

2002.04.25 13:07

이론실장 조회 수:973 추천:1

** 마치 제 개인 게시판 같군요. 담임을 안 맡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네요. 남는 시간을 주체를 못하겠어요!!! 작년에는 거의 엉덩이 붙일 사이가 없었는디.
*** 저지하라, 저지하라, 저지하라! 희야의 독점을 무너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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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예전에 누군가가 작성한 발제문을 올립니다. 내일이 세미나지요. 읽어오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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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존슨, "영국 노동계급의 학교교육에 대한 소고(1780-1840)"

산업혁명과 더불어 등장한 영국의 노동계급은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노동계급의 등장으로 지배계급은 이들의 '동의'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를 문제 삼게 되었다.
저자는 산업혁명, 계급 통제, 그리고 근대학교 체제의 발달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중교육은 그 이전의 학교형태들과 근본적인 차이를 가진다. 우선 대중교육은 만인을 위한 교육으로 정의된다. 소수 특권계급을 위한 교육과 달리 여기서는 특히 노동계급 자녀를 교육시켜야 된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산업혁명 이전에 노동계급 자녀들은 사학(private school, 즉 부인학교 등)에서 교육받았다. 교사의 질이나 교육 내용으로 볼 때 이 교육은 가정이나 이웃공동체의 범주를 넘지 않았다. 부모들은 교육내용과 운영에 직접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나 대중교육은 제도('제공된 것')의 일부분이었다. 이 교육은 노동자계급의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공립'으로 운영되었다.
18세기에도 공립학교가 있었으나 이는 비행청소년이나 극빈자를 위해 보호의 차원에서 운영하는 극히 선택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교육은 계급을 '시민화'하고 '개선'시키는 대규모 추동력으로 기능하고자 하였다.
19세기가 되면 학교는 급격히 팽창하여 공히 대중을 위한 학교가 된다.

연대기
1. 1780년부터 1790년대 추반까지
대중교육의 성장은 1780년대의 일요학교 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학교는 애초에 불량아 교화 목적으로 지배층의 광범한지지 속에 시작했다. 그러나 일요학교는 전개과정에서 각기 다른 계급적 기반(노동계급, 국교회, 중산층 연합 등)에 따른 계급성향들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노동계급 스스로에 의해 토착적 조직망의 일부분으로서 일요학교가 운영되기도 했다.
2. 1790년대부터 1803년까지
이 시기의 전형적인 교육형식은 산업학교이다. 진보적 부르조아들의 교육시도는 저지되었으며, 강압적 색채를 띤 귀족적 온정주의 교육충동이 득세했던 반동적인 시기이다. 일요학교 운동의 성장은 둔화되었다.
3. 1803년부터 1818년까지
이 시기에 출현한 반장제 학교(모니터리얼 스쿨)는 최초로 대중 주간학교라는 형식이었다. 이 학교는 경제성 때문에 옹호되었으나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선학교, 사학, 일요학교를 합친 형태의 학교가 오래 남아있었다.
4. 1820년대
1818년까지 공립 주간 학교는 별다른 발전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이 시기는 성인교육(기계공 학습소 등)이 발달했고, 진보적 부르조아나 혁명적 노동계급이 급진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던 시기이다.
5. 1830년대에서 1840년대까지
1830년대에 공립 주간학교는 양적으로 크게 팽창한다. 박애주의자들은 정부와 교회와 협력하여 오랫동안 토착 조직망에 맡겨졌던 지역의 교육까지 포괄하고자 했다. 국교회는 교육에 국가 개입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질적인 면에서 보면, 1835년 이후 교육적 자유주의가 발달하고 학교체제의 기간구조들이 만들어졌다.

경제적 논의와 '기술필요론'이 부딪힌 막다른 골목

교육팽창과 산업혁명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제까지 이에 대한 해답의 대부분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노동기술(문해, 기술적 지식)을 가진 노동자가 필요했고 이것이 교육팽창으로 연결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산업부분에서 자본주의적 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단기적으로 문해율은 퇴행되었다. 즉, 산업화는 오히려 공동체 속에서 습득할 수 있는 기술과 문해력을 파괴시켰다.
2. '기술필요론'은 교육사업의 본질 그 자체에도 맞지 않는다. 즉, 1850년까지 학교에서 특정 직업기술을 가르치자는 강조는 거의 없었다. 기술은 가족이나 공동체 혹은 작업장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었다. 산업학교는 소녀나 부랑아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기계공 강습소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합리적 재충전(rational recreation)을 위한 것이었다.
3. 최신 산업의 사회적 논리와 학교의 새로운 형식이 일치하지 않는다. 즉, 당시의 산업은 노동자 중 숙련된 엘리트의 창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새로운 학교는 단수 육체노동자가 될 아이들을 위해 설계되었다.

19세기 교육자들의 목표였던 문해교육은 실상 더 중요한 목표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문해기술이 아니라 그 '도덕적' 효과였다. 이러한 예는 국교회가 운영하는 반장제 학교에서 극명하게 보여지는데, 이들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마음의 바탕(the frame of mind)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의 공통어는 '억제, 습관, 질서' 같은 것들이었다.
반장제 학교는 교수 기술면에서는 조야했으나 권위체계와 보상, 체벌은 정련화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교육의 기능은 잠재적 능력의 개발이나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고 규율하는 것이었다. 반장제 학교 체제는 노동규율과 대항 혁명적 특성의 표현이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학교에 노동과정의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도록 요구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더욱 훈련된 사회성을 가진 인간형을 창조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의 저항

대중교육이라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었던 노동계급 내부의 요소를 살펴보자.
산업혁명 당시 대부분의 교과서나 통계조사는 노동자들을 어리석고 아둔하며 불만에 찬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도시의 산업 노동자는 정력적이고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비이성적인 특성을 그리고 있다.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의 전체 삶의 양식을 비난하였다. 이 비난에 포함된 것은 노동자들의 상식, 정신성, 민속, 제도 등 모든 노동자 문화였다. 그러나 산업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문화적 분석'을 '도덕성'으로 대체한다. 저자는 우리가 '도덕성'에서 '문화'로 전환해야만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적 구축을 꿰뚫을 수 있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의식하든 않든 매일의 일상 속에서 저항을 쌓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유주의 이론과 진보적으로 처방된 약속에 복종하기를 거절하고 부르조아의 가치를 침범하고 있었다. 부르조아 사회조사가들은 빈곤상태, 게으름, 음주와 같은 노동자들의 저항행동을 문화적으로 분석하기를 거부하고 도덕성으로 재단해버렸다. 사회적 진보를 위해 이런 구시대 대중 문화들은 척결되어야 했다. 근대 산업은 노동자들의 인간 본성의 새로운 요소, 새로운 관계를 학습하기를 바랐다. 교육이라는 문화적 침략은 자본주의 발달단계에서 유기적(organic)인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저자는 사회통제라는 용어의 애매성을 지적하면서 계급통제라는 용어의 적합성을 주장한다.

노동계급의 도전과 헤게모니의 위기

저자는 1790년대부터 1840년대까지의 시기를 동의획득을 위한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긴 전쟁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이 시기 노동계급의 급진주의는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위협하였던 것이다.(형식교육제도와 정책들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창출과정에서 안정적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 이후의 일이다.)
영국의 노동계급 운동과 대중적 급진주의는 그 기원부터 고유한 교육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계급의 교육의 제도적 형식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학교, 대안적 내용, 대중적 교육매체를 창안하고 운영하였다. 챠티스트와 오웬주의자들은 특히 교육-진정으로 유용한 지식-을 신봉하였다.
이 시기의 교육사를 서술하는 한 가지 방법은 제도교육과 대항문화적 형식의 대립이라는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박애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에 존재하는, 급진주의가 활동할 수 있는 조직망을 제공하는 문화적 재생산수단을 규제하고 파괴하며 대체하고자 하였다. 반대로 급진주의자들은 제도교육을 대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832년 이후가 되면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1820년대에는 대중적 자유주의자들이 연합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후의 계급 자각적 시기에는 그러하지 못했다. 급진주의자들은 Broughamite 교육개혁을 거부했고 자유주의적 활동가들은 이들과의 직접대화를 중단했다. 동시에 아동 교육이 다시 중요성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활동가들은 성인교육에 등돌리고 아동교육에 집중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이는 1830년대 후반의 국가개입에 의한 교육팽창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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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Re..잘 봤습니다 실땅 2002.04.25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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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4/11이론분과 Sr 논의내용 정리 희야 2002.04.15 1060
98 덧3)차윤경 교수의 글입니다. "학교팽창" file 희야 2002.04.18 1127
97 덧2) 김기석 교수 "국가교육체제의 형성"파일임다. file 희야 2002.04.18 814
96 덧) 다음 세미나 일정 등... 희야 2002.04.15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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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4월 5일 이론분과 토론 보고 신호승 2002.04.09 764
93 추가) 다음 Sr 일정, 그리고 공개 경고 -_- ... 이론실장 2002.04.08 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