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끼는 후배의 글(근데 그녀석은 제가 아끼는 줄도 모를 겁니다.)인데요, 그 친구한테 허락도 안받고 그냥 올려봅니다.(5월10일 날짜군요.)
저는 정치 분석은 영~꽝이어서... 종종 그 녀석에게 의존하곤 한답니다.(연구소에선 땅 차장, 천 샘...) 그냥 편안하게 함 읽어보세요... 본격적 정치 평론은 아니고, 그냥 생활글 비스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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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창당 직후인 99년에 입당을 했으니 지금은 벌써 3년 가까이 당적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는 일이래봐야 한 달에 1만원씩 당비 납부하고(그것도 자동이체로), 당 기관지라도 오면 그거나 한 번 쓱 보고, 이메일 날라오면 제목만 대충 보고, 가끔씩 (진짜 할 일 없을 때) 홈페이지 들어가서 게시판이나 살펴보고(그리고 아주 가끔 글 올리고), 진짜 아주 가끔씩 분회모임이나 정기총회에 참석해서 투표 한 번씩 하고...그게 전부다. 아주 열성당원들은 종종 거리선전전도 나가고, 국회 앞에 가서 시위도 하고(그러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고), 입당원서 들고서 여기저기 쫓아다니기도 하고,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맹렬히 말싸움도 벌이고 그러던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당원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당'과 '나'를 완전히 동일시하고 있질 못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바쁘거나 혹은 게을러서이다.
엊그제는 우리 동네 분회모임에 참석했드랬다. 나도 아주 드문드문 참석하는 편이라 뭐라 할 말은 없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참석자가 적었다. 우리 분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우리 지구당 위원장이랑, 나랑, 동네 아줌마 한 분(실은 예전 구로지역 노동운동에 깊숙히 관여했던 분)이랑, 또 다른 여성당원 동지 한 분, 거기다 그냥 놀러온 민주노총 간부 아저씨 한 분이랑, 우리 지구당 원로 아저씨 한 분. 그래서 그냥 조촐하게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었다. 상가임대료가 어떠니, 지방선거가 어떠니, 당 재정이 어떠니, 노풍이 어떠니...서울대 정치학과 89학번이면서 신림, 봉천 일대 지역주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우리 위원장은 부인이 얼마전 딸을 낳았는데 돈 나올 구멍은 없고 해서 퍽이나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한 달 활동비를 아무리 아껴써도 30만원은 든다고, 벤처하는 선배 하나가 매달 80만원씩 생활비조로 보내온다고, 지난 달에는 월급 60만원을 당비로 헌납했더니 먹고살기가 더 팍팍해졌다고, 이번 대선 끝나고 나면 내년부터는 진짜 어디가서 돈이라도 좀 벌어야겠다고...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으니, 솔직히 좀 미안했다. 얼마 전에 지방선거준비용 특별당비랍시고 10만원을 내면서 살짝 뿌듯해 했던게 마구마구 쪽팔려지기 시작하는 순간.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아마 다음 대선(2007년)이 끝난 후에나 들어오게 될 거라고 그랬더니, 우리 위원장은 잠시 아쉬워하더니 이내 그 때까지는 기필코 '제1야당'을 만들어놓겠노라고 다짐한다. 그 때 가서 같이 잘 해 보잔다. "여당까지는 힘들까요?" 그랬더니 박장대소...
술자리를 마치고 지구당 사무실에 들러보니 밤12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와 선본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후보는 얼마전 서울대 공대학생회장을 했던 친구고, 선본원들은 대부분 아직 학생티를 못벗은 애띤 얼굴들.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들이 하도 반갑길래 회의가 끝난 후 함께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아직도 '우리 당'이 '학생운동'에 이토록 크게 기대고 있다는 게 조금 씁쓸하기는 했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는 거니깐.
요즘 민주노동당은 2가지 시련에 봉착해 있다. 한 가지는 이미 지난 총선 때 울산에서 크게 불거져나왔던 당내 NL-PD 의 갈등이 최근 점점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지지층의 상당수가 노무현쪽으로 흡수되어 가고 있다는 문제. 둘 다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는 복잡한 문제...나로서는 NL-PD 문제야 어차피 당이 원내진출을 하기 전까지는 당의 존폐를 뒤흔들 정도의 큰 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 같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가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을 것이라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었다. 따라서 지금 와서 뭐 특별히 새삼스럽게 느낄 것은 없다.
근데 [노무현] 문제는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당원들이 대단히 당혹스러워하는 문제이다. 당장 나만 해도 노무현의 선전에 아주 고무되었었으니깐. 근데 엊그제 지구당 사람들을 만나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된다는 느낌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권영길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그 개인의 정치적 지향이나 정책이 대단히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그걸 받쳐주는, 그리고 거기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고 없고에 있었다. 쉽게 말해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에게는 우리동네 지역구 당직자들처럼 온몸받쳐 헌신하는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해 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충성스런 동지들이 전국적으로 수천명 깔려 있지만,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에게는 그게 없다. 물론 [자연인 노무현]에 대한 열성 지지자들은 이른바 [노사모]라는 이름으로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자연인 노무현]과 이제부터 보게될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의 차이는 이내 [노사모]도 깨닫게 될 것이며, 그 때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이 주로 기대게 될 [민주당 지역조직]과 [민주노동당 지역조직]의 차이는, [한나라당 지역조직]과 [민주노동당 지역조직] 간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게 이내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설사 [민주당 대선후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노무현]과 내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기껏해야 한 줌 정도 밖에 안 될꺼라는 느낌...프랑스의 죠스팽이 [죠스팽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그가 [자연인 죠스팽]이 아니라 [사회당의 죠스팽]이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이번 대선에 내가 투표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겠다. 글구 출국하기 전에 돈 좀 만들어서 우리 위원장한테 살짝 찔러주고 가야겠다. 분유값이나 하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