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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다시 정체성을 고민함, 괴롭게

2002.12.10 20:14

손지희 조회 수:1249 추천:1

제가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강원지부 권혁소 동지의 글입니다. 강원지부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어 함께 나누었으면 해서 퍼왔습니다. 특히 누우떼의 이야기. 끝에는 권혁소 동지의 글에 대한 제 답글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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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고민함, 괴롭게]

어제는 하루 종일 '스토커'의 괴롭힘에 힘들었다.
맨 처음 그는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정직한 대화를 위해 나는 직함과 이름을 밝혔다. 그랬더니 그 '시민'은 '내가 왜 실명을 밝혀?'
하면서 자기 주장을 얘기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그의 주장을 읽으려면 강원도교육청 홈페이
지 자유마당에서 '남윤호'의 글을 참고하여 읽으시길...그는 자신을 안산에 사는 남윤호라고 소개
했다.)

'원주의 성매매 교사들은 이미 벌을 받았다. 그런데 왜 또 다시 해임을 주장하는가?'

그렇다. 그의 말은 일면 맞다. 일사부재리의 원칙? 형사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그들에게 또 다른
가혹함을 요구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까지 계속된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나는 욕을 했다. 아마도 2년 만에 처음, 전화상담을
하면서 욕을 한 것 같다. 이렇게 했다.

"야, 이 자식아, 여긴 노동조합이야. 우리는 그들이 조합원이었다 해도 파면을 요구했을 거야.
그러니까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다면 이런 식으로 업무방해 하지말고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 당신의 그런 주장은 그들의 실명과 학교 공개로 이어질 거야. 그나마 우리는 지금까지 나름대
로는 그들을 보호해 왔어. 이 XX아!...."(뒤의 XX는 더 심한 욕이다.)

너무 심한 욕인가?

하루 종일, '노동조합'과 '도덕성'에 대한 질문이 괴롭게 한다. 그것이 화두다. '할 일'이 없으
니 별 가당찮은 질문이 사람을 괴롭힌다.

실명공개로 맞받아 칠까? 그것이 노조의 정체성인가?
파면을 재차 요구할까? 그것이 노조의 정체성인가?
모르는 척 침묵할까? 그것이 노조의 정체성인가?
'시민'의 주장처럼 그들은 형사적인 벌을 받았다. 그러니 눈 감을까? 그것이 노조의 정체성인
가?
교육청과 적당한 교섭을 할까? 그것이 노조의 정체성인가?


'그가 다시 전화를 걸어 온다면 어떻게 대꾸할까'로 하루 종일 뒤숭숭하다.

요 며칠 전, 텔레비젼에서 '세렝귀티 200일의 기록'인가 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PD의 구성의도도 그러했거니와 가장 감명, 아니 감동을 주었던 장면은 누우떼들의 목숨을
건 '도강' 장면이었다.

몇 날 며칠 씩 강변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던 누우떼들, 그들에게는 건너야 할 강이 있었다. 건너
야만 만날 수 있는 초원이 거기, 강 저편에 있었다. 강을 건너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어서
물살에 휩쓸리는 일도 생기고, 악어떼에게 몸을 내어주는 일도 생기는, 그야말로 누우떼들에게는
매년 겪는 일이지만 결코 일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생' 앞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한 마리 누우가 앞장을 선다. 아마도 그 놈은 그나마 강폭이 가장 좁은 곳, 물살이 제일 약한 곳
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강 가운데로 전진한다. 그러자 수십만의 누우떼들이 일제히 강으로 뛰어든다. 그렇
다. 그들 중에는 무리의 외곽에 자리를 잡은 놈들도 있고 무리의 후미에 자리를 잡은 놈들도 있
다. 악어가 노리는 것은, 무리의 후미다. 대열이 흩어진, 중심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빈약한 놈들
이 악어의 표적이다. 물론 물살에 떠내려가 목숨을 잃는 녀석들도 생긴다. 누우떼들에게 그것은
어쩌면 감수해야 할 당연함일지도 모른다. 떠내려간 그놈들은 독수리의 밥이 된다.

최승룡-김순봉 선생이 향후 2년, 강원지부를 이끌 대표로 당선되었다.
물론, 3500 강원지부 동지들이 누우떼는 아니다. 누우떼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인식하는 그
누구라도 먼저 강건너기에 앞장 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최-김 선생이 앞장서리라 기대한다. 아
니 앞장서야 한다. 앞장서기 위해 나섰으므로.

어제 강원도교육청에 정통한 아무개씨를 만났다. 그는 나를 후미에 처진 누우 보듯이, 안타까움
이 역력한 표정으로, 별 말도 없이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아직은 다리 하
나쯤은 내어 줄 수 있다고.

나에게 묻는다.
강 건너에 푸른 초원이 있다. 풀을 뜯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강을 건널 것인가? 어쩌면 풀을 만나기 전에 악어밥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말 것인가? 풀을 뜯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인데...

그런데 아니다. 무조건 강을 건너야 한다. 누우떼들은 강을 건너기 위해 강 가까이에 왔으므로.

최승룡 김순봉 선생이 강을 건너는 집행부를 구성하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덧소리 한 마디 붙이면,
노동조합의 정체성, 그것은 '중도합리주의(이는 한교조의 슬로건이기도 하지만)'를 버릴 때 가
능하다.
노동조합의 정체성, 그것은 '적당주의'를 버릴 때 가능하다.
노동조합의 정체성, 그것은 대결구조를 명확히 할 때 가능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저의 답글>

지난 9월 강원지부 활동가 연수 때 '교육공공성에 터한 공교육재편"을 주제 발제하러 갔던 서울지
부 조합원입니다. 당시 저는 '강원도의 힘'을 느끼고 기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강연을 몇 번 해 보았지만, 진지함과 원칙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원지부의 정체성으로 확 잡히더군요. 이후 서울로 돌아가 강원지부를 훌륭한 지부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비쳤습니다. 강원지부 동지들은 지난 활동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 가지셔도 좋습니다.이번 당선자도 그런 강원지부의 힘을 이어나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권혁소 동지의 글을 읽고 나서 왠지 제 코끝이 시려옵니다. 교육부가 환호작약하는 꼴을 도저히
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파트너를 제공해주느냐, 대중적 지지를 빽으로 믿고 사용자와 맞짱뜰(=정면대결!)할 지도부를 택하느냐의 기로에 서있는 전교조가 눈을 감아도 어려 하루하루 피가 마를 지경입니다. 행여라도 전교조가 답보의 길로 들어서면 어쩌나...... 물론 그럴 리 없고 전교조 조합원 대중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건승하십시오! 강원지부 동지 여러분!!
(중앙선관위는 이런 글에도 '불법'의 딱지를 붙이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