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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교육 패러다임 전환과 한국 사회의 변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손지희(진보교육연구소)


1. 교육패러다임의 전환과 담론투쟁

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패러다임이나 과학혁명이라는 말은 자연과학에서 출발하였지만 각종 학문 분야로 파급되어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회현상을 정의하는 개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패러다임 논의에서 중요한 지점은 어떤 패러다임이든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패러다임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쿤이 ‘과학혁명’이라 지칭한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교육패러다임”은 '교육현상을 규정짓는 인식론적, 이론적 총체적인 틀과 구조'라 정의할 수 있는데, 교육패러다임 역시 어느 하나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교체, 전환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20세기에 새로운 교육과정사조가 등장하여 전통적 교육패러다임과 각축관계를 이루며 지배적인 사조로 자리잡아가는 과정도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세계적 흐름에서 현 시기는 교육 패러다임의 교체기이다. 성취도, 경쟁, 수월성 등을 중시하던 시장주의+보수주의 교육패러다임은 '낡은 것'으로 규정되고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조응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으로써 협력교육과 이를 통한 사회적 역량 육성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대체되는 과정에 있다. 현재 진행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방향에 대한 논의는 거대한 사회문화적 변화 양상과 맞물려 이루어지고 있는데 2010년의 OECD보고서 「The Trends Shaping Education 2010」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보고서에서는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 지역 간 격차 및 산업 부문들 간의 불균형이 커질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는 등 세계 체제 전체가 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육도 이러한 변화와 연관된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고령화, 양극화/개별화, 에너지/환경의 위기가 교육과 관련된 도전들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내용이다(심광현 외, 2012, 『미래교육의 열쇠 창의적 문화교육』2장).
한국사회 역시 본격적인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들어섰다. 실천의 영역에서 이런 흐름은 일찌기 실물화되었다. 교육시민사회단체의 ‘교육혁명운동’, 2012년 대선에서의 대학통합네트워크와 국가교육위원회 공약화, 진보교육감들의 무상급식 추진과 혁신학교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교육혁명공동행동의 활동이다. 2012년 2월 공식출범한 교육혁명공동행동은 교사 뿐 아니라 교수, 학부모, 청소년단체와 사회단체, 노동조합 및 노동자단체 등이 폭넓게 참여하여 구성된 단체로서 신자유주의 극복과 교육 공공성 실현이라는 기조 하에 "교육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을 지향한다고 밝힌 바 있다(교육혁명공동행동 연구위원회, 2012,『대한민국 교육혁명』). 2004년 'WTO교육개방 저지와 교육공공성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 『공교육 새판짜기』라는 책자를 통해 당시까지의 교육운동의 실천과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형태로 진보적 교육대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2004년 공교육개편안의 문제의식과 내용을 이어받으면서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에 맞서는 공동행동과 연구활동을 통해 한층 체계적이고 풍부하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자처하며 펴낸 책이 『대한민국 교육혁명』이다. 저자들은 이전 공교육개편안에 비해 "협력에 기초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로 교육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분명히 제출했다는 것과 교육 주체들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 보다 풍부해지고 정교화된 대안들을 담았다는 점을 진일보한 측면으로 평가한다.

"첫째, 교육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경쟁과 수월성 추구의 교육, 상위 서열의 학교 진학이 목표인 입시 위주의 교육, 자본과 산업의 요구에 종속된 교육으로부터 협력에 기초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교육의 방향으로 정립하였습니다. 이것은 비고츠키 교육철학 등 교육사상에 대한 연구활동의 성과와 핀란드 등 협력과 발달에 기초한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실천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둘째,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에 맞선 교육 주체들의 실천적 활동을 통해서 대학에서부터 유초중등 교육에 이르기까지 대안과 정책들이 보다 구체화되고 풍부해졌습니다. 특히 대학 주체들의 법인화반대투쟁과 등록금 반값운동으로 공공성에 입각한 대학체제 개편의 모습과 경로가 분명해졌으며, 대학체제 개편의 현실적 가능성도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대한민국 교육혁명』서문 중에서)


한편,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은 교육과정과 평가 등 교육제도를 구성하는 각론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교육평가는 서열화를 위한 목적에서 피드백을 위한 목적으로, 양적 평가체제에서 질적평가체제로, 결과중심에서 과정중심으로 평가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경기혁신교육백서 ‘미래형 인재교육의 패러다임 변화’ 중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교육과정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다. 1. 교육과정의 수립과 구현의 상호 연관성을 중시한다...2...”(초등교육과정위원회, 성장과 발달을 돕는 초등교육과정 길라잡이, 2013)

교육운동진영에서 꾸준히 교육패러다임 논의를 이어오는 가운데 정치적인 지형의 변동도 이루어졌다.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진보교육시대를 창출할 토대가 마련된 것은 교육패러다임 전환 흐름에 있어서 커다란 '사건'이다.
멀리는 25년 가까이는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차원의 논의'는 많이 성장해왔고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진출함에 따라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현 시기, '교육패러다임'이란 말은 제한적 의미를 넘어서게 되었다. 한국교육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변화와 대안을 논의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부상해가고 있다.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 등 새로운 교육적 의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졌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수립되었고....”(심성보, ‘새로운 사회를 여는 교육자치 혁명’(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중에서)

이처럼 한국교육은 본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진보교육감이 대거 진출한 것을 계기로 교육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진보교육시대와 한국교육패러다임 전환” “혁신학교운동과 공교육 패러다임 변화” “고교체제개편과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방향” 등 교육패러다임 전환을 둘러싼 각종 토론회들이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교육감 대거 진출에 의한 진보교육시대의 창출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보여주고 실현가능성을 확대시킨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못하던 것을 진보교육감이 해줄지 모른다는 당장의 기대가 앞서는 면도 없지 않겠지만 진보교육감이 13명이나 당선될 수 있었던 역동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흐름이라고 하겠다. 겉보기에는 여전히 구패러다임은 강력하고 지배적인 듯 보이지만 이미 현실적 근거와 당위성을 잃은 상태이며 대중적으로는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려는 단계라고 본다면 지나친 것일까.
그간 진행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논의를 통해 도출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지향과 원리들은 ‘교육에 대한관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교육의 목적 : 입시, 학력에서 발달로
- 교육실천의 원리 : 경쟁에서 협력으로
- 교육의 성격 규정 : 상품에서 공적 권리로
- 교육주체의 관계 설정 : 통제에서 자율적, 협력적 관계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은 '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반드시 포함한다. 패러다임 논의 초반에 핵심적 원리로 주목한 것은 '교육기본권 보장'과 교육시스템의 '공공성' 확립으로서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에서는 이를 1990년대 후반부터 중심적 원리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시장화' 공세에서 이러한 관점을 제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시급하기도 했다. 2010년경에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교육철학적 원리로서 '발달'과 '협력'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협력교육'에 대한 관심이 전사회적으로 크게 증폭되었다. '인간발달이란 무엇인가' '발달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인가' '교육을 통해 어떻게 인간발달을 이룰 것인가'라는 교육의 근본 문제에 대한 탐구도 진전되었다.
패러다임의 차원에서 한국사회의 교육문제를 논의하게 될 경우 구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간 충돌은 불가피하다. 특히 '학력' 개념의 전환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이 넘어서야 할 바로 앞의 산이다. 대세론, 현실론, 구조기능주의적 관점, 특히 신자유주의의 '경쟁력 강화 담론'의 위세가 워낙 강해서 담론지형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고 '학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교육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운동이나 혁신학교운동 주체들에게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새로운 교육모델이 그나마 '경쟁력'을 가지고 살아남고, 어필할 수 있는 전략인 것처럼 여겨졌었다. 이제는 다르다. 그간의 과정에서 '공공성과 민주주의' 담론에 '협력', '발달' 등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철학적 토대가 강화되었고 핀란드 교육이나 혁신학교 등 새로운 교육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조건이므로 '학력' 개념과 관련된 논쟁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각론에서의 담론투쟁들의 기저에는 한결같이 '학력관'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학력에서 발달로"라는 기본 방향이 설정되었고 학력의 재개념화 작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으며 기존 교육패러다임의 학력 개념을 인정한 채 '더 나은 교육'을 위한 우회로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분명해지고 있다.
구패러다임의 학력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듣기에 좋지만 현실감 없는 이야기"로 치부되는 국면은 지났다. 일제고사 투쟁을 계기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평가방식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평가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지점까지 나아갔다. 이는 교육을 통해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다. 양적이고 수동적인 현재의 학력 개념 하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입시체제가 형성하는 '학력'이 도대체 무엇인지 도전적이고 논쟁적으로 질문을 던질 만한 상황인 것이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기존의 학력개념과 다른 교육적 목표를 추구하는 혁신학교 운동 등을 통해 실질적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학력관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현 시기는 정책 각각을 둘러싼 대립의 수준을 넘어 패러다임 대 패러다임, 교육에 대한 관점 대 관점의 대립으로 상승하고 있는 국면이다.


<한국사회 교육패러다임 변화 흐름>



2.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1)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관점과 철학 : 교육관과 인간관

교육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낱낱의 요소들을 통일시키는 핵심 계기는 '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이다. 교육 패러다임의 교체 과정에서 벌어지는 담론투쟁에서 구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은 겉으로는 '제도'나 '정책'의 방향을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는 것으로 보일 테지만 실제로 다툼의 기저에는 '관점'의 차이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앞서 거론한 '학력' 개념에서의 차이가 그렇고 2000년대 이후 치열하게 다투는 의제로 부상했던 몇몇 사안들을 돌이켜보면 교육을 바라보는 근본 관점 자체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고교평준화, 무상급식, 일제고사를 거쳐 최근의 자사고와 9시 등교에 이르기까지 논쟁의 양상을 보면 관점의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러저러한 얘기를 거쳐 대립은 결국 '입시에 방해된다'와 '그게 무슨 교육이냐'로 수렴한다. 이렇게 써놓고 나서 보니 엄청나게 명분이 탄탄해 보인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은 담론투쟁의 장을 열어젖히는 실천을 해야 하며 담론투쟁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고 명분 있는 내용을 들이밀기 위해 연구하고 소통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집단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이다. 기존의 교육과 인간, 사회에 대한 잘못된 관점과의 투쟁이며 이를 바꾸는 실천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경제의 부속물로 교육과 인간을 종속시키며 대상화시키고 이 사회를 공동체가 아닌 '경쟁의 정글'로 바라보는 천박한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런 철학적 기반 없이 '인적자원개발' '국가경쟁력'을 외쳐대는 것은 아니다. '구성주의 교육철학'의 상대주의적 인식론과 실용주의적 교육관이 신자유주의가 교육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보는 관점의 근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을 '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심고 경쟁을 기본 질서로 하는 사회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의도했던 바였다. 하지만 사회양극화, 불평등 심화, 인간다운 가치의 포기, 문화역사적 주체로 형성되어야 할 후속세대들에게 발달의 위기마저 가져오고 있다는 생생한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결과로 보이는 현실들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논의가 더 축적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철학'이 부상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은 충분히 성숙되어 왔다. 다만 신자유주의 교육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모습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학력저하, 규율붕괴 등을 이유로 보수회귀적인 흐름으로 나아갈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다른 교육,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은 그동안 제출했던 교육대안이 신자유주의가 몰락되기만 하면 저절로 현실화되리라고 순진하게 낙관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퇴조는 현재 진행형이며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현실화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해서 곧 다가올 미래 교육의 모습까지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관점과 내용이 위와 같은 실천들 속에서 사회적 담론투쟁의 장에서 표출될 때 '또 다른 교육'의 가능성은 생성될 수 있다.
내용과 실천의 결합을 필수로 하는 교육패러다임 전환 운동은 다음과 같은 관점과 원리로서 교육, 인간, 사회를 바라보고자 하며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이 사회 주체들의 '상식'으로 만들고자 한다.
현시기 지배적 교육패러다임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교육관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 서비스 소비 상품에서 공적 권리로 (교육은 상품이 아닌 공공재이자 공적 권리)
- 입시에서 발달로 (인간적 가치를 포기하는 선별이 아닌 주체적 역량의 형성이 교육의 본질적 기능)
- 경쟁에서 협력으로 (협력은 윤리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차원을 넘어 인간발달의 원천)

이러한 관점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먹기 좋게 잘 구워진 비둘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저항과 대안 모색이라는 협력적 연구와 실천의 과정에서 형성된 지향들이다.
또한, 인간을 경쟁력 강화의 대상이자 상품 소비자, 심지어는 '잉여 노동력'으로서 규정하고 바라보는 '도구적' 관점과 전혀 다르게 인간을 바라본다.

사회화의 대상, 쓸모로 인간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도구로 인간을 바라보는 것에서 문화역사적 주체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문화역사적 주체로 형성되어 가는 '발달지향적', '협력지향적' 존재라는 규정과 의식적 깨달음은 교육을 보다 주체적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해준다. 문화역사적 주체라는 것은 이 세상을 만들고 변화시킨 주체는 인간 자신인 동시에 자신이 만든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교육이 주체형성의 도구인 만큼 인간은 교육을 형성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사회화의 대상이 아닌 ‘문화역사적 주체'라는 관점은 교육을 인간의 실천의 산물로 보기에 인간 자신이 주체적으로 교육문제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변화시켜간다고 여긴다.

2)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목표와 기본 방향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그리 새롭지가 않다. 이런 역설적 상황은 그간의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에 밀려 후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계기들을 통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내용의 적지 않은 부분을 사회적으로 표현했고 일정 정도 승인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첨병이나 다름없는 혁신학교의 긍정적인 효과가 부분적이나마 나타나고 있으며 낡은 패러다임에서 비롯되는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다. 진보교육감의 대거 진출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지지기반을 확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은 먼저 '과학적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목표로 하는 '교육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이러한 교육적 목표를 위해 요청되는 새로운 공교육시스템의 핵심 구성 원리를 그간의 교육패러다임 논의의 핵심을 추려 제시하고자 한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과 교육 구성의 원리

"자유의지를 지닌 협력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의 총체적 발달

95년 교육개혁안에서는 교육적 인간상을 "21세기 신한국상"라는 제목을 내걸고 신한국상의 특성으로서 ▶덕성과 공동체 의식이 강한 「더불어 사는 인간」, ▶새로운 지식 정보 및 기술을 창조하는 「슬기로운 인간」, ▶국제화·세계화 시대를 주도할 「열린 인간」, ▶일의 가치를 알고 부지런히 「일하는 인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인간상을 '총체적 인간발달'이라는 견지에서 평가하면 문화를 새롭게 창조하고 역사를 일구어가는 존재 즉 주체적 존재로서의 형성이 아닌 사회역사적 흐름에 최대한의 적응력을 발휘하도록 적응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오랜 시간 문화역사적으로 형성해온 '자유의지'를 형성해온 존재임을 간과한 것이며 '창조성'을 한정적, 도구적 개념으로만 사용하기에 사회변화를 인간주체와 유리된 통제불능의 문제로 설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능동적인 발전 전망'을 결여한 수동적인 인간상이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에서는 지성, 정서에 비해 간과되었던 '자유의지'의 형성을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지향해야 할 핵심 덕목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지성, 정서, 의지가 하나의 총체로 결합된 것이 바로 '인격'이라 불리는 것이다. 즉 교육을 매개로 교육적 관계 속에서 정서, 지성, 의지가 총체적으로 발달된 문화역사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궁극적 목표이다.
새로운 주체형성의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구성하는 원리는 '협력'이다. '협력'이라는 원리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과 이론 양 측면에서 모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경험적 측면에서 경쟁교육이 갖는 반교육성을 실제 경험으로 체감하면서 이와 정반대의 개념인 협력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점점 높아졌다.
인간발달에 대한 이론 역시 '협력'이 도덕적, 인간적 가치의 차원은 물론 주체적 인간 형성의 '원리'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협력교육'의 아이콘이 된 핀란드 교육이 기반하는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 뿐 아니라 현대 뇌과학에서의 새로운 발견들도 협력의 '교육적 가치'를 지지하고 있다.
'경쟁'의 원리를 폐기하고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에 더한 새로운 교육시스템 구성의 목표이다. 협력은 교육시스템의 구성원리이며 교육을 통해 형성해야 할 중요한 인간적 가치는 협력기능이다.
'교육'은 총체적 인간 발달을 도모하는 핵심적 기제여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올바른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은 상생과 협력의 시대 창조라는 현 시기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문화역사적 과제와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와 다른 새로운 교육에 대한 모색의 흐름은 한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예컨대, 기존의 학력관, 교육관과 확연히 다른 면모를 보이는 "핵심역량"은 사회변화, 인간변화, 교육변화를 연결지어 사고하는 맥락에서 제출된 개념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제출된 것이고 그래서인지 기존의 패러다임을 ‘수습’하고 ‘보완’하는 색채가 짙지만 자본이 대면하고 있는 축적의 위기에 대해 나름대로 교육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려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총체적 인간발달을 위한 협력교육시스템

앞서 '발달'과 '협력'이 교육철학과 원리로서 점점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전파되고 있다면 교육 제 영역에 대한 구체적 대안들은 패러다임 초기 논의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고 정교화 되어 왔으며 몇 차례의 선거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제도화되기도 하였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발달’과 ‘협력’을 원리로 하여 제 영역들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세부적인 설명은 「대한민국 교육혁명」을 참조하면 된다.

□ 모두가 함께 발달하는 협력교육과정
-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목표와 발달기준 설정 (발달과정을 고려하여 교육단계별로 중심 활동과 중심 발달 기능, 발달 목표 설정. 예컨대, 유아기는 놀이와 대상중심적 활동을 중심활동으로 하고 자기규제를 중심발달기능으로 하여 다양한 사물의 조작과 직접적 대상을 통한 낱말 습득, 모국어 듣기, 말하기를 통한 의사소통 기능의 기초형성 및 유아학교에서의 사회생활과 놀이를 통해 기초적인 자기조절 능력 형성을 발달 목표로 함)
- 발달적 관점에 입각하여 양과 난이도 구성
- 민주주의, 생태, 노동, 평화, 인권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내용 구성

□ 상향적 평준화 학제
-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 : 대입 자격고사화, 선별적 진학제도에서 개방적 입학제도로 전환, 대학통합네트워크 등 대학체제 개편
- 통합중등학교 체제 (전후기 통합, 계열 분리 폐지)

□ 발달지향 민주공동체 학교
- 교육적 상호작용 활성화에 적절한 소인수 학급(15~20인), 소규모 학교(학년당 100명 이내, 전체 30학급 이내)
- 학교자치 법제화 : 학교자치위원회, 학생회, 학부모회, 교사회 법제화
- '인간이해의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교사 간 협력 연구와 학습 지원

□ 발달을 돕는 협력평가시스템
- 발달적 관점에 입각하여 평가의 내용과 기준을 정립 (과거의 평가 중점이 발달 결과라면 발달적 평가는 발달과정을 중점으로 함)
- 일제식 지필고사 폐지, 학습자와의 상호작용을 핵심으로 하는 관찰과 대면 위주의 교사별 평가로 전환
- 학교생활기록부를 발달과정기록부로 전환

민주주의와 자율성 신장을 위한 교육 자치 시스템
- 국가교육위원회 (교과부의 관료적 통제 체제를 해체하고 각계각층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공공성을 바탕으로 교육정책 수립하기 위해 독립적인 국가기구로서 설치하여 국가차원의 교육정책 심의 의결)
- 시군구 교육청을 학교지원센터로 전환
- 교장자격증제 폐지, 선출 보직제 전면 시행

새로운 차원의 교육공공성 실현
-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 전면 무상교육 : 유아에서 성인까지 무상교육 전면화
- 사학의 공공성 강화 : 부실사학의 국공립화
-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교육인프라체제 확립
- 교육을 풍성하게 하는 교육 문화 인프라 확충
- 지역사회-학교 간의 협력적 사회관계망 구축
- 성인 교육기회의 사회적 보장 : 전 생애 발달을 위한 전사회적 프로젝트 진행, 체계적 학습을 통해 주체적 지성화를 도모하는 교육프로그램 개발, 제공



3) 새로운 교육패러다임과 인간, 사회에 대한 전망
인간은 교육을 통해 사회화되는 대상이라는 인식과 교육은 사회구조의 반영물일 뿐이며 최대한 충실하게 분업구조와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도구라는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인간, 교육, 사회 간의 악순환을 실현해왔다. 신자유주의 교육체제의 핵심 지향인 '교육재편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모토는 이미 현실에서는 파탄 난 상태임에도 신자유주의는 이전 교육패러다임의 폐해를 확대 강화시킴으로써 우리사회의 총체적 성장 동력을 갉아먹었으며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 형성'의 요체인 교육시스템을 '경쟁시스템'으로 만들어 '경쟁적 인간 형성'으로 왜곡함으로써 인간적 가치를 포기하게 만드는 등 주체형성 과정 또한 왜곡시켰다. 왜곡된 주체형성의 결과는 사회역량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교육을 황폐화시켰을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인간발달과정을 왜곡시킴으로써 교육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전이, 확장되어가고 있다. 교육불가능의 시대라는 비판과 발달 위기의 심화로 인한 각종 문제들이 이를 방증한다.

<경쟁교육 패러다임-인간발달왜곡-사회발전역량 퇴행의 악순환>


재생산에 대한 절망에서 선순환을 향한 실천으로

교육 패러다임 전환 운동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한국 교육의 구조적 질곡과 위기의 문제, 발달 위기 등의 시대적 과제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실천적 성격을 가지는 것과 함께  상생, 문화, 생태의 시대를 창조할 문화역사적 주체를 형성하는 기지로 교육을 바꾸고자 한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주체적 인간 형성-사회역량 강화의 선순환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에서 최근 다시 주목하기 시작한 주제는 "교육을 통한 사회 변화의 가능성"이다. 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사회평등화 등 사회개혁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는 비관적 결과가 나온 이후 자본주의 사회의 분업구조, 계급관계를 교육이 재생산한다는 논의에 갖혀 한동안 교육을 통한 사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 현실성 없는 낭만주의에 불과하다는 선입견이 생긴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육패러다임이 만든 폐해를 치유하고 우리사회의 문화역사적 역량이 성장할 동력을 형성하는 선순환을 이끌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는 점을 외면하기에 현재 상황은 여유부릴 틈이 없는 위기적 시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위기적 시기는 '새로운 것이 출현할 계기'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의미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지성,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정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일구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은 구패러다임하에서는 형성될 수 없다. 새로운 교육을 통해 새로운 주체는 형성되며 협력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들의 상호작용은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의 시대를 여는 길을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은 개척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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