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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현장에서] 9시 등교로 끝나서는 안 된다

2014.10.06 14:14

진보교육 조회 수:578

[현장에서]

9시 등교로 끝나서는 안 된다

                                                                                                                               권용해 / 안산OO고

못된 우리 사회가 사람을 얼마나 소박하게 만들었던지 요즘 고작 9시 등교 하나를 놓고 ‘삶의 질’을 들먹이며 입씨름들을 벌였다. 너무도 당연한 한 시간의 여유였을 텐데 이렇게 멀리 돌아와야만 했다. 조금은 갑작스럽게 맞이한 느낌도 있다. 그래선지 정치 관료 출신인 이재정 교육감이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폭넓은 의견 수렴 없이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반발이 진보 교육감을 지지했던 전교조 교사들 사이에서도 제기됐고, 그의 재임 기간 중에 학교 현장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하지만 본래 자본주의 사회의 교사란 대부분 체제 친화형 인간이어서 그런지 시행 일주일 째를 맞는 요즘, 한때 시끄러웠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관리자들의 호들갑과 늦춰지고 짧아진 점심시간으로 인한 허기와 번잡함을 제외한다면 학교 분위기는 평소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종교인들이 새벽 기도를 가는 이유는 그 시간에 정신이 가장 맑기 때문이라면서 아침 일찍 등교를 시켜야 맑은 정신으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다던 우리 학교 학교장의 말(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제발 농담이었기를…)에 공감했던 사람이야(우리 학교 샘들 가운데) 아무도 없었겠지만 “9시 등교를 하면 뭐하냐? 어차피 지각하는 애들은 똑같이 지각을 한다.”며 통제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교사는 많았다. 9시 등교 시행의 목적 그 어디에도 아이들의 지각을 방지하겠다는 의도가 들어있지 않은데도 지극히 개인적인 불만에 교육적 의미를 덧씌우니 말문이 막힌다.

9시 등교 이후 교문지도를 하다보면 등교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예전과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좋게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숨과 짜증 섞인 표정도 눈에 띄게 줄었고 여유가 묻어난다. 1교시 수업에 들어가면 이제 막 잠에서 깬 듯한 아이들이 꽤나 많았는데 9시 등교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요즘은 교실 분위기가 무척 밝아졌고, 밤새 굳어 있던 안면 근육이 풀려서인지 시끌시끌하다. 아이들에게 9시 등교의 안 좋은 점을 얘기해보라고 하니 ‘학교에서 잠이 안 온다’고 농담으로 답할 정도다. ‘학력 저하가 우려된다’, ‘수능에 생활 리듬을 맞춰야 한다’며 반대했던 분들은 자기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不動자세로 반성 좀 하시길!
아이들에게 9시 등교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예상 외로 아이들에게 하교 시간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는데, 30분 정도 늦어지는 거라면 저녁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기에 큰 부담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더 늦게까지 남아 있게 된다는 사실과 점심식사 시간이 10분 짧아진다는 사실에 대해 아이들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학교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이들에게 늦은 하교 시간은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빼앗기는 느낌이 들만도 하다. 농담처럼 오전 9시에 와서 오후 5시에 끝나는 것과 오전 6시에 와서 오후 2시에 끝나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은지 물으니 오전 6시에 와서 오후 2시에 끝나는 게 좋다고 한다. 어쩌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아이들만 없으면 교사도 할 만한 직업이라는 교사들의 오래된 농담이 아이들에겐 ‘수업만 없으면 학교도 다닐만한 곳’쯤 되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현재 아이들은 교실에서 확실히 덜 잔다. 이것만으로도 9시 등교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깨어 있는 상태의 질적인 측면이야 보장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스스로를 좀비라고 부르던 시대와 결별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된 셈이다. 어제는 9시 등교에 반대하던 학생이 찾아와서는 등교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너무 좋다며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었는데 요즘엔 25분이나 걸리지만 일부러 걸어서 온다고 한다. 등굣길을 따라 흐르는 안산천 산책로를 걷는 시간이 무척 즐겁단다. 매일 아침 시간에 쫓겨 허둥대던 아이들에게 이 정도의 여유를 줄 수 있다면 딱히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8시 30분이 되기 전에는 아예 교문을 개방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고 하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에 3학년은 9시 등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공식적으로는 7시 30분 등교, 9시까지 자기주도학습을 하다가 1교시 수업을 듣는다. 물론 9시 전에만 오면 지각 처리 등의 불이익이 없으므로 빠지는 학생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이 8시 이전에 등교를 마친다. 수능 시험을 앞두고 생활 패턴의 변화가 조심스러운 탓일 텐데, 이러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자발적으로 입시에 삶을 저당잡힌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고 체제에 순응, 복종하도록 만드는 회복 불가능한 시스템을 하루 빨리 끝장 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유보하는 데 너무도 익숙하다.

그 와중에 발랄하게 개김성을 실천하는 학생이 있었다. 9시 등교가 시행되는 첫날 3학년인데도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8시 50분에 교문을 통과하고 9시가 되기를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종이 치자마자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담임 교사를 황당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작년에 함께 문학 수업을 하고 종종 SNS나 카카오톡으로 정치적인 이야기를 묻던 학생인데 3학년이 되더니 더욱 대담해져서 공휴일에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나오라는 학교장의 지시가 맘에 안 든다고 해당 가정통신문을 구겨서 교장실에 던져 넣고 오기도 한 행동대장 스타일이다. 그 녀석의 9시 등교 첫날 행동은 교무실로 금방 소문이 퍼졌는데 ‘그런 애들이 나중에 사회생활인들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비아냥이 대부분이었다. 사회생활이라? 이들이 말하는 사회생활이 혹시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등교 시간의 정상화에 난리법석을 떨던 썩은 관료조직에 동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제대로 못하는 게 옳다. 누군가 교사를 두고 지식관료라고 했는데 ‘지식’은 모르겠고 그냥 ‘관료’라면 반쯤은 맞겠다.

또 한 가지 묘한 상황은 보충수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점심식사 시간과 종례 시간을 단축해버렸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모든 학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잠과 밥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9시 등교를 하는 것인데 보충수업을 위해 정규적인 일과인 점심시간을 단축하다니 본말이 또 뒤집혔다. 만일 보충 수업이 필요하다면 순수 희망에 의해 야간에 하면 될 일을 두 과목 이상 무조건 신청하도록 해서 반강제로 수강하게 만드는 건 사실 큰 문제이다. 게다가 보충수업 과목을 개설하지 않으면 아이들 교육을 소홀히 하는 교사라고 몰아가는 분위기는 참 몰염치하다. 정규수업 준비보다 보충수업 준비에 열을 올린다면 교사가 아니라 장사꾼이다.

이러한 몰염치는 9시 등교 시행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아침에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마련하겠다는 것은 당연한가?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아침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일 수 있고 교사라면 바람직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지도할 의무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은 9시 등교 이전일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9시 등교라고 해서 특별히 일찍 오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라는 것은 엄연히 9시라는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8시 정도라면 불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관료적 발상에 불과하다. 일선 교사는 관리자의 부하 직원이 아닌데도 학교는 우리에게 교사가 아니라 직장인이길 강요하는 것 같다. 관리자들이 너무 쉽게 뱉는 말이 있다. ‘학교에 아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교사도 있어야 한다’는 것. 곱씹어 보면 관리자가 책임을 해당 시간 담당교사에게 지우겠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아이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학교였다면 교장, 교감이 앞장서서 노란리본을 달아야 말의 앞뒤가 맞다. 암튼 담임도 맡지 못하고 매일 정시 퇴근하는 나는 게으르고 학교에 헌신적이지 않은 교사이다.

아이들이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즐겁게 한 뒤 등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재조명된 프로그램이 있다. MBC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던 10여년 전 방송된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신동엽이 진행한 ‘하자하자’ 코너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감성적으로 잘 포장된 방송이었지만 밥차를 몰고 학교에 불쑥 찾아가 따뜻한 아침밥을 나눠주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신동엽의 하자하자는 단순히 아침밥을 먹자는 데 그치지 않고 0교시 폐지라는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 물론 ‘그들’은 1교시를 30분, 심하게는 1시간이나 앞당기는 꼼수를 부렸지만.

사실 9시 등교를 하고 안하고는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의 수면시간과 식사시간,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것은 그다지 반대할 일도 아니고 정치적 논쟁거리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애에 호소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마누라가 아침 밥상을 차려줬다고, 아들과 함께 출근하게 되었다고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은 너무 훈훈한 장면이 아닌가.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학생들에게 잠과 밥을 안겨주자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교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행복을 담보로 자본이 원하는 규격품만을 대량생산하겠다는 공장장이 더 어울릴 것이다.

전망을 읽어 내기 어려운 시대다. 그와 더불어 무력감도 깊어져 간다. 게다가 교육은 그 복잡성으로 인해 명확한 대립 전선을 긋기 어렵다. 진보적이었던 사람도 학부모가 되면 학력, 학벌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사 교과서 문제에서 보이듯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다.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한 9시 등교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지만, 전북에 이어 제주, 강원, 서울까지 확정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나올까?
더욱 과감해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참을 수 없는 도발적인 요구를 해야 할 것 같다. 용돈벌이 보충수업도 없애고, 야간자율학습도 금지시키자. 사교육도 뿌리 뽑아 온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밥상도 챙겨 주고, 고교무상교육을 넘어 대학도 평준화시켜 공부하는 데 돈 드는 일이 없도록 하자. 우리의 배후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늘 떠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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