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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진보칼럼] 방어하는 싸움만으로는 안 된다

2013.12.18 16:18

진보교육 조회 수:478

[진보칼럼]
방어하는 싸움만으로는 안 된다

정은교 / 목일중

  11월 8일 밤,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열린 입시철폐 문화제에 갔다가 재미난 말을 들었다. 전교조 이영주 동지가 나와서 발언을 하는 가운데 뜬금없이 ‘입헌 군주제’를 거론하는 거였다. 현 대통령이 얼마 전 영국을 방문했나보다. 거기서 영국 여왕과 만나 보고서 참 부러웠을 거란다. “나는 단임[單任] 한번에 물러나야 하는데, 이 자리, 너무 아깝잖아? 까짓거, 나도 한번 왕이 돼 봐?”하고 엉뚱한 꿈을 잠깐 꾸지 않았겠냐고. 그의 말을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평소에 듣기 어려운 [‘입헌 군주제’라는] 낱말을 그 자리에서 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번개처럼 팽 돌았다. “그런 수작이 나왔다고 치고, [국민투표에서] 가결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어림 반 푼도 없겠다는 생각이 곧 들었다. “너희, 그런 무리수 좀 둬주지 않을래? 우리가 모처럼 시원하게 반격할 수 있도록.” 현실에서 걔들이 그런 망발을 부릴 리 없겠지만, 모를 일이다. 집권자가 속으로 그런 희망을 품고 있을지, 어떨지는. 지금은 아니라도 어떤 격동기가 닥쳤을 때!
  1년 전만 해도 이것은 상상도 안 되는 얘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농담으로라도 입에 올림직한 얘기가 돼버렸다. 한국의 집권세력이 통합진보당 간판을 떼어버리려고 덤벼들고, 전교조더러 ‘너희, 합법노조 아니다!’하고 으름장을 놓는 지금은!
  제도공간에 버젓이 자리잡은 정당과 노동조합을 난데없이 쫓아내려는 것은 ‘시대 규정’을 바꾸겠다는 쿠데타가 아니냐. ‘민주화 시대’로부터 파시즘의 시대로! 그들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이참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시민단체를 문 닫게 할 법적 권리를 손에 넣고 싶다는 속내마저 내비칠 만큼 그들은 겁이 없다.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무슨 문제인가? ‘정당 해산’은 헌법의 문제다. 이것, 헌법은 ‘직선제 개헌이냐, 호헌이냐’를 놓고 1987년 큰 사단[事端]이 벌어진 시절과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 단 두 번 국민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더랬다. “웬 반동이냐!”하고 다들 몰려들어 떠들어야 할 거리다. 그때는 이러구러 한국의 지배세력이 혼이 났는데 지금의 판세는 어떠한가? 헌법재판소가 집권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좀더 높다는 추측 기사도 있었다. 그럴 때 분기탱천해서 달려들 민중이 얼마나 될까?  
이것, ‘법리 다툼’의 문제가 아니다. 공화제와 왕정[王政], 둘 중에 누가 옳은지를 중립[中立]의 자리에서 판결해줄 심판관이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이것은 힘 겨루기의 문제다. 누가 그랬다. “결국 헌법이 총검에 의해 폐기된다면, 우리는 그 헌법이 이미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민중에게 겨눠진 총칼의 보호를 받았고, 또 총칼의 힘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이것은 결국에는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이 맞짱을 떠서 결판낼 일이지만, 당장은 헤게모니 다툼의 문제다. 지금 같이 터무니 없는 공격이 들어오는 것은 통합진보당과 더 넓게는 진보정치세력이 [사회 담론에서] 헤게모니를 잃었고, 범민주세력이 타락하고 무능해진 데 따른 어김없는 결과다. 이쪽이 사분오열되고 지리멸렬해진 틈을 타서, 그들은 아예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의 싹을 잘라버리려고 나섰다. 헌법[통진당]과 법 시행령[전교조]을 구실 삼아!
  어찌할까? 열심히 사수[死守] 싸움을 벌이고, 정권 반대의 목소리를 한껏 높이면 이 난국에서 헤어날 수 있을까?
  집권당이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으니 곧 민심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머지않아 경제위기라도 닥치면 곧 레임덕에 빠질 것도 같다. 자본주의가 바닥 모를 위기 속을 운행하고 있으니, 수구보수세력이 중산층과 서민에게 태평성대를 선사해줄 여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 해도, 정치적 대안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은 대다수 민중이 선뜻 ‘그들[수구보수세력]을 내치라!’고 눈 부릅떠 나서지도 않는다. 이쪽이 가라앉고 무능해졌으므로[다시 말해, 민중을 거리의 정치에 불러낼 정치 역량이 없으므로] 정치지형을 바꿔갈 주도권은 저들이 쥐고 있다.

  그러니 멀리 돌아봐야 한다. 지금의 불리한 정치지형과 권력관계가 하루 아침에 어쩌다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정치지형은] 전교조 합법화투쟁이 사그라들던 90년대 초부터 20년 넘게, 노동운동과 진보정치가 커오면서 만들어졌다. 그 성장 속에 쇠퇴 요인도 들어 있었다.
  묻자. 우리 사회운동은 과연 박정희가 부르짖은 ‘조국 근대화’와 ‘새마을운동’ 이념을 넘어섰더란 말인가? 그저 “너희가 내놓은 공약은 실패했다”고만 외치고, 그래서 정치적 반사이익을 누리는 데 머물지 않았던가? “아직 선진 조국이 못 됐잖니? ‘잘 살아보세’라고? 우리 삶은 지금 형편없거든?” 우리 사회운동이 본때있는 ‘대안세력’으로 민중 앞에 우뚝 섰더라면 지난 대선에서도 그런 실망스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전교조도 그동안 정부에다 대고 원망만 퍼부었다. “어떻게 콩나물 교실에서 참교육을 하라는 거냐! 경쟁교육, 너무하지 않니?” 참교육 실천운동이 왜 가라앉았는지, 뼈아픈 자기성찰의 목소리가 드물다.
  요즘 ‘법외 노조’ 공세를 놓고, ‘집권당이 전교조를 살려 줬다’고 다행스러워 하는 말도  들린다. “이 참에 다부지게 싸워서 전교조를 살려 놓자!” 그런 기회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전교조가 가라앉은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섣부른 낙관을 말하지 말자. 운동 주체들이 자기 꼴을 송두리째 바꿔내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운동은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먼저 통합진보당! 뿌리깊은 종파주의[기회주의]와 진정성 없는 이념[진보적 민주주의]을 스스로 극복하지 않는 한,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갈 것이다. 그리고 전교조! 참교육의 목표를 더 업그레이드할 때라야 법외노조의 고단한 길을 버텨낼 귀한 단결력을 얻을 것이다. ‘방어하는 싸움만으로는’ 몸을 일으키기 어렵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오는데 시내 4거리에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전교조를 지켜내겠습니다!” 통합진보당에서 붙여 놓은 플래카드다. 자기 앞가림이 더 급할 텐데, 어쨌든 우리를 돕겠단다. ‘미운 정[情]’이 너무 깊어서, 우리 입에서 그 얘기[너희를 지켜 주겠다]는 선뜻 떨어지지 않는데,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앞길은 여전히 안갯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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