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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짱칼럼]

       언발에 오줌누기로는 안된다 - 교육부 대학입시제도 개선안 촌평

이동백 / 전교조전북지부장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2017학년도부터 바꾸겠다며 새 대학입시제도안을 내놓았다. 뭘 바꾸겠다는 것인지는 알아야겠기에 들여다 봤다. 학생과 교사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왜 지금의 대학입시가 이렇게 왜곡되었는지 발본의 성찰은 없다. 뻔하디 뻔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의 대입제도는 해방 이후 16번이나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폼 잡는다며 내놓았고, 학부모, 학생들의 원성이 높아지니 그것 다독인다고 또 내놓았다. 어림잡아 4년에 한번 꼴로 대입제도가 바뀌었고 그때마다 학생들은 몸살을 앓았다. 예방주사 맞고 잠깐 아파지듯이 어쨌든 현실이 개선된다면 그나마 감수하련만 입시 현실이 나아지는 조짐은 없고 애먼 학생들만 부담을 떠안으니 문제였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을 살펴보면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 학교생활기록부 반영 내실화 방안, 성취평가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 수능체제 개선안, 대입전형 발전을 위한 지원체계로써 대입전형 관리운영 기구 구성 등이다.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은 대입 전형방법의 수를 줄여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갸륵한 취지다. 그러나 간[肝]에 기별도 가지 않을 변화만 있었지 내신, 수능, 논술 체계 자체를 바꿀 생각은 터럭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예나제나 학생들이 내신, 수능, 논술 모두를 준비해야 하는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수시에서 수능반영을 완화하겠다는 교육부의 발상은 그냥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뜻에 진배 없다.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은 그대로다.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목표로 삼으려면 좀 더 명확하게 수시는 내신, 정시는 수능 이렇게 간소화해야 한다.

  학생부 반영 내실화 방안은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면 저절로 해소될 부분인데 공연히 떠안게 된 부분이다. 학생부와 자기 소개서, 추천서에 불필요하고 과다한 내용을 기술하지 않아도 학교 생활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학생부 내용을 단순화해야 하며, 학교 밖에서 취득하는 갖가지 자격 기록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는 교육정상화를 위하여 뜻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요구해 온 제도이긴 해도 현 단계에서는 왜곡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특목고, 자사고 등이 엄존하고 대학이 한 줄로 서 있는 입시구조에서는 내신이 평가의 잣대가 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내신이 성적부풀리기 등으로 무력해졌을 때 대학입시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우리는 일찍이 겪은 바 있다. 성취평가제가 올바로 기능하려면 최소한 지역별, 학교별 균형 선발이 필요하며 대학서열체제 완화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높이려면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가 돼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과 수능의 평가 도구로 쓰이는 것은 별개라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무튼 현존하는 문·이과 제도를 폐지하고 수능평가영역을 공통필수로 만든다면 한국사 수능 필수화는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회탐구영역을 어떻게 공통화하고 구분 지을지는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할 문제이지 관료들끼리 독단으로 정할 일이 아니다.

  수능체제 개선안을 보자. 교육부는 수능체제 개편을 위하여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구분하고 2과목을 선택하는 현행 방안,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를 구분하되 교차해서 선택하는 방안,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을 공통으로 평가하는 3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문과냐 이과냐 나눈 것은 대학의 요구 때문이었다. 융합적 사고가 중시되는 시대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도 그동안 불필요하게 유지돼 왔던 문․이과의 폐지가 마땅하다. 이에 따르는 학습 부담은 불필요한 교육과정의 양을 줄이고 난이도를 낮추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여지껏의 교육내용은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기보다 공부를 위한 공부, 선발[학생들의 변별]을 위한 공부 내용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인간 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교육과정 개선도 함께 강구돼야 한다.

  대입전형관리운영 기구 구성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기구가 대교협[대학교육협의회]이라고 하는 임의 기구가 떠맡아서는 안 된다. 대학과 국가로부터 독립돼 있고, 교육주체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할 사회적 기구가 마련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걸핏하면 교육을 떠맡는 정부 부서의 문패를 갈아 왔다. 교과부라나, 인적자원부라나, 교육부라나? 마치 문패를 갈면 무슨 주술[呪術]의 효과라도 발휘할 것처럼! 입시제도도 툭하면 바꿨다.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려고 수없이 자잘구레한 변화들을 꾀했다. 그때마다 학생들의 학업스트레스와 교사들의 주름살이 늘어났다.
다시 말한다. 수능은 자격고사가 돼야 되고 대학은 통합네트워크가 되어 공동 학위수여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학벌 중심의 대학서열화와 학력간 임금격차 등을 타파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전제되지 않고는 교육문제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교육부는 한 걸음이라도 시원한 진전을 이뤄낼 성의 있는 대안을 내놓기 바란다. ‘그 나물에 그 밥’을 또 먹어야 할 우리는 이제 신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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