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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코난 이야기
- 상상과 애니메이션

이두표 / 진보교육연구소 운영위원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만화책도 틈틈이 읽었고 만화 영화도 즐겨보았습니다. 요즘은 만화 영화라기보다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란 만화 영화(그림을 그려서 만든 애니메이션)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레스와 그로밋’과 같이 클레이(찰흙)로 만든 애니메이션은 만화 영화라고 부르지 않지만 대다수 애니메이션이 그림을 그려서 만들기 때문에 보통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만화 영화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즐겨보던 대부분의 만화 영화가 미국(톰과 제리, 슈퍼 특공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이나 일본(마징가 Z, 요술공주 밍키, 엄마찾아 삼만리, 플란다스의 개 등)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세계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의 외양이나 소재나 정서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줄여서 아니메라 부릅니다)에 더 끌렸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만화 영화에 순위를 매겼던 기억이 납니다. 1위가 ‘미래소년 코난’이고 2위가 ‘빨강머리 앤’이었습니다. 대충 이야기하면 코난이 약간 남자 아이들을 위한 만화라면 앤은 여자 아이들을 위한 만화였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보아서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던 이 애니메이션들을 성인이 되어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보기도 했고, 몇 년 전에는 EBS에서 다시 방영해 주는 것을 제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보아도 즐겁고 재미가 있는 것이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아이들에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코난이라고 말하면, 다들 미래소년 코난이 아니라 ‘명탐정 코난’을 떠올립니다. 세대가 많이 바뀐 것이지요. 제 아이들도 명탐정 코난의 열렬한 팬입니다만, 지금은 아빠와 함께 본 미래소년 코난도 나름 좋아합니다.

미래소년 코난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일한 TV 시리즈물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그림체가 부담스럽지 않고 내용이 교훈적이고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무엇을 보든지 실패하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작품들보다 2000년대 이전 작품인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원령공주 등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미래나 과거를 디스토피아나 이상향으로 묘사하거나 여자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고 비행을 소재로 하는 장면이 거의 꼭 들어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코난이나 나우시카에서 암울했던 과거를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리면서 거대한 과거의 각종 병기를 위압적으로 등장시키고 주인공이 빈약한 비행체를 타고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우는 모습은 엄청난 스릴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코난의 후반부에서 코난 일행이 거대 비행선의 동체 위에 올라타서 맨 몸으로 비행기 위를 뛰어다니며 싸우는 모습은 압권이지요.

이 때 남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치밀한 설정입니다. 배경이나 액션 자체가 허무맹랑하기는 하지만 논리적 비약을 하지는 않는다고나 할까요? 미래소년 코난은 시작할 때 항상 이야기의 전체 배경 설정을 보여 줍니다. 거대한 초자력 병기가 세상을 뒤덥고 그 위력으로 지구의 대다수 대륙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조그만 섬에 소수의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행기가 불시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거기서 새로 태어난 힘센 소년 코난이 자신이 태어난 홀로 남은 섬을 떠나 온갖 모험을 겪게 됩니다. 코난이 섬을 떠나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인더스트리아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초자력 병기를 부활시켜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이하바라는 섬으로 대표되는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공동체를 다시 만들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 때 과거를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태양 에너지입니다. 코난의 여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라나는 태양 에너지 부활의 비밀을 알고 있는 레오 박사의 손녀로 나옵니다. 레오 박사는 태양 에너지의 이용이 결국 세상의 파멸을 가져왔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 희망을 코난과 라나 등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현대의 과학문명이 지속되려면 기술 발전 문제와 아울러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정의 치밀함은 작품의 완성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리즈 중에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나라 TV에서 방영된 기억은 없고 성인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어 그 방대한 시리즈물에 한동안 빠져 지냈습니다. 이 만화에서 건담이라는 로봇은 마징가 Z류의 로봇과는 매우 다릅니다. 마징가 Z의 로켓 주먹같은 각종 무기는 나름의 설정을 가지고 있으나 치밀함은 부족합니다. 건담의 설정은 지구의 환경과 인구 문제로부터 시작합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환경과 인구 문제로 인해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지구에 가까운 우주 공간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 건설 장비로 인간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일종의 작업복 개념의 로봇이 등장하며 이를 ‘모빌 슈트’라 부릅니다. 그런데 우주 식민지의 사람들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갈등이 생기면서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때 모빌 슈트가 일종의 병기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그 중에서 지구에서 만든 성능이 뛰어난 모빌 슈트의 이름이 건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왜 인간이 타고 조종하는 모빌 슈트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설정으로 ‘미노프스키 입자’라는 가상의 물질이 등장합니다. 일단 미노프스키 입자가 공간에 방출되면 전파 교류를 방해하므로 위치 파악이 불가능하게 되어 전면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는 설정이지요. 또한 이러한 모빌 슈트를 천재적으로 잘 조종하는 사람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를 ‘뉴타입’이라고 부르며 우주 식민지 시대 신인류의 도래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이자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천재라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습니다. 2002년에 ‘별의 목소리’라는 2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발표하였는데 각본, 연출, 작화, 편집, 감독 역할을 거의 혼자서 다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초기작이어서인지 그림체가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남녀의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우주 규모에서 통신 속도의 한계를 실감나게 이용합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통신 수단도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빛의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지구 규모에서 빛 속도의 유한함에 따른 통신 지체를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 규모가 되면 문제가 극적으로 바뀝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화성까지 빛 속도로 10분이 걸린다고 하고, 화성에 있는 사람과 지구에 있는 사람이 문자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먼저 지구에 있는 사람이 ‘방가방가’라고 문자를 보내면 10분 후에 화성에 있는 사람이 그 문자를 보고 답장을 보내게 되며, 그 답장이 지구까지 오는데 또 10분이 걸리게 됩니다. 별의 목소리에서는 우주군(건담 같은 로봇을 타고 날아다니며 외계 로봇과 맞서 싸웁니다)에 뽑힌 여주인공 소녀가 지구를 떠나 먼 외계로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갑내기 남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데 지구에서 거리가 멀어지면서 문자가 도달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집니다. 나중에는 그 시간이 무려 8년이 걸린다는 설정이 나오는데, 문자를 보낸 당시 16살이던 소녀의 문자를 8년 후에 받게 된 남자 친구의 나이는 24세가 됩니다. 이 시간차가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로 사용됩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또 다른 아름다운 작품으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별의 목소리 때보다 그림체가 한층 안정되고 스토리는 더욱 탄탄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미래에 일본이 지금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으로 묘사됩니다. 주인공들은 남쪽 나라에 살고 있는데, 북쪽 나라에 무슨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은 거대한 기둥이 존재합니다. 그 기둥이 얼마나 높은지 지상에서 보면 구름을 뚫고 올라가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기둥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주인공 소년은 언젠가 그 기둥에 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비행기를 만듭니다. 건담 시리즈 최근작 ‘건담 더불오’에는 인간이 지구 대기권 밖으로 올라가는데 사용하는 거대한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것이 나옵니다. 이 구조물도 구름을 뚫고 하늘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의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서 살아갑니다. 마치 비누방울의 얇은 막같은 공간에 집중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E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 중에 하늘에서 본 세계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중력에 구속되어 바닥에 붙어 사는 우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로켓을 타고 우주로까지 나아가는 시대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닙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날지 못하는 인간에게 높은 구조물이나 우주, 비행 등은 경외감이나 동경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대 신화에는 바벨탑이 나오고,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는 중요한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고 있는 초고층 건물이나 타워가 건설되고 있으며, 인간은 우주로의 진출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경은 과학적 지식과 결합되어 다양한 상상으로 표현됩니다. SF소설 계열의 문학상이라는 상은 거의 다 휩쓸었다는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특히 철저하게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썼다고 해서 하드SF라고 불리는 이 소설은 우주에서 날아온 미지의 우주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우주선은 중력을 발생시키기 위해 회전하는 거대한 원기둥 모양으로 묘사됩니다. 원기둥 내부 표면에 다양한 건물과 강과 바다가 존재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중력의 법칙에 기반한 치밀한 묘사가 큰 감동으로 다가온 기억이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실제 모습을 머리 속으로만 상상해야 한다면 영화나 SF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특히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진보하기 이전에 이를 잘 표현할 수 있었던 매체는 영화보다 애니메이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진보하는 영화 기술로 그 간극은 거의 없어졌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감성은 영화와 다른 매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는 물론 다양한 상상을 담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한 번 쯤 빠져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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