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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시대, 교사운동의 성찰과 갈 길

-- 배이상헌(광주무진중)


1. 『진보교육』과 ‘학생인권’

글을 시작하면서 진보교육연구소의 홈피를 통해 지난 호의 글들을 잠깐씩 훔쳐보았다. 최근의 회지에는 매 호마다 한 꼭지씩 학생인권 관련 글들이 게재되어 있었다. 전누리의 글이나 그 전 호의 조영선의 글이다. 그렇지만 『진보교육』의 편집흐름에서 ‘학생인권’이란 주제는 뭔지 바깥손님 같기만 하다. 그냥 시사 흐름처럼 조망하는 인상이다. 이를테면 지난 호(39호)의 「권두언--공교육개편운동으로 반격의 기운을 진출시켜 나가자」의 글에서 ‘학생인권’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니 전혀 찾아지지 않는다. 같은 호의 「정세와 전망--2010년 하반기~2012년 교육노동운동의 과제」의 글은 ‘학생인권조례사업’이 한 번 언급되는데 ‘입시폐지-대학평준화운동’의 연대적 차원에서 청소년동력을 끌어오는 정도로 슬쩍 언급하고 있다. 38호에는 「(진단과모색) ‘진보교육감 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연구자 두 분과 교사활동가 세 분의 좌담이 나오는데, ‘학생인권’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편집기획의 동력인 ‘진단’이나 ‘정세 전망’꼭지에는 ‘학생인권’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회보의 전체 기획에서 놓치지말고 외면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학생인권꼭지를 한 자리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2. 학생인권조례, 럭비공 또는 지렛대?  

실제로 현재의 교사운동 속에서 ‘학생인권’사업의 맥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빈사상태라고 해야 할까. 1989년 전교조 결성 투쟁에서  ‘중․고생 운동’은 전교조 창립을 가능하게 한 투쟁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2011년에 이르기까지 전교조 사업에서 ‘학생사업’의 위상이란 극히 불안하게 명맥을 이어왔다.
학생인권운동은 전교조 안팎에서 그저 ‘소수자 운동’이라 할 정도의 위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9년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와 2010년 전국 16개시․도에서 진행된 첫 민선교육감 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주요 공약으로 등장하는데 성공하였다. 교사운동 주체들도 여러 가지 우려를 표했지만 선거가 갖는 민심반영적 작동기제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학생인권이라는 이슈의 진보적 의의에 근거, 그 독자적 힘으로 정치사회적 의제화에 성공하고 만 것이다.
인권운동가 배경내씨가 2011년 전교조 참실대회 학생인권분과에서 ‘이런 상황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라고 밝혔듯이 학생인권과 관련한 지금의 정세는 섬세하게 음미해야 할 과제이다. 혹자는 ‘학생인권’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이슈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를 ‘지렛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럭비공’은 드러나는 현상적 감각에 맞추어 표현한 단어일 것이며, ‘지렛대’는 나름의 사회과학적 인식에 근거하여 물리적 방향을 보고자 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는 물론이고 교사운동의 진보적 활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또는 오랜 동안 비주류도 아닌 ‘소수자 운동’으로 머물던 학생인권 관련 교사활동가들도 갑작스런 ‘예수의 재림’에 당혹해하기는 마찬가지이거나, 당면의 과제에 급급하여 이런저런 자리에 끌려 다니기 바쁘기만 하다.

3. 전교조 내 학생인권운동의 시초; ‘민중적 학생관’    

학생인권과 관련 전교조 집행력의 역사를 간단히 추리면 김융희를 중심으로 진행된 1992년까지의 전교조의 학생사업국은 ‘학생자치활동’을 중심으로 지역과 학교의 활동가사업을 지원하였다. 93년부터는 김경욱-현원일 등 학생생활연구회가 주축이 된 학생생활국이 2000년대 전반까지 ‘학급운영’을 중심으로 학생생활영역 사업을 아우르고자 했다. 앞의 ‘연구회’는 김영삼-하병수와 지금의 박종철 학생국장에까지 이르지만, 교육과정투쟁과 교육복지, 학교폭력 등 방만하거나 산만하게 사업의 강조점들을 확산, 발전시켰고, 지역의 참실활동가들과의 네트웤도 사업의 강조점을 느슨하게 상실한 채로 ‘학생생활영역지향’이라는 일치점에 근거해서 소규모로 유지하는 정도이다.  
학생영역이 비주류도 아니고 그저 소외영역임은 90년대 초반 김융희 선생의 학생사업국 시절에서부터 각 지역의 집행부 배치의 우선순위 등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학생영역의 다양한 실천과제들 즉 학급운영이나 학생자치, 동아리․축제와 상담, 학생언론, 생활중심교육과정, 학생인권들이 즐비하지만 그것의 관계나 통합적 실천전망이라는 것도 일정 정도의 활동가 실천역량이 가동될 때에 가능한 일이지, 소수 활동 대오의 움직임 상태에서는 비평적 이론 이상의 성취는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에서만 학생부가 '3D'업종이 아니라, 전교조에서도 학생영역의 참교육실천은 ‘3D’인 것이다. 전교조 결성기의 학생사업국 시기에서부터 매 년 사업평가의 반복된 화두는 ‘교사의 학생관의 한계’였다. 학생을 수동적 존재, 통제 대상, 고립적인 개별자로만 바라보는 교사 일반의 학생관이 전교조 조합원에게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이러한 조합원 대중의 학생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거나 또는 그 스스로가 그러한 한계를 짊어지고 있는 전교조 집행부들에게도 그러한 한계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전교조 계선 조직이 학생사업에 힘을 실을 수 없는 한계들이 반복되었던 것이며, 집행부 구성부터가 어려웠던 것이다.
김융희를 비롯한 초기 학생사업의 주체들이 갈파한 학생관은 그 소수자 운동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후 학생생활운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즉 교사-학생 관계의 재정립(*현재의 학생인권조례 시대 학교재구조화의 필요조건에 등치되는)과 참교육 실천을 위한 절대 필요조건으로서 학생관을 설명하는 바 1)주체로서의 학생과 교사 2)민중으로서 학생과 교사 3)공동체로서의 학생집단과 교사집단이라는 세 가지 관점을 천명하고, 이러한 관점에 근거하여 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박탈하고 그 위에 군림하기 보다는 학생 속으로 들어가 학생들과 같이 호흡하고 학생의 상황과 장래를 고민하면서 학생의 방향을 제시할 때에 진정한 ‘교사의 권위’가 가능함을 언급하였다. (91학사국 연수자료집-1991년8월-참조)
이러한 관점은 실로 7~80년대의 노동운동과 야학운동의 성취에 힘입어 지식인과 민중이 어떻게 만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90년대 공교육의 교사운동에 적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학생을 대상화하는 도덕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교육운동과 학생-교사의 관계정립을 전제로 한 민중주의적 교육운동의 분기점을 정확히 제시하는 것이라 평가된다.  또한 당시의 변혁적 정세는 이를 선전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의 조건도 일정 정도 조성되고 있었다.

4. 학급운영운동, 자치공동체 교육운동으로

학생사업국 이후 새롭게 구성된 학생생활국은 보수적 학생관의 교사집단에게 진보적 학생관을 교육․선전할 실천영역으로서 ‘학급운영 운동의 대중화’를 주목하였다. 이 사업은 결국 교과교육의 전문가가 아닌 인간의 성장발달에 대한 전문가로서 교사의 전문성을 주목하고 이에 근거하여 참교육운동을 기획․설계하는 문제의식으로 진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사회주의적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지향의 참교육정책도 참교육의 인간관과 교사의 존재방식이 가미된 ‘자치공동체적 교육론’과 교육정책, 생활중심교육과정, 인권․문화․복지․자치 등을 뼈대로 하는 ‘지역사회의 학교’를 중심원리로 삼게 되었다.
교사운동에 있어 ‘참교육운동’의 위상을 바로 잡는 것도 과제이지만, ‘참교육운동’에서 학생인권사업이 갖는 의의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교육논리로서 진보적 학생관의 성취는 학생인권에 근거한 교육실천과 동일한 의미이다. 학생인권을 언급하는 학생관은 기껏해야 뭉뚱그려진 전시물 정도의 역할이나 하는 교육운동의 허구적 이념장치들을 불편하게 한다. 학생인권사업은 조직의 정책과 개인의 현장실천을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긴장요소를 발휘한다. 그것은 무기력과 냉소, 노예의식과 가학성이 넘쳐나는 학교교실의 변하지 않는 학생현실을 주목함으로써 교사를 긴장시키고, 학생과 함께 하는 교육실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여전한 참교육운동의 진원지, 옹달샘이 될 것이다. 그 어떤 참교육이념이나 대안교육이념, 생태주의․평화주의 교육도 학생의 능동적 활동, 정치적 작용, 학생의 삶의 진보적 성취의 차원에서 접근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도덕적 계몽이나 교사의 자족적 한계에 머물 수 있음을 우리는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모든 참교육운동의 논리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원리에 근거하여 재구성되어야 하는 과제를 갖는 것이다.
거듭 반복되는 불가피한 사족인데, 이때 언급되는 학생의 능동적 활동은 고교생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성장발달단계에 조응하여 정치사회적 상호작용과 실천적 자기각성의 과제를 교육과정으로 기획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5. 길을 잃은 전교조와 참실운동, 자기방어에 급급하다  

그러나 학생생활운동의 일정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운동적 확산의 중요 고리인 전교조의 주객관적 여건은 더욱 악화된다. 무엇보다, 현장의 실천역량에 근거한 전교조의 지도력이 아니라 정부와의 교섭력을 중심으로 전교조의 지도력을 추구하는 조직사업의 패턴이 99년 합법화 이후 더욱 정형화되었다. 그나마 교섭력을 추구하던 불편한(?) 사업방향도 힘을 잃은 채 전교조는 진보 지향 교사들의 ‘마음의 고향’정도의 상징기능에 머무르고 신분적 안정을 추구하는 조합주의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수준에서 배회하고 있다. 변혁 지향의 근거지로서 지위는 사라진지 오래이며,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는 현재의 지위를 구가하기 위해 역사적 장식물로 적절히 활용되곤 한다.  
교섭력을 추구하는 정파이거나, 신분안정의 조합주의를 지향하는 분파이거나, 참교육실천운동에 대한 변변한 전략도 없이 조직 내의 선거 때면 참실운동을 기껏 성찰해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뻔뻔스레 이용하는 작태를 보였다. 그리고는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체벌금지 조치가 발표되니 교사운동은 교사를 주체로 하는 교육개혁에 입각하지 않았다고, 교사를 개혁대상으로 바라본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급기야 지난 1월 성공회대에서 진행된 학생인권 관련 공통마당에서는 ‘교실의 정의’를 지켜내기 위한 교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교권의 침탈자로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지목한다. 한편에서는 8만여 명의 청구인 서명을 필요로 하는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주민발의운동이 3개월이 다 되어서도 1만여 명을 넘지 못하였고 전교조 서울지부의 호언장담이 종이호랑이의 호언(豪言)이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참실대회의 학생인권 토론공간에서 발견한 것은 학생인권과 거리가 멀었던 김상곤씨나 곽노현씨가 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게 된 것에 대해 교사운동이 이를 부끄러워하는 집단정서가 보이지않는다 점이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민선교육감들의 어설픈 ‘학생인권 썰풀기’를 활용하여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관료주의적 시스템 철폐나 교사들의 협력적 생활교육체제를 요구하는 교사운동의 약삭빠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011년 전교조의 현실은 1985년 민중교육지가 보여준 교사의 여린 수치심을 찾아볼 수 없으며, 1989년 전교조 결성선언문에 담긴 제도화된 교사상에 대한  분노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교조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진보적 활동가를 확대하는 텃밭의 가능성에 대한 미련의 자리이거나 대안부재의 길 잃은 운동성들이 머뭇거리는 대기소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성찰할 때에 이르렀다.
  
6. 교사운동과 학생인권운동의 엇갈림  

학생인권이 교권을 붕괴시킨다는 황색언론은 여전히 위세를 부린다. 지배계급의 앞잡이여야 마땅할 정부조차도 체벌금지를 대통령령으로 공식화하겠단다. (1.17일의 교과부 발표는 간접체벌 허용과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 폐지가 중심 내용이다. 진보교육감들을 공격하는 교과부의 의도는 분명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 와중에 교과부는 처음으로 체벌금지를 법령의 수준에서 정리하겠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간접체벌’이라는 수사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또한 학칙인가권 폐지 등은 현실적으로 만만치않음을 교과부도 안다. 그래서 올 해 안에 법제화하겠다고 말했지만 두고 볼 일이다. 발표내용 중에는 급기야 90년대 중반 폐지한 학생회 예산자율권까지 발표해버렸다) 찝찝하지만 학교현실을 알아주는 ‘조․중․동’이 반갑고, 현실에 공감하는 관습적 학부모들이 오히려 의지가 된다. 신임 전교조 위원장 장석웅씨도 체벌 관습에 젖은 분노나 수치심을 애써(?) 감추고 건조하게시리 ‘체벌은 사라져야 하지만 서울시교육감이 성급했다’라고 조언한다.
학생인권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인권운동가들이나 ‘아수나로’와 같은 청소년운동체들의 고립감은 여전하다. 사실 인권운동가들은 학생인권을 당위적 수준에서 설파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황당하다. 이토록 철지난 당위에 교사운동가들조차 밍기적거리는 모습들이 참으로 불편하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다만 큰 연대를 기다리며, 숨죽여 흉을 볼 뿐인 것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운동가들의 당위적 단순함에 대해서도 아쉬움은 크다. 2007년경부터 『인권친화적 학교문화 조성 지침서』도 제출하고, 교원 인권 감수성 향상 연수도 수 차 진행하였지만, 그들 또한 계몽주의적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지 야만의 교사와 미개의 교사를 분리하여 계몽하는 역할에 만족하거나 어쩌지 못하고 머무를 뿐이다. 10년 넘게 학생인권을 주창하며 학교를 공격했으면 학교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도 생겼을 법하지만 스스로의 정의에 도취했음인지, 학교식민지에서 기껏 살아남았음을 자랑하고싶음인지(좀 심하죠!) 학교체제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근거하여 교사운동에 대해 성숙한 조언을 던지고 연대의 질을 높여가는 연륜에 다다르지 못한다.  

7. 생활교육혁신운동, 교직의 전문성을 문제 삼다      

입시위주 교육과 생활교육의 황폐화(‘생활지도’는 기득권자의 어법이지만, 참교육론의 어법은 ‘생활교육’이다)는 입신양명의 도구화이든, 시장주의적 도구화이든 교육의 ‘도구적 가치’(수단적 가치)를 전제로 활개를 친다. 짓밟힌 학생인권은 짓밟힌 교직의 전문성과 정비례한다. 학생의 존재를 어렵고 섬세한 내면의 존재로 파악하고, 근대민주주의의 보편적 주권자로 바라볼 때에 사회가 교직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신장시켜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학생을 통제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폭력을 통제의 수월성에 근거하여 수용할 때에 인정되는 교직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이나 광주시교육청이 ‘생활지도의 시대에서 생활교육의 시대로’라는 혁신의 구호를 내걸게 된 것이다. 생활교육의 시대는 교사들의 업무분장 시스템을 실질적인 교육협력체로 재구성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과 점검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학교에서의 교사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화가 요구된다. 학교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은 보통 관리자, 질서유지자, 상담자, 자치활동 지원자와 같이 네 가지로 요약되는 바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은 교사의 역할이 관리자와 질서유지자의 역할이 중시되었던 학교에서 상담자와 자치활동 지원자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학교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관리와 질서유지의 역할이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개별 교사에게 오로지 책임을 묻고 어떤 행․재정적 지원도 부재하던 현실에서 벗어나 공적 매뉴얼에 따라 관리와 질서유지 역할을 집행하고, 불필요한 감정적 갈등과 과도한 책임의 자의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 새로운 역할 수행 패턴을 창조해나가야 한다.

8. 법치와 자치의 계약사회를 학생에게!

학생인권조례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도구화, 시장화는 ‘인권적 가치’와 지속적인 불협화음을 형성할 것이 분명하다. 평준화투쟁과 학생인권사업은 교육의 평등성이라는 근대적 가치를 현실화하는 중요한 매개고리이다. 과거 조한혜정 교수와 같은 이들은 탈근대시대의 도래에 힘입어 학교교육의 쇄신을 말하였지만, 그것은 수사적 과장의 혐의가 짙다. 한국의 공교육은 근대적 가치조차도 뿌리내리지 못하였기에 일제의 군국주의 교육의 유산이나, 봉건적 입신양명의 가치들이 당연시되고 있는 것이며 급기야 부모의 지위에 힘입은 사교육이 ‘교육열’, ‘자식사랑’ 등의 왜곡된 수식어로 위세를 부리는 것 아닌가?
학생인권운동의 전선은 시장적 도구적 가치에 힘입어 주먹구구로 세팅되어 있는 학교행정의 불합리성과 관료주의와의 전선으로 옮겨져야 한다. 학생인권의 문제는 학교내 청소년문화 작동의 당위성, 학생의 복지권과 참여자치권, 중하위 성적 학생들의 학습권, 학부모회나 지역사회의 교육주권 등의 다양한 사안으로 확산될 것이며, 또 이를 위한 능동적 기획이 요청된다.  
궁극적으로 학생인권의 문제는 학교의 통치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상명하복적 학교통치의 원리는 더 이상 학생들의 복잡한 생활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점이다. 그 어떤 방법도 학생들이 동의하지 않고,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학교붕괴는 상명하복적 학교의 붕괴이다. 이제 학교는 관료조직이 아닌 ‘다양한 주체의 계약적인 학교사회’로 변화시켜가야 한다. 계약사회는 ‘법치’와 ‘자치’를 핵심으로 하는 학교사회로의 변화를 설명하는 키워드이다. ‘법치․자치’는 학교의 포장지가 아니며, 행정적 슬로건도 아니다. 학생의 눈높이에서 바라다 보이는 학교사회 검증의 핵심 장치이다. 전제군주적 통치체제에서 사회계약론적 인권사상의 법치와 의회제로 발전하였던 서구의 근대화 프로젝트(그것의 결실이 공교육이었다)는 민주시민교육의 터전으로서 한국의 학교사회를 상상하는 교육노동운동가들의 참고가 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시대는 학교가 학생의 통제방법을 업그레이드 하는 시대가 아니라, 학교 안의 학생사회의 형성을 통해 학교사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시대인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궁리에서 벗어나 학생이 어떤 룰의 학교사회를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우리는 궁리해야 한다.  

□ 글을 마치며

제안 받은 원고의 지면을 훨씬 초과하여 글의 구성이 불편해진 상태이지만 어떻든 글을 끝마쳐야 한다. 이 글의 메시지는 사실 단순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운동적 의의, 사회변동에 대한 역사적이고 과학적 통찰을 통한 교육노동운동의 전략 재고를 제안하면서, 지속적인 토론과 집담의 계기들이 진보교육 주체들 가운데서 진행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화한 교육감들을 우리가 ‘진보’라고 통칭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전시적 허구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으며, 설혹 일정 부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지켜지는 시늉은 있더라도 풍부하게 내용을 채우지 못하고 형해화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상곤 교육감이나 곽노현 교육감이 진보세력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혹시는 그들의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진보세력의 정밀한 설계도와 지역사회의 능동적 대응이 실천되지 않는다면 지배세력의 방어적 수동혁명의 유산으로 그칠 가능성도 크다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학교의 변화 방향에 관한 다양한 토론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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