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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교육학(1) 하고지비선생과 그 소외된 열정

-- 한 익명의 초등교사


[현실교육학]이란 제목의 책 집필을 구상하고 있다. 우연히 사범대학에서 교재로 쓰는 [교사론]을 훑어보았다. 예상대로 모두 그렇고 그런 내용들로만 채워져 있다. 교육을 보는 저자 나름의 관점도 있고 삼빡한 교육학 이론이 소개되어 있지만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제목이 [교직실무]인데 ‘학교의 실재(實在)’가 없다. 담론만 무성할 뿐인 그 교재엔 한국교육의 리얼리티(reality, 실재)가 들어있지 않다.
이론과 실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모든 교육담론은 교육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론은 교육학교수의 몫 교육실천은 학교교사의 몫으로 이분화 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교육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넌센스이다. 실험실을 떠난 과학자나 과학이론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수술을 집도하지 않는 의대교수를 생각할 수 있는가? 수술실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의대교수가 의학이론을 제시하거나 의대에서 학생들을 강의할 수 있는가?
어떠한 사물도 그 정확한 실재(reality)에 대해 오직 ‘현상’을 통해서만 본질에 가깝게 접근해갈 수 있다. 현상은 결국 본질의 현상이며, 본질은 현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리얼리티는 교육을 직접 실천하며 교육현상의 중심에 서 있는 현장교사에 의해 가장 정확히 파악될 수 있다. 때문에 교육담론은 물론 교육이론 구성에도 대학교수가 아닌 현장교사인 우리들이 그 중요한 역할을 담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지금부터 비판적 관점으로 학교교육의 생생한 리얼리즘을 담은 저서 [현실교육학]을 엮어보려 한다. ‘현실교육학’그 첫 순서로 “하고지비선생과 소외된 열정”란 주제로 열어본다. 나는 우리 교육 현실에서 파생되는 교육문제의 대부분이 질곡의 승진제도에서 기인된다고 본다.

□ 하고지비 선생, 그 소외된 열정에 관하여

내가 교대를 졸업하고 현장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선배교사들이 학교를 ‘공장’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누가 내게 “학교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기꺼이 ‘공장’이라고 답하겠다. 공식적인 명명법보다 ‘메타포’가 사물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말해줄 때가 많다. 신성한 교육의 장이어야 할 학교가 ‘공장’이라는 조야한 메타포로 교육주체들 사이에 통용되는 이 자조적 수사법이 왜곡된 우리 교육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성한 학교가 ‘공장’으로 불리어지는 이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다름 아닌 내가 근무하는 ○○군의 교육현실에서 뼈저리게 느낀다. 한 예로, 우리 군에는 시범/연구학교가 타시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시범학교가 “시범적으로 아이들 망치는 반교육적 폐단 그 자체임”은 교직생활 한 두 해만 해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교육의 실적은 종이쪼가리 위에 있지 아니한데, 선생들은 아이들 자습 시켜놓고 실적물 찍어내기에 바쁘다. 교육의 실적은 사진 속에 담을 수 없는데, 부지런히 사진 찍고 거짓 서류 꾸미고 중앙현관이나 복도에 게시할 판대기 만들기에 바쁘다. ‘공장’으로 전락한 학교에서 ‘교육실적물’이란 이름의 상품 찍어내기에 바쁜 것이다. 그 와중에 진정한 교육이 소외되어 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엄청난 교육예산을 투입해 학교를 망치는 이 망국적 교육사업이 근절되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규모(대상학교 수)가 확대되는 까닭을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을 환영하는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에 시범학교가 많은 까닭은 교육청에서 강제해서가 아니라 단위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 요청은 선량한 대다수의 교사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승진에 목숨 거는” 일부 교사들의 빗나간 열정에 기인한다. “시범학교가 시범적으로 아이들 망치는 미친 굿판”임을 모르지 않으련만 이들은 오로지 개인적 입신 또는 영달을 위해 기꺼이 시범학교를 끌어온다. 이 빗나간 열정의 소유자들은 우리가 보통 ‘하고지비’라 일컫는 자들이다. 비단 우리 지역의 교육뿐만 아니라 이 나라 학교 교육을 망치는 이들이 바로 이 ‘하고지비’들이다.
하고지비? 이름부터 부르기도 듣기도 불편하다. 무슨 껄떡쇠도 아니고 뭘 그리 하고 짚다(‘하고 싶다’의 사투리)는 말인지...... 껄떡쇠와 마찬가지로 하고지비가 들이대는 짓거리들은 모두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체로 이 하고지비들은 교실이 아닌 교무실과 교육청에 주파수를 맞추고 살아간다. 이 벌레들의 더듬이는 늘 그곳을 향한다. 교사로서 아이들과의 만남에 열과 성을 쏟는 것이 아니라 교장/교감과 장학사와의 만남에 올인한다. 자신에게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제공해줄 그들을 왕처럼 섬긴다. 정작 자신이 섬겨야 할 왕은 교실에 있는 아이들임에도 말이다.
인간의 열정은 결코 무한하지 않아서 한 곳에 정신 팔려 있으면 다른 곳에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의욕도 사그러들기 마련이다. 누가 내게 ‘하고지비’의 정의를 묻는다면, “외도하는 교사”라 답할 것이다. 부모 역할의 본질이 ‘자식사랑’이듯이, 교사의 본분은 ‘아이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이 하고지비 교사들은 교육애 대신에 엉뚱한 짓거리에 온 열정을 다 쏟으니, 그의 ‘애정행각’은 ‘외도’라 규정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고지비들이 교장실이나 교육청의 왕을 헌신적으로 섬기면 섬길수록 교실의 왕이 소외되어 간다. 아니, 정작 소외되는 그 무엇은 자신의 영혼이다. 교육자적 양심이다. 하고지비들은 자기학급의 아이들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온 학교를 망치고 결국 자신의 영혼을 망친다.
그래서 그 학급의 아이들은 물론 하고지비 자신의 학교생활도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특히, 공동체의식 같은 것이 잘 보여지지 않는다. 선생 따로 아이들 따로 각자 제 팔 제 흔드는 형국이다. 아이들끼리도 각기 따로 논다. 어린 학생들에겐 학급 담임의 일거수일투족이 강력한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작용하는 법일진대, 좀 심하게 말하면, 하고지비 선생으로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따위의 품성을 학습해 갈 것이다.
암웨이에 정신 팔려 있는 외도 교사는 자기 학급만 망치지만 이 하고지비들은 온 학교를 망친다. 하고지비들이 설치면 설칠수록 공장은 잘 돌아가지만 학교 교육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를테면, 어느 부서의 하고지비가 욕심을 내어 온갖 잡다한 행사를 기획해서 돌리면, 다른 선생들과 학생들이 스트레스 받는 것은 둘째 치고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천날만날 무슨 계기교육의 차원에서 글짓기와 그림그리기로 바쁘다. 아이들이 생산한 작품 가운데 우수작을 선별해서 게시판에 붙이고 사진 찍고...... 하고지비들과 그 유착관계에 있는 라인에서 생각하는 교육결과는 오직 이것뿐이다. 학생의 성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니,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런 발상 자체를 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전체 교사가 하고지비가 되어 모두가 자기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식으로 공장 돌리면 어떻게 될까? 내가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그럼에도 학년말 수업시수 표시란에는 어김없이 법정 수업시수에 맞게 수업 다 했다고 기록될 것이라는 것이다.

공장, 잘 돌아간다! 공장이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이 미친 교육 시스템 속에서 모두들 소외되어 간다. 학생은 교사로부터 소외되고, 교사는 자기 본연의 정체성으로부터 소외된다. 열심히 공장 돌릴수록, 그 소외된 열정과 능력에 비례해서 스스로를 소외시킨다. 그리고 소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하고지비들은 자기소외의 결과로 '승진'이라는 면류관을 얻어 자신이 위치한 또 다른 공장에서 소외를 파급시켜 갈 것이다. 이 미친 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재생산되어 갈 것이다.
학교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실천되는 모든 사업은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이라는 선량한 교육적 비전을 전제로 이루어져야한다. 이 지역사회에는 먹고 살기 팍팍한 시대에 부모가 맞벌이로 늦도록 일하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도시 학교 학부모들과 달리 이들은 삶이 너무 바쁘고 또 지쳐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못 쏟는다. 그저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시범학교 한다고 아이들 소외시키고 그 놈의 쓸데없는 교육실적물 찍어내기 바쁘다면 이게 과연 교육적인가? 시범학교 보고회 한다고 이런 어머니들을 불러 교실 청소 시키거나 복도 유리창 닦게 하는 몰염치가 만연한 이곳이 과연 교육의 장이라 이름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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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 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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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1) 교육실적물이라는 이름의 상품은 "소외의 한국공교육" 메카니즘의 핵심적 외연을 이루는데, 이것이 왜 교육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일반인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교육실적이 많은 교실 또는 학교치고 역설적으로 교육적인 학교(학급) 잘 없다. 그 교육실적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이들을 소외시킨 채 하고지비 관리자와 교사들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원리상, 바람직한 교육의 결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의 지적˙정서적 성장이나 인격적 발달은 외현적인 실체로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연구˙시범학교(학교차원)나 선도반(학급차원)에서 발표일에 어떤 평가가 이루어질 때 그것은 죄다 눈에 보이는 실적물에 근거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 평가를 잘 받아 뭘 챙기려는(승진이나 근무지 이동에 필요한 점수 따위) 교사와 교장˙교감의 입장에서는 실적물 만들어내기에 혈안이 되기 마련인 것이다. 연구학교나 시범학교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수업결손이 파생된다. 아이들 자습 시켜놓고 교사가 실적물 챙기기 바쁘다. 그래서 일선 현장에서는 "시범학교는 시범적으로 아이들 망치는 학교"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각주2) 시장경제사회에서 상품의 가치가 ‘사용가치’는 사상된 채 오직 ‘교환가치’로서만 존재하듯이 교육상품의 가치도 오직 교환가치로서만 존재한다. 교환가치의 매개이자 일반적인 등가물이 ‘화폐’인데, 학교에서는 각종 평가 점수가 똑같은 기능을 한다. ‘길 잃은 어린 양’의 손을 붙들고 같이 울어주는 페스탈로찌 정신 따위는 돈 안되는 교육실천이다. 아니, 그런 교육애를 실천할 시간과 심적 여유가 없다. 승진과 영달에 눈이 먼 상관들(관리자와 부장교사)가 독촉해대는 교육상품 찍어내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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